비뢰도 7권 15화 – 윤준호의 기연

비뢰도 7권 15화 – 윤준호의 기연

윤준호의 기연

수련을 끝까지 마친 모용휘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그는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련을 시작했던 것이다.

쓰러진 얼굴에 미소가 어려 있는 걸 보니

나름대로 자신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얻은 모양이었다.

“아픈 몸으로 이 지독한 수련을 잘도 견뎌 냈군!’

모두들 감탄한 시선으로 잠들어 버린 모용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다 더욱 의외인 것은 바로 윤준호였다. 그의 이번 업적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마지막 남은 네 사람 중에는 끼지 못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 중에 서 가장 오래 버틴 이가 바로 그였다.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그의 근성과 끈기 하나만은 인정해 줘야 했다. 윤준호는 의외로 단련되어 있었다.

“어느 새 그렇게 성장했느냐?”

두 눈 똑똑히 뜨고 시작과 끝을 지켜본 염도로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궁금증이 치민 염도가 겨우 정신을 차린 윤준호에게 물어 보았다. “네! 어떤 할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하다 보니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어떤 할아버지?”

“네! 해어진 도복을 입은, 고기를 좋아하는 이상한 도사 할아버지셨어요. 왠지 화산에 계신 태사부님이 생각났습니다. 아! 물론 저희 태사부님이 고기를, 육식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분은 생식을 즐기시죠.”

“자세히 말해 봐라!”

염도가 재촉했다.

“그러니깐…….”

그것은 며칠 전의 일이었다.

윤준호는 그 날 깊숙한 산 속에서 큰맘 먹고 오래간만에 매화검법을 펼쳐 보기로 작정했다. 천무학관에서의 가혹한 수련과 합숙 훈련에서의 고달픈 수련을 겪어 오면서 왠지 요즘 온몸에 힘이 넘쳐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잘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윤준호는 진지한 얼굴로 이십사수 매화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의 검에서 붉은 검기가 뻗어 나왔다.

“매화노방(梅花怒放)!”

“매화토염(梅花吐艶)!”

“매화충천(梅花衝天)!”

“매화분분(梅花紛紛)!”

붉은 검기가 검광을 뿌리자 허공에 매화 꽃잎이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무가 점점 고조될수록 그에 비례해 매화향은 점점 더 짙어졌다. 그의 얼굴은 매우 우습게 변해 있었다. 이제는 한계였다.

“아악!”

마침내 윤준호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의 온몸은 두드러기로 말이 아니었다.

사 초식을 연달아 펼친 것만 해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은은한 매화향에 윤준호는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허허허허! 그것 참!”

등 뒤에서 웃음 소리가 들려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허허허! 참으로 재미있는 아이구나! 그 나이에 검향지경이라니. 그리고 두드러기라…….”

아직도 두드러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몸으로 윤준호는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에 붉은 반점이 두드러기와 함께 알록달록 남아 있어 좀 우스운 꼴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한때는 분명히 도복이라 불렸을 것이 분명한 다 해어진 옷을 걸치고 있는 노인이 서 있었다.

“고인께서는 누구십니까?”

윤준호가 정중하게 물었다. 누구처럼 예의 없이 막나가는 질문은 아니었다.

“고인은 무슨!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아이로구나. 그 나이에 화산파 특유의 검경인 검향지경에 든 것만도 놀라울 정도인데 어린 나이에 이처럼 짙은 향기라

니……. 너의 성취는 내가 본 누구만큼이나 뛰어나구나!”

“누구라시면?”

“허허허! 유환권이라고, 화산파에서는 매화검선(梅花劍仙)이라 불리고 있지 아마? 나만큼이나 검에 미친 사람! 나의 의형이야!”

하마터면 윤준호는 장님이 될 뻔했다. 눈알이 제멋대로 튀어나올 뻔했던 것이다.

“태… 태사부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윤준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산파 최고 배분인 태사부 매화검선 유환권을 ‘의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게다가 저 복장은 낡고 해어지 기는 했지만 무당파의 복장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태사부님께 귀여움 받을 때 스쳐 가는 이야기로 들은 풍월이 하나 있었다.

‘무당파에 검에 미친 다 늙어빠진 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이……..

윤준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 혹시 노선배님의 존함이……”

“응? 아직 얘기 안 했었나? 남들은 나를 현검자라고 부르지. 별로 유명한 이름은 아니야!”

본인은 유명하지 않다고 극구 주장하지만, 윤준호로서는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름이었다.

“존장을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윤준호가 다급히 포권지례를 취했다. 만일 태사부인 매화검선 유환권과 같은 배분이라면 그로서는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까마득한 배분의 소유자라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얘야! 지나친 예의는 오히려 비례(非禮)가 된다는 것도 모르느냐. 그런 인사를 받으니 온몸이 따갑고 근질거리는구나. 그것보다 난 네녀석의 이야기가 궁금하구 나.”

“예? 무슨 말씀이신지?”

“뭐긴 뭐겠느냐! 검향지경에 어울리지 않는 너의 그 어설퍼 보이는 매화검법의 검로에 대해서 말이다.”

노도사의 두 눈은 흥미진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흐흠… 그러니깐 그런 일 때문에 왕따를 당해 왔다고?”

“네!”

풀 죽은 얼굴로 윤준호가 대답했다. 과거가 생각나자 마음이 시무룩해졌다. 물론 현재는 왕따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왕따라… 그리운 울림이군.”

현검자도 왕따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니 노선배님께도 그런 경험이 있으셨단 말입니까?”

윤준호는 화들짝 놀랐다. 무당팔검의 수좌이자 천하오검수의 일인인 현검진인이 소시적에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육성 고백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검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때 그런 일이 있긴 있었지! 주위에서 튀는 사람은 언제나 견제를 받게 마련이거든.”

현검자의 재능이나 능력은 그 당시 또래의 동문들에 비해 특출했다. 그보다 뛰어난 자질을 보인 사람은 대사형인 공손일취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서나 특출한 자가 걸어갈 길은 두 가지뿐이었다. 타인의 존경을 받는 선망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왕따의 대상이 되어 주위의 견제와 집단 따 돌림을 당하거나.

공손일취는 전자의 경우로 남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았고, 현검자는 후자의 경우가 되어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에게 가장 잘 해 준 이는 그보다 뛰어난 자질을 지닌 대사형 공손일취뿐이었다. 대사형 공손일취는 그에게 아무런 질투도 가질 필요가 없기에 그를 사심 없이 편안하게 대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얼간이들 사이에 있으면 재능 있는 자, 재기발랄한 자는 자연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지! 약한 자들은 자신에게 향해지는 위협을 참을 수 없거든.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자신보다 약한 자를 깔보고 짓밟아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과응보가 두려운 거지! 그들은 이 세상을 자신들의 기준과 틀에 맞추어 놓고 자신보다 강한 자들은 자신들을 짓밟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지레 놀라 몸을 움츠리는 거지. 그게 바로 왕따라는 사회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럼 저…….”

윤준호의 말은 현검자가 단숨에 끊어 버렸기에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고 따돌리는 녀석들은 어떤 놈들이냐고? 아이야! 그런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

윤준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신이 지금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을 전위적으로 나타냈다.

“그놈들이야 당연히 철이 덜 든 정신적 미성숙아들이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에 똘똘 뭉친, 역지사지(易之思之)가 뭔지 쥐뿔만큼도 모르는 얼간이들!”

상종할 가치조차 없는 바보이자 얼간이이고, 그러면서 또한 미숙아들이다. 한마디로 개념이 없는 거지! 자기가 하는 일이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조차 못 하는 어리석고 어리석은 미숙한 정신.

그런 자들을 보거든 조용히 비웃어 주거라! 그러다 더 맘에 안 들면 엉덩이를 까고 불이 날 정도로 때려 주는 것도 좋겠지. 그러나 아이야!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 라! 남들이 미성숙한 얼간이짓을 집단으로 저지른다 해서 너까지 그 얼간이 미성숙 집단에 물들어 가세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예…….”

현검자의 장광설에 윤준호는 입을 봉하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바보, 천치, 얼간이, 멍청이는 적으면 적을수록 세상에 보탬이 되는 법이란다.”

“예! 노선배님!””

“노선배는 무슨! 도사님이라 불러라! 어감도 좋잖아?”

“예! 노선배님!”

“도, 사, 님!”

현검자가 한 자 한 자 끊어 가며 강조했다.

“예… 예! 도… 도사님!”

일말의 거리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윤준호는 항명할 수가 없었다.

“세상의 법칙은 냉엄하고 준엄하고 공정해서 남을 업신여기는 자는 언젠가 그 모든 응보를 받게 되지. 이번 생애에 받지 못한다면 다음 생애에라도 말이다.” 도사치고는 왠지 과격한 할아버지라고 준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고, 윤준호의 가슴에 저리도록 와 닿는 말이었다.

“원래 그런 놈들은 네가 이 상태보다 더욱 강해져서 도저히 쫓아오지 못할 경지에 이르면 다 떨어져 나가게 돼 있다. 내가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주마.” 현검자가 두 눈을 빛내며 말했다. 흥미로운 놀잇감이라도 잡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벌써 20일 가까이 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염도가 말했다.

“호오! 그래서 그 노인이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단 말이지. 자신의 정체나 가르쳐 준 것에 대해서는 남에게 알리지 마라고 하면서?”

“예!”

“한마디로 말해 기연이로군!”

염도가 감탄을 터트렸다. 이 얼간이 녀석이 어디 가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기연을 얻어 온 것이다. 자신이 기연을 얻었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점이 윤준호다 웠다.

“그런 게 기연인가요?”

역시 자각이 없었다.

“그럼 기연이 별건 줄 알았느냐?”

“전 어디선가 만 년 묵은 영물의 영단을 먹거나, 절벽에서 떨어져 전대 고인이 남긴 유급을 얻거나 해야만 기연인 줄 알았는데…….”

“딱!”

당장에 염도의 주먹이 윤준호의 머리통으로 날아갔다.

“이놈아! 기연이 별건 줄 아느냐? 기이한 인연을 만나 자신에게 득이 되면 그게 바로 기연이다.”

머리통 위로 튀어나온 혹을 부여잡고 윤준호는 두 눈을 말똥거리며 궁리에 잠겼다. 지켜보는 이에게는 어리숙하게 보이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나는 기연을 얻은 건가?”

그러나 그를 대신해 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강해졌는지 약해졌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윤준호였다.

동료들이 체력과 심력을 다하여 무한의 인내 속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갈 때, 과연 비류연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남들이 흘린 땀의 대가로 성취감 을 얻었을 때,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남들이 가슴 벅찬 감동의 물결 속에서 환희에 찬 희열을 만끽하고 있을 때, 과연 비류연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음냠냠!”

그때 비류연은 취침에 들었다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비록 이불 한 장 없이 자연 속에 잠들었지만, 새벽의 찬이슬도 비류연에게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눈더미 속에서 사흘을 잔 적도 있는 화려한 전적의 소유자였다. 새벽 이슬과 땅의 한기 따위를 걱정하는 것은 그의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에 대한 실례였다. “으하아아암!”

따가운 아침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기 시작하자 비류연은 비로소 눈을 떴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느긋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꼬르륵”

일어나자마자 배꼽 시계가 식사 시간임을 맹렬하게 알려 왔다. 이 시계는 다른 건 다 좋은데 너무 정확한 게 문제였다.

“찌릿!”

비류연이 눈짓을 주자 나무에서 열매가 툭 떨어졌다. 맛있어 보이는 사과였다. 까마귀가 날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떨어지다니 건방진 사과가 아닐 수 없 었다. 아직은 푸른 기가 돌지만 빨갛지 않다 해서 먹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었다.

“으음! 아침은 생선 요리로 먹을까?”

과일은 식전 예비 운동일 뿐이었다.

비류연이 자리한 나무 그늘에서 십오 장쯤 떨어진 곳에는 가까운 계곡에서 갈라져 나온 물줄기가 고여서 만들어진 연(淵)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생선 요리를 먹으려면 우선 물고기가 있어야 한다.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는 낚시라는 일련의 노동이 필요하다. 한데 낚시를 하러 가는 그의 몸 어디에도 낚싯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도 나무줄기에 등을 기댄 채 한가롭게 누워 있었다.

비류연이 한 일은 물끄러미 깊고 푸른 연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유에 이 연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한참동안 비류연은 호수를 바라보는 데만 시간을 할애했다. 연을 해부라도 해 보겠다는 그런 기세였다.

“우웅!”

그러자 놀랍게도 연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무언가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미쳐 날뛰지 않는다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는 일이 었다.

연의 한복판에 파문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고인 물이 회전하며 이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루었다. 그런 다음 세차게 회전하는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물고기 한 마리 가 튀어 나왔다. 마치 호수가 내던진 듯했다.

수면 반 장 위로 물고기가 떠오르자 비류연이 왼손가락 하나를 까딱하고 가볍게 움직였다. 뇌령사가 스르륵 움직이며 그의 눈 앞에 갓 잡아 올린 물고기를 대령했 다. 어느 새 꺼내 든 오른손의 소도가 생선 위를 눈부시게 누비자 금세 한 접시의 즉석 민물회가 완성되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관계로 간단히 회 한 접시 먹는 걸로 아침 식사를 끝내기로 했다. 역시 자신은 자상하기 그지없는 멋진 대사형이라고 비류연은 생각했 다.

비류연의 손이 젓가락을 눈부시게 놀리기 시작했다.

회는 더없이 싱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