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17화 – 재폭주(再暴走)

비뢰도 7권 17화 – 재폭주(再暴走)

재폭주(再暴走)

“크아악! 크아악!”

술이 넘어가다 목구멍에 걸릴 뻔했다.

한창 주흥이 무르익으려던 참에 판을 깨는 소리.

천살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음주가무를 끝내야 할 듯했다.

“제기랄! 망할, 망할!”

천살이 특유의 상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크악! 으악!”

수하들의 비명이 귓전을 때렸다. 비명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걸 보니 속수무책인 모양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자네답지 않은 실수로군!”

지살이 약간의 비난이 섞인 시선을 보냈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아까운 마령신단만 하나 날렸군!”

날린 것뿐만 아니라 손해도 막심했다. 완전히 돌아버렸다. 이미 제어는 그의 손에서 벗어났다.

“피아도 구분 못 하는 야수귀(野獸鬼)로군!”

지살이 투덜거렸다.

“골치 아프겠는데…….”

“어디로 숨어든 건가?”

“본능에 따른 행동이겠지! 살아남기 위한! 그리고 제대로 죽이기 위한! 사냥감을,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탁!”

오른손에 들려 있던 천살의 잔이 술상 위로 소리 내며 떨어졌다. 이 잔이 그의 손이 잡는 마지막 잔이 될 줄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은 이내 한 장소로 급히 신형을 옮겼다. 그 뒤를 수하들이 열심히 뒤따랐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먹다 만 술상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했다. 바람의 세기와 온도도 알맞았다. 그늘의 온도도 정적 수준이었다.

점심 식사 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포만감도 만족스러웠다. 낮잠을 자기에 최고의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무 그늘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비류연이 중얼거 렸다. 이 그늘은 얼마 전 그가 오랜 탐색 기간 끝에 발견한 명당 중의 명당이었다.

그 날 이후 비류연이 항상 애용하는 휴식처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존경을 보낼 만한 나무의 혜택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류연은 뼈를 깎고 살을 깎는 수행에 열중하는 동료들을 외면한 채 달콤한 낮잠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좋군. 좋은 날씨야!”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낮잠 자기 좋은 날씨군!”

아직도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천라지망이 걷히지도 않았는데, 그는 여전히 천하태평에 여유만만, 유유자적까지 하고 있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을 두 볼로 느끼며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등을 타고 올라오는 서늘한 냉기가 기분 좋았다. 아직도 천검조와 주작단은 염도의 혹독한 지도 아 래 지독한 훈련을 열심히 받고 있었다.

‘열심히 해야지! 수고들 해요!’

마음 속으로 응원을 보내 주는 데는 아무런 돈도 수고도 들지 않으므로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었다.

이번에 염도가 맡은 임무는 막중했다. 천지쌍살과 그의 수하로부터 관도들을 지키는 보모 노릇은 물론이고 이들을 모두 멀쩡히 살려 보낼 임무까지 띠고 있었다. 눈을 붙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챵! 챵! 채채앵!”

“슈욱슈욱! 쉬익! 쉐에에엑!”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전을 간지럽혔다. 십수 개의 검들이 보여 주는 현란한 움직임에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처음엔 한없이 약한 소리였지만, 지금은 고막 을 울리고 산을 진동시킬 정도의 큰 소리로 변해 있었다. 검풍이 대기를 헤집었다.

비류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때였다.

“푸드드득!”

봉우리 전역에서 한순간에 수백 마리의 새들이 날아올랐다. 가지각색의 새들이 한꺼번에 도망이라도 가듯 일제히 날아오른 것이다.

비류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살을 찌르는 듯한 살기!

“곧 손님이 찾아오겠군!”

봉우리 전체를 뒤엎을 수 있는 지독한 살기의 소유자였다. 비정상적인 살기로 똘똘 뭉친 사람. 살기의 근원은 점점 더 이곳 합숙소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피라도 먹고 싶은 건가?”

피부를 자극하는 살기는 이런 생각이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다.

“오늘 낮잠은 끝났군! 보기 드문 명당인데.

이만한 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비류연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달콤한 낮잠의 유혹을 막강한 인내로써 떨쳐 내고 자리에서 일어난 비류연은 손을 움직여 주위에 쳐 놓았던 뇌령사의 결계를 회수했다.

비뢰도(飛雷刀) 오의(奧義) 비의(秘意)

결계(界)의 장(章)

창천뢰망(蒼天網)

회수(回

사방으로 퍼져 있던 투명한 은실들이 비류연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한 올 한 올 매듭이 풀리듯 풀어지며 다시 회수되어졌다. 햇살에 반짝이는 빛이 신비로울 정 도로 아름다웠다. 빛과 함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이었다.

경계용 결계 회수를 끝낸 비류연은 곧 예의도 모르는 예고 없는 방문자가 찾아올 합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좀 바빠질 것 같았다.

“온다!”

“오는군!”

“옵니다!”

푸드드득!

산에 둥지를 틀고 있던 각양각색의 새가 하늘을 메울 듯 날아올랐다. 살기를 느낀 이는 비단 비류연뿐만이 아니었다. 방문자의 살기는 너무나 노골적이었다. 산새 들을 모두 쫓아 버릴 정도로 산 전체를 진동시키는 노골적인 살기를 감지하지 못한다면, 고수 낙제점에 진급누락감이었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그동안 모종의 이유로 방관자가 되어 버린 무진자를 제외하고 염도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쌓았던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여기 있는 모두가 공감하 는 사실이었다.

무진자는 현재 혈도를 짚어서 일 주일 내내 수면 상태였다. 특별 강화 훈련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무진자의 처우 문제는 특훈 시작 때부터 뜨거운 감 자였다. 비류연과 염도도 이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야 했다.

“어찌 할까요?”

특훈을 시작하기 전 염도가 물었다.

“귀찮군요! 분명 방해를 하겠지요?”

“물론입니다. 훈련 일정을 바꿨다고 노발대발하는 게 눈에 밟히는군요. 어떠한 이유를 대도 들어먹을 사람이 아닙니다. 고집불통 아닙니까!”

“재워 버리죠! 요즘 학생들 가르치느라 피곤했을 텐데.”

“역시 그 방법이 가장 좋겠군요.”

고개를 끄덕인 염도는 그 날 당장 식후 다향(茶香)을 즐기고 있던 무진자의 혈도를 냉큼 짚어 버렸다. 앞으로 일주일은 푹 숙면을 취할 수 있는 혈도였다. 아마 당 삼이한테 받은 수면제도 꽤나 효과를 더해 주리라 염도는 믿어 의심지 않았다.

그런 배경 속에서 특훈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특훈의 성과를 시험해 봐야 할 때였다.

드디어 살기가 지척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챙!”

완전히 아물지도 않은 상처로 갈효봉의 쌍도와 정면으로 부딪친 이는 모용휘였다. 청흔이 성급하다고 질책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쾅!”

거대한 기폭음이 산을 움직일 듯 크게 울려 퍼졌다. 혈전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