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19화 – 천지쌍, 수족이 잘리다

비뢰도 7권 19화 – 천지쌍, 수족이 잘리다

천지쌍, 수족이 잘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애송이들이라고 얕본 게 큰 실수였다.

수족처럼 부리던 초혼오귀검과 명부오귀장이

한순간에 당하자 천지쌍살은 마치 사지가 절단된 듯한 공허한 느낌이었다.

깔짝거리던 명부오귀장이 염도의 등장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염도의 도를 자신들의 도로 막아 보겠다는 행동이 만용에 가까웠던 것이다. 만용의 대가는 컸다.

천지쌍살은 자신들에게 이런 공허감을 안겨 준 천무학관 녀석들이 무척이나 괘씸했다.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물론 그들이 애초에 용서란 걸 모르는 인간들이었기에 그들에게 있어 괘씸죄에 대한 최고 구형은 바로 사형이었다.

“깔끔하게 죽여 주마.”

이를 갈며 천살이 외쳤다.

“할 수 있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어요! 원래 졸개가 죽으면 우두머리가 나오는 법이니까. 어서 덤벼 봐요.”

비류연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천지쌍살로서는 살다살다 이런 모욕은 처음이었다.

“크크크크! 원한다면 모조리 몰살시켜 주마!”

“끼이이이이익!”

그의 요검(劍) 귀혼(鬼魂)이 요사한 검명(劍鳴)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끼리리리링! 딸랑딸랑!”

그의 왼쪽 손목에 달린 초혼령이 사이한 소리를 내며 공기 속에서 울려 퍼졌다. 천살의 독문검법인 초혼귀령검법(招魂鬼靈劍法)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옥의 마귀를 부르는 듯한 괴이한 소리였다.

“이제 어떻게 한다?’

고민하는 비류연의 뇌리에 지난 밤 염도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약해져야 합니다! 일단 동정심을 유발하는 거죠!’

“어떻게요?”

‘일단 도망가야죠!’

비류연은 일단 도망가기로 했다.

“끼이이이이이!”

천살의 검이 흉음(凶音)을 토하며 뻗어 나갔다. 비류연은 신형을 뒤로 빼 천살의 검권(劍圈)에서 벗어났다. 상대의 공격권 안에 있어 봤자 좋은 일 일어날 리가 없 었다.

천살의 양미간 거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감히!”

그가 다시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여전히 비류연의 옷자락 하나 스칠 수 없었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 비류연은 벌써 저만치 도망가 있었던 것이다. “뭐 하는 짓이냐?”

신형을 날려 비류연의 뒤를 쫓으며 천살이 외쳤다.

“도망이요!”

비류연은 당당하게 소리쳤다. 작전상 후퇴는 부끄러울 게 없었다.

‘알면서 왜 물어 보는 거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 대해 물어 보는 천살을 비류연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화까지 내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은 계획대로 열심히 도망가는 게 최선이었 다.

“저… 저놈이!”

비류연의 경공 속도는 천살의 예상을 웃돌았다. 열 발자국 안에 단숨에 잡아채서 요절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놈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것이었 다.

슬슬 오기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의 당당했던 태도와 다르게 계속 도망만 가는 비류연의 행동이 천살로서는 어처구니없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열심히 몸을 뒤로 빼며 도망치는 비류연의 모 습은 조금 전 큰소리 떵떵 치던 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울화가 치민 천살은 신경질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사방으로 마구잡이로 뻗어 나갔다. 왜 피를 뿌리며 나자빠지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미꾸라지 같은 놈!’

애송이 녀석이 자신의 검을 종잇장 하나 간격으로 피하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도망자는 도망자일 뿐이다.

“역시 속 빈 강정 같은 애송이의 허장성세였을 뿐이로군!”

비류연을 쫓던 천살의 입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회가 왔으니 사양하지 않고 마음껏 비웃어 주겠다는 태도였다. 전혀 어른답지 않은 태도였다.

“네놈의 사부는 도망치는 법만 가르쳐 주더냐? 비겁한 놈! 겁쟁이!”

우뚝!

도망가던 비류연이 갑자기 몸을 바로 세웠다. 잊고 있던 사부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우리 사부한테 온갖 잡학을 다 배웠지만, 유일하게 못 배운 게 하나 있지요! 그게 뭔지 알아요?”

천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보기에 비류연의 태도는 여유롭기 짝이 없었다. 그는 비류연이 멈춰 섰는데도 공격할 생각을 않고 있었다. 언제든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지금 천살의 표정은 상당히 전위적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검 끝에서 다시 한 번 살기가 꿈틀거렸다. 빨리 저놈의 피를 달라고 애검 귀혼이 재촉하고 있었다.

비류연이 싱긋 웃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도망치는 법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겁쟁이가 되는 법이죠.”

비류연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성과 없는 연극은 이제 끝났다.

“역시 남의 비웃음을 사는 건 적성에 안 맞는군요!”

다른 것도 물론 못 참지만 타인의 비웃음까지 감내할 정도로 비류연의 마음은 비굴하지 못했다. 비뢰문의 무공은 남에게 비웃음을 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 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건방지게 콧대만 높은 인간들을 손봐 주기에 이것만큼 적절한 무공도 세상에 없었다. 몇 바퀴 빙글빙글 돌면서 유심히 나예린의 표정을 살펴 보니 그녀에게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도망치는 건 배우지 못했다고?”

천살이 기이한 시선으로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네!”

“겁쟁이가 되는 법도 못 배웠다고?”

천살의 얼굴이 점점 더 험악해졌다.

“물론이죠!”

비류연이 당당히 대답했다. 천살의 표정이 애매모호하게 변했다.

“그런데 너 말이다…….”

“네?”

“그렇게 여자 치마폭 뒤에 숨어서 진지한 얼굴로 말하면 전혀 설득력이 없단다, 꼬마야! 그 사실은 아느냐?”

“그런가요?”

아직도 비류연은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비류연은 나예린의 가냘픈 어깨 뒤에 숨어 그녀의 어깨 뒤로 고개만 빼꼼 내민 상 태였다. 그러니 아무리 진지한 얼굴로 호언장담한들 신빙성이 있을 리 없었다. 씨알이 먹힐 리 없지 않은가.

‘흐흠… 작전 실패인가…….’

상황을 보아하니 – 바로 코 앞에 그녀의 얼굴이 있어 보기에는 무척 편했다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나예린이 동정심을 발휘해 줄 것 같지가 않았다. 오 히려 경멸의 눈빛마저 미세하지만 담고 있는게 아닌가.

아무래도 작전은 대실패인 것 같았다.

“역시 노총각의 조언은 믿는 게 아니었어! 괜히 믿었다가 손해 봤네!”

주위를 돌보지 않는 비류연의 투덜거림에 지살과 싸우고 있던 염도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의 눈에 분노가 번뜩였다.

지살과 초식을 나누며 혈전을 벌이는 터라 경황이 없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비류연이란 이 인간의 말소리가 귀에 또박또박 들어와 박히는 게 아닌가! “크아아악!”

염도가 발작적인 괴성을 지르며 열기로 이글거리는 도를 난폭하게 내려쳤다.

갑자기 눈 앞에 끝끝내 짝사랑으로 끝난, 이제는 남의 여인이 된 혁소운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지살의 얼굴이 얼어 죽을 빙검 녀석이랑 겹쳐 보였다. 몸매나 인상 은 오히려 천살 쪽이 더 유사하지만 지금 염도의 눈엔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쾅!”

“으리얏! 개자식! 죽어 버려!”

지살의 거도와 부딪쳐 나가는 염도의 입에서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 욕설이 터져 나왔다. 크게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의 눈이 타는 듯한 저녁 노을처럼 붉게 변했다. 그의 화령신공(火靈神功)이 극성으로 발휘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사방의 모든 존재를 불태울 듯한 사납고 무시무시한 열기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크윽!”

다시 한 번 염도와 도를 마주친 지살은 상대가 내뿜는 무시무시한 열기에 흠칫 놀랐다. 명부도를 감싸고 있는 열기가 줄어들기는커녕 초반보다 더욱 거세지고 있 는 게 아닌가.

염도의 독문검기인 검염기(劍焰氣)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십수 년 전 염도가 자신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혔을 때도 이 정도 열기는 아니었다.

열대의 사막 한가운데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열사(熱砂)의 사막!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 었다.

‘물을 마시고 싶군! 젠장!’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삽질로 끝났던, 무슨 일이 닥쳐도 빠지지 않던 살들이 오늘 자신의 몸을 떠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 가는 근수가 수십 근은 족히 줄어들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녹주(綠州 : 오아시스)는 멀고도 험했다. 게다가 녹주까지 가는 길에는 사납고 무시무시한, 불을 뿜는 괴수 한 마리가 가로막고 있었다. 게다가 성격도 상당히 괴팍하고 사납기 그지없었다.

돌아갈 길은 없었다. 괴수를 처치하는 용사의 심정으로 자신의 살을 태우는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살은 절정 고수답게 도를 휘둘렀다.

“채챙! 쾅!”

혼신의 힘을 기울인 일격도 붉은 괴수의 이빨을 부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염도의 홍염(紅)과 지살의 명부도(冥府刀)가 한 곳에서 얽히며 귀청을 찢는 굉음을 토해 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싸움 중 모용휘와 청흔의 대결을 제외한다면, 가장 요란하고 화려하며 박진감 넘치는 승부였다.

“빌어먹을!”

그에게 소면살(笑面殺)이라고 이름 붙여 준 지살의 소면(面 : 웃는얼굴)은 이미 깨어진 지 오래였다. 그의 얼굴은 비 오듯 쏟아지는 땀과 일그러진 살들로 귀면 (鬼面)을 방불케 했다.

진홍십칠염(眞紅十七炎) 검염기(劍焰氣)

제팔염(第八)

염격(炎擊)

염도의 도가 다시 한 번 사정없는 도기를 뿜어 내며 압박해 들어갔다. 불꽃이 우박처럼 떨어지며 지살을 유린했다.

염도의 홍염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이 뱀의 혀처럼 낼름거리며 지살의 도를 휘어감고 올라가 그의 오른손을 사정없이 유린했다. 지글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 는 듯했다.

지살의 얼굴에 붙은 살들이 비명을 지르며 부들부들 떨렸다.

‘목이 말라!”

물!

갈증의 고통만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