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26화 – 마진가의 고민

비뢰도 7권 26화 – 마진가의 고민

마진가의 고민

“쏴아아아아!”

비가 미친 듯이 땅을 때렸다.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소?”

천무학관주 마진가가 주위를 훑어보며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분위기를 더욱 음침하게 잡아 주기 위해선지, 아니면 하늘의 심술인지 밖에는 폭우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한 장로가 일어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으나 그것은 듣지 않은 것만 못한 의견이었다.

“그렇다면 장로의 말은 아이들을 제물로 삼자는 말입니까? 그게 말이나 됩니까?”

마진가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또 다른 거인의 마음 속엔 지금 조용한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흑천맹주는 자신의 아들 갈효봉의 죽음과 연루된 모든 아이들의 신병을 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한 무력 시위로 그들이 파견한 것이 철각비마대라는 것을 관주께서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으음…….”

철각비마대! 전마(戰馬)과 장창(長創)을 무기로 삼는 죽음의 철기병! 전투 훈련을 받은 철기병이 절정 무공을 익히면 얼마나 잔혹한 일을 벌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 준 공포스런 존재들이었다.

집단 살육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 병기! 철각비마대를 파견한 것만으로도 흑천맹주 굉혈도 갈중효와 그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신마 갈중혁의 분노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하고도 남을 만했다.

하지만 이쪽도 합죽이가 될 필요는 없었다. 먼저 예고도 없이 암습을 가해 온 쪽은 저들이었다. 주작단과 천검조의 행동은 정당방위였다. 오히려 기적적으로 전원 생환해 온 것을 축하해 주고 칭찬해 주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런데 장로들이 이런 소심한 태도를 보이니 마진가가 답답할 만도 했다.

답답한 사람은 비단 마진가뿐만이 아니었다. 원로원주 검존(劍尊) 공손일취도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기는 마진가에 뒤지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가…….?

비류연 일행에게 붙여 준 천리추종(千里追從) 수독고로부터 정기적인 보고가 끊긴 지도 벌써 며칠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가 정기 보고를 잊은 적은 한 번도 없 었다.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눈과 귀가 모두 막혀 버린 듯한 느낌이로군! ‘

수독고만 무사하다면 무당산에서 벌어진 사건의 개요를 제대로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포기해야만 하는가…….’

수독고가 이미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공손일취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얼굴을 붉히고 있는 마진가에게로 향했다. 지금은 관주의 판단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 천검조와 주작단의 상황 증언에 따르면 먼저 암습을 가해 온 게 저쪽이라고 하지 않소. 그런데 겨우 무력 시위 때문에 저들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하지만 증거가 빈약합니다.”

다시 한 장로가 나섰다. 고등 검법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화산파의 영허진인이었다.

“저들은 정신 이상 증세가 있는 아들이 촉망중에 감옥에서 탈옥한 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작단을 암습한 흑의 복면들은 아들을 도로 잡아가기 위해 파견된 무인들이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주작단이 맞섰다고 주장하는 천지쌍살과 그의 수하 암습자들은 시신조차 없지 않습니까. 이 상 태로는 불리합니다. 게다가 흑천맹주 갈중효는 이번 일에 대해 정말로 모르는 모양입니다.”

“허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장로들과 무사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증거… 증거라……. 증거만 있다면…….”

꼬리를 말고 부리나케 도망간 이들이 용케도 흔적을 몽땅 지우고 달아났기에 남아 있는 증거가 없었다. 현장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은 염도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었다. 완전히 후퇴한 줄 알았던 그들이 밤에 남 몰래 돌아와 흔적을 몽땅 지우고 달아날지 누가 알았겠는가. 때문에 증거 따위를 제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관 계자의 육성 증언은 너무 신빙성이 떨어졌다.

비난의 화살이 모두 염도에게로 날아와 꽂혔다. 염도는 마음 속으로 무시하려고 애썼다.

“주장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오!”

마진가가 마침내 수행을 깨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역시 이들은 너무 앞뒤가 콱 막혀 있었다.

“그들은 피의 율법,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법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들의 요구는 들어 줄 수 없소!”

마진가의 결정은 단호했다.

결자해지란 끈을 묶은 자가 푼다는 말로, 일을 벌인 사람이 책임을 진다는 이야기다. 흑도에서 말하는 피의 율법을 가리키는 이 법도는 이 사건에 연루된 자들이 자신들이 보낸 장애, 관문, 시련을 통과한다면 없던 것으로 해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즉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위를 명백히 가릴 수 없 을 때 자주 쓰이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보낸 무리들은 철각비마대요! 철각비마대를 이끄는 이가 흑도 전설의 무인 질풍묵흔(疾風墨痕) 구천학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절정 고수 를 전문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흑도 최강 기마대인 철각비마대와 질풍묵흔 구천학을 상대로 애들만 보내는 것은 그들을 사지로 몰아 넣는 것이나 다를 바 없소. 게다가 잘못은 저쪽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 준단 말이오.”

“하지만 내세울 증거가 없습니다.”

“아이들의 눈과 귀가 바로 그 증거요.”

다시 한 번 마진가가 탁자를 치며 언성을 높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회의는 계속 제자리를 빙글빙글 맴돌고 있었다.

“가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조금 전 대성을 토해 낸 사람이었다.

“그쪽이 원하는데 맞대결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활활 타오르는 눈빛을 지닌 그 사람은 바로 염도였다.

이번 결정에도 비류연의 마수가 있었다. 사태에 대해 고민하는 염도에게 비류연이 던진 악마의 속삭임 같은 한마디!

‘자기가 벌인 일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우리끼리 해결한다고 해!’

미덥지는 않지만 비류연의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고 염도도 동의했다. 이 일을 벌인 책임은 비류연 대신에 염도가 몽땅 뒤집어써야 할 판이었다.

“아이들을 이끌고 사지로 걸어 들어가다니…….’

철각비마대의 높은 명성은 자신도 익히 들은 터였다. 그렇다고 공포심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절정의 전투 집단이기는 해도 절세 고수들은 아니었다. 염도 가 알기로는 확실히 그러했다.

‘두렵지 않다!’

염도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이 세상에 두려운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도 두려운 것이 분명히 있었다. 다른 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 나! 비류연의 예측 불가능한 행동만은 그도 무척이나 두려웠다.

주작단과 천검조는 무당산에서의 일로 극도의 피로에 쌓여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