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7권 27화 – 철각비마대와의 조우 (7권 끝)

비뢰도 7권 27화 – 철각비마대와의 조우 (7권 끝)

철각비마대와의 조우

“그들을 여기까지 유인한 다음 공격하는 게 어떻겠나?”

백무영이 지도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청흔의 친구라는 명목으로 이번 일에 따라와 있었다.

친구 혼자 사지에 몰아 넣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항상 냉정하고 이익이 없는 일에는 움직일 것처럼 보이지 않던 그의 이번 행동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그의 동행을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고, 때문에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매복 공격이 되겠군.”

청흔이 옆에서 맞장구쳤다. 백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철각비천마(鐵却飛天馬)를 막기 위해서는 수림(樹林)이 우거진 이쪽 지형이 유리하겠지요.”

우거진 숲 속만큼 기마의 발을 묶기 수월한 지형이 없었다. 문제는 과연 그들을 수림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남궁상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과연 그들이 속아 줄까가 문제로군요. 그들도 바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바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만에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철각비마대였다. 얕보다간 큰코 다칠 우려가 있었 다.

“미끼가 필요하겠지!”

청흔의 말이었다.

“적에 비해 우리는 너무 소수입니다. 이 방법이 가장 최선이라 여겨지는군요. 그들은 기공창(氣功創)에다 거창 돌격까지 해낼 수 있는 절정 고수 집단입니다. 그들 의 위력은 직접 겪어 본 이들만이 알죠. 저도 소문만 들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겠더군요. 천무학관의 높은 분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큰 일을 우리에게 떠맡긴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저의 상식으로선!”

잠시 불평을 늘어놓은 백무영은 장황하게 자신의 계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병법에 어긋남이 없는, 완벽한 정석의 극치 같은 계획이었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 완벽하기 그지없는 그의 계책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왜 이런 묘계를 짜야 하지요?”

다들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비류연을 바라보았다. 염도는 참담하게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얼른 감쌌다. 눈 앞이 암담했다.

“전투에 앞서, 그것이 어떤 전투이든 규모나 성격에 관계 없이 책략을 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매우 상식적인 일이죠.”

“그런가요?”

난 모른다는 비류연의 얼굴에 옆에서 신중하게 듣고 있던 모용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직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가 욱신거렸다. 완치도 안 된 상태라 다들 가기를 말렸지만, 책임을 이유로 한사코 따라온 그였다.

백무영은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설명해 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러하지 않을 시엔 비류연이 무슨 억지를 부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도 본능적으로 눈치채 고 있었다.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략이 필요합니다. 무작정 아무런 계획 없이 적 앞에 몸을 드러내는 것은 미친 짓이오!”

책에 적힌 것에 한 자도 어긋남이 없는 상식적인 말이었다. 통하지는 않았지만…….

“미친 짓이라……?”

입 속에서 말을 되새겨 굴려 보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이런 분위기를 먼저 알아챈 이는 바로 남궁상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비류연의 성향을 대충이나마 읽어 낼 수 있게 된 그였다.

“서… 설마 저 철각비마대 앞에 맨몸으로 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건…….”

“미친놈이나 할 짓입니다!’라는 말은 목숨이 아까워 차마 내뱉지 못하고 목구멍으로 다시 삼켰다.

“왜? 안 돼?”

비류연이 반문했다. 남궁상이 느낀 불길함에 친절하게 확인 도장을 찍어 주는 비류연이 그는 별로 고맙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안 됩니다.”

“이유는?”

“그건…….”

막상 물으니 선뜻 대답할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비류연이 답을 재촉했다.

“그건…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상식?”

비류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여지껏 상식이란 것에 대해 한 번도 고려해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구요. 그것이 상식입니다.”

“뭐가 그리 복잡해?”

비류연이 불평을 늘어놓았다.

“상, 식, 이니깐요. 그것에 어긋나면 잘 되는 꼴이 없기 때문에 상식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궁상이의 말에 동조했다. 비류연은 문득 짜증이 치밀었다.

‘과연 무엇이 상식이란 말인가? 맨 처음 상식을 정한 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비류연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따갑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 중에는 제발 어처구니없는 짓 좀 하지 마라는 만류의 눈빛도 있었다. 제발 한 번만 참아 달라는 하소연의 눈빛이었다. 간절함마저 어려 있는 그 시선의 대부분은 주작단의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을 한 번도 굽힌 적이 없는 비류연에게 그런 눈빛이 씨가 먹힐 리 없었다.

“내가 오늘 새로운 상식을 가르쳐 줄게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람들이 그를 뜯어말리려 했지만 이미 비류연의 신형은 그 자리에 없었다. 대체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빠르기 하나만큼은 징그럽게 빨랐다.

“대체 이 사람 어디로 사라진거야?”

청흔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자신 정도 되는 무인이 움직임을 읽을 수 없다니.. 그것은 수치였다.

“알려고 하지 말게!”

남궁상이 충고했다.

“상관하지 않는 게, 신경 끊고 사는 게 이롭습니다, 사형!”

거기에 유운검 현운이 한마디 덧붙였다. 청흔이 보기에 이 둘은 지금 장난치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이들의 시선에 감도는 저 난처함은 무엇이란 말인 가?

‘도대체 이 남자에게 얼마나 더 놀라야만 되는가?”

계속 놀라기만 하고, 당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이 그는 내심 불만이었다.

비류연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주작단원들은 남궁상과 청흔에게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되면 그 순간 뭔가 하나의 난처한 일을 떠맡아야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기 때 문이다. 일이 제발 자신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끝나기를 남궁상과 현운은 두 손 모아 빌었다.

“우르르!”

다시 한 번 상식이 붕괴되는 소리가 머리 속을 요란하게 울렸다. 이런 비극과 또다시 직면해야 된다는 현실이 이들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굉음, 대지를 휩쓰는 검은 말의 물결!

질풍에 펄럭이는, 용맹한 흑마가 수놓아진 칠흑빛 깃발! 하늘을 찌를 듯한 예리한 묵빛 장창! 보는 이에게 위압감마저 주는 묵빛 갑옷!

깃발은 마주 불어 오는 바람에 사납게 펄럭이고 있었다. 아직은 피내음을 실어 나르고 있지 않지만, 이들이 여기 온 이유는 지금 불어오는 이 밍숭맹숭한 바람 위 에 혈향(香)을 싣기 위해서였다.

“이건 또 뭐냐?”

철각비마대 부대주 철각비마(鐵却飛馬) 위무상은 얼굴에 떠오른 황당함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길을 막고 선 한 청년을 바라보았다. 갓 스물쯤 되 어 보이는 청년,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사선을 넘나든 그에게는 단순한 청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워워!”

반갑게 손을 흔드는 청년을 무시하고 지나가 버릴까 생각했지만, 철각비마 대장 질풍묵흔 구천학의 신호에 몰고 다니던 질풍이 우뚝 멈추었다.

흑도는 물론이고 백도에도 철각비마대의 명성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들이 지닌 거창(巨創) 기격(氣擊) 돌격은 전장 일대를 풍비박산으로 만드는 거의 반칙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그런데 애송이 하나가 자신들의 갈 길을 막아 섰으니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인가? 살다 보니 별 황당한 일을 다 당해 보는 그였다.

“넌 누구냐?”

대장인 구천학 대신 부대장 위천상이 물었다. 원래 이런 게 그의 역할이었다.

“아, 저 말인가요?”

청년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그것도 모르느냐는 말투였다.

“허허! 당돌한 녀석이로군. 그럼 여기에 또 너말고 누가 더 있단 말이냐?”

헛웃음을 터트리며 위천상이 말했다.

“그렇게 알고 싶으신가요?”

청년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짙어졌다.

“알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단 말이냐?”

“손해 볼 일은 아니죠. 후세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길 유명인을 직접 만난 적이 있노라고 몇십 년 후에 떠벌이며 자랑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죠. 광영(光榮)이 아닐까요?”

“허허허! 참으로 자존광대(自尊廣大)의 극을 터득한 시건방진 녀석이구나! 네놈은 철각비마대의 진로를 막은 것만으로도 이미 죽을 죄라는 것을 알고나 있느냐?” ‘응? 그러고 보니 왜 멈춰 섰지??

보통 때의 대장이라면 이런 일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것이다. 깔아뭉개고 지나가지는 않는다고는 해도 최소한 뛰어넘고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위천상은 힐끔 구천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대장의 기분 읽기를 포기한 위천상이 변함없이 험악한 인상으로 비류연을 노려보았 다.

“죽이기 전에 이름이나 알자꾸나.”

그러자 청년이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내뱉으며 말했다.

“비(飛), 류(流), 연(連)!”

무림 역사상 가장 황당한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한마디의 선언이었다.

<『비뢰도』 8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