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돌! 비기 대 비기
천지쌍살과 비류연, 그리고 염도의 대치에 상관없이 모용휘와 갈효봉의 격전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방금 격렬한 검기의 충돌로 팔이 저리듯 울려 왔다. 가슴마저 답답해져 왔다.
‘헉헉! 이자의 정체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산발한 머리에 수염은 잡초처럼 나 있어 전혀 다듬어지지 않고 있지만, 모용휘는 직감적으로 상대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많아 봐야 30 대를 넘지 않았으리라.
모용휘는 20대의 무인 중에 자신과 이만큼 겨룰 수 있는 인재들 중 이런 독특한 신색을 가진 사내의 이름은 들은 적이 없었다.
“슈걱!”
그러나 모용휘의 상념은 결코 길어질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조금만 방심해도 목이 달아날 정도로 흉험한 격전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홍수 때 불어난 사나운 강물처럼 거세게 휘몰아치는 괴인의 쌍도에 대항해 모용휘 자신도 본신진력(本身眞力)을 모두 내보이며 상대하고 있었다. 여력을 남기기 는커녕 조금만 힘을 덜어도 끝장날 판이었다.
무식한 힘과 힘의 대결만으로 이어진 결투가 벌써 백합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용솟음치는 듯한 괴력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괴인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처음의 일도(刀)와 백여 합이 지난 지금의 일도가 터럭의 차이도 없이 정확하게 똑같은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용솟음치는 기의 원천을 가진 듯 괴인은 무한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자신이 불리할 게 자명했다. 더 이상의 소모전은 불 리하다고 판단한 모용휘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비기(秘技) 대 비기(秘技)의 대결이 있을 뿐이었다.
“채챙!”
거친 격음이 터지며 백오십여 합 동안 아교처럼 붙어 있던 두 사람의 몸이 오장의 간격을 두고 떨어졌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력을 다스려 비장의 한 수를 내보이 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 모두 섣불리 덤벼들려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치열한 공방전이 대치 상태 동안 계속되었다.
모용휘의 전신에서 백색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갈효봉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쌍도에 맺힌 붉은 기운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본능이 위험을 감지한 것이다.
의지가 제압당했다고는 해도 몸 속 깊이 박힌 무투 감각까지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갈효봉은 자신의 비기를 발동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위력을 가진 기술을 비기, 또는 비장절초(秘藏絶招)라 칭한다. 그러므로 실패했을 때의 위험 부담이 큰 것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 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짐! 이대로 물러설 수야 없었다.
모용휘는 검극(劍戟)을 앞으로 뻗어 은하류(銀河流) 개벽검(開闢劍)의 기수식을 취하며 단전의 모든 진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삼성무제의 결승전에서는 인명 을 생각하여 전력을 발휘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명이 위험했다.
오른손에 은하성검기(銀河星劍氣), 왼손에 붕결(崩)!
주먹만한 기공구가 검 끝에서 생성되기 시작했다.
‘너의 검극에서 생성된 검극구(劍戟球)가 좁쌀만하게 되어 한 개의 바늘처럼 쏘아질 수 있다면, 그때가 바로 너의 검기가 완성되는 순간일 것이다!”
비전을 전승할 때 할아버지께서 들려 주신 얘기가 귓가에 울렸다. 아직 검극구의 크기는 주먹 정도! 하지만 이 정도로도 경천동지할 위력을 내는 데는 충분했다. 상대도 순순히 져줄 요량은 없는 모양이었다. 갈효봉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도극으로 갈무리되어 가는 무시무시한 기운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비기에 상대할 그만 의 비기를 꺼내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혈광이 일렁이는 그의 모습을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효룡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빨이 무의식 중에 딱딱 부딪쳤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등줄기가 오싹했다.
혈광이 갈효봉의 주위를 춤추듯 넘실거렸다.
아직
도 그의 쌍검은 지면에 꽂힌 채 주인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다.
‘저… 저것은 굉천혈영도법 비전오의 굉천혈류패왕십자인!’
10년 전 혈류도 갈효봉을 있게 만들었던 그의 성명절기이자 주특기였다.
갈효봉을 흑도 제일 기재로 만들었던 비장기(秘藏技!
효봉은 갑자기 눈 앞이 안개 끼듯 뿌옇게 변해 두 사람의 모습을 잠시 놓쳐야만 했다.
목이 매어 왔다.
‘형… 형!’
심장이, 마음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마음 속으로 피를 토하듯 외쳐 보지만 대답은 공허하다. 요동치던 공기가 잠잠해지더니 침묵이 두 사람 사이 에 가로놓여졌다.
휘몰아치던 돌풍이 정지된 시간 속에 갇힌 듯 우뚝 멈추고, 어지럽게 날리던 자갈 모래도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사납게 휘몰아치던 기풍(氣風)과 검풍(劍風)은 멈 추었지만,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흉험했다. 두 사람 모두 준비가 끝난 것이다.
이제 격돌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끊어질 듯 당겨진 시위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장내를 감싸고 돌았다. 주변에서 간간이 들려 오던 검격음도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했다.
너도 나도 하던 일을 멈춘 채, 장 내의 모든 이들이 이 한 판의 승부에 시선을 모았다. 하늘과 땅이 숨을 죽인 듯한 비현실적인 침묵과 고요였다.
“꿀꺽!”
청흔은 자신의 목젖으로 마른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천둥보다 더 크게 들렸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칼칼해져 왔다. 기묘한 침묵이 그에게는 사신을 부르는 귀곡 성처럼 느껴졌다.
은하류(銀河流) 개벽검(開闢劍)
비전오의(秘傳悟意)
유성만천(流星滿天) 비성시(飛星矢)
굉천혈영도법(轟天血影刀法)
필살오의(必殺奧義)
굉천혈류패왕십자인(轟天血流覇王十字刃)
모용휘와 갈효봉,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 동시에 비전절기를 쏟아 냈다. 생명을 담보로 한 진검승부였다.
양측 모두 무림의 역사에 남을 만한 신공 중의 신공이었다. 전설에 올라도 모자람이 없는 신공 두 가지가 한 곳에서 격돌한 것이다. 평생을 가도 다시 보기 힘든 진 경이었다.
“파아아악!”
모용휘의 검 끝에 맺힌 검극구가 터지며 하늘을 뒤덮는 유성우(流星雨)가 쏘아져 나왔다. 갈효봉의 쌍도가 열 십자로 교차하며 거대한 붉은 십자가를 만들어 냈 다. 중인들의 눈 앞에 새하얀 빛무리가 가득 찼다. 이윽고 지축을 울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과과과광!”
갈효봉의 등 뒤에 서 있던 열 그루의 아름드리 나무가 폭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조각 부서져 허공에 비산했다. 마치 나무 비가 폭우가 되어 세차게 내리는 듯했다.
폭발진(爆發塵때문에 사방이 뿌연 흙먼지로 뒤덮여 사위를 분간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희대의 대격돌을 무일푼 공짜로 관람하던 관객들은 격전의 중심으로 시선을 유지한 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심맥(心脈)이 무시무시한 격돌의 여력으로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날뛰고 있었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이들의 몸도 이럴진대, 격돌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들의 충격이야 말로 해서 무엇하겠는 가. 입술만 부르틀 뿐이다.
“우웩!”
붉은 피가 모용휘의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의 몸 속에서 나온 피였다. 아무래도 내장이 멀쩡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갈효봉도 혼자서 멀쩡하지는 못했다. 그의 옷은 해어져 있었고, 입가를 타고 선혈이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경천동지할 격돌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무사한 토혈을 강요했다.
모용휘는 지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가 극심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은 반면 갈효봉은 아직도 두 다리로 굳건히 서 있었다. 아직 갈 효봉의 악력은 풀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의 쌍도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곧추세워져 있었다.
모용휘를 중심으로 거대한 십자가의 상처가 대지 깊숙이 고랑을 파고 나 있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압력을 맨몸으로 견뎌 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갈효봉의 눈동자가 점점 더 붉게 변했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지독한 아픔을 준 자에 대해 분노를 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핏대가 하나 둘
솟아났다. 그의 팔뚝으로도 핏줄이 하나 둘씩 툭툭 불거져 나왔다.
“저… 저런 몸으로 아직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청흔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용휘, 은하류 개벽검을 받고도 저렇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청흔의 시선이 더욱더 걱정스러워졌다. 그의 두 눈동자로부터 초조함이 넘쳐났다. 아무래도 모용휘의 상태는 위험했다. 겉도 속도 만신창이일 게 분명했다. 과연 이번 일격을 피할 수 있을지 청흔은 그게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다.
““나… 나서지 말게! 이건 그와 나 사이의 승부다.”
주위의 상황을 생각지 않고 개인의 승부에만 열을 올리다니 평소의 모용휘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항상 법도에 맞게 행동해 오던 그가 이번에 전체보다 개인을 우 선시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원래 그는 고리타분할 정도로 규칙과 법을 따지던 인물이 아니던가.
“이것이 바로 무인의 피란 말인가?”
맥없이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두 손 놓고 있는 자신이 청흔은 저주스러웠다. 자신도 지금 강한 자와 싸우고 싶은 욕망에 휘둘리고 있는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투지가 들끓어 잠재우기가 어려웠다.
갈효봉의 몸에 이상이 발생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