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8권 6화 – 사부와 제자의 대결

비뢰도 8권 6화 – 사부와 제자의 대결

사부와 제자의 대결

-제자연장결정전(弟子延長決定戰)

작일(日) 저녁!

별들마저도 잠든 야심(夜深)한 시각!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실내연무장에 두 남자가 마주섰다. 그들은 바로 염도와 비류연이었다. 미묘한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약속했어요!”

비류연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염도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각오는 되어 있겠죠?”

“물론!”

염도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벌써부터 그의 몸은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럼 내일 술값은 걱정 없겠군요.”

비류연은 벌써부터 군침이 도는 모양이었다. 그는 현재 떡줄 사람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건 해봐야 아는 겁니다.”

“오오! 대단한 자신감!”

짝짝짝!

비류연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염도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동안 놀고 있은 적은 일각도 없었으니까요.”

염도는 비류연을 향해 우물에서 숭늉 찾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도 지난 육 개월 동안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에게 있어 주작단은 좋은 연습상대였다. 그 동안 한시도 만족하지 않고 수련에 전념해 왔었다. 그런데도 비류연은 자신을 너무 호구로 보는 것 같았다. 이제 염도는 온몸으로 자신이 밥이 아님을 주장할 예정 이었다.

“세상엔 안 해보고도 알 수 있는 일이 여럿 있지요.”

비류연이 싱긋 미소지었다.

세상의 모든 생물에겐 진짜 천적이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이 철저하고 냉정하며 잔혹하기까지 한 먹이사슬은 인간이라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에게도 그들 개개인의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한 천적이란 것이 확실히 존재했다.

염도는 자신의 천적은 이 세상에 얼음땡이 빙검 한 놈뿐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욱더 무서운 천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겨우 이 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얼추 이 년이 다되어 가는 그날은 바로 염도가 비류연과 처음 만난 바로 악몽의 그날이었다.

이번의 천적 앞에서 염도는 뱀을 앞에 둔 개구리처럼 철저한 약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염도는 자신이 도시락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주장은 전혀 먹혀 들지 않았다.

빙검과는 처절한 대치와 심리적인 싸움으로 인해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했다면, 비류연에게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존심 강하고 성질 급한 염도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 부끄럽고 치욕스러워, 감히 다른 누군가의 타인에게 꺼내기조차 불가능한 이 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기필코 오늘은 반드시!’

나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탈제자’의 기치를 높이 올리고야 말리라.

‘두고 봐라!”

앞서의 싸움은 3전 3전패(全敗)였지만 그동안 염도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늘에야말로 반드시 눈앞에 있는 웬수를 꺽어 시한부 제자 인생을 끝내고야 말리라고 염도는 굳게 다짐했다.

아직 도집 속에 머무르고 있는 애도 홍염의 도병(刀柄: 검자루)을 잡은 염도의 눈빛은 신중하기만 했다.

육 개월마다 한 번씩 제자연장기간을 두고 펼쳐지는 둘만의 정기전(定期戰), 그것은 원래부터 비류연과 염도 사이에 맺어진 약속의 일환이었다. 도주로를 완전 봉 쇄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염도이기에 비상대책으로 마련해둔 비류연의 탈출구였다. 그 약속은 이러했다. 만일 염도가 육 개월 동안 성심성의껏 제자로서의 임무 를 완수한다면 비류연과 싸움으로 제자 연장기간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약속의 골자(骨)였다. 즉 제자 관두고 싶으면 주먹으로 해결하라는 이야기였 다. 그리고 일년 반 동안 치러진 세 번의 싸움! 이 세 번의 싸움으로 염도는 확실히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이 실수로 비류연에게 진 것이 아니라 실력 으로 졌다는 끔찍한 사실을 비통한 마음으로 인정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염도는 더욱더 수련에 맹진했다. 그의 수련 대상 겸 화풀이 대상이 된 주작단 과 윤준호만 죽어나는 일이었다.

염도는 속이 탔다.

첫 번째 도전에서 맨 처음과 마찬가지로 홍염을 뽑기도 전에 당해 얼마나 허망했던가. 그 분풀이를 당하는 화풀이 대상 주작단의 몸만 고달파졌었다. 모든 화 가 애꿎은 그들에게로 모조리 쏟아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다음과 그 다음다음의 결과가 좋았던 건 아니다. 만일 그 두 번의 싸움이 결과가 좋았다면 지금 염도가 여기서 비류연과 싸움질을 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떠올리기도 싫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역시 2년짜리 악몽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만일 이러다가 또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시한부(附) 딱지가 떨어지고 영구(永久) 제자 딱지가 붙는다면 차라리 칼 물고 확 죽어버리는 게 마음 편할 것이다, 허나 염도의 성격을 어떻게 알았는지 제자 동의각서(弟子同意覺書)에 자살금지 조항까지 넣어놓은 현 염도의 임시 사부 비류연의 주도면밀함은 가히 절세무쌍(絶世無雙)이라 오한이 일고 치가 떨릴 정도였 다.

염도는 일생일대의 대적(對敵)을 만난 것 마냥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전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제는 전력을 다해 최상의 상태에서 최고의 힘으로 덤비지 않는 다면 절대 승리를 되찾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몇 번의 실패를 거울삼아 어머니 삼아 신물이 날 정도로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너무 시간 끄는 거 아닌가요? 너무 신중하네요. 체질에 맞지 않는 신중은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비류연이 대치 상황 중에서도 염도를 걱정해주는 척했다. 고맙게도 혀를 놀리는 데는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때문에 비류연은 이 정도 여유를 보여줄 수 있었다. “당할 만큼 충분히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감언이설에 속아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죠. 지금까지 어지간히 정도껏 당했어야죠. 그만하면 쌓인 교훈은 넘칠 만큼 충 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자신의 성격이 화급하다고는 하나 학습능력 정도는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염도의 선언이었다.

“아아! 그 학습 능력 때문에 세 번이나 패배의 쓴잔을 들이킨 것이군요. 내가 무심해서 미처 몰랐었네요!”

“큭!”

비류연의 말을 들은 염도의 얼굴은 기괴한 곡선을 안면에 새기며 일그러졌다. 가슴이 시큰했다. 아니, 뜨끔했다.

3전 전패의 전적을 자랑하고 있다보니 염도가 그동안 쌓은 경험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이 얼마나 속도에 취약한지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에 얻은 아픔만으로도 충 분했다. 그동안 부족한 속도를 보강하기위해 얼마나 절치부심(切齒腐心) 노력을 가했던가…….

앞에 있었던 3패(三敗) 역시 비류연의 순간돌파를 견뎌내지 못했기에 당한 어이없는 단발승부였다.

염도는 그 웬수덩어리이자 악연덩어리인 관철수에게 당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피나는 수련을 쌓았던 적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절대로 반드시!’

반드시 승리를 손에 거머쥐어 이 한심하고 절망적인 제자 신세에서 해방되고 말리라 굳게 다짐했다.

염도는 이미 비류연의 강함을 너무 확연히 알아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저따위 놈이 저런 괴물 같은 강함을 지니고 있는지 이해는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실력은 실 력. 염도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의 존재 자체에 염증을 느꼈다.

그동안 염도는 오로지 속도를 기르는 데만 전념했다. 현재의 속도로는 인간 같지 않은 비류연의 속도를 따라잡는 데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 이다. 저린 뼈에 멍이 빠지는 데는 한 달이 걸렸다. 교훈은 그것을 발판삼아 새로운 도약을 하기위한 것이다.

지난 일년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염도였다. 주작단과 윤준호를 가르치는 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작단에 대한 지도는 그에게 의외로 뜻하지 않은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느 날부턴가 주작단과의 대결은 그에게 있어서도 가장 능률적인 수련의 일환이 되었다. 때문에 항상 그의 가르침은 과격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덤벼드는 상대 를 비류연으로 가정하고 무공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분풀이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귀신이나 유령이 사촌하자고 할 법한 비류연의 괴물 같은 속도를 능가하지 않는 한 승리로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아직 그의 홍염은 뽑히지 않았다. 피가 날 정도로 도병(刀柄)을 움켜진 그의 허리가 휘어지고, 어깨가 부서질 듯한 엄청난 중압감이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심리적 압박감! 왜 이렇게 저 녀석 앞에서 쫄아야 되는지,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염도였다. 자꾸만 비류연 앞에만 서면 자기 자신을 잃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동안 비류연 옆에서 항상 같이 지내며 너무 심하게 오염된 모양이었다.

“합!”

번쩍!

공간을 가르는 홍광이 대기를 갈랐다.

전광석화(電光石) 같은 발도술(拔刀術)이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름.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인 적을 베는 데는 실패했다. 간격을 분명히 맞추었는데 도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홍광이 그의 몸을 두 토막 내기 전에 비류연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뒤로 뺐던 것이다. 찰나의 빠름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쳇! 실패인가…….?

염도는 아쉬웠지만 긴장을 늦추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첫 공격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날아드는 비류연의 반격이 가장 무섭고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도는 방어태세에 전력을 쏟아 부었다.

파앙!

뒤로 한 발짝 물러났던 비류연의 몸이 궁신탄영(弓身彈影: 몸을 활처럼 휘었다가 튕겨지듯 앞으로 쏘아져 나가는 신법의 한 수법)의 수법으로 화살처럼 빠르게 앞 으로 쏘아져 나갔다.

수십 발의 잔영을 그리는 비류연의 주먹이 염도를 향해 퍼부어졌다.

“핫!”

파바바바밧!

염도가 맹렬히 도를 휘둘러 도막을 형성해 비류연의 무식한 주먹으로부터 몸을 지켰다.

펑! 펑! 펑! 펑!

붉은 도막은 침입하는 비류연의 주먹을 단 한 발도 용납하지 않았다. 세 번 당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네 번은 너무 많았다.

“호오! 좀 빨라졌는걸요!”

비류연이 진심으로 감탄했다. 저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굼벵이가 개미만큼이나 빨라진 것이다. 비류연은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었 다.

“저도 그동안 놀고만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염도는 애써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이 저리도록 떨리는 것을 억지로 감추었다.

염도가 홍염을 고쳐 쥐었다. 중단세를 취한 채 몸이 곧게 서도록 만들었다. 염도는 이 짧은 순간에 도(刀)와 몸이 하나가 되는 신도합일(身刀合一)의 상태를 이루 고 있었다. 이미 그의 전신은 한 자루의 칼과 같았다. 오의를 쓸 작정인 것이다.

진홍십칠염(眞紅十七炎) 오의(奧義)

검염기(劍焰氣) 대염노(大炎怒)

너울거리는 불꽃의 환상이 염도의 전신을 휘감았다. 염도의 눈이 홍옥처럼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런! 갈 때까지 가보자는 건가요? 너무하잖아요.”

비류연이 탄성을 터트렸다.

원래 대염노란 부동명왕이 이 세상의 모든 사기(邪氣)를 불태운다는 전설 속의 불로서 일체를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물론 염도의 도법에 그런 힘이 깃들어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가공 그자체이다.

쾅! 콰과과과광!

역시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 기술이었다. 불꽃의 손톱이 사정없이 할퀴고 지나간 대지는 너덜너덜하게 변해있었다.

비류연은 재빨리 대염노의 사정권을 벗어나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저런 무식한 기술에 휘말리면 재미없기 때문이다.

“휴우! 겨우 살았네…….”

비류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잘못하면 머리카락을 몽땅 그슬릴 뻔했던 것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었다. 요즘 자꾸만 자신의 머리카락이 수난 을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아름다운 머릿결에 원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 듯했다.

비류연도 이제 마무리를 해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인명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비류연은 아까운 제자를 사고로 잃고 싶 지는 않았다.

비뢰도(飛雷刀) 독문신법(獨門身法)

봉황무(鳳凰舞) 오의(奧義)

비경(秘鏡)

슈욱!

비류연의 몸이 공간의 투명한 거울에 비춰진 것처럼 둘로 나뉘어졌다.

파앗! 팟!

비류연의 몸에서 나뉘어 진 두 개의 분신이 염도의 양쪽을 공략해 들어왔다.

“헉!”

염도는 기겁했다. 방금 전 많은 기력을 소모했더라도 이대로 멀뚱히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염도는 자신의 우수에 들린 도로 왼쪽의 분신을 찌르고, 좌수로 홍염장을 일으켜 그의 우측을 노리고 달려든 비류연의 분신에 일장을 가했다.

스륵!

“헉!”

도로 찌르고 일장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허깨비를 친 듯한 느낌이었다.

“허상(虛想)!”

퍽!

순간 염도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뒤통수에서 엄청난 충격이 그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둘인 줄 알았던 분신은 사실 미끼였던 것이다. 둘 중 어느 것 하 나 실체가 아니었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태산만큼 큼직한 혹과 함께 그는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침대 위였지.’

염도는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뒤통수가 불룩한 것이 들어갈 기미를 안보이고 있었다. 지금도 뒤통수가 화끈화끈하고 얼얼했다.

“다음엔 기필코…….’

염도는 이제 다시 앞으로 남은 181일 후를 기약하며 손가락을 꼽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