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8권 7화 – 맹수의 표적(的)

비뢰도 8권 7화 – 맹수의 표적(的)

맹수의 표적(的)

-미인 둘과 떨거지 남자 하나의 위기

열심히 보다 많이 보다 빠르게 보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던 비류연이 그 암습자에게 시선이 간 것은 너무나 주변과는 다른 그 움직임 때문이었다.

비류연은 본인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선이 미치는 모든 것의 정보가 한눈에 분석되고 판단된다. 그것은 의식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냥 있으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저놈들은 뭐죠?”

열심히 먹다가 말고 비류연이 물었다.

“누구가요?”

염도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반문했다. 오늘의 술값은 당연히 염도가 제공하기로 결정되어 있었고, 비류연은 단순히 공짜로 얻어먹는 처지였다. 그래서 비류연이 젓 가락을 놀리면 놀릴수록 염도의 전낭(錢囊)은 점점 더 가벼워져 갔다.

“저기요! 냠냠얌냠… 봐요, 사냥감을 찾는 맹수 같잖아요.”

저기라고는 말해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친절은 보여주지는 않았다. 여전히 비류연의 손가락은 안주거리에 젓가락을 옮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입은 그걸 산산조각 씹어 없애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니깐 그 저기가 어디의 저기란 말입니까?”

염도는 투덜투덜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신 정도되는 사람이 새파랗게 어린 소년에게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 리 자신이 지금은 그의 제자인 신세라고 해도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아까 전에 무의식적으로 반문한 것부터가 실수인 것이다.

안력을 돋우어 유심히 사방을 살펴본 염도는 곧 비류연이 말한 저기 저놈이 어떤 놈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알아챈 사실은 저기의 저놈이 한 놈 이 아니라 여러 놈이란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것들은 단순한 흥미거리로써의 그냥 술 안주거리에 불과했었다. 그래서 비류연도 그러려니 하고 별로 상관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존재가 한둘이 아니기에 서서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천무학관 앞마당에서 자객영업을 개시(開始)하려는지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은밀하다고 철통같이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티 나게 움직이는데 눈치 채지 말라고 해도 눈치 안 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뭣들 하는 놈들일까요? 자객일까요? 감히 천무학관의 앞마당에서 자객질이라니 간댕이가 부은 놈들이군요. 서로 원형으로 포위를 이루며 중심을 향해 움직이고 있어요. 그 중심에 놓여있는 건 당연히 맛있는 먹이겠죠?”

비류연의 흥미도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맛있는 먹이길래 저렇게 많은 맹수가 몰려들까요?”

염도도 궁금증이 이는 모양이었다.

“이런! 이런!”

탁!

비류연이 들고 마시던 술잔과 집어먹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염도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금전적 이득이 발생할 확률이 없는 일에는 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비류연이 자객의 목표를 돕기 위해 일어날 리가 없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도는 틀렸다. 비류연이 일어난 이유는 자객의 목표 때문이 맞았다.

“애석하게도 계획 변경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염도가 반문했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에서 미인 구출로 말이죠.”

“미인(美人)?”

“맹수가 노리는 먹이가 매우매우 아주아주 엄청난 미인이거든요. 당연히 전 무림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구해줘야죠. 물론 쉽사리 당할 만큼 연약한 미인은 아니지 만 말이에요.”

‘그러면 그렇지!”

그제서야 비로써 염도는 납득했다. 그러나 또 다른 의혹이 그의 마음속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은 마음속에 꼬불쳐 둘 수 만은 없는 의문이었다.

“목표가 보인단 말입니까? 다섯 명의 자객들말고도 말입니까?”

엄청난 안법 수련을 하고 내공이 화경에 오른 염도로서도 별개의 움직임을 보이는 자객들을 잡아내는 게 겨우였다.

솔직히 이 다섯 명을 잡아내느라 염도는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다섯 명이라니요?”

무슨 헛소리를 그렇게 정중하게 하시냐는 얼굴로 비류연이 반문했다.

“어? 아닙니까?”

염도는 놀라워하며 자신이 발견한 자객들을 일일이 지적해 보였다. 그러자 비류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다섯 명일 리가 없잖아요. 최소한 다섯 명, 최대한 열 명 가까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기 만두집 앞에서 수상쩍게 서성이는 봇짐꾼 녀 석도 우선 있잖아요. 티 나게 움직이는 애가 다섯이지, 나머진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 만두집이라는 게 지금의 그들이 앉아있는 오성루 3층 창가 술상으로부터 이백오십 장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게다가 수많은 인파들이 한꺼번에 지 나가는, 현재 가장 사람이 붐비는 곳이기도 했다.

“어? 지금 내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묘한 눈빛에 의심을 가득 담아 흘겨보는 염도의 시선을 비류연은 잠자코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가보면 알겠죠!”

이미 비류연은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먹을 걸 다 먹지도 않고 자리를 뜨다니 평상시라면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매번 감사합니다. 매화주(梅花酒) 세병! 모태주(苔酒) 두 병! 검남춘 한 병! 죽엽청 한 병! 안주로 오향장육 하나, 북경오리 셋, 담가채譚家菜) 한 접시, 삼황계 (三黃鷄) 하나, 청탕양육면(淸湯羊肉面) 하나! 합계 총 액수가…….”

계산대의 점원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잔인하게, 가차 없이 계산액수를 불렀다. 염도는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 입니다.”

크윽! 염도는 비통한 마음으로 얼른 계산을 하고 비류연의 뒤를 따랐다.

절대 그 봇짐꾼은 자객이 아니어야 된다고 외치면서…….

자신의 전낭이 깃털보다 가볍게 느껴졌다.

은설란이 옷가게 안으로 발랄하고 경쾌한 발걸음을 과시하며 들어간 이후 모용휘는 주변 기물과 지형부터 우선적으로 살폈다. 전문적인 경호 교육을 받지는 않았 지만 교양시간에 확실히 기초이론과 기본기는 습득한 터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평소보다 세 배 이상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없는 곳보다 인파가 넘치는 곳에서는 암습의 기회가 수십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결 때문에 신경이 분산되기 때문에 빈틈은 더욱더 커진다.

호위들이 가장 피를 말리는 경우가 바로 이런 시장통에서 보호대상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경우이다.

“피를 말리는군!”

두리번! 두리번!

모용휘는 긴장을 풀지 않았고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언제나 투철함 사명감과 책임감이 그의 전신을 갑옷처럼 감싸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왜 옷 구매를 허락했던가. 울먹일 듯한 얼굴로 애원하는 그녀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이 싫었다.

“응?”

맨 처음 주변의 미세하게 감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사람은 나예린이었다. 왠지 모르게 자신들을 옥죄어 오는 보이지 않는 살기라는 이름의 손길! 평소 그녀의 주위를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던 남자들의 한심스러운 욕망이나 선망 어린 시선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 차이가 그녀에게는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용안이 그녀에게 확실한 경고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것은 신변의 위협을 알리는 소리였다. 알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는 힘! 이 힘 때문에 마진가도 자신에게 사중화의 신변보호를 맡긴 것이다.

나예린은 좀더 신중하게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그녀는 좀더 많은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불청객이 찾아온 듯합니다.”

그녀의 말에 긴가민가하던 모용휘도 살기의 원천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왁자지껄하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사람의 물결 속에서 자객을 찾 아낸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라 할 수 있었다.

원래 암습은 기습 선제공격일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백주 대낮에 살행(行)을 계획하다니 간 큰 녀석들이었다. 실력에 대한 확신 없이는 이런 일을 벌이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모용휘와 나예린은 전신의 감각을 열고 주위를 살폈다.

찰칵!

그녀의 놀랍도록 발달된 경이적인 청각은 요란법석한 군중 속에서 뽑히는 발검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소리를 바탕으로 그녀의 오감이 적의 위치를 감지해냈다. 그녀의 손이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발검 했다.

휙!

느닷없이 군중 속에서 나타난 검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이미 속도에서 나예린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스팟!

나예린의 검이 휘둘러지고 암습을 시도하던 자객은 그녀 검에 제물이 되었다. 자객은 어딜 보나 평범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틀린 점은 노인이 짚고 있는 지팡이에 검날이 달려있다는 사실하나였다.

평범한 길을 가던 노인으로 변장하고 있던 자객의 무기는 바로 짚고 있던 지팡이였다. 만일 암습을 눈치 채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치명상을 입었을 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에요?”

밖의 소란을 눈치 챈 은설란이 달려 나왔다. 나예린과 모용휘는 재빨리 그녀의 좌우를 경계했다.

“자객입니다. 조심하세요.”

나예린이 은설란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은설란의 눈에는 두려움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공격은 곧바로 이어졌다.

자객들은 자신들의 암습이 항상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의외의 곳에서 날아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모양이었다.

노인의 죽음을 발견한 한 아낙이 놀라며 머리에 이고 있던 쟁반을 던졌다.

휘리릭! 쌔애애앵!

공기를 세차게 휘감는 소리와 함께 쟁반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날아갔다. 본래의 본분을 잃고 허공을 나는 건방진 쟁반의 둘레에는 어느새 사방으로 날카로 운 칼날이 튀어나와 있었다. 사람의 목을 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예리함과 속도였다. 게다가 더욱 치사한 것은 그 철 쟁반이 하나가 아니라 무려 세 개씩이나 된다 는 사실이었다.

피할 수도 있지만 나예린은 매섭게 회전하며 날아오는 세 개의 철 쟁반 암기를 베어 떨어트리기로 결정했다. 저렇게 주변을 맘대로 휩쓰는 무기는 주변의 죄 없는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나예린이 허공에 갈지(之) 자를 그리며 교차해 날아오는 철 쟁반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그 순간을 자객들은 놓치지 않았다.

슈슈슈슉!

지나가던 문사의 소매에서 갑자기 십 수개의 비도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은 너무나 절묘해 나예린이 동시에 쌍방향의 공격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 예린은 허공 중에 갈지자를 그리며 어지럽게 날아오는 철 쟁반에 집중한 신경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녀는 모용휘의 실력을 믿기로 한 것이다. 그의 실력은 무당 산 합숙훈련 동안 익히 보아 온 터였다. 그는 믿고 뒤를 맡길 수 있는 인재였다.

모용휘는 나예린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파바바밧! 챙챙챙챙! 땅!

어느새 비도와 나예린 사이를 막아선 모용휘가 검을 맹렬히 휘둘렀다. 별빛 같은 검기와 함께 매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비도가 모조리 두 동강이 나며 땅바닥에 떨 어졌다. 그중 하나는 두 배의 속도로 빠르게 시전자에게로 날아가 주인의 목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나예린은 안심하고 검을 휘둘렀다.

슈앙!

그녀의 의지는 그녀의 검을 통해 단숨에 발현되었다. 그녀의 백색 검기에 철 쟁반은 단번에 두 동강이나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직도 두 사람을 노린 암습은 계속되 고 있었다. 주변 사람 모두가 자객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길을 가던 한 농부가 느닷없이 들고 있던 낫을 던졌다. 분명 무공요결에 따라 허공을 갈지자로 움직이는 투겸술(投鎌術:낫을 던지고 받는 기술)이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를 업고 가던 아낙이 바느질에나 쓸 바늘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에 뿌렸다. 암기수법 중에서도 무섭기로 유명한 폭우비(暴雨飛)의 수 법이 틀림없었다.

은설란을 노린 한 수였다. 저 정도 침이면 두 사람의 방어 정도는 쉽게 뚫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평범한 아낙의 손에서 이불이나 옷을 꿰매며 임무 완수에 여념이 없어야 할 바늘의 끝에는 황소 열 마리도 너끈히 죽일 수 있는 맹독(毒)이 발라져 있었다. 수단 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 분명했다.

은하유성검법(銀河流星劍法) 오의(奧義)

은하밀밀(銀河密密)

눈부신 우윳빛 광망와 함께 철벽을 능가하는 촘촘한 검기의 벽이 공간 중에 펼쳐지며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독침의 진로를 방해했다.

후두두둑!

황소 열 마리는 거뜬히 잡을 수 있는 독이 묻은 독침도 모용휘의 검막(劍幕)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고 모두 나가 떨어졌다. 완벽한 방어 초식이었다.

항상 학관 내에서 규칙에 얽매인 정당한 대결만을 고집했다면 모용휘는 이들의 갑작스럽고 변칙스러우며 은밀하기까지 한 감쪽같은 암습에 당하고 말았을 것이 다. 하지만 짧지만 농도 짙은 강호 비무행과 비류연 일행과 어울리면서 겪은 수많은 변칙, 반칙들 덕분에 훌륭하게 자객 집단의 암습에 대처하며 그들의 암습에서 은설란을 지킬 수 있었다. 그동안 쌓아놓았던 지긋지긋한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완벽한 방비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절대로 고맙다는 말은 하지 말자.”

모용휘는 조용히 결심했다.

“나 소저! 조심하시오!”

아직 자객들의 암습 러시는 끝나지 않았다.

나예린과 모용휘, 그리고 이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은설란는 전혀 경계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사람들의 빈틈, 의외를 찌르는 암습! 전문적인 수업을 받은 이들이 분명했다. 그들의 실력은 절대 푼돈 받고 어설픈 살인을 저지르는 어중이떠중이와는 달랐다. 아까 전엔 길 가던 노인네이더니 이번에는 금슬 좋아 보이는 노부부였다. 백발이 희끗희끗한 왜소한 체구의 노부부가 펼치는 합격공격은 정말 의외였다. 이들의 변장술은 정말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가짜로 위장한 노부부의 소매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손등 위에서 튀어나왔다. 피를 부를 만큼 날카로운 예기였다. 그러나 이 두 쌍의 칼날은 목적을 도모하지는 못 했다. 노부부로 위장한 자객들의 병기는 그들의 손목과 함께 사중화의 신체에 닿기도 전에 모용휘에 의해 가차 없이 잘려져 나갔다. 살인 따위에나 사용되는 자객의 손목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듯 단호한 일격이었다.

“크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나예린의 검은 사방으로부터 기습적으로 쉴새없이 찔러 들어오는 보이지 않는 칼날을 방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녀는 지금 경험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자객들의 암습에 대응하고 있었다.

나예린은 현재 용안을 이용해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악의에 반응하고 있었다. 때문에 돌연한 기습에도 이처럼 수월하게 방어가 가능했던 것이다.

나예린이 가장 상대하기 힘들었던 사람은 사람 안에 사람이 들어있는 쌍신잠행(雙身潛行)의 수법을 쓰는 놈들이었다. 처음엔 나예린도 그자가 한 사람인 줄 알았 다. 그는 겉보기에 매우 평범한 장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원래 진정한 자객은 얼굴에 개성이 있으면 안 된다. 남의 뇌리 속에 기억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쌍도를 내지를 때만 해도 나예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체구도 보통 사람과 비슷한 체구였다. 그런데 이자가 내지르는 쌍도는 오직 한 가지 역할만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직 상대의 병기를 봉쇄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된다.

그 자객의 쌍도가 나예린의 검을 꽉 물었다.

그 순간! 불쑥 그의 배로부터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같은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고, 나예린으로서도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같은 손에 들린 날카로운 비수가 그녀의 몸을 꿰뚫으려고 하는 바로 그때!

슈욱! 챙!

어디선가 날아온 뇌전 같은 섬광이 비수를 저 멀리 튕겨내 버렸다. 거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자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예린은 검에 한상옥령기를 일으켜 단번에 그녀의 검을 붙잡고 있는 쌍도와 함께 그자의 몸을 베어버 렸다.

그자는 미처 그녀의 검을 벗어나지 못하고 검하고혼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바닥에 쓰러진 그의 갈라진 옷 안쪽에서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앙상한 몰골을 한 인영 하나가 흘러나왔다. 그자 역시 이미 죽은 상태였다. 비장의 수가 실패한 순간 그들의 비참한 말로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살인청부조직인 백인회(百人會)에서도 유명한 이인일체(二人一體)의 쌍귀 형제로 이들에게 그동안 청부살해 당한 피해자만 해도 기백은 넘는다는 암살의 귀재였다. 그러나 백 번의 청부를 완수한 백인살(百人殺)이란 피의 업적을 이룬 이들 형제도 오늘 상대를 잘못 만나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유명한 천하오대검법의 하나인 검후의 한상옥령신검(寒霜玉靈神劍) 아래 죽을 수 있었으니 영광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삭!

그녀의 검 끝에 맺혀있던 붉은 얼음이 조그만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나갔다. 나예린의 검에는 피가 흐르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검신 전체를 감싸고 있는 한기에 단 숨에 빙정으로 화해 얼어버리기 때문이다. 남들은 이것을 검후의 적빙루(赤氷淚)라고도 부른다. 나예린은 그것을 충실히 재현해내고 있었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도 은설란은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냉정한 시선으로 나예린과 모용휘의 움직임과 대응을 차분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은 자신이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직 은설란은 실력을 감춘 채 손을 거들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행동은 이 기회를 통해 모용휘와 나예린의 실력을 가늠해 보겠다는 의미도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다. 은설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직도 공기 중에 가득 들어찬 살기는 가시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만두집 앞 봇짐꾼이 자신의 봇짐에서 장사할 물건 대신 극독(毒)을 잔뜩 바른 독검(劍)을 꺼내 들었을 때였다. 아무래도 이 독검은 살인청부라 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한정비매품(限定非賣品)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