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살펴보면 잘못된 신념을 절대의 신명으로 여기고
눈먼 장님처럼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폭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통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물론 주위에는 대단한 민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판단 기능이 상실되어 있어
절제와 삽질을 구분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제 무덤 파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옹고집 대왕고집
“부탁합니다! 놓·아·주·세요!” “이 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자신의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남자가 요구하는 바는 무척이나 명확했다.
이 자는 지금 하늘처럼 떠받들어지며 천금(千金)으로 커 온 자신에게 스스로의 자발적인 사과를 강압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과(過)란 무엇인가?
사과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에게 자기 잘못에 대해, 또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뉘우치고 미안하게 생각함을 밝히는 것이지만, 사과의 기능은 이 짧은 몇 줄의 말 로 모두 표현될 정도로 작지 않다.
사과란 일종의 의사소통 수단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기능은 매우 특수하면서도 다양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대와의 단절된 대화를 잇게 해주 고, 끊어졌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특수한 기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돼먹지도 않은 자존심이란 것이 이 유용하면서도 편리한 의사전달 수단 인 사과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방해하기도 한다.
주위를 살펴보면 잘못된 신념을 절대의 신명으로 여기고 눈먼 장님처럼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폭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통 이 런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물론 주위에는 대단한 민폐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판단 기능이 상실되어 있어 절제와 삽질을 구분 못한다는 점이 다. 그들은 자신이 지금 제 무덤 파고 있는 줄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이런 경우 십(+)이면 십, 백(百)이면 백, 사태는 나쁜 방향으로 확장될 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전무하다. 하늘의 변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과를 원망하지는 말라. 만일 누군가의 잘못된 신념과 옹고집으로 사태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게 되더라도 그것은 도구를 잘못 쓴 바보 같은 멍청이를 겸업하는 얼간이 탓이지, 사과의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과가 사회를 원활하고 좀더 부드럽게 만드는 유용한 수단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또한 원만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는 반드시 필수불가결한 수단이기도 하다.
만일 사과가 없다면 세상은 대립과 싸움과 논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립이 대립을 낳고 싸움이 싸움을 낳는 무한 반복의 악순환이 나타 날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는 지금보다 더욱더 삭막하고 기분 나쁜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 모든 것(사과의 훌륭하고 유용한 측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과란 그녀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행위였다. 이것은 이 미 그녀에게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실수했으니 자신이 사과해야 한다는 이 단순 명쾌한 정의가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미친놈!”
그녀가 해줄 수 있는 반응의 전부였다.
‘한 조직의 장(長)을 맡고 있는 내가 저런 하찮은 것에 사과 따위 할 성싶으냐! 절대로 할 수 없어! 게다가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사과를 해야 하지? 오히 려 사과해야 할 쪽은 저놈이 아닌가! 미천한 것이 감히 군웅회의 회주인 본녀에게 대들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마하령은 만약 자신이 실수로 인해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사는 방식이었다. 주위에 민폐를 잔뜩 끼치는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고집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현재 심정으로 볼 때 사과란 불가능했다. 오히려 그녀의 적의(敵意)가 살기가 되어 최대치를 향해 급상승 중이었다. 그녀는 현재 조직의 장이라는 유용한 자기 합리화의 수단을 최대한 가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도도한 자존심과 허영심과 자의식 과잉은 사과보다는 세상이 두 쪽 나는 편을 더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천한 놈 따위에게 내가 고개를 숙일까 보냐!”
그녀의 본심이 이러하니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될 리 만무했다. 손과 손목이 연결되어 있는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점점 더 삭막해지고 암울해질 수밖에 없었 다. 주위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두 사람 사이에서 번져 나와 주위를 가득 메우는 긴장감과 답답함과 압박감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무… 무서워…….?’
인(人)의 장벽을 친 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구정회 회원들이 느낀 공통된 감정이었다. 앞으로 사태가 어느 쪽으로 번질지 벌써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우연찮게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튀어 오르는 불똥에 맞는 것은 일절 사양이었다.
“그런데 저 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 거야?’
그들의 의문투성이 시선은 마하령의 개인 선호 따위는 나와는 터럭만큼의 관계도 없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비류연을 향해 있었다.
씨익!
비류연은 지금 마하령의 독기 어린 시선을 산뜻한 미소로 받아넘기고 있었다.
“이… 이런…..”
자신의 무형지기(無形之氣)가 바다로 흘러들어간 강물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자 마하령은 당혹스러웠다.
무형지기란 절정고수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무형의 힘으로서 육체가 아닌 단련된 마음과 축적된 내공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일종의 극대화 된 살기라 보면 무방할 것이다.
그녀 정도 되는 고수가 발출하는 무형지기는 실제의 무공과 거의 동일한 위력으로 상대의 심리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일반적인 무인들이라면 벌써 뱀과 조우한 개구리처럼 ‘파르르 떨어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재수 없는 남자는 살기 가득한 자신의 무형지기를 흔적도 없이 흘려 버리며 태연자약하게 서 있는 것이 다. 마하령으로서는 복장이 뒤집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단순한 놈팽이는 아니야! 그러나… 그래도… 절대로…! 사과 따위 할까 보냐!”
그녀의 내심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단호하고 명확했다. 죽으면 죽었지, 사과는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사과가 그렇게 하기 힘든 일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옹고집이라면 비류연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그는 원하는 결과를 위해서라면 다소의 기괴하고 난폭한 방법도 서슴지 않고 검토해 보는 성격이었다. 비류 연은 원래 수단과 방법을 따지는 데 있어 남들보다 지나칠 정도로 융통성이 뛰어난 인간이었다.
폭넓은 융통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서라도 비류연은 이 도도와 오만의 극치를 달리는 옹고집쟁이 아가씨에게서 사과를 받아낼 요량인 모양이었다.
이토록 두 사람의 생각이 극단적으로 다르니 마찰은 불가피했고, 대치 상태는 자연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
시선과 시선이 부딪치며 찬란한 불꽃을 일으켰다.
비류연과 마하령, 두 사람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어떤 논쟁이나 언쟁보다도 치열한 무언의 대화가 그 둘 사이 에서 강렬한 불꽃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 화재는 쉽사리 진압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때문에 모두들 골치를 썩이고 있는 것이다).
마하령의 서릿발 같은 시선은 비류연의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머리카락의 장벽을 뚫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현재 방어의 입장에 놓여 있는 비류연은 어디 서 개가 짖고 있나 하는 태도로 일관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분위기에 휩쓸려 주위도 점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도를 지나친 긴장감에 질식사 환자가 곧 발생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천무학관 관도 세력의 반을 장악하고 있는 군웅회의 높으신 주님과 전적(戰績)이라고는 우연에 행운을 거듭한 끝에 운 좋게 삼성무제에 우승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일개 관도와의 싸움이었다(사실 삼성무제에 우승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다).
신분으로 보거나 실력으로 보거나 애초에 싸움이 될 수 없는 상대건만, 경악스럽게도 불가능할 줄 알았던 싸움이 지금 실현되어 주위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있었 다. 이 싸움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의외의 사실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이 둘(고집 센 한 남자와 굽힐 줄 모르는 한 여자)의 대치를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은 가뭄에 빠짝 마른 논처럼 타들어 가고 있었다. ‘미치겠군!’
그 속 타는 사람 중 하나이자 이 돌발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백무영의 머릿속은 엉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거지? 보통 이런 일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구.”
작금의 사태는 그의 머리와 그 속에 내재된 지식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계산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결론은 필요했다. 그 자신과 주위의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결론! 그러나 아무리 대가리를 굴려 봐도 그 방법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자꾸만 자부하고 있던 자신의 두뇌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한 남자를 향했다.
“어째서 또 저 남자란 말인가? 어째서!’
그의 암담한 시야 속으로 비류연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도대체 저 남자가 미친놈이라는 결론 이외에 그 어떤 것이 다른 이를 납득시킬 수 있겠는가? 그날 그것을 본 나로서도 아직 꿈인지 집단 환각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이 판국에…….?
철각비마대 앞을 혈혈단신으로 가로막은 그 말도 안 되는 신위(神威)를 곁에서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봤다는 사실이 백무영은 아직도 실감나지 않았다. 그는 자 신을 무척이나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평소 자신만만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잘못하면 내가 미친놈 취급받겠지??
백무영은 머리카락을 모조리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러야 했다. 그런다고 다른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저 자가 무슨 짓을 벌이든 간에 절대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채 석 달도 못 가서 산산이 깨져 버린 허무한 결심이었다.
“이제는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예상보다 수십 배는 커져 버린 돌발 상황에 머리 비상하기로 유명한 백무영도 손쓸 도리가 없었다. 멈추려면 비류연의 손이 귀하신 천금의 양 뺨을 인정사정없이 왕복 여행하기 전에 손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달려온 것은 이미 그 일이 터지고 난 후였다. 지금은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이미 마하령의 하늘같이 높고 도도한 자존심을 건드린 이상 잘못 끼어들면 천무학관 양대 세력의 충돌로까지 비화될 수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젠장!”
이제는 손놓고 세상의 흐름에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백무영이 마음속 깊이 느끼고 있는 그것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