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9권 12화 – 소림 무상지보는 장식품?

비뢰도 9권 12화 – 소림 무상지보는 장식품?

소림 무상지보는 장식품?

그날의 뜨거운 감격과 격정을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용천명은 항상 소림의 명예와 구파의

젊은 피의 명예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임해 왔었다.

그 후에 혹독한 수련에서도 절대 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의연하게 지냈다.

뼈와 살을 깎는 고행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그의 어깨에 드리워진 짐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 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용천명의 상식선을 가뿐히 뛰어넘은 사내 비류연이 손가락을 들어 용천명의 검을 가리켰다. 왠지 값나가게 보이는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는 것이 그의 관심을 자 극했던 것이다.

“그 검은 장식품인가요? 삐까번쩍한 게 멋있는데요. 게다가 되게 비싸 보이네요!”

용천명의 정신이 순간 비틀거렸다.

소림 무상지보를 보고 장식품이냐니? 무신경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 이 물건에 가격을 붙이려 하다니! 그것 자체가 이미 불경임을 모른단 말인가!”

용천명이 대뜸 호통을 쳤다. 마치 소림의 명예가 단번에 모욕을 당한 느낌이었다. 용천명의 분노 섞인 호통성에도 비류연은 들은 척 만 척이었다.

“어? 진짜 장식품인가요? 피 냄새가 전혀 배어 있지 않은 특이한 검이로군요.”

비류연의 날카로운 지적에 용천명이 흠칫했다. 분명 이 검은 피를 먹은 검이 아니었다.

“소림의 검은 함부로 뽑히지 않는다. 그리고 소림의 검은 함부로 피를 보지 않는다.”

태산처럼 강건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었다.

용천명의 말대로 그가 강호에 출두한 이래 그의 녹옥여래신검이 뽑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검을 쓸 필요성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림의 신물을 함부로 뽑을 수는 없는 일, 만일 일이 터진다 해도 또 한 자루의 보검 백룡검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에게 이 녹옥여래신검은 잠시잠깐 소림으 로부터 위탁받은 신외지물이나 다름없었다.

녹옥여래신검은 오랜 세월을 소림과 함께 하면서도 함부로 피를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피 냄새가 밸 일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달마여래십삼검(達摩如來十三劍)!

대승반야신공을 기반으로 한 소림 최강의 무공이자 유일무이한 검법! 녹옥여래신검으로 펼치는 유일무이한 소림의 검법이다.

권(拳), 장(掌), 각(脚), 곤(榥)을 중시하는 소림으로서는 이 검법의 존재가 매우 독특하고 특이한 무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원류는 2대조 혜가 대사가 무료함을 떨치기 위해 검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다. 비록 장난치다가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무공과 불법의 대천재가 30년 이상을 가지고 놀았다면 이미 그것으로 하나의 심오한 무공이나 진배없었다. 거기에 체계적인 기틀까지 잡혀 하나의 신검식이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한 위력은 지금껏 완전히 밝혀진 바가 없지만 소림 최강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왜 전설이냐 하면 아직 그 진정한 극(極意)를 터득한 자 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림 무상지보인 녹옥여래신검을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 있다. 달마여래십삼검을 5성 이상 익히고 그것을 통과하기 전에는 절 대 녹옥여래신검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때문에 녹옥여래신검은 그가 소림의 모든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스승 혜정 대사에게 맡겨져 있었다. 그곳은 바로 수많은 소림의 전설을 배출한 관문인 소림 18관문과 72연무동이었다. 실질적인 현 소림을 만든 원천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용천명은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보란 듯이 이 관문들을 역대 최연소의 기록으로 돌파해 버렸다.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만인 앞에 보여준 것이다.

그가 소림 18관문과 72연무동을 통과했을 때 사부인 혜정 대사가 보관하고 있던 검은 그에게 되돌아왔다.

그때의 그 영광과 희열을 용천명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그때 받았던 녹옥여래신검은 지금도 그의 허리춤에 소중히 매달려 있었다. 자비를 우선시하는 소림답게 아직 이 검은 피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천겁혈세 이후의 최근 백 년 동안은 그런 기록이 전무했다. 백 년 전의 피 냄새 따위는 희석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녹옥여래신검을 가진 자, 피를 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직도 스승님이 해준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사부님! 과연 이번에 피를 보지 않고 결판을 낼 수 있을까요??

능글맞게 웃음을 흘리는 비류연이 자꾸만 신경을 건드리자, 용천명도 쉽게 자신을 제어할 자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그가 지닌 인내의 끈이 속절없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일단 참아야만 했다.

용천명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화를 내고 싶다고 해도 함부로 화를 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자신의 희로애락을 기분 내키는 대로 분출하지 않고 주위 상 황을 먼저 고려한다. 이런 면이 마하령과 용천명의 극단적인 차이점이었다.

“이 녹옥여래신검은 피를 보는 물건이 아닐세! 나 또한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없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태를 계속 손놓고 보고 싶은 생각은 없네. 이대로 는 이곳에서 물러날 수 없고, 이런 소동을 두고 볼 수도 없네. 그러므로 선배로서 자네에게 명령하네. 이제 그 손을 놓게!”

그것은 명령이나 진배없었다. 보통 그가 정색하며 이 정도까지 말하면 실행되지 않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도 있는 법이다.

용천명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비류연만큼 타인의 명령을 받기 싫어하는 놈도 드물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이럴 경우 비류연은 삐딱선을 탄다.

“검은 피를 보기 위한 것, 그렇지 않은 검은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지요.”

할 수 있다면 검으로 해결해 보라는 의미였다. 용천명으로서는 비류연의 태도가 구정회 전체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이놈이 겁을 상실했나?”

그가 아는 사람들은 다들 정상이라 그런지 비류연 같은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용천명은 인내를 발휘해서 한 번 더 참았다. 그는 남의 위에 설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었다.

“살생만이 검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아닐세. 검은 그것을 지닌 자에게, 그리고 무도의 길을 걷는 자에게 길을 제시해 주는 지남차(나침반) 역할을 해주기도 하지. 물론 가르쳐 준 방향을 잘못 알고 걸어가는 방향치들도 부지기수지만 말일세. 검을 든 자들 중에서 제대로 된 신검의 길을 걸어간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나?” 용천명의 말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다.

“과연! 선배는 길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계시는 듯하군요. 무척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보통 길을 잘 잃는 방향치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걸어간 길에 대해 옳다 생각하고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죠. 터무니없이 동떨어진 외딴 곳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죠.”

그러나 아무리 정론을 내건다 해도 비류연이 삐딱선을 타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예고가 있거나 조짐이 있으면 사람은 당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을 당황하게 하려면?

번쩍!

아무런 예고도 없이 용천명의 백룡검이 백색 섬광을 연상케 하는 하얀 궤적을 그리며 뽑혀 나왔다. 게다가 그 빠르기는 눈부실 정도로 쾌속했다. 스윽!

새하얀 백색 섬광이 비류연의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악!”

나예린과 은설란 모두 순간 짧은 비명성을 내질렀다. 용천명의 검에 비류연이 두 동강 난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 이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우상의 입술을 빼앗은 비류연 따위는 없는 게 세상에 보시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가진 다수의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척이나 애석한 일이 일어났다.

“쩝! 아직 사과도 못 받았는데…….?”

용천명의 검기에 두 동강 난 것처럼 보이던 비류연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했다. 그 대신 그는 텅 빈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방금 전까 지 마하령을 잡고 있던 바로 그 손이었다. 기습적인 용천명의 발검에 대응해 회피에 집중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마하령의 손을 놔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잔상(像)인가?”

놀란 얼굴로 용천명이 물었다. 자신의 안력마저 현혹시킬 만한 보법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자연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나의 검을 이렇게 완벽하게 피해 내다니 말일세!”

베이는 감각이 없어 의아해하던 참이었는데 역시 허상이었던 것이다. 첫 수에 실패해 두 번째 수가 필요한 일은 오래간만이었다. 용천명의 칭찬에도 기쁘지 않은 듯 비류연은 고개를 저었다.

“완벽은 아니죠. 귀중한 의복을 보호하지 못했거든요.”

비류연의 말대로 그의 상의 앞섶은 위에서 아래로 깨끗하게 잘려 나가 있어 가슴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다행히 혈흔은 없었지만 조금만 더 깊었어도 위 험했을 것이었다.

“선배야말로 매우 훌륭한 발검이었습니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그렇게 깔끔한 발검이라니… 자칫 잘못했으면 당할 뻔했군요.”

비류연은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다. 조금 전의 기습 따위에 신경 쓰기가 아깝다는 듯이……. 그러나 의복이 상한 것은 무척이나 기분 상하는 일이었다. “하하하! 과찬일세. 나야말로 실수를 했군. 살살 한다고 했는데 자네의 옷을 망쳐 버렸으니 이거 미안해서 어쩐다……?”

이번 것은 봐준 거니 피했다고 잘난 체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두 사람 다 대단하군요.”

은설란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쾌(快)와는 거리가 먼 소림의 무공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방금 전과 같은 쾌검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용천명과 그 백색 섬광 같던 쾌검을 잔상을 남기며 피해낸 비류연! 두 사람 모두 엄청난 무재(武才)들이었다.

“정말 대단해… 정말.”

그것은 그만큼 마천각에는 위협적인 존재라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될까요?”

은설란이 품은 의문은 나예린과 모용휘 두 사람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의문과 동일한 것이었다. 한을 품고 있는 여인, 마하령에게 채워져 있던 족쇄가 풀어졌다. 사 태는 지금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드디어 몸이 자유롭게 되었어!’

마하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꼴 보기 싫은 비류연에게 복수를 해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아니 기쁠 수 있겠는가! “각오해라!”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는 기상 이변이 속출한다고 했던가? 정말 무시무시한 원한이었다. “잠깐!”

비류연이 손을 내밀며 마하령의 복수극을 제지했다.

“뭐냐? 이제 와서 무릎 꿇고 빌어도 소용없다.”

이제는 비류연이 나체로 연무장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춰도 용서해 줄 마음이 없는 마하령이었다. 자신이 받은 모멸감과 수치심을 이자까지 쳐서 고스란히 돌려주 지 않는다면 너무나 분해서 화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원활한 숙면을 위해서라도 복수는 반드시 필요했다.

“사나운 꼴 당하기 싫으면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걸요?”

비류연은 마하령이 내뿜는 서릿발 같은 살기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믿고 있는 비책이 따로 없이는 저렇게 자신만만할 리 없었다.

“무슨 헛소리냐? 꼴사납구나!”

비류연의 말을 단순한 헛소리로 치부하고 한 발짝 움직인 것은 분명한 마하령의 실수였다. 비류연이 보통 때 한없이 가볍게 보이기는 하지만 한 번도 허언을 한 적 은 없었다.

사라!

느닷없이 끊어진 그녀의 홍색 비단 허리띠가 바닥에 흘러내렸다. 다행히 상하가 붙어 있는 옷이라 바지가 벗겨지는 꼴사나움을 면했지만 그녀는 기겁할 수밖에 없 었다. 그녀의 얼굴이 경악으로 하얗게 탈색되었다.

“꺄아아아아악!”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 이… 이게 도대체…….”

너무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경악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도 용천명의 놀람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져 있었다.

“그것 봐요? 후회하잖아요. 난 분명 경고했어요.”

말 안 듣는 아이를 타이르는 어른 같은 말투였다. 경고를 어긴 너의 잘못이니 난 책임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냥 단순히 약 올리는 것처럼 들리 기도 했다.

마하령은 너무 비류연을 무시했다. 비류연은 마하령과 손을 나누며 어울렸을 때, 이미 그녀의 전신에 뇌령사를 엮어 두었던 것이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일을 벌일 만큼 그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안심하고 마하령을 놓아줄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언제나 유용한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손은 떨어졌지만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처럼 여전히 비류연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하령이었다.

깊은 모멸감에 그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오늘 하루 동안에 평생 당할 수치를 다 당하는 느낌이었다.

“자! 이제 그만 포기하는 게 어때요? 그만 사과하시죠. 부탁합니다, 놓아 주세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어때요! 쉽죠?”

놀림감이 된 듯한 느낌에 참담한 기분이 된 마하령이었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알 수가 없으니 대응하기도 힘들었다.

“이것이 처신을 잘못하고 말을 함부로 한 대가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대가가 너무 비쌌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후회해 봐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사태는 커져 있었다. 충분한 제어가 가능한 시점은 이미 벗어나 있었다. 사태는 지금 마부의 고삐를 벗어 난 야생마처럼 사납게 날뛰고 있는 형국이었다. 진정될 기미 따위는 이미 지나가던 개가 몰래 먹어 버린 후였다.

“자! 이제 사과하시죠!”

비류연이 마하령에게 다시 한 번 사과를 요구했다.

“이… 이… 이…….”

마하령은 서슬 퍼런 분노로 몸을 파르르 떨었지만, 그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현재 상황은 조금 전 팔이 잡혀 있을 때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제는 후환 이 두려워서 말도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무료 나체무(裸體舞)만은 사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