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9권 13화 –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다

비뢰도 9권 13화 –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다

마하령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

그러나 여기까지 마하령을 몰아세워 놓고도

애석하게 비류연은 끝내 마하령의 사과를 들을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투자가 한순간에 무색해지는 일이 터져 버린 것이었다.

“하하하! 이거 신성한 학관 내에 살기가 흐르다니… 분위기가 너무 흉험하군! 좀더 부드럽게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게 어떤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햇살을 받으며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백검조의 담당 노사 천익검 늑기한이었다. 그는 막 이 소동을 보 고받고 달려온 참이었다.

“노사님!”

일이 난감하게 돌아간다고 용천명은 생각했다. 무사부가 보는 앞에서 함부로 검을 섞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용천명은 투기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어깨에 힘 빠지는 일이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가 막 착검하려는 찰나! 한쪽에서부터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흥!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그런 의기로 무슨 일인들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나?”

차가운 냉소와 함께 거칠게 말을 내뱉으며 나타난 사람은 바로 고약한이었다. 순간 늑기한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싸움을 조장하는 말씀, 좀 듣기 거북하군요.”

못마땅한 기색은 금세 지워 버린 후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며 늑기한이 말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가웠다.

“흥! 난 자네의 가식적인 썩은 미소를 보는 게 더욱 거북하고 메스껍군!”

고약한은 냉소를 터뜨렸다.

“허!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고약한의 가시 돋친 말에 늑기한은 즉시 미소를 거두었다. 언제 봐도 열 받는 빌어먹을 영감탱이였다. 도저히 좋아하래야 좋아할 수 없는 영감이었다. 그러나 대놓 고 본심을 털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난 진실을 말했을 뿐이네. 난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을 보면 체질적으로 거부감이 일어나서 속이 뒤집히고 역겨운 걸 어쩌겠나. 그저 팔자려니 해야지.”

넌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역겨운 놈이라는 욕을 빙 둘러 말한 것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싸늘하게 냉각되어 가기 시작했다.

“저 두 사람, 정말 나이가 나쁘군요.”

견원지간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지켜보며 은설란이 소근거렸다.

“일단은 서로 경쟁자에다 원래부터 유명한 앙숙지간이니까요.”

나예린이 보기에도 두 사람은 절대로 융화될 수 없는 세불양립이었다. 마치 물과 기름 같았다. 그 정확한 이유는 그녀로서도 알 수 없었다. 사람을 싫어하기 위해 서는 굳이 이유나 변명이 필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늑 노사! 자네는 검 가지고 노리개질이나 하고 있지, 여긴 웬일인가?”

검은 노리개가 아니니 검 들고 춤추지 말라는 뜻이었다. 고약한의 악담은 아직 부족함을 느꼈는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니면 자네의 장기인 여자 후리기라도 발휘해 보려는 속셈으로 왔는가?”

쉴 틈을 주지 않는 고약한의 악담에 늑기한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늑기한의 혀도 고약한의 공세에 자극되어 신랄하게 변했다.

“고 노사께서야말로 백정같이 사람을 도살하러 다니시느라 도법을 완성할 시간도 없이 바쁜 게 아니셨나요?”

검은 살인 도구가 아닌데 살기만 키운다고 검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고약한의 빈정거림에 질 수 없다는 듯 늑기한도 정면으로 맞섰다.

‘이 재수 없는 뺀질이 놈!’

“이 빌어먹을 심보 고얀 영감탱이!’

두 사람 사이에 시선이 격렬히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이제 돌이키는 것은 늦어 버렸다.

“도전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고약한이 싸늘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애들이 다 봐버렸으니 이렇게 되면 저도 물러설 수가 없군요.”

나는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는다는 의미였다. 할 테면 해보라는 안하무인의 태도였다.

“직접 부딪칠 수는 없으니 곧 있을 중간 평가에서 승부를 보는 게 어떤가?”

“호오? 방금 있었던 회의에서 결정된 그것 말입니까?”

“그래! 바로 그것이네!”

중간평가란 화산규약지회 후보들이 의례적으로 거치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다. 화산지회를 대비하는 수련 도중에 그 성과를 알아보기 위한 중간 단계로, 나중에 선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방심할 수 없는 시험이기도 했다. 그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라 중간 평가가 곧 최종 평가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일부에서는 이를 중간 평가가 아닌 중간 시련, 또는 탈락 시험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만큼 혹독하고 어려운 평가였다. 게다가 늑기한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중간 평가는 좀더 색다르게 치러질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늑기한도 고약한의 제안에 흥미가 동한 모양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후회하지 말게! 노부에게 이기려면 당분간 취미인 여자 후리기는 폐업해야 할걸?”

고약한이 은근슬쩍 늑기한을 깔아뭉갰다.

“절대로 후회할 일은 없습니다. 하하하하!”

늑기한이 그 특유의 느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미소를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는 고약한이었다.

“모두 들었겠지? 너희들의 사사로운 감정도 그때 해결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고약한의 말은 비류연과 마하령과 용천명을 향한 것이었다. 거부권 행사는 절대 불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통 타협을 보지 않는 게 고약한의 성격이었다.

“…..”

마하령과 용천명은 선뜻 고약한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왜 그러느냐? 무슨 불만이라도 있느냐?”

“아… 아닙니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좋아! 그럼 다들 해산!”

주위를 둘러보며 고약한이 사납게 고함쳤다. 그제야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리를 떠나는 그 누구도 이 일이 이대로 얌전히 매듭지어지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품는 이는 없었다. 아직도 청산해야 할 감정의 잔재들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