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9권 20화 – 치사한은 대공자가 무섭다

비뢰도 9권 20화 – 치사한은 대공자가 무섭다

치사한은 대공자가 무섭다

화산규약지회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는 이는 비단 천무학관뿐만 아니었다.

그날 그 장소에서 천무학관과 자웅을 겨루어야 하는 마천각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항상 승부는 팽팽한 평행선을 끈질기게 이어 왔었다. 아직 그 누구도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때문에 두 곳 모두 참가 후보들을 닦달하 면 닦달했지, 절대 방심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화산규약지회를 신경 쓰는 사람 중에는 꼭 자기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절대 질 수 없습니다. 이번 화산규약지회에서 패배란 절대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번 화산규약지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원하는 것은 패배가 아닌 오직 승리!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수하들에게 엄격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는 사람은 마천각의 대공자라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찬찬히 좌중을 훑어보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속하가 어찌 그런 중대사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손을 써두었습니다.”

“그런가요?”

약간은 차가운 반응에 심복을 자처하는 군사 치사한은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의 기분이 상승 고조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그의 촉각이 감지한 탓이었다. “이미 지령을 보냈습니다. 저편에 심어 놓은 보이지 않는 손이 이미 움직임을 시작했을 겁니다. 심려 놓으십시오. 그들이 멀쩡한 최상의 상태로 화산지회에 참가 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치사한이 재빨리 대답했다.

“흠! 그렇다면 결과가 기대되는군요.”

만족할 만한 반응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즐겁게 기다려 주십시오. 절대 주군을 실망시켜 드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제야 대공자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돌아왔다. 치사한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이제는 일단 안심할 수 있는 상태였다.

‘휴우~ 진땀 뺐군.’

십년감수(減壽:수명이 감소하는 이상 상태)한 느낌이었다. 요즘 들어 제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어 가슴이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한시라도 빨리 성과를 보여야 만 했다. 무능한 부하를 오래도록 수족으로 부리고 있을 만큼 대공자는 호락호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 다음 건은??”

아직 남아 있는 안건이 있는지 대공자가 확인 절차를 밟았다. 아직 중요한 안건 하나가 확실히 남아 있었다.

“네! 그 다음은 천무학관에 파견된 무당산 혈사 진상규명 조사관의 처리 건입니다.”

조사관이란 말에 석상 같던 대공자에게도 약간의 반응이 나타났다.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이가 지금 분명히 동요하고 있었다.

“조사관이라면 분명……?”

“네! 혈류도 갈효봉의 정혼녀인 사중화 은설란입니다.”

치사한의 대답에 대공자의 곧게 뻗은 검미가 불쾌감으로 꿈틀거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치사한의 비상한 주의력은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설란…….?

대공자 비는 갑자기 입맛이 썼다.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정혼녀라… 별로 좋은 어감은 아니로군요.”

그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네! 당장에 빼겠습니다!”

화들짝 놀란 치사한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그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럴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게 가장 현명한 처사였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처사도 병행해 버리고 말았다. “제거할까요? 하명만 하십시오.”

대공자가 고개를 들어 물끄러미 치사한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 속에 담긴 수만 가지 생각에 치사한은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치사한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결코 호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은은한 살기마저 머금은 시선이 어떻게 호의로 돌변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어불

성설이었다.

“…일단 조사관의 일은 더 경과를 두고 보기로 하죠. 아직 처우를 결정할 단계는 아니로군요.”

“예!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치사한은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좋습니다. 이제 가봐도 좋아요.”

대공자가 손짓으로 퇴장을 명령했다. 치사한은 기쁜 마음으로 이 묵직한, 긴장감 넘치는 공간을 빠져나갔다. 천근만근 같던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그런 기 분이었다.

“휴우… 살았다.”

생존 확인(生存確認)!

너무 초긴장 상태를 유지한 때문인지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겉으로는 절대 그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다는 게 바로 대공자의 무서움이었다. 계속 대공자를 보좌하고 있지만 아직도 문득문득 섬뜩할 때가 있었다. 차가운 얼음 칼을 옆에 품고 있는 듯한 서늘한 느낌이었다.

때문에 겉모습이나 표정, 말투만으로는 그 안개 가득 낀 속내를 완전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에 게는 제 육감과 본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 치사한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적셔져 있는 것도 바로 그 본능의 경고 때문이었다. 뇌리를 요란하게 울리는 경종! 그 경종은 언제나 그렇지만 매우 유용 하다.

대공자는 언제나 냉철하고, 언제나 날카로우며, 항상 빈틈이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완벽함은 너무나 빈틈없고 치밀해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절대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분이다, 이분은!’

매번 느끼는 거지만 대공자의 눈빛은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짙은 암흑과 같았다. 그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그의 혼백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 은 매우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느낌이었고, 될 수 있으면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지독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 치사한은 되도록 대공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 왔다.

자신 정도로 이 바닥에 닳고 닳은 이에게마저 공포를 안겨주는 눈! 그것은 보다 순수에 가까운 공포였다.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닌 본능, 그 자체를 자극하는 원초적 인 공포!

‘인간의 것이 아니야…….’

치사한은 완패가 결정되어 있는 상대와는 절대로 적대 관계에 놓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분의 진노를 사지 않기 위해 그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것이 목을 보전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