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룡 용천명
“이 바보 같은 수하 놈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마하령은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지금 그녀가 애타게 부르는 바보 수하들은 옆에서 두 손 놓은 채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즉 현시점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대로 금기를 깨뜨려야 한단 말인가?”
이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이제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그것은 바로 천축대승유가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웬만한 점혈이나 제압 따위는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신체에 대한 제어가 불안정해질 위험이 다분히 있었다. 때문에 지금 그녀는 심하게 망설이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그만 고집 부리고 순순히 사과하는 게 어때요?”
다시 한 번 비류연이 그녀를 다그쳤을 때였다. 그때 그녀의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어 주는 일이 발생했다.
“잠깐!”
“……”
느닷없는 방해의 손길에 비류연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그만 하는 게 어떤가?”
나지막하지만 확실히 사람들의 귀와 가슴을 울리는 힘 있는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행방을 찾아 움직였다.
촤라라락!
결계를 친 구정회원들의 장벽이 바다가 갈라지듯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가운데 등장한 범상치 않은 기품의 사내. 조용하지만 기품이 넘치고 주위를 숨죽이게 할 만큼 압도적인 기도의 소유자였다.
“응?”
비류연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조금 전과 다른 차이를 확실히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비로소 느낀 거지만 사람들의 티격태격으로 소란스러웠던 주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해져 있었다.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적막이었다. “흐흠!”
비류연은 새삼스런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원인이 바로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난 이 남자 때문이라는 것을 비류연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구정회의 무인들도 지금 한 마리 옥룡을 연상케 하는 남자에게 극상의 예를 표하고 있었다. 이들을 그렇게 유도한 것은 지룡(智龍) 백무영 이었다.
주위에 있던 구정회 일동이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회원들이 회주를 뵙습니다!”
등장이 이렇듯 주위를 들썩이게 할 만큼 요란하다 보니 자연 비류연의 눈과 관심도 그 사내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단아한 듯하면서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휘황찬란한 용모에 머리는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고, 전신에 흐르는 기품에는 용맹과 예지가 가득했다. 단정한 비단 의복은 옅은 청록빛을 띠고 있어 그의 조용한 분위기와 더욱더 잘 어울렸다. 허리춤에 드리워진 비취 옥대 한켠에는 세월을 거슬러 온 듯한 고풍스런 녹옥빛 장검과 백옥을 깎아 만든 듯한 하얀 검 두 자루가 걸려 있었다.
전신에 자연스레 흘러넘치는 기품은 한 마리 고고한 선학과 같고, 그 출중한 기도는 창해(蒼海)를 다스리며 창천(蒼天)을 노니는 한 마리 용과 같았다. 절로 감탄 사가 터져 나올 듯한 외모와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예지를 지닌 남자였다. 마치 태어나서부터 자라기까지 남의 위에 서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사람이었다.
“저 멋진 남자 분은 누구죠?”
은설란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예린에게 물었다. 저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기도를 지닌 이는 마천각에서도 거의 전무했다.
“그 사람 정도는 돼야 저 자와 견줄 수 있을까?”
그 외에는 세 손가락을 꼽기도 버거웠다. 그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미치지 못함이 있었다. 과연 군계일학(群鷄ᅳ鶴)의 빼어난 기도였다. 초절정 고수에게서만 느 껴지는 특유의 기세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와 주위를 압도했다.
“누구시죠?”
비류연도 궁금증이 동했다.
“본인은 미력하나마 구정회의 현 회주를 맡고 있는 소림(少林)의 용천명이라 하네!”
자기를 용천명이라 소개한 남자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웅성웅성!
순식간에 침묵하던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그의 존재가 단번에 장내를 술렁이게 만든 것이다.
“창천룡(蒼天龍)!”
모용휘가 탄성을 터뜨렸다. 무공에만 관심이 집중된 무공치(無功癡지만 그로서도 어릴 적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이름이었고, 최근까지도 완치되지 않은 귓 병의 원인이 된 이름이었다.
“절대 용천명에게 져서는 안 된다.”
“과연 이 아이가 소림의 용천명을 누를 수 있다는 바로 그 아이로군요!”
“과연 너에 비견하면 용천명도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구나!”
“팔대세가의 명예를 걸고 결코 용천명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도 물론 져서는 안 되지만 특히 용천명에게만은 절대 져서는 안 된다! 명심하거라!”
가문 사람들은 물론이고 간간이 세가를 방문하는 여타 세가의 사람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세뇌될 정도로 줄기차게 들은 소리들이었다. 살아오면서 어릴 적부터 여러 번 용천명과 비교되어 왔던 모용휘였다. 아무래도 구대문파(九大門派)에 대한 경쟁심이 자신에게 그대로 투영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창천룡(蒼天龍) 용천명(龍天命)!
천무학관 관도들의 실질적인 최고 세력인 구정회의 현 회주로서 전 무림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기재 중의 초기재! 전천후 천재란 그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 이 있을 정도로 문무 양면에서 빼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천년의 역사가 낳은 소산물이었다. 그는 바로 대소림사의 제자였다. 소림에서 배출한 백 년 만의 절세기재! 그에게 달라붙는 수십 가지 수식어 중의 하나였 다. 그는 웬만한 좋은 말은 모두 이름 앞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초기재였다.
‘저 사람과 견줄 수 있는 사람이라… 용과 싸우려면 그 상대도 용이어야 하는 법! 마천각의 사람들은 그 자를 제외하고 한두 사람밖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지만 그 외의 인물이라면 지금도 눈앞에 있으니 금방 뽑을 수 있겠구나!’
은설란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칠절신검이란 별호를 지니고 있는 팔대세가의 자존심 모용휘가 서 있었다. 태어난 해가 몇 년 늦었지만 그 가능성과 잠재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는 모용휘.
‘어머? 별일이네?”
모용휘를 향하던 은설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항상 조용하기만 하던 이 사람이 웬일이지??
지금 모용휘의 시선은 진지함과 투지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그 삼절검 청흔을 반 초차로 눌렀다는 자로군! ‘
항상 조용하기만 하던 모용휘가 지금은 온몸에서 투지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본능의 표출이었다.
“강자를 만나면 무공의 고하를 가늠해 보고 싶어진다.”
무인들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중 하나였다. 항상 조용하고 차분한 모범생인 척해도 그 역시 뼛속부터 타고난 무인이었던 것이다.
“이번 세대엔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태어났구려. 백 년 전 천겁혈세(天劫血洗)의 악몽 이후 무림의 정기가 크나큰 타격을 입은 이래 지금이 최고의 부흥기인 지도 모르겠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正)과 사(邪) 양쪽에서 이렇듯 뛰어난 인물들이 줄줄이 나타날 리가 없지 않겠소이까? 본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총 노사?”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마진가가 총 노사 빙검 관철수를 쳐다보았다.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서류는 현 마천각 관도들의 실력에 대한 분석 정보였다. 하지만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군요. 죄송합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빙검이 대답했다. 감정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허허허! 이번에 있을 화산규약지회가 그 어떤 때보다 어렵고 또 그만큼 성대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세. 이번에 백 년 만에 있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대회라 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네.”
“물론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듯 마진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강행 수단도 허가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분명 복안이 선 것이다. 이럴 때의 마진가는 아무리 말려도 그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어떤 수단도…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보고서대로라면 현재의 안이한 운영과 수행으로는 절대 저들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
그의 안색이 약간 굳어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그 문제 때문이었던 듯했다.
“그렇다는 것은 설마……..
최초로 빙검의 얼굴에 감정이라 불릴 만한 것이 나타났다.
“그 설마입니다. 봉인되었던 환마동(幻魔洞)을 개방하겠습니다!”
“서… 설마 화… 환마동까지 말입니까?”
환마동이라는 말에 얼음조각 같던 빙검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화를 일으켰다.
“환마동은 그 위험성이 너무 높아 18년 간 봉인(封印)해 두었던 곳 아닙니까?”
환마동! 원래는 관도들을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해 만든 관문이었지만, 그 난이도는 물론 위험성 또한 너무 높아 부상자가 속출하고 끝내는 사상자까지 낸 곳이었 다. 그래서 죽음의 관문, 사자(死者)의 문이라고까지 불리기도 했던 마(魔)의 장소였다. 사상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18년 전 사건 이후 굳게 봉인되었던 곳이기도 했 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우리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했던 상처와 아픔, 그리고 피의 무게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소이다. 요즘 들어 강호가 겉으로는 너무 평화 롭긴 했지요. 평화는 사람의 의지를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만 합니다.”
“그러나 환마동의 개방은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되지나 않을는지.
감정이 없는 게 아닌가 의심받는 빙검에게 근심거리를 안겨줄 정도로 환마동은 위험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표현을 대여해 보자면 필요 이상의 위험이 도사린 곳이 었다.
“각오한 바입니다. 이번에는 정파의 위신을 걸고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때입니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난 아이들을 믿습니다.” 마진가의 두 눈에 강한 의지가 번뜩였다. 그의 몸이 태산처럼 커 보였다. 마음속에 굳건한 의지가 일자, 그의 몸에서 태산같이 장중한 기운이 절로 일어나기 시작 한 것이다.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빙검은 읍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감히 태산 같은 위압감과 천년 거석 같은 굳은 의지를 뿜어내는 관주를 거역할 수 없었다.
‘용천명…….’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 마하령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저 남자한테 보여주다니…….?
혀를 빼물고 콱 죽고 싶을 정도로 분했다. 저 남자에게 약한 모습이나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노옴!!’
이 빌어먹을 남자 비류연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지위와 신분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는 생소한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