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네뷸러 (Over the Nebula) – 3화 : 여름밤의 성운


여름밤의 성운

깊은 밤이었다.

나뭇가지 끝에 걸린 조각달 끄트머리에서 달빛이 흘러내리는 여름 밤, 탁탁거리는 모닥불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둡 고 고요한 공기 속엔 정순한 암흑과 맑은 차가움만이 천천히 쌓여가고 있었다.

바람에 모닥불이 흔들렸다.

난 모닥불에 삭정이를 던져넣은 다음 주위를 돌아보았다. 굳이 불을 피우지 않아도 좋은 여름밤이었지만, 어쩌면 묘지에 출몰하는 도깨비 불 소문이 퍼질지도 모르고 그러면 순찰할 곳이 하나 줄어들지도 모른 다. 나는 피식거리며 모닥불 너머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나는 삭정이를 부러뜨리며 내 옆에 앉아 있던 마하단을 돌아보았다.

“내 말이 맞지? 불을 피우니 무덤들도 한결 따뜻해 보이잖아.”

난쟁이는 바닥에 똑바로 앉은 채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렇군. 자네도 묘지를 좋아하나?”

“엄숙해지는 기분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있는 친구들이 침묵의 미덕을 안다는 사실이 좋지. 대부분 사람들은 혼자 있기 싫은 감정과 여럿이 있을 때의 소란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내기 어려워하지. 하지 만 묘지는 그 양쪽을 해결해 줘.”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진 못했군. 나도 묘지를 좋아하지만 자네처 럼 이유를 정리해 보진 못했어.”

“그런 거야, 마하단.”

멍한 눈으로 불꽃을 바라보던 마하단은 조금 후에야 내 말에 반응했다.

“무슨 말인가?”

“그런 거라고. 다가온 손이 눈을 찌를 것 같아서 깨물어버리지만, 속 으론 그 손이 없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지 션의 경우엔 그게 너무 심 했어. 다가오는 손의 주인까지도 없애버리곤, 그리고 주위에 아무도 없 다는 사실에 오열하며 자살하려 했지. 마술사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어떻게 한 건가?”

“응?”

마하단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위어울프 말이야. 케이토라고 했던가? 말 안 될 건 없는 상황이 지. 케이토는 그날 아침에야 자네가 먹였던 약에서 깨어났고, 그리고 그 동안에 일어난 일을 전해 듣고는 자네들을 구출하기 위해 왔지. 그러곤 나를 밀어붙여 자네와 보안관이 건물 안으로 돌입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줬어.”

“그랬지”

“하지만 나와 보안관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어. 자 넨 공방을 노려보며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지. 그리고 그 중얼거 림에 부응하듯 케이토가 나타났어. 어떻게 된 거지? 자넨 그때 뭐 하고 있던 거였나?”

나는 남은 삭정이를 전부 끌어모아 모닥불 안에 던졌다. 불티들이 분수처럼 솟아올라 허공으로 비약했다.

“마술을 부리고 있었지.”

마하단은 헛바람을 삼켰다.

“자네 마술사였나?”

“아니, 그렇지 않아. 정확하게 말하면 마술을 부린 건 내가 아냐”

“그럼?”

“션이지.”

“설명해 줘.”

“션의 마술은 그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불운을 보내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때 내가 할 일은 자명했어. 나는 계속해서 션을 죽여야 된다고 나 자신을 설득했어. 그게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의심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게 성공한 건지 실패한 건지 모르겠어. 하지만 나 자신만을 만족시키는 결론에 자네가 동의해 준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어떻게?”

“그때 션의 마술은 그를 죽이려 드는 나에게 행운을 보냈다고. 그리 고 행운이 일어났지. 내가 가장 믿고, 동시에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친 구가 나타난 거야.”

마하단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티르, 자네 가설이나 시도는 재미있지만 사실과 달라. 그 위어울프 는 그날 아침에 이미 깨어나 있었어. 어디에 행운이 있다는 건가? 그것 은……!”

마하단은 말을 멈춘 채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호 흡이 곤란한 것 같은 그 얼굴에 나는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하단은 쥐어짜듯 외쳤다.

“설마!”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나는 정말 믿기 어렵지만.”

“그게, 그렇게 되었을까? 어떻게…”

“자네 주인은 자네에게 공간을 일그러뜨릴 수 있는 힘을 주었지. 션 도 그렇게 한 거야. 어쩌면 전수 도중이었으니까 까로 트랙스의 막강한 힘을 이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날 오후 내가 그것을 원 한 순간, 션은 그날 아침의 케이토가 약에서 깨어나게 했어. 시간을 일 그러뜨린 거지.”

마하단은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 이야기를 꺼내어놓진 않았다. 나와 보안관이 공방에 돌입함으로 써 전수 과정은 실패했고, 션은, 나의 그 천치는 7400년 동안 쌓여왔던 마법이 몸 안에서 요동치는 바람에 온몸의 혈관이 다 끊어진 모습으로 사망했다. 잔혹한 표현을 피한다면 너무 오랫동안 소망했던 소원이 이 루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흑사병과 좌절(둘 중 어느 쪽 이 더 큰 원인일지 말하기는 미묘한 문제다.) 때문에 까로 트랙스 또한 사망 했다.

마하단은 고개를 떨군 채 말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자네를 죽이고 싶지만, 그래 봐야 아 무것도 원래대로 돌아오진 않겠지.”

아무래도 나는 나를 죽일까 말까 갈등하는 친구를 주워 모으는 재주가 있나 보다.

“자네는 검을 들어 낡은 공방을 겨냥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 지. 하지만 자네가 겨냥한 것이 정말 그것뿐일까? 티르, 자넨 후회나 안 타까움이 전혀 없나?”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아, 마하단.”

마하단은 고개를 들어 나를 돌아보았다.

“많다고?”

“사카 둠바에서 까로 트랙스까지 7400년. 그리고 션 그웬에서 이름 을 모를 누군가까지의 수만 년. 어떻게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찬성을 보내겠어. 그리고 내 짧은 팔이나마 그들의 어깨에 걸어 함께 걸어갈 거야.”

“그들?”

“서로 손가락을 깨무는 것을 삼갈 줄 아는 자들의 곁에서.”

“티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마하단 지금 나는 내 이웃이었던 한 젊은 도제의 죽음에 추모를 보내고 싶을 뿐이야”

나는 발아래 산비탈에 놓인 션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너 머, 지평선 위쪽에 걸려 있는 불타는 성운을 조용히 응시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