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미스트 (Over the Mist) – 2화 : 저승사자와 천사
저승사자와 천사
실로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도시의 자랑스러운 보안관이 파리 하드투스조차도 이 경천동지할 상황 앞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오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진지한 얼굴을 한 채, 보안관 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되냐?”
대답할 말이 없었기에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몬도 시장을 돌아 보았다. 몬도 시장은 내 시선에 당황하여 나라부스 시의회 의장을 돌 아보았고, 그러자 나라부스 의장은 흠칫하며 아인켈 우체국장을 바라 보았다. 아인켈 우체국장은 난처한 듯 잔파드로스 신관을 쳐다보았고 잔파드로스 신관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옆 사람, 즉 우리 도시에서 생물학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을 쳐다보았다. 신관의 시선을 받은 안셀은 자신 있게 말했다.
“글쎄”
시장과 시의회 의장과 우체국장과 신관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나와 보안관은 의기소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당혹이 아무리 크다 한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율피트 소란다스와 미 레일 요란하스의 당황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도시의 사건 사고 발생률 성장 곡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이 두 악동은 다행히 학교에 가 있었지만 만약 그들이 이곳에 있었다면 상황은 통제가 불가 능했을 것이다.
상황은 이러하다.
장소는 요란하스 저택의 헛간 등장인물은 몬도 시장, 나라부스 시의회 의장, 아인켈 우체국장, 잔파드로스 신관, 하드투스 보안관, 스트 라이크 보안관보, 그리고 안셀, 지금 이 소도시의 행정, 입법, 통신, 종 교, 사법의 책임자와, 왜 불려왔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렇 다고 해서 부르지 않기엔 꺼림칙한 인물 한 명이 한자리에 모여서 근심 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못생긴 암캐와 그 품에서 꿈틀거리 고 있는 네 마리의 새끼. 이해할 수 없다고? 내 생각에도 그렇다.
사정은 이러하다.
소란다스 가문의 차세대 주자인 율피트 소란다스는 수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다. 지체 높은 가문의 영양들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어르는 고양이의 탈을 쓴 완구를 생각해선 곤란하다. 가축 중에서 자신이 직접 먹잇감을 사냥하는 유일한 동물인 고양이는 실로 고독을 즐 길 줄 아는 사냥꾼이며, 타협할 줄 모르고 무릎 꿇을 줄 모르는 자존 심의 정화다. 율피트의 고양이는 바로 그런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아마 도 글을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그럴 테지만, 날씬한 어깨와 날렵한 허 리, 민첩한 꼬리 등 시인이나 중얼거릴 만한 고양이의 덕목에는 무관심 했다. 대신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뭉쳐진 근육 때문에 동글동글 한 어깨와 우람한 허리, 두 번 꺾어진 꼬리 등이었다. 목소리는 또 어찌 나 큰지, 자주 그러지는 않지만 한번 울부짖으면 동네 개들이 단체로 오줌을 지릴 정도다. 좀 체격이 작은 시민들은 겁이 나서 이 녀석 근처 에 가지도 못한다. 녀석은 턱없이 어울리는 ‘저승사자’라는 이름을 가 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요란하스 가문의 자랑 미레일 요란하스는 암캐를 한 마리 키우기 시작했다. 개의 이름은 ‘천사’다. 미레일을 동물을 사랑하 는 소녀라 생각하더라도 상관하진 않겠지만, 꼬리를 흔드는 복슬강아 지와 함께 까르륵 웃으며 정원을 뛰노는 그런 소녀를 연상한다면 나는 애처로움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미레일이 개를 키우기로 결심한 이유 는 단 하나, 저승사자를 처단하게 하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천사는 그런 주인의 목적에 완벽히 부합하는 엽기적인 녀석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체격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이 녀석이 장차 식인 괴수로 성장 한다 해도 슬퍼할 이는 많을지언정 놀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 레일은 그 영광의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천사를 애지중지 키웠 고, 천사는 주인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요란하스 가를 방문한 손님들
의 구두를 작살내며 전투력을 키워왔다. 그리고 우리 소도시의 시민들은 그 저주받은 날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움에 차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율피트가 미레일을 머리끝까지 화나게 만들 었다. 일상사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날이 특별했던 이유는 분노 때 문에 이성을 잃은 미레일이 마침내 대재난의 봉인을 풀어버렸기 때문 이다.
천사가 드디어 요란하스 가의 대문을 나선 것이다.
장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사에 대해 입소문만 듣고 있던 이 들도 그 피비린내 나는 소문이 오히려 부드러운 편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뻣뻣한 털가죽 아래 실룩거리는 근육, 입안에 어떻게 다 들어가 있는지 모를 흉포한 이빨, 너무 벌어진 어깨 때문에 안짱다리에 가까 운 네 다리. 오만함에 차서 대로를 걸어가는 암캐의 위용은 실로 신화 의 부활이었다. 그렇다. 녀석은 잘못된 시간에 떨어진 비애에 찬 괴수였 다. 신화시대에 태어나 영웅들의 시련이 되었어야 할 괴수가 이토록 어 울리지 않는 물질주의의 시대 한가운데를 고독하게 걷고 있는 모습에 서는 비극적 숭고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사위를 짓누르고 대지와 산들과 하늘마저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가운데 저승사자와 천사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첨언하자면, 꽤 시끄러웠다.
“개양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안셀이 그렇게 말한 순간 모든 이가 숨이 탁 트이는 듯한 안도감을 느낀 사실에서 우리가 얼마나 당황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파리 보안관은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개와 고양이 사이에서 새끼가 생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나는 천사의 젖을 빨고 있는 것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눈앞에 이놈들이 있잖습니까.”
천사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 소도시는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다. 둘만 만나면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배속 에 뭐가 들어 있을까?’ 개다, 고양이다, 뭔지 모르지만 죽은 새끼일 것 이다. 거룩한 신께 맹세코 천사는 씹어 삼킨 구두 가죽 때문에 소화 불 량에 걸린 것이지 임신한 것이 아니다. 도시 활동이 마비될 지경이었 고, 그 때문에 보안관과 나는 평소의 두 배나 되는 격무에 시달려야 했 다. 남편들은 술집에서 그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 나가떨어지기 일쑤였 고 이웃집 부인네와 그 이야기에 정신이 팔렸다가 집에 불을 낼 뻔한 부인네들 또한 부지기수였다. 따라서 개가 새끼 낳는 일을 보러 도시의 유지들이 모조리 회동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놀랄 필요는 없다.
마침내 모든 시민들이 기다리던 그놈들이 태어났지만, 우리는 이놈 들이 뭔지 알 수 없었다. 정정 안셀은 그 우리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 고양개라고 부를까?”
이파리 보안관은 송곳니를 위협적으로 내밀며 투덜거렸다.
“개양이든 고양개든 그게 문제가 아냐.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아마 틀림없이 이 녀석이 다른 수캐와 만든 작품일 거야. 그러니까, 이건 고양이를 너무 닮은 개라고.”
우리 보안관이 보수 성향에 충실한 원칙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해도 좋고 천사가 개를 낳을 거라는 데 5000렐을 걸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도 좋다. 하지만 나는 지적 도전을 즐기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개와 고양이의 잡종을 낳을 거라는데 5000렐을 건 보안관 조수답게 그 논리를 거부했다.
“이건 고양이를 닮은 정도가 아니잖아요. 보시라고요.”
보시라고 말했지만, 사실 뭐 볼 건 없다. 천사의 젖을 빨고 있는 새 끼들의 얼굴은 찰흙을 대충 주물럭거려 놓은 것처럼 생겨서 지금으로 선 고양이인지 개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얼마 후엔 그럭저럭 소속이 어느 쪽인지 드러나겠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 보면 개처럼 보이고, 어 떻게 보면 고양이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엔 보는 사람이 어느 쪽에 돈 을 걸었는가에 따라 개, 혹은 고양이로 보이는 듯하다. 어느 쪽에도 돈 을 걸지 않았던 안셀이 다시 끼어들며 “개양이 이 듣기 좋지 않아?” 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개가 고양이 새끼를 낳았단 말이야?”
“저승사자라면 암소한테도 자기 새끼를 배게 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동감하고 싶어지는 이야기야, 티르.”
“역시 개양이가 낫지 않아?”
“대신전에 보고해야겠습니다.”
“개양이 타령 좀 그만해. 이건 그냥 강아지라고!”
“이 녀석들에게 자백을 받아냈어요? 혹시 고문했어요?”
“이파리 보안관 당신 고문도 합니까? 오크식 고문은 어떤 거죠?”
“아무래도 ‘고양개야’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개’라고 부르는 것 이 매끄럽잖아?”
“저, 여러분. 그러니까 제 생각엔 대신전에 빨리 이 사실을…………….”
“이것 보게들. 나는 내기에서 빠지고 싶은데.”
“천사가 새끼를 낳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는 빠질 수 없어요.”
“아직 종자가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상관없잖아.”
“확인 안 되긴 뭐가 안 되었습니까. 이건 강아지입니다.”
“빌어먹을. 대신전에 보고해야겠다고요!”
우리는 잔파드로스 신관을 돌아보았다. 격분에 찬 얼굴로 우리를 노려보던 잔파드로스 신관은 갑작스럽게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고는 당황했다. 그가 선택한 타개책은 그다지 현명한 것이 되지 못했는데, 잔 파드로스 신관은 어디서 외침이 들려왔는지 몹시 궁금하다는 듯한 얼 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시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린 잔파드로스 신관이 어떤 표정들을 마주하게 되었는지는 거론하지 않겠다. 주눅이 든 신관을 향해 나라부스 의장이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신관님. 개가 새끼 낳은 일을 대신전에 보고하겠다고 하셨습니까?”
나머지 우리는, 그러니까 개양이라는 이름의 걸맞음을 입증하고 싶 어 안달이 난 안셀을 제외하고, 웃을 채비를 갖췄다. 잔파드로스 신관 이 약간 더듬거리기라도 했다면 우리는 곧 웃음을 폭발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잔파드로스 신관은 의장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감을 회복했다.
신관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이것은 악마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목구멍에서 출정 준비를 갖추었던 웃음은 다시 아래로 곤두박질쳤 다. 우리는 얼어붙은 모습으로 잔파드로스 신관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이 도시의 책임자인 자신의 위치를 깨달았는지 몬도 시장이 질문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신관님?”
“아, 시장님, 추측일 뿐입니다. 만약 이…………… 동물이 이파리 보안관의 추측대로 그냥 보통 강아지에 불과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 만 이 동물이 고양이와 개의 자식이라면, 그것은 창조주의 섭리를 거 스르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누구의 소행이겠습니까?”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느껴졌다. 시장과 의장과 우체국장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보안관 조수인 나는 보안관과 마주 보아야 할 것 같았기에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파리 보안관은 손가락으로 송곳니만 톡톡 두드 릴 뿐 내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문득 그가 오크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보수적인 오크로서 이파리 하드투스 보안관은 마술이나 환상, 유령, 저주 따위에 무관심한 것처럼 신에게도 관심이 없다. 오크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신보다 자기 손에 쥔 칼을 더 믿는다. 혹 칼이 제공할 수 없는 정신적 위안이 필요해지면 그들은 다른 종족들처럼 신을 믿는 대신 지혜의 말이 담긴 비밀 경전 을 읽는다. 그런 오크의 일원인 이파리 보안관에게 악마의 위협은 농담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보안관의 그 담담한 태도를 보고 나는 지금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요란하스 가의 헛간이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요란하스 부인도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을 잡동사니들이 잔뜩 쌓여 있는 풍경은 그 런 환기를 도와주었다. 나는 말했다.
“신관님 이곳이 악마의 육종 실험장이라고요? 어, 아무래도 악마가 나타나기엔 지나치게 촌스러운 장소 아닐까요? 악마의 세련된 감각에 는 제도나 파사디아 같은 곳이 훨씬 마음에 들 텐데요. 그 늙은이는 멋 쟁이라고 하잖습니까?”
“음. 티르. 나는 엄숙주의자들처럼 농담이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겠 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대천의 원수를 희화화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합니다. 악마를 얕잡아 보는 순간 악마에 대한 우리의 경계 가 흐트러지게 되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일찍이 호고르미오 수석 신관 은 농담이 악마의 차용증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신전과 악마의 오랜 투쟁사를 다 듣게 될 것 같은 위기감 때문에 나 는 무례하게도 잔파드로스 신관의 말허리를 잡아챘다.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악마가 뭣 하러 고양이와 개의 중매를 서지 요? 별 소득이 없는 일일 텐데요.”
사람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말을 중도에 끊긴 잔파 드로스 신관은 약간 불편한 기색이었지만 부드럽게 말했다.
“예. 황제 폐하를 홀린다거나 제국군에 잠입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대신에 말이죠?”
“어,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죠.”
“혹은 치료 불가능한 돌림병을 퍼뜨리거나 지진을 일으키거나 화산을 폭발시키거나 황충을 발생시키는 대신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관님.”
“미안합니다. 티르, 내가 든 예들이 좀 무시무시했지요? 하지만 그것 들은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악마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예?”
“그런 무시무시하거나 사악한 일들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세상에 횡 행하는 악의 기운을 명백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악마의 목 표와 대치되는 일입니다. 악마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존 재를 잊어버리길 원합니다. 악마에 대한 농담이 위험한 이유도 그 때 문・・・・・・ 아, 예. 악마는 사람들이 자기를 잊으면 신 또한 잊게 될 것을 알고 있거든요.”
제국군에 복무하던 시절 알고 지냈던 종군 신관에게 얻어들었던 이 야기가 생각났다. 성전보다는 칼, 칼보다는 술병을 더 사랑하는 자신의 취향과 자신의 믿음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던 분이었지만 그래도 나 와는 가끔 죽이 맞았다. 그 종군 신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도망치는 건 악마라고 했던가.
우리 소도시의 지도자들이 난해한 신학적 명제에 고민하고 있는 모 습을 훑어본 다음 나는 다시 천사의 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천사는 구두 염색약 때문 에 울긋불긋해진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천사가 으 르렁거림을 멈출 때까지 뒤로 물러났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신관님. 그렇다면 그 늙은이는 이런 희한한 일을 벌이는 것도 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잔파드로스 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입니다. 티르.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창조주의 섭리를 비웃 는 사악한 의도가 엿보입니다. 물론 제가 악마의 모든 계책을 알고 있 지는 않습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라도 대신전에 보고하고 조언을 구해야겠습니다. 아인켈 우체국장님? 제도로 향하는 다음 우편 마차가 언제 들어오지요?”
아인켈은 내일 오전에 온다고 말했다. 잔파드로스 신관은 보고서를 써야겠다고 말하며 물러가겠다고 말했다. 그때 나라부스 의장이 손을 들었다. 잔파드로스 신관이 돌아보자 나라부스 의장은 즙 많은 양파 를 대할 때처럼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저, 신관님. 그렇다면 이놈들을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네?”
“사태가 확실해질 때까지 격리해야 됩니까? 만약 이것들이 정말 사 악한 것들이라면, 어, 부인네들이나 어린애들이 이곳에 접근하는 일은 금지시켜야 될 것 같습니다만 이것들을 구경하려고 작정하고 있는 사 람들이 잔뜩 있다는 것은 아시죠?”
잔파드로스 신관은 오른 주먹을 왼손바닥에 내리쳤다.
“맞습니다! 의장님. 그런 생각을 못 했군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 다만 작은 위험도 무릅쓸 필요가 없겠지요. 이곳을 격리시켜야겠습니 다. 그리고 율피트의 고양이인 저승사자도 감금해 두는 편이 좋겠군요. 시장님? 그래야겠지요?”
“아, 예. 그래야겠군요. 보안관?”
갑자기 지적당한 이파리 하드투스 보안관은 굵은 목을 좌우로 비틀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여기를 격리시키면 요란하스 씨가 불편할 텐데요.”
“하지만 이것이 정말 악마의 장난이라면………”
“어, 그리고 이곳은 안전하게 격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문에 는 자물쇠도 없고 창문도 저렇게 큼직한 것이 있는 걸요. 그렇다고 해 서 누가 여기에 계속 붙어 있을 수도 없고요.”
시장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이번에는 신관을 쳐다보았다.
“어, 그렇습니다. 어떻게 하죠?”
잔파드로스 신관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서 신관은 우체국장을 바라보았고 우체국장은 의장을 쳐다보았다. 다 행히 이파리 보안관은 또다시 시선 돌리기가 재현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현책을 떠올리길 기다리느니 자신의 우책을 시 도하겠다는 오크다운 태도로 이파리 보안관은 말했다.
“꼭 격리시켜야 됩니까?”
모든 사람들이 잔파드로스 신관을 바라보았다. 판단을 강요하는 눈 빛이었다. 잔파드로스 신관은 판단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최소한 이 불가해 한 일을 설명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말입니다.”
“뭐, 그렇다면 이 녀석들과 그 고양이는 보안관 사무실에 가져다놓지요. 그곳이라면 안전할 겁니다.”
감탄했다. 우리 보안관 사무실, 즉 정의와 상식과 윤리의 옹호자들이 기거하는 그곳에 감히 침입하려는 의도를 품을 수 있는 시민은 이 소도시에 없다.
그리고 조금 후 나는 더 감탄했다. 내가 이렇게 멍청할 줄은 몰랐다. 이파리 보안관의 대책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심성과 과감함이 동시에 요구되는 운반 작업이 필요했다.
“티르, 천사를 들어 난 새끼들을 맡지.”
“사표 수리해 주세요.”
“사무실에 도착하면 해줄 테니까 들어. 먼저 가 나는 요란하스 부인 과 미레일에게 이놈들을 보안관 사무실에 가져다 놓겠다고 말하겠어.”
“하지만 이놈을 나 혼자서…..”
“그리고 소란다스 저택에 가서 그 고양이를 잡아가지.”
할 말이 없다. 공평하니까. 극심한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내가 떠올 린 해결책은 안셀에게 동물 수송 전문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복이 없다. 안셀은 분류학에 자신의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드래곤보다 강한 것은? 엄마 드래곤. 우리 모두 잘 알듯이 어떤 압박 이 가해졌을 때 모정은 쌍벽을 불허하는 공격성으로 바뀐다. 그런데 왜 ‘상처 입은 야수’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되는데 새끼 키우는 야수’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성성의 신화를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게 선택권이 있다면 후자와 상대하느니 전 자와 맞닥뜨리고 싶다.
하지만 이 소도시의 존경받는 보안관 조수인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 었다. 천사는 주둥이에 닿는 범위 내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한입 크기로 산산조각낼 태세였다. 내 처지를 딱하게 여긴 우체국장 아인켈 이 트롤의 완력과 재생력을 낭비해 가며 천사의 입과 앞발, 그리고 뒷 발을 묶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놈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인 켈은 천사를 내 목 뒤에 얹어주었다.
“끌고 가긴 힘들테니 이렇게 데리고 가게. 티르 안고 가는 것보다 는 낫겠지.”
나는 아인켈이 권하는 대로 천사의 두 앞발을 오른손으로, 그리고 뒷발들을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확실히 편리한 자세였다. 하지만 천사 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천사는 묶인 입 주위로 배어 나오는 거품을 내 어깨와 머리에 잔뜩 묻히며 버둥거렸다. 그 자체로도 상당한 부담이었지만 천사의 엄청난 무게 때문에 나는 턱이 가슴에 닿을 정도 로 머리를 숙여야 했다. 악전고투 끝에 요란하스 가를 나와 사무실 쪽 으로 걸어갔다.
거리엔 안개가 가득했다.
네펜지스 강이 품어내는 습기와 노천에서 흘러나오는 석탄 가루 때문에 우리 도시의 가을 안개는 별스럽달 만큼 짙다. 그런 사정 때문 에 나는 뜻하지 않게도 시민들에게 상당한 이야깃거리를 선물하게 되 었다.
안개 저편에서 거무튀튀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이 도시의 상냥한 시민들은 이미 인사를 건넬 채비를 갖춘 다……………. 그러나 그림자가 다가올수록 기묘한 신음이 커진다……………. 당 황하는 시민들…………, 헐떡거리는 호흡, 투박한 발걸음, 이를 가는 소 리・・・・・・ 공포……,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야수의 머리와 인간의 몸 을 가진 괴수…………… 경악으로 얼어붙은 시민들…………, 거친 호흡…………, 그 들을 지나쳐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괴물…………….. 헛것을 본 것이 아 닌가 의심스럽지만, 뒤를 돌아볼 용기를 가진 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것은 그다음 날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천사에 게 깔린 머리를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해 옆에 누가 지나가는지도 알 지 못했다. 내가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무심히, 그러니까 산자 의 곁을 지나치는 죽은 자처럼 지나친 것도 그 때문이다. 길을 잃지 않 고 사무실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신기했다.
가까스로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나는 우선 천사를 구속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가장 속 편한 방법은 사무실의 지하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었지만 그 안에 넣어둘 경우 먹이를 공급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사가 혹 제국에서 가장 영리한 개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고 해서 음식 반입구로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래서 나는 천사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엄명을 내렸다.
“얌전히 있어. 밧줄을…………, 쇠사슬을 찾아올 테니까.”
천사는 분노에 찬 눈으로 노려보다가 몸을 뒤틀었다. 저러다가 다칠 까 싶어 걱정되었기에 나는 황급히 창고를 뒤졌다. 다행히 쓸만한 물건이 있었다.
여기서 잠시 안셀이 ‘운명적 기계공이었던 무렵 제작하여 보안관 사 무실에 선물한 ‘인도주의적 다기능 포박기의 특징을 설명하겠다. 그 물 건은 채우기가 엄청나게 어렵고 풀어버리기는 쉽기 때문에 인도주의 적이라는 명칭은 정확하다. 또한 가벼운 물건을 눌러두는 기능이나 이 파리 보안관과 나의 발목을 잡아채는 기능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 고 있기에 다기능이라는 명칭에도 부합한다. 그것을 가지고 황급히 사 무실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그 물건이 제멋대로 분해되어 운반자의 무 릎을 후려갈기는 기능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고 감탄했다. 한쪽 발로 깡충거리며 뛰어들어오는 나를 보고 천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 했다.
안셀 외에는 아무도 재조립할 수 없는 물건을 재조립하려 시도하는 대신, 나는 그 구성품들을 이용하여 어떻게 어떻게 임시변통의 목줄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의 한쪽을 천사의 목에, 그리고 반대쪽을 사무실 기둥에 묶었다. 보기 흉했지만 천사를 억류할 수는 있어 보였다. 준비 를 끝낸 다음 나는 천사의 발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멍청함을 저주했다. 다리가 풀린 천사는 당장 뒤로 물러서서 나를 노려보았다. 그 때문에 천사의 입을 풀어줄 수가 없었다.
천사는 나를 경계하며 앞발로 자신의 주둥이를 긁었다. 하지만 내 안위를 걱정한 아인켈이 튼튼하게 묶어놓은 매듭은 천사의 앞발을 버 텨내었다. 천사는 주둥이를 바닥에 비비고 벽에 부딪치며 난동을 부렸다. 도무지 가까이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런 자해를 두고 볼 수도 없었다. 나는 천사의 목쯤을 겨냥해 몸을 날렸다.
되새김질 당하는 풀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았다.
발이 풀린 천사는 무서운 난동을 부렸고 나는 벽과 바닥과 기둥과 개의 뜨거운 육체 사이에 휘말려 잘 짓이겨졌다. 어떤 곳에 어디를 부 딪치고 있는 것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연쇄 충돌 끝에 나는 뭔가를 부 여잡았다. 그러자 그것이 말을 했다.
“티르 아저씨?”
제비초리가 잡아당겨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개가 말을 한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악의 증거가 어디 있으랴. 나는 두려움에 떨며 내가 붙잡은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가 부여잡고 있는 것이 미레일 요란 하스의 오른발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뭐라 말하기 힘든 상실감 같은 것 을 느꼈다.
나는 똑바로 앉은 다음 엉덩이와 두 발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났다. 다행스럽게도 그곳은 천사의 반대 방향이었다. 책상이 있는 곳까지 물 러나 거기에 등을 기댄 다음 나는 헐떡거리며 미레일을 관찰했다. 당장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너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나왔구나?”
미레일은 전투복, 아니, 외출복 차림이 아니었다. 미레일 요란하스와 율피트 소란다스가 벌여온 유서 깊은 전쟁의 결과로 소란다스 부인과 요란하스 부인은 같은 타협점에 도달했다. 그녀들은 집안에서만 착하 고 예의 바른 자녀의 환상을 유지하고 밖에서는 둘이 무릎을 걷어차든 머리를 쥐어뜯든 서로에게 죽은 쥐를 던지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 다. 그래서 소란다스 부인은 오래전에 현관 바로 앞에 대형 목욕통을 비치해 두었고 요란하스 부인의 탁월한 재봉 솜씨는 미레일의 실내복 에만 적용되었다. 이 도시에 처음 온 몇 년 전, 미레일의 투박하고 질긴 전투복, 아니 외출복을 본 나는 요란하스 부인의 옷 짓는 솜씨가 예사 롭지 않다는 평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미레일은 나 같은 비전문가가 봐도 감 탄할 만한 솜씨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따라서 미레일은 몰래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미레일은 내 지적에 대해 별 반응을 보 이지 않았다. 대신 미레일은 비명과 신음의 중간쯤 되는 소리를 내며 천사에게 달려갔다.
미레일은 천사의 입을 묶고 있는 끈을 풀어내었다. 천사는 놀랍도록 고분고분했다. 그 과정을 보고 있던 나는 미레일의 다음 동작에 재빨 리 입을 열었다.
“목줄은 놔둬.”
“왜요? 이 애가 누굴 물기라도 했어요?”
“그런 일을 미리 막으려는 거야. 그 목줄 길잖아. 내버려 둬도 돼.”
미레일은 천사를 몸으로 가리듯 섰다. 양쪽 허리에 손을 얹은 이 도 시 최고의 여성 전과자는 따지듯이 말했다.
“티르 아저씨. 이 애는 내 개예요. 내가 학교 간 사이에 훔쳐오다니, 너무해요. 아저씨가 뭔데 내 천사를 훔쳐 와서 묶어놓은 거예요? 새끼 는 어디 있어요?”
미레일의 기를 꺾기 위해서는 권위의 상징인 장검을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똑바로 일어서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 닥에 앉아 미레일과 같은 눈높이를 유지한 채 말했다.
“미레일. 미안하지만 네 개한테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난 것 같다. 너 도 알겠지만 천사는 저승사자와 결혼했잖아? 그런데 보통 개와 고양이 는 결혼하지 않거든. 그러니 이상하잖아.”
“그건 저승사자가 천사를 겁탈한 거예요!”
충격을 드러내지 않은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겁탈? 그게 무슨 말이지?”
“강제로 결혼하는 거지요. 프나다 남작이 히롤레스 공주님과 강제로 결혼하려고 한 것처럼요.”
휴우. 다시 생각해 보고, 휴우.
“맞아. 그리고 용감한 전사 벨컨이 프나다 남작을 물리치고 공주님을 구했지.”
사실 주사이 컨이 원했던 것은 히롤레스 공주의 지참금이자 훗날 벨킨 공작령이 된 광대한 토지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리고 그걸 위해 서 오쟁이 진 남편이 되는 것도 감수했으니 용감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 지만,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 30년 동안은 미레일과 나누기 어렵겠지.
“어쨌든 천사와 저승사자는 결혼했어. 맞지? 그런데 그건 정말 이상 한 일이거든. 그래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 봐야 한단다. 조 사가 끝나면 천사는 다시 네게 돌아갈 거야”
미레일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천사와 나를 돌아보았다.
“조사가 얼마나 걸리는데요?”
“그건 아직 몰라.”
“사흘 뒤에 돌아와요?”
“그보다 더 걸릴지도 몰라.”
미레일은 그런 엄청난 미래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한참 후에야 미레일은 충격에서 빠져나와서 외쳤다.
“저승사자가 나쁜 거예요. 프나다 남작처럼! 그 나쁜 고양이를 감옥 에 가둬요. 천사는 새끼들을 키워야 해요. 그런데 새끼는 어디에 있어요?”
“아, 새끼는 보안관님이 데려오실 거야. 그런데 늦는군. 아마 순찰 돌 고 오는 모양이야. 그러니 아무 걱정 마. 천사는 여기서 새끼들을 키우 면서 조사를 받을 거야. 그런데 넌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아? 나온다는 말도 하지 않고 나왔으니 어머님이 걱정하시겠다.”
미레일은 그제야 좀 걱정하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천사를 두고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티르 아저씨가 천사한테 밥 줄 거예요?”
“그래.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
“천사 밥그릇 가져올까요?”
“아냐. 아니, 그래. 하지만 네가 가져올 필요는 없어. 오후 순찰 때 내가 가지러 가지.”
미레일은 더 이상 말할 거리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서 미레일의 어깨를 감싸 쥐었다. 미레일은 주춤거리며 내 손을 따라 걸었다. 그러자 천사가 우리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목줄이 곧 팽팽해졌고 천사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미레일의 눈이 눈물로 그렁해졌다.
조금 지켜보다가 어쩔 수 없이 미레일을 떠밀듯 밖으로 내보냈다. 미 레일은 풀이 죽어서 발을 질질 끌면서 걸어 나갔다. 문밖에 선 미레일 은 몸을 돌릴 생각도 못 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얼굴을 향해 문을 닫을 수는 없었고, 그래서 나는 요란하스 가를 가리키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다. 몇 번을 더 말한 후에야 미레일은 내키지 않는 걸 음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미레일의 축 처진 뒷모습을 곧 감춰준 안개가 고마웠다.
반 시간 뒤, 자신이 이파리 하드투스라고 주장하는 피투성이 오크 가사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합당한 답을 얻은 후에야 겨누고 있던 장검을 아래로 내렸다.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파리 보안관은 녹초에 된 몸을 의자에 던지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하지만 천사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천사는 목줄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이파리 보안관을 향해 맹렬하게 덤벼들었고, 그 녀석이 날 뛸 때마다 기둥이 쿵쿵 울렸다. 왜 그런 발작을 일으키는 건지 궁금했 지만 이파리 보안관이 진저리를 치며 품속에서 새끼를 꺼내 바닥에 내 려놓는 것을 보고는 사정을 이해했다. 천사는 네 마리 새끼를 재빨리 구석으로 옮기고는 불신에 찬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그동안 나는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가져와 보안관 앞에 내려놓았다.
보안관은 이게 뭐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겨우 자신의 상태를 떠올렸다. 보안관이 웃옷을 벗고 몸을 씻는 동안 나는 보안관이 왜 피 투성이가 될 정도로 넘어졌는지 고민했다. 결국 나는 이 도시에 보안관 을 습격할 수 있는 작자가 있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파 리 보안관이 말했다.
“습격을 당했어.”
“땅이 갑자기 일어나서 덤볐죠? 땅이란 놈은 참 호전적이죠. 아, 하 늘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등 뒤로 내려오진 않던가요?”
“제기랄, 농담하는 거 아냐! 엇, 따거!”
“율피트의 허방다리에 빠진 걸 가지고 습격이라고 말하는 건 좀 거창하지 않습니까. 다 메우라고 했는데 그 녀석 한두 개 정도 까먹고 안 메웠던 모양이군요.”
“그게 아냐! 진짜 습격을 당했다고.”
“누구한테?”
“저승사자.”
웬 모닥불 괴담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간신히 보안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율피트의 고양이 말입니까? 그 녀석이 덤볐다고요?”
“그래”
“소란다스 저택에서?”
“아니. 거기엔 녀석이 없었어. 그래서 그냥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안 개 속에서 뭐가 갑자기 휙 날아왔어. 솔직히 말하면 날아오는 것은 보 지도 못했어.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느 꼈을 뿐이지. 그 녀석을 뜯어내려고 했는데 얼굴에 발톱을 콱 박고 버 티는 거야. 얼굴 가죽 다 뜯기는 줄 알았다.”
이파리 보안관은 보기 드물게 호들갑스러웠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허, 허. 그래서요?”
“정확하게 어떻게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 보니 내 손 에 붙어 있었어. 그걸 떨쳐내려고 흔들었는데 다음 순간엔 등에 붙어 있더군. 여기, 목 뒤로 해서 옷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정말 미치겠 더라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어서 간신히 떨쳐내고는 냅다 고함을 질렀지.”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의 전투 함성은 무섭다.
“눈도 못 뜨고 고함지른 거지만 어떻게 먹혀들었던 모양이야. 눈을 떠 보니 그 녀석 보이지 않더군. 잡아서 물동이에 처박아주려고 했는 데 안개 때문에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원, 이런 험한 꼴은 마하단 쿤에게 당한 이후로 처음이야. 황당하기로는 난생처음이고. 내가 그녀 석 꼬리라도 밟았나?”
“자기 새끼를 구하려고 한 것 같은데요.”
“뭐야?
나는 천사의 품에 안겨 있는 네 마리 새끼를 가리켰다. 내 손가락질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천사는 입매를 비틀어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끌어당겼다.
“보안관님이 저 녀석들을 데리고 있었잖습니까. 저승사자는 보안관 님한테서 새끼를 구하려고 덤빈 것이지요.”
보안관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나와 천사, 그리고 대야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새끼를 구한다고?”
“예.”
이파리 보안관은 혀를 찼다.
“이 한심한 조수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냐. 일단 저것 들이 저승사자의 새끼일 리가 없거니와, 만에 하나 그렇다고 해도 수고 양이는 자기 새끼를 보호하지 않아. 그거 모르냐?”
“압니다. 하지만 수고양이는 암캐와 사랑에 빠지지도 않을 텐데요.” 이파리 보안관은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보안관은 피투성이가 된 웃옷을 대야 속에 집어넣고는 반라 상태로 생각에 잠겼다. 무수한 상 처로 뒤덮인 우람한 오크 근육들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선정적이지 는 않았지만 점잖은 모습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 뒤편의 관사 에서 새 옷을 가져와 보안관에게 건네주기로 했다.
그 계획은 곧 철회해야 했다. 이파리 보안관은 뒷문을 열었다가 도 로 닫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뒷문에 등을 기댄 채 속삭 였다.
“저승사자가 뒷마당에 와 있어요.”
이파리 보안관은 나처럼 혼란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오크답다.
“그 고양이 새끼가! 이놈이 겁도 없이 여기로 오다니, 잘됐다. 붙잡 자”
“상대하실 수 있겠어요?”
“놀리지 마. 아까는 갑자기 당해서 이렇게 된 거야. 그래 봐야 고양 이잖아. 잠깐만 때려잡을 수는 없고, 어디 그물이나 뜰채 같은 거 없 나?”
조금 후 보안관은 네펜지스 강에서 쓰던 투망을 들고 나는 망토를 양손에 든 채 뒷문 앞에 섰다. 우리는 소리 없이 셋을 센 다음 뒷마 당으로 돌격했다.
저승사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사무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 았지만, 저승사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안개 때문에 탐색은 불가 능했다. 하긴 안개가 없더라도 고양이가 몸을 숨기려고 작정하면 찾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분 후 우리는 포기하고 보안관의 새 옷을 챙긴 다음 사무실로 돌 아왔다. 어쩐지 천사가 우리를 비웃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나뿐만 은 아닌 것 같았다. 보안관은 천사를 향해 송곳니를 사납게 내밀어 보 였다. 천사는 자신의 그것보다 더 엄청난 송곳니에 약간 위축된 것 같 았다. 보안관은 만족한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내 의 자에 앉아 뜨개질 바구니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항상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쉴 팔자가 아니었다. 이파리 보안관과 나에게 실 뭉치가 가득 담긴 바구니와 안락의자와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선물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절이라도 할 것이다.
스웨터 두 줄도 올라가기 전에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안으로 들 어선 것은 양손에 커다란 광주리를 든 잔파드로스 신관이었다. 신관은 우리가 ”나 ‘오’라고 말할(왜 그런 말을 해야 하는지는 신경 쓰지 말기로 하고) 기회도 주지 않고 사무실을 가로질러 책상까지 걸어왔다. 양손에 든 광주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잔파드로스 신관은 그제서야 이마의 땀을 훔치며 우리를 보았다. 당연하게도, 신관은 이파리 보안관의 모습 에 깜짝 놀랐다.
“보안관님?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저승사자가 이렇게 해놨습니다. 젠장. 흉악한 놈입니다.”
“그 고양이가요? 어, 그런데 저승사자는 어디 있습니까?”
“아직 못 잡았습니다. 하지만 곧 잡을 겁니다.”
“아아, 예. 속히 붙잡아주시길 바랍니다. 그건 그렇고 일단 사무실을 정화해야겠습니다.”
“예?”
잔파드로스 신관은 잠깐 동안 주춤했다. 그리고 준비해 온 말을 꺼 내듯 장황하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저 동물들을 맡아주신 것은 정말 찬 사받을 만한 대단한 용기입니다. 다행히도 찬사를 드리는 것 이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무실은 악마의 사특한 손길이 닿을 수 없도록 거룩한 신의 이름과 정의로 정화되어야 합니다. 여기 성수와 성물을 가져왔습니다.”
아마 신관은 박수나 감탄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보안관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전에 내가 말했다.
“잘됐군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도시에서 딱 두 명밖에 없는 무장한 사람이 악마의 새끼일지도 모르는 것들과 함께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는데 잘 부탁합니다. 신관님.”
이파리 보안관은 역시 인간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 았다. 난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다음 내가 겸연쩍어한다는 인상을 더 확실히 주기 위해 도망치듯 일어났다.
“어, 그럼 전 순찰 나가겠습니다. 천사 밥그릇도 가져와야 하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보안관에게 뜨개질 거리를 건넨 다음 나는 장검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대바늘을 놀리기 시작하는 이파리 보안관과 기도문을 암송하며 성수를 뿌리는 신관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여전히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뿌연 안개는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았고 그 속을 걷노라니 자꾸 만 누군가가 목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묘하게 몸의 무게감 이 사라지는 것 같다. 빨리 걸을 수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걸음은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나는 약간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조금 성질이 다른 느낌이 느껴졌을 때 그것을 지나칠 뻔했다. 하지만 내 발은 반사적으로 멈춰 서서 내게 그 느낌을 좀더 파악해 보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그 이 질적인 느낌에 집중했다.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하는 기분을 느꼈다. 이걸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의 느낌에 학수고 대하던 여인의 승낙 신호를 받은 느낌을 적절히 버무린 다음 뒤집어놓 으면 내가 느끼는 느낌과 비슷할지도. 불현듯 어떤 사내의 그다지 유쾌 하지는 않은 일대기가 떠올랐다.
어떤 제국군 검술 사범이 있었다. 군수품에 대해 통념이 허락하지 않는 창의적 용도를 떠올린 죄로 그 자리에서 쫓겨나 제국 북부의 개 척 도시까지 흘러갔지만, 그 전까지 사내는 제국군의 무력 향상에 크 게 이바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내는 검술 사범이지 살인자가 아니 다. 당신이 어떤 종류의 공부나 수련을 했다면 좋은 직업인의 자질과 좋은 스승의 자질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검술 사범의 경 우에 비춰 말한다면, 그 사내는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될 때는 무적이 라 해도 좋은 검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검의 본령은 상대를 살해 하는 것에 있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그 사내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 가지로 50대 50의 확률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죽거나, 죽이거나.
나는 오른손을 칼자루 위에 천천히 얹었다. 달갑진 않았지만, 이 평 화로운 개척 도시 거주자 중 나를 죽이려 들 만한 사람이 있는지 생각 해 보았다. 나는 그 목록의 첫 번째 이름을 시험 삼아 말해 보았다.
“케이토?”
대답은 없었다. 다음 이름을 부르려다가, 이런 항목이 하나 이상이라는 것도 서글픈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소리 에 귀를 기울였다.
아아, 그래. 안개에 덮인 도시 한가운데서 청력에 집중해 봐야 누구 네 집 하수구 물 빠지는 졸졸졸 소리, 계단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쿵 쿵쿵 소리, 빨랫방망이 휘두르는 착착착 소리 따위가 들릴 뿐이다. 이 런 찬란한 생활의 소음 가운데서 바늘 세운 고슴도치 꼴을 하고 있으 려니 한심해지는 기분이 든다.
칼자루를 놓고 똑바로 섰다.
빠르게 세 번 숨을 내쉬고 안개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훈련이라고 생각하자. 밤과 늪, 그리고 출발 전 들려주는 죽은 병사의 유령에 관련 된 농담 몇 마디면 험지 적응 훈련에 참가한 신병 대부분에게서 비명 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신병들의 머리에 혹을 만들어주던 때에 비하면 이곳은 안개에 휩싸여 있을 뿐 익숙하고 평탄한 장소다. 좋다. 이것은 훈련이다. ‘나는 운 좋게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사범에게 한대 먹일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건방진 오크 신병에게서 오만함을 제거 하러 가는 중이다. 무방비하게 걸어가면 흥분한 신병은 실수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운명이다. 가자’
걸음을 떼자 느낌이 사라졌다. 한숨을 내쉬려 했을 때 미약한 발소
리가 들려왔다. 호흡보다도 작은 발소리.
그랬군. 나는 안개를 향해 말했다.
“순순히 체포될 생각은 없겠지, 저승사자?”
“냐옹”
“좋아. 하지만 이 안개만 사라지면 곧 잡아주겠어. 그런데 진지하게
묻겠는데 말이야. 도대체 종족의 차이를 뛰어넘게 만든 것이 뭐야?”
“냐옹?”
“아, 그래, 사랑, 역시 그게 답이었군.”
순찰을 마치고 돌아올 무렵 안개가 사라졌다. 도시의 모습은 뚜렷하 게 드러났지만, 저승사자의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오크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파리 보안관의 횡설수설을 이해하는 데는 적지 않 은 시간이 필요했다.
저승사자는 밤새도록 사무실 주위를 배회했던 모양이다. 이파리 보 안관은 연인들의 만남을 방해하는 고전적 악당으로 취급되는 것은 얼 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깥의 저승사자와 사무실 안의 천사 가 합심하여 불러대는 이중창 때문에 가위에 눌리게 되는 것은 논외였 다. “키야옹!” “컹컹컹컹!” 밤새 보안관은 열 번 이상 침대에서 뛰쳐나 왔다고 한다. 밖으로 나온 보안관은 으르렁거리고, 주먹으로 벽을 두드 리고, 기둥을 발로 걷어차고, 도끼로 장작을 찍는 등 온갖 방법으로 자 신의 분노를 두 동물에게 전달하려 애썼다. 여담이지만 장작을 찍은 행 동에서는 이파리 보안관의 합리적인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소음 창출과 땔감 확보의 일석이조니까.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안관이 얻은 소득은 사람의 환 경에 익숙한 고양이가 사람을 놀리기로 결심한다면 어지간한 야생 동 물은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로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밖에 없었다. 잠을 설친 보안관을 위해 그날 순찰은 모두 내가 돌겠다고 말 했다. 보안관은 감사의 말처럼 들리는 웅얼거림을 남겨두고는 곧 책상 에 엎드려 잠들었다.
보안관이 잠에서 깨면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뚜껑 달린 그릇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요리 도중 발생한 찌 꺼기는 푹 끓여서 천사의 밥그릇에 담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장검을 허 리에 차며 생각에 잠겼다.
저승사자 포획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꽤 근사한 이 의무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도움이 필요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 도시 최고의 남성 전과자를 만나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학교로 출발했다.
쉬는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당으로 뛰어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살폈지만 내가 찾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 는 꼬마 한 명을 붙잡아 간단한 부탁을 한 다음 마당 한 편의 긴 의자 에 앉았다.
얼마 후 율피트 소란다스가 내게 걸어왔다.
율피트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레일에 의해 아랫도리가 홀라당 벗겨진 채 대로를 방황해야 했을 때 도율피트는 지금처럼 기가 죽어 있지는 않았다. 그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앉았다. 도무지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율피트는 나를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내 가 말을 꺼내야 했다.
“오늘은 뭐 배웠니, 율피트?”
아아, 이런 소름 끼칠 만큼 창의력 없는 질문을 던진 덕분에 나는 율피트 소란다스가 엘프 삼 왕국의 멸망사 부분을 배우고 있음을 알 게 되었다. 밤하늘이 피처럼 붉게 변하고 털난 물고기가 나타났다는 둥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내가 꺼낼 이야기도 그럭저럭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피트. 네 고양이 저승사자가 미레일의 개인 천사와 결혼해서 새 끼를 낳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율피트는 어두운 얼굴로 발뒤꿈치로 긴 의자의 다리를 탁탁 두드렸 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시인 것 같아서 내가 계속 말 했다.
“너도 들었겠지만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거든. 왜 그런 일이 일어났 는지 조사를 해야 해. 그래서 천사와 그 새끼들을 어제 보안관 사무실 에 가져다 놓았어. 그런데 저승사자는 아직 붙잡지 못했어. 그래서 부 탁인데, 저승사자가 너희 집에 오면 사무실에 좀 데려다줄래?”
“안 돌아와요.”
“뭐?”
“집에 안 돌아와요.”
“저승사자가 집을 나갔다는 말이야?”
“며칠 전부터 안 돌아와요. 오늘 아침까지도 안 들어왔고, 엄마는 내가 학교 갔다 오면 돌아와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왜 안 돌아올 거라는 거야?”
“그냥요”
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냐고 말하고 싶을 때 아이들이 쓰는 표 현이군. 이 경우엔 질문의 형태를 바꾸든지 다른 말을 해야 한다. 질문 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다른 말을 꺼내기로 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그 녀석을 붙잡지. 그리고 조사해 본 다음 너 희 집에 데려다줄게. 그런데 그 녀석을 잡으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 을까? 저승사자가 자주 가는 곳이 어디지? 좋아하는 것은?”
율피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침묵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나 하 는 쓸데없는 생각을 떠올렸을 때 율피트의 입이 열렸다.
“못잡아요.”
“나는 보안관 조수야.”
보안관 조수가 만물의 조정자로 통하는 도시에서는 동물 포획 전문 가라고 말하는 대신 보안관 조수라고 말해도 충분히 통한다. 율피트 또한 내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그리고 율피트는 보안관 조수의 전능성 으로써 나를 함정에 빠트렸다.
“그러면 아저씨가 알아서 잡으세요. 나는 몰라요.”
난감함과 별개로 흥미로운 느낌을 받았다. 율피트의 태도에는 저승 사자가 어떻게 되건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한 심리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애지중지했는데 왜 갑자기 애정을 잃어버린 것일까?
그 의문을 해소할 시간은 없었다. 땡땡땡 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고 개를 돌려보자 창가로 다가온 버나드 교장이 손에 든 종을 흔들어 쉬 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율피트는 나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긴 의자에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리고 다른 아이 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도망치듯 달려 들어갔다.
급한 용무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텅 빈 학교 마당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꽤 흥미로운 사유의 소재가 있었다.
율피트와 미레일은 신이 운명적으로 짝지은 맞수이며, 맞수는 대개 비슷한 행동을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애완동물의 실종이라는 사건 앞 에서 두 꼬마는 인상적인 차이를 보여주었다. 미레일은 천사에 대한 한 결같은 애정을 가지고 보안관 사무실에 달려와 감히 보안관 조수에게 대들었다. 그에 반해 율피트는 저승사자가 어떻게 되건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내게 그런 차이는 해와 달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보였다. 남녀의 차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율피트와 미레일은 남 자와 여자가 아니라 그냥 꼬마들이다. 천사는 우리에게 끌려왔지만, 저 승사자는 제 발로 떠났기 때문일까? 이 설명이 훨씬 그럴듯하다. 미레 일은 나와 이파리 보안관에게 화를 낼 수 있지만, 율피트는 저승사자에 게 화를 내어야 한다. 그렇다면 율피트는 저승사자에 대한 애정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서운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차이는 없 다. 율피트와 미레일은 애완동물들에게 똑같이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두 맞수의 서로 다른 행동이 사실은 같은 이유에서 표현된 것임을 확신하게 되자 해와 달의 움직임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은 것 같 은 뿌듯함이 느껴졌다.
좋아, 그래. 나도 알아. 내가 저승사자를 포획하는 문제를 조금도 진 전시키지 못했다는 것. 차라리 사람들에게 고양이를 잡는 좋은 비방이 나 물어보러 가는 것이 낫겠다.
한 시간 후 나는 꽤 많은 조언을 수집하여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 었다. 하지만 내가 올린 수확에 대해 나 스스로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잠에서 깬 이파리 보안관 역시 내가 가져간 수확물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다. 하지만 다른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파리 보안관은 우유 와 개박하, 생선, 그리고 소리가 나는 장난감 등을 구해 오는 것에 동의 했다. 여전히 피로를 떨쳐내지 못한 보안관을 대신하여 내가 그 물건들 을 구하러 나갔다.
네펜지스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케이토가 흔쾌히 물고기 몇 마 리를 선물했고 나라부스 의장이 야채 뱀파이어답게 개박하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상세하게 알려주었기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불면의 복수를 다짐하고 있던 이파리 보안관은 내가 가져간 물건들을 뒷마당에 펼쳐놓고 밤을 기다렸다. 나도 함께 밤을 보내며 보안관을 돕 기로 했다.
상대가 고양이 한 마리라는 것 때문에 무게감이 좀 떨어지긴 했지 만, 그럭저럭 잠복수사라 할 수 있었다. 이 조그마한 소도시의 유일한 무장 세력으로서 이파리 보안관과 나는 일반적인 법의 수호자들이 지고 있는 의무보다 몇 배나 막중한 의무를 지고 있으며, 그런 의무 중에 는 과감한 처녀들의 정조를 수호할 책임도 포함되어 있다. 눈이 맞은 처녀 총각들처럼 남의 눈을 잘 피하는 자들이 어디 있으랴. 그렇기에 이파리 보안관과 나는 잠복에 익숙하다. 가끔 보안관과 내가 없으면 이 도시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보통 고양이보다 몇 배나 영악했다. 차마 우리가 고양이보다 멍청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
우리 두 사람 모두 끝내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저승사자는 전략을 구사할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양쪽으로 갈 라져 고양이 소리를 추적하던 우리 두 사람이 건물 모퉁이에서 충돌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이파리 보안관은 끝내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녀석이 우리가 투망을 던지도록 유도했다고 확신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헝클어진 투망을 회수하느라 낑낑거릴 때 당당하게 나 타나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사라진 저승사자의 의연한 모습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우리가 일으킨 소동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 끔찍한 밤 동안, 만약 시민들에게 알려졌다면 그들로 하여금 이 도 시가 치안부재 상태라고 확신하게 만들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고만 말해두겠다. 하지만 마지막 사건은 어쩔 수 없이 고백해야 할 것 같다. 마음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두 사내에게도 아침은 공평하게 찾아들었다. 그 아침 속에 패잔병처럼 서 있던 우리는 천사의 새끼 한 마리가 사라졌음을 발견했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천사는 증언을 거부했다. 하지만 개의 증언이 불가결할 정도로 불가사의한 사건은 아 니었다. 책상 위의 서류들은 발기발기 찢어져 있었고 의자 다리에는 몇 센티미터나 되는 거스러미가 일어나 있는 데다 바닥에는 고양이 발자 국이 잔뜩 찍혀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