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미스트 (Over the Mist) – 5화 : 아침
아침
더 이상 안개가 낄 리 없다고 예측했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 갔다. 해가 지나치게 늦게 뜬다고 생각하고서 창문으로 다가갔을 때나 는 안개가 도시를 뒤덮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오늘 하루 종일 초를 켜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침대 옆으로 돌아왔다. 이파리 보안관은 침대 위에 평온 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가슴을 두드리면 당장이라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 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밤새도록 했던 이야기의 끝 부분을 말했다.
“제가 그 생각을 한순간 케이토가 목책을 부수면서 나타났습니다.”
눈이 침침했지만, 청중의 표정을 살필 일은 없기에 상관없었다. 나는 눈을 반쯤 감고서 말했다.
“제가 여러 번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지요? 당연한 말이지만 케이토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와 똑같이 행동 했어요. 그는 제가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목책 주위를 돌았답니다. 그러다가 소란이 일어난 곳, 그러니까 제가 있 던 곳 바로 바깥에 도달했지요. 그곳에서 케이토는 목책 안쪽이 이상 하게 시끄럽다는 것, 많은 불빛이 새어 올라온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 다도 목책 위에 저승사자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케이토 는 저를 위해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상황을 주시했어요. 그런 그에 게 갑자기 제가 느낀 즐거움이 전달되었고, 그래서 케이토는 곧장 변신 한 다음 목책을 부수고 천사의 바로 뒤쪽에 나타났어요.
목책 안쪽의 제도 기사단 기사들과 종자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 되시죠? 저도 잠깐 동안은 천사를 구하기 위해 지옥의 권세가 나타났 다고 생각했을 정도니 그 사람들 놀란 거야 말 다 했지요. 병사들이 비 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말들은 허공을 긁어대고 기사는 바닥에 나뒹굴 고, 난장판도 그런 난장판이 없었지요. 보안관님 보셨으면 좋아하셨을 겁니다.
저도 혼란에 휩쓸릴 뻔했지만, 간신히 제자리를 지켰죠. 그러지 않으 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틀린 느낌은 아니지요. 그 상황에서 제가 흥분했다간 케이토 또한 흥분할 테고 그건 끔찍한 유혈 사태를 일으킬 무책임한 짓이지요.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 말하는 것처럼 뚜렷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것은 아니에요. 그 왜 있잖아요? 무 섭거나 부당한 일을 당한 어린아이들이 자기가 꼼짝 안 하면 아무 일 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꼼짝도 안 하는 거. 저도 비슷한 상태였어 요.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아이들의 믿음은 부정확한 것이지만 제 믿음 은 정확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천사와 저승사자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케이토 또한 목책을 부쉈을 뿐 안으로 뛰어들어오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병사들은 전부 뒤로 물러났지요. 그 텅 빈 공간에 저승사자가 훌쩍 내려섰어요. 그리고 천사는 내려놓았던 새끼를 물어 올렸지요. 그리고 두 마리는 박살 난 목책 틈 사이로 빠져 나갔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도 그 모습을 봤나 봅니다. “도망친다!” 하는 고함 이 들려오더라고요. 저는 그제야 수레에서 뛰어내렸어요. 그리고 “잡 아라!” 하고 외치면서 케이토 쪽으로 달려갔지요. 머릿속으로는 그것 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요. 지금 생각해 보니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전달되는 것은 감정이니까 케이토는 저를 추적할 수도 있었거든요. 저는 운이 좋았지요. 밖으로 나오니 달려가는 케이토의 뒷 모습이 보였습니다.
제가 달려나가자 다른 병사들과 기사들도 뒤따라 나오는 것 같더군 요. 하지만 지형을 우리만큼 잘 알지 못하는 제도 기사단 패거리들은 얼마 있지 않아 추적을 단념했지요. 안개와 비가 엄청났거든요. 하지만 케이토는 저승사자와 천사를 놓치지 않았고 저는 변신한 위어울프의 커다란 덩치를 놓치지 않았어요. 그런 추적이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어 요. 실제로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지만, 젠장. 그때는 지옥 에 보내는 천국의 편지를 배달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저는 얼마 후 제3 노천광 근처에 도달해 있었어요. 포인트 씨와 소란다스 씨가 일하는 그 광산 말입니다.
케이토는 아침까지라도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저는 기절한 채 달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였어요. 고맙게도 천사와 저승사자 역 시 기진맥진해 있었지요. 저는 케이토가 멈춰 선 것을 보고는 두 동물 또한 멈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땅이 어떤 상태건 쓰러져 눕고 싶 었지만 그랬다간 케이토의 주의를 끌게 될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저 는 호흡을 억누르며 변화하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뭔가 다른 존 재가 되고 싶다고, 지금 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쳇. 아시 죠? 지겨운 레퍼토리지요. 하지만 효과는 있었습니다. 케이토는 다시 사람으로 바뀌었지요.
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다음 한 걸음을 실패할 거라는 확신을 느 끼며 저는 케이토에게 다가갔어요. 다가오는 제 발소리를 들었겠지만, 케이토는 돌아보지 않았어요. 저는 케이토 곁에 가서 무릎에 손을 짚 고 앞쪽을 바라보았어요. 그제야 제 상태를 확인한 케이토가 저를 부 축해 주었지요. 손 하나가 자유로워졌기에 저는 가물거리는 눈을 비빌 있었습니다.
비는 그쳐 있었어요. 안개 또한 살그머니 흩어지고 있었고. 그곳에 저승사자가 서 있더군요.
보안관님도 아실 겁니다. 고양이는 물에 젖는 것 굉장히 싫어하지 요. 평소에도 몸 핥는 것 좋아하지만, 몸에 물이라도 조금 묻으면 고양 이는 광분하여 자기 몸을 핥아대지요. 따라서 도저히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면 고양이는 빗속을 달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했을 때 고양이는 참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바뀌지요. 고양이가 가장 체통을 크 게 잃는 것은 물에 빠졌을 때라고 알려져 있지만, 빗속을 달렸을 때의 모습은 그 이상이더군요. 저승사자의 다리와 꼬리는 비비 꼬인 새끼줄 처럼 바뀌었고 그 끝부분은 오물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젖은 털은 달 리느라 뒤엉켜 쥐어뜯긴 걸레 같은 꼴이었고요.
그런 모습으로 저승사자는 우리를 겁주려고 애쓰더군요. 비참했습 니다. 귀는 눕힐 수 있었지만 젖은 털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껏 세 운 꼬리도 염소가 잎사귀를 훑어 먹은 나뭇가지 같은 꼴이었습니다. 그 녀석 꼬리가 원래 두 번 꺾여 있잖아요. 그런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 니 다시 즐거워졌습니다. 케이토가 묻더군요.
‘왜 즐거워하지? 또 변신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아닐 것 같은데’ ‘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이지만,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남아줘. 내가 즐거워하는 것은 저승사자와 천사 때문이야’
‘저 동물들의 무엇 때문에?’
‘살아나려고 하고 있거든.’
케이토는 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자루를 풀어 세 마리 새끼를 내려놓았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저는 그것들을 저승사자 쪽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나는 뒤이어 나머지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초니의 도살장에서 가져 온 고깃덩이를 불태웠다. 주위에 고기 탄 냄새가 잔뜩 배게 하고 바닥 이 시커멓게 변하고 재가 날리도록 했다. 한 마디로 실의에 빠진 제도 기사단원들이 그곳에서 악마가 새끼들을 불태웠다는 판정을 내릴 수 있게끔 해두었다.
나는 저승사자와 천사가 우리의 작업을 관찰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 지만 고개를 들어 살펴보자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 곳에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케이토에게 물어봤지만, 그 역시 모 른다고 말했다. 은팔찌를 돌려준 다음 나와 케이토는 도시로 돌아왔다. 이파리 보안관의 침실은 표현하기 힘든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촛농 무더기 위에서 너울거리는 작은 불꽃은 조명이라기보다 장식품처럼 보 였다. 안개를 투과하여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빛이 방 안에 고여 있 던 어둠을 바래게 하고 있었다. 바닥을 쓸면 사물의 표면에서 떨어져 나온 어둠의 가루를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는 대신 나는 벗어놓은 겉옷 속에서 편지를 꺼냈다. 편지는 군데군데 젖어 있었지만 망가지지 는 않았다.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말했다.
“힘들게 깨달았습니다. 그 새끼들은 태어난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글자들도 별로 번지지 않았다. 나는 편지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는 비겁하게도 조금 전에 이 모든 일이 천사와 저승사자의 새끼 들 때문에 시작된 것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이 그 새끼들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말하는 것은 갑과 을, 파린세, 저, 그리고 케이토 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지만 그렇 지 않습니다. 여기 나타나 있듯 갑과 을은 신전 기사단과 제도 기사단 을 보냈습니다. 파린세는 보안관님께 말을 돌진시켰고 저는 핏골을 폭 행했습니다. 케이토는 제도 기사단의 진지를 박살냈지요. 아, 링산크 백 작은 알지 못하겠지만 그에게 봉변을 안겨준 것은 저로군요. 백작에게 익명으로 사과 편지나 보내야겠습니다. 어쨌든 그 새끼들은 태어난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엘프 삼 왕국을 멸망 시킨 것은 털 난 물고기가 아니라 엘프들일 겁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의심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두 가지만 빼고요.”
나는 편지의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첫 번째로, 저는 그것들이 전조라는 이분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 르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오크 경전어로 적혀 있는 이 부분에 도대 체 무슨 말이 적혀 있는지 궁금합니다. 보안관님, 제발 깨어나서 이부 분 좀 읽어주세요. 여기 적혀 있는 이 글은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이파리 보안관이 내 손에 있던 편지를 가져갔다.
힘 좋은 누군가가 목을 콱 움켜쥐는 것 같았다. 동시에 성격 부지런 한 누군가가 내 피부를 바깥으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입을 크게 벌 렸지만, 호흡을 제대로 못 하면서 나는 보안관을 바라보았다. 보안관은 빈손으로 송곳니를 톡톡 두드리며 편지를 바라보다가 낭독하는 어투 로 말했다.
“잔파드로스. 이제 이걸 읽었나? 아마 조금 전까지 자네는 자네 스승이 제자의 종족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투덜거렸을지도 모르겠군. 내 악명이 높아지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자네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 그러면 잘 있게. 그리고 이걸 읽어주신 오크 신 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파리 보안관은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 아들었다. 할 말도 많았고 물어봐야 할 것도 끝이 없었지만 나는 가장 최근에 떠오른 의문부터 질문했다.
“아, 아무 내용이 없잖아요?”
“그렇지. 멍청아.”
그렇군. 이런 멍청이.
“언제 언제 일어나신 거죠?”
“네가 초에 불붙였을 때”
그게 언젠데! 이파리 보안관은 기지개를 켜려다가 통증 때문에 이
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쨌거나 첫 번째 의문도 해결되었겠군.”
해결되었다.
“배고프다. 젠장.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야? 먹을 거 없냐?”
“보, 보안관님. 그러면, 그러면 제가……….”
이파리 보안관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곧 미소를 머금었다.
“아, 그래, 그 말 듣고 싶은 것이군? 알았어.”
그리고 보안관은 두 팔을 조금 벌려 보였다.
“넌 잘 했어. 역시 내 조수답다.”
무슨 행동이 필요할까? 나는 보안관을 마주 안았다.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고 동시에 미친 듯이 웃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이파리 보안관이 말했다.
“저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잘 들어봐.”
조금 후에야 보안관의 말을 이해했다. 나는 소리를 들으려 애썼다. 안개 저편, 이 고요한 아침을 가로질러 꽤 먼 곳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고양이와 개의 것이 분명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특별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이파리 보 안관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보안관이 멀리 가버리는 것이 두 렵다는 듯 더 힘주어 끌어안으며 말했다.
“보안관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보안관님이 정신을 잃으셔 서 제 말을 들으실 수 없으셨지요. 하지만 저는 꼭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보안관은 자상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지?”
“저에게 5000렐 빚지셨어요.”
그리고 나는 보안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 또한 보안관이 집어던지는 베개를 피하기 위해 방 밖으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