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30화
은동은 그러면서도 정말 호유화가 죽는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것을 느꼈다. 아무리 미워도 죽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호유화는자신에게 여 러가지로 정말 잘 대해주지 않았던가? 은동은 자신 도 모르게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화궁을 살펴보았다. 원래 지금 은동은 꿈 속과 비슷한 세계에 있는 것이 니 유화궁은 은동의 옆에 없어야 되겠지만, 유화궁 은호유화의 법력이 깃든 물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옆 에 있었다. 유화궁을 보자 호유화에 대한 생각이 다 시 떠올랐다. 비록 마지막에 대판 싸우고 덕분에 은 동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호유화가위험하다는 할머니의 말이 사실이라 면 이대로 놓아둘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태을사자와 흑호는 목숨을 걸고 함께 모험을 한 사이가 아닌가? 은동은 겁이 났지만 이럴때 그들을 외면한다면 정말 나중에라도 그들을 볼 낯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죽은 다음에는 저승사자가 자신 을 데려갈 것인데 그때 태을사자의 얼굴을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은동은 두려우면서도 가겠다고 고개를 끄덕였 다. 그러자 그때까지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기특하기도 해라. 할미를 믿어주니 고맙구나. 그 래. 그러면 어서 가자.”
할머니는 말하더니 지팡이를 살짝 흔들었다. 그러 자은동과 할머니가서 있는 구름이 커다랗게 저절로 하늘로 떠오르면서 은동과 할머니를 싣고쏜살같이 날아올랐다.
“아이고.”
은동은 깜짝 놀라 그자리에 주저 앉아 뭔가 잡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다. 자신은 구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은동의몸은 빠지 지도 않았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면 느껴지기 마련인 바람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은동이 놀라며 주저 앉자 할머니가 웃었다.
“얘야. 뭘 놀라니? 설마하니 이 할미가 너를 다치게야 하겠니?”
그러자 은동은 겁을 낸 것이 조금 부끄러워 졌다.
그래서 은동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런데 할머니.. 우린 어디로 가는거에요?”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중간계로 간단다.”
“중간계요? 거기가 어디죠?”
“생계와 성계의 중간에 있는 작은 세상이지.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은동은 우주 팔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지만 중 간계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 보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라니? 그리고 태을사 자와 흑호와 호유화가 위험하게 된다니… 은동은 기회를 보아할머니에게 왜 그들이 위험하게 되는 것 인지 물어?i 싶었으나 그럴 겨를도 없이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 다 왔다. 내리자꾸나.”
은동의 눈 앞에는 어느 새 나타났는지 모를 커다란 고대광실 기와집이우뚝 서 있었다. 그 기와집의 지 붕이나 담벼락은 모두 황금이나 상아로 만들어진 듯 찬란한 금빛과 흰 빛으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여..여기는…”
“자자. 어서 가자. 시간이 없단다.”
할머니는 은동에게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급한 걸 음으로 은동을 끌고널찍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은동과 할머니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그안에 수십 명의 번쩍이는 금갑(金甲)을 입은 장한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보였다. 그 장한들은 아마도 전에 보았 던 유진충이나 고영충과 같은 신장들인 모양이었는 데 그들은 놀랍게도 할머니를 보고는 깊숙이 고개를 숙여절을 올렸다. 할머니는 보기에는 영 초라해 보 였는데 지위가 대단히 높은분인 듯 했다.
‘어어.. 저 할머니가 누구길래 저 신장들이 모두 고 개를 숙이는 거지?
저 신장들은 언뜻 보아도 전의 유진충이나 고영충보다도 훨씬 높은 이들인 것 같은데…’
그 신장들의 차림새가 갑주, 몸에서 은근히 풍겨지 는 느낌은 유진충, 고영충보다도 훨씬 위에 있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오색찬란한 금갑을입은 신장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다시 깊숙히 절하며 말했다. 이 할머니가누구일까하던 은동의 궁금증은 그제서야 풀 렸다.
“삼신님을 뵈옵니다.”
‘삼신? 아니 그러면 이 할머니가 바로 삼신할머니란 말인가?’
삼신할머니는 모든 인간의 탄생을 관할하는 신으로 조선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갓 태어나는 아기 의 엉덩이에 푸른반점이 있는 것(* 주 : 이것을 의 학적으로는 몽고반점이라고 하는데 동양인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중의 하나이다.)도 삼신할머니가 아기 가 무서워서 태어나지 않으려 할 때’요 녀석. 어서 나가서 부모님께 인사드려라!’고 찰싹 때려서 내보 낼 때생긴 멍자국이라고 믿어지고 있었다. 그런 이 야기는 은동도 얼핏 들은 바있었으나 그런 정도로만 알고 있던 삼신할머니가 이렇게 성계에서도 높은지 위를 차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좌우간 은 동이 놀라워하자 할머니는 은동을 보고 다시 인자하 게 웃었다.
“내가 너 태어날 적에 옆에 있었다는 뜻을 이제 알 겠느냐? 호호… 너도나에게 한 대 맞고서야 나갔었 단다.”
은동은 무어라 말할줄 몰라 우물대다가 간신히 말했다.
“그랬군요… 그래서 낯이 익었나보네요…”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웃었다.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구. 얘야. 너만 아니라 나는 모든 인간들을 내 자식처럼 여기고 있단다. 내 손을 안거치고 나간 녀석이 없지 않겠니? 그러니 인간들 이 행복하게 오손도손 잘 살면 나도 기뻐지고 인간 들이 다치고고통받으면 나도 몹시 안타깝단다…”
삼신할머니는 다시 잠시 말을 끊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래서 이번 일에 내가 급히 나선 것이야… 요즘 조선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심상치 않아서 말이지.”
그러자 은동은 기운을 내서 말했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전쟁을 어서 멈추게 해야해요, 할머니!”
그러자 삼신할머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다 천기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인데 내가 어 찌 함부로 인간들의일에 관여할 수 있겠니? 다 만…”
은동은 삼신할머니가 고개를 젓자 낙담하여 맥이 풀 렸다. 그러나 삼신할머니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는 눈이 번쩍 떠졌다.
“태을과 흑호, 그리고 호유화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의 이야기에도옳은 면이 있더구나. 그래서 너를 급히 데리고 온 것이야.”
은동은 태을사자가 실종되었다는 것도, 흑호가 하일 지달을 따라 갔었다는 것도, 호유화가 없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했다.
“할머니, 그러면 할머니가 그 셋을 다 만나보셨어요?”
“그럼 만나보다 뿐이냐?”
“언제요? 조선땅에 자주 오시나보죠?”
그러자 삼신할머니는 다시 웃었다.
“성계에서 인간계의 출생을 관장하는 것만도 바쁜데 내가 언제 생계까지 그 아이들을 찾아 다니겠니? 나는 그 애들을 여기서 보았어.”
그러자 운동은 크게 놀랐다.
“여기서요? 그러면 그 셋이 모두 여기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러나 삼신할머니의 다음 말을 듣고 은동은 너무도 놀라 하마터면 그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다.
“그래. 바로 천기를 어지럽힌 죄인으로 곧 재판을 받게 되어 있단다. 그래서 네 증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야…”
죄인이라니? 은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 을사자나 흑호, 호유화 모두 나쁜 일은 하지 않았으 며 오히려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려고 목숨을 걸고 노력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째서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것일까? 은동은 재판이라는 말에 조금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았지만 용기를 내어 삼신할머니 의 뒤를 열심히 따라갔다. 좌우간 어떻게든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은 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