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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40화


“호유화 누님, 여기가 사석이라면 나는 목숨을 걸고 서라도 누님을돕겠소. 그러나 여기는 공석이오. 나 는 사실대로만 증언할 뿐이오. 그리고 제발….. 말 을 좀 높여 주시오.”

애원하듯 말하는 성성대룡을 보며 호유화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성성대룡이 말 했다.

“호유화는 과거 생계의 시간으로 천사백 년 전, 성 계의 대성인 한분이 도를 이루는 데 많은 도움을 주 었습니다. 원래 환계와 성계는 교분이 별로 없습니다만, 좌우간 그 일은 양계에 커다란 경사스러운 일 이었지요. 그래서 호유화는 성계로 초빙되어 성계의 어떤 보물이든 원한다면 선물로 받도록 성계 성황 (聖皇)의 은총을 입으셨습니다.”

태을사자와 흑호, 그리고 은동은 이미 전에 들은 적 이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번에는 공신력이 있는 성 성대룡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인지라 한층 귀를 기 울였다. 성성대룡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런데 호유화는 우연히 성계 안을 다니다가 일월 력실을 보게 된것입니다. 일월력실은 성계에서 가장 중요한 방으로, 천기를 담은 시투력주들을 보관하는 곳이었습니다. 호유화는 그 시투력주가 마음에들어 그것을 달라고 했지요.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 문제 가 생겼습니다. 시투력주는 원칙적으로는 성계의 보 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비록성계에서 만들어지고 성계에서 관할하는 보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우주 팔계의 운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물건인지라 성 계의 성황께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 다. 다들 아시지요? 성계의 가장큰 임무는 천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은동만은 그 대목에서 의아해했다.

‘어… 그랬나?’

“그러나 호유화는 그 점을 오해했습니다. 그때 호유 화는 시투력주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중요한 보물이라성계에서 주기를 아까 워하는 줄 알고 잎하나를 마음대로 가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다가 일월력실을 지키는 신장들과 싸 움이 벌어졌고, 호유화는 아예 시투력주를 자신의 몸과 동화시켜서 죽어도 내놓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 다. 결국 큰 문제가 발생했지요. 팔계 회의가 소집 되었지요. 저는 그때 없었습니다만, 여기 계신 분들 중 몇몇 분들은그때 참석하신 것으로 압니다.” 

그러자 삼신대모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그래, 맞아요. 심각한 문제였지.”

“시투력주가 일월력실 밖으로 나가고, 호유화가 시 투력주와 동화되어 미래의 천기를 알 수 있게 된 것 입니다. 그 때문에 천기의 흐름이깨어져 우주 전체에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 나호유화는 성계를 도운 자였고, 악의를 가지고 그 런 짓을 한 것이 아니니 만큼 마음대로 처벌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은동이 태을사자에게 소곤거렸다.

“팔계의 회의라면 막강한 권한이 있을 텐데, 그때는 호유화를 해칠생각을 하지 않았나 보죠?” 태을사자 역시 목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호유화는 당시 모르고 한 것이니 큰 죄를 지은 것 은 아니다. 그런데 공정한 회의에서 어찌 그녀의 목 숨을 해치려 하겠느냐?”

“하지만 전체 우주가 위기에 빠진다면…….”

“그건 너 같은 불완전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생각 이야. 죄 없는 이를 해치는 것은 순리가 아니며, 순 리가 아닌 일로 어찌 우주가 위기에서 구해지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조용히 듣기나 해라.” 

그러나 은동은 오히려 태을사자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문제가 된다면 호유화 하나 정도 없 애도 그만 아닌가? 특히나 예전에 호유화가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일이 생각나 호유화가 미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때 차라리 호유화가 죽어 버렸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누군가가 뒤에서 은동을 툭툭 쳤다. 흑호였다.

“안 뒤어, 안뒤어. 너 좋지 못한 생각을 품구 있구 나? 너는 착한 아이인데 그래서는 안 뒤어.”

그러는 사이에도 성성대룡은 계속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그런데 사정을 알게 된 호유화는 이렇게 말했습니 다.  ‘그렇다면 시투력주를 내놓을 수도 있으나 그것 또한 절대로 시투력주를 내놓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 버렸으니 그럴 수 없다.’고 말입니다. 생계의 존재 들을 제외하고 일단 맹세를 한 것은 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다들 아시지요?”

그 말을 듣고 은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태을사자도 그렇고 호유화도 그렇고, 맹 세를 하고 그것을 어긴다는 것을 아무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더니만………. 그런데 생계의 존재는 제외된다는 것인가? 그럼 나도 인간이니 생계의 존재이잖아. 그렇다면 생계의 존재란 그렇듯 불완전 한 존재인가?’

“그래서 호유화는 스스로 희생하여 타협점을 내놓았 습니다. 자신이삼킨 시투력주의 천기가 이루어질 때 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되는것이 아니냐는 말이 었습니다. 호유화가 삼킨 시투력주는 생계의 천기에 만 얽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호유화는 맹세 를 지키려고 가장자유롭지 못하고, 오는 자가 없는 사계의 십팔층 뇌옥의 깊은 곳에 스스로 들어간 것 입니다. 천사백 년이나 홀로 지낼 결심을 한다는 것 은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팔계의 존재 모두는 그것을 칭송하고, 호유화를 환계의 명예서열 일위라 는 명예를 줌으로써 그 명예를 기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호유화가 기한을 모두 채우고 난 다음에 돌 아갈명예였습니다. 솔직히 그 전에 맹세가 깨어진다 면 그런 명예를 받을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 데…………….”

성성대룡의 음성에 비로소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 맹세는 깨어졌다고 무명령이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그것은무명령, 당신이 말씀하시오.”

“그러지요.”

무명령은 앞으로 나서면서 음산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첫째, 호유화는 뇌옥을 스스로 깨치고 나와 생계로 왔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과거에 한 맹세를 스스로 깬 것입니다. 둘째, 호유화는 시투력주의 기운을 스 스로의 의지로 끌어내 몇 번이나 사용하려 했습니 다.

셋째, 호유화는 그리고 시투력주의 힘으로 알아낸 미래의 사실들을 생계의 인간들에게까지 발설했습니 다! 자, 이것이 과연 과거 천기를 지키려고 스스로 뇌옥에 들어간 자의 행동입니까? 호유화는 천기를 지켜 시투력주의 내용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겠 다는 맹세를 스스로깨뜨렸습니다! 그런데도 호유화 에게 명예를 인정해주어야 합니까? 그녀는 처벌받 아야만 합니다!”

무명령이 따지자 호유화의 인상이 한껏 일그러졌다.

호유화는 극도로 분노한 것 같았으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째랑째랑한 목소리로 소리

쳤다.

“나는 천기를 지키려 한 거야!……아니, 한 거예요!”

“너는 시투력주를 이용하였고, 그 내용을 발설했어!”

그러자 호유화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헝 클어지지 않았던 흰 머리칼이 헝클어지며 마구 흩날 렸다.

“물론 나는 천기를 담은 시투력주를 품고 있어요. 하지만 그 천기가잘못 어그러지려 한다면 나는 도대 체 무엇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저 꼬 마에게 맹세한 바 있어서 뇌옥을 나가고 시투력주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그건 꼭 맹세 때문만이 아니라 명분이 있는 행동이라 여겼어요. 천기가 허물어지는 판에 내가 천기를 잡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 서겠어요!”

“천기를 잡는 방법이, 천기를 읽어 내서 남에게 함부로 발설하는 것이란 말이냐?”

“함부로 발설한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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