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6권 – 6화 : 투옥된 왜란종결자

왜란종결자 6권 – 6화 : 투옥된 왜란종결자


투옥된 왜란종결자

이순신의 위기는 두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 다. 그 한 사람은 조선의 국왕인 선조, 그리고 또 한사람은 바로 왜장 고니시. 고니시는 지난번 국서 위조 사건 이후 히데요시에게서신임을 잃었다. 물론 고니시로서도 히데요시에게서 정이 떨어지기는 마찬 가지였다.

허나 고니시는 과거부터 내려온 충성이라는 감정이 속까지 물들어 있는 낭만주의자로서, 히데요시에 대 해 불만을 품으면서도 히데요시를 배신하려는 생각 은 하지 않았다.

히데요시에 의해 재차 조선침공이 명해지자 고니시 는 처음에는 핑계를 대며 출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1596년 11월에 대마도를 출발하였으나 날씨를 핑계대면서 출정을 계속 미루었다.

그러다가 히데요시로부터 계속 진군을 독촉하는 사 자가 오자 고니시는 하나의 계략을 세우게 되었다. 이번 출정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게 된 고니시 는 기왕 가더라도 헛된 죽음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정말 대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막강한 적장이 있었다. 더구나 고니시 는 이순신에 의해 부대원이 거의 전멸하는 피해를 보기까지 했다. 그것도 싸우다 영광스럽게 죽는 것 이 아니라 보급을 받지 못해 굶주려서 죽음을 당 한 것이다. 그래서고니시는 이중간첩인 요시라라는 자를 조선조정에 파견하여 수작을 부리게 했다. 그 내용인즉 다음과 같았다.

– 가토는 무모한 자로서 본인은 가토를 몹시 증오하고 있소. 가토만 없으면 화의는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의 방해로 실패하였소. 본인도 전쟁 을 바라지 않고 조선도 전쟁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 니 협력합시다.

가토의 부대는 모월 모일에 상륙할 것이니 강력한 조선의 해군을 파견하여 가토의 부대를해상에서 격 파하면 가토는 수중고혼이 될 것이고 난리는 절로 끝날 것이오. 나는 미워하는자가 없어져서 좋고, 조 선은 강한 적장이 없어지니 좋으며 양국 모두가 전 쟁을 하지 않아도되니 좋은 일이 아니겠소?

고니시의 생각과는 달리 조선의 신하들은 이런 고 니시의 편지에 의문을 가졌다. 고니시와가토가 사 이가 좋지 않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정 말 고니시가 가토를 팔아 넘기려 할까?

그러나 그 계략을 액면대로 믿는 단 한사람이 있었 으니 바로 선조였다. 사실 선조도 워낙계략에 밝고 음험한 사람이라 고니시의 계략에 모조리 속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조는 마음에 들지 않던 이순신을 몰아대어 가토를 반드시 잡으라는 엄명을 권율에게 전달하라 하였다. 권율은 답답했으나 왕명인데 별수 없었다.

정작 당사자인 이순신은 기가 막혔다. 이순신은 이 미 그 내용을 한번 본 것만으로도 그것이 거짓임 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이순신이 풀어놓은 첩보원 들의 보고에 의하면 가토의 부대는 이미 1월 14일 에 부산포에 상륙해 있었다.

실제로 이순신의 알려지지 않은 커다란 전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유란이 일어나기 직전에있었는데, 이 순신은 안위 등의 수하장수를 시켜 부산포에 침투하 게 하였다가 부산포의 왜군진지에 큰 불을 지르는 전과를 올렸다. 이때 왜군의 숙사 1천여호가 불타고 화약고 2채, 군량만 3만석 가까이 불타 버려서 왜군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보급품이 딸리기 시작 했다.

이순신은 이를 장계에 세세히 보고할 정도로 많은 첩보원을 풀어놓고 대비를 하였으므로 가토의 상륙 날짜도 손바닥에 있듯이 환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 다. 그런데 가토를 잡으라는 왕명이 도달한 것은 벌 써 가토가 상륙해 버리고 난 다음이었다.

가토가 바다에 없는데 수군을 통솔하는 이순신이 어 찌 가토를 잡을 수 있겠는가? 이순신은도저히 출격 할래야 출격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순신은 고니시의 음모에 대해 감탄하면서 탄식을 금치 못했다.

“고니시는 실로 음험한 자로구나. 그는 가토를 죽이 려 한 것이 결코 아니다. 나도 원균을 미워했으나 차마 어쩌지 못했는데, 고니시도 가토를 아무리 미워한다 한들 같은 깃발 아래에서 싸우면서 어찌 그 를 해할 계략을 꾸미겠느냐? 다만 고니시는 나를 모함하여 의심을 받게만들려 한 것이 분명하구나. 뻔히 보고 있으되 상감께서 알아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빠져나갈 길이 없구나…..”

이순신의 예감대로 결국 이는 큰 문제가 되었다. 이 순신이 출격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자선조는 노발 대발했다. 이미 1594년 이후 이상하게도 선조는 이 순신을 미워하기 시작하였다.그런데 이순신이 왕명 을 어기고 출격하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선조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분노를 이순신에게로 퍼부어 댔다.

선조는 이순신의 이름을 듣고 모인 한산도의 수많은 백성들을 무서워했는지도 모른다. 이순신 때문에 왕 위가 위엄이 없어지고 왕권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 안감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선조의 행동은 미친 사람의 것이나 다를바 없었으며, 가장 선조의 마음에 돌출된 것은 이유 를 알 수 없는 이순신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선조는 거의 광기에 가까울 만큼 이순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 한산도의 장수는 편안히 드러누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 이제 어찌 이순신에게 가토의 머리를 잘라 들고 오게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배를 거느리고 위세만 부리고 돌아다니며 성의를 내지 않으니 탄식할 일이 구나. 나라는 그만이야, 나라는 그만!

– 이순신이 이제는 설사 가토의 머리를 베어 들고 와도 용서할 수 없어!

– 이순신이 글자는 읽을 줄 아는가?

이순신은 절대 용서 못해! 무장으로 감히 조정을 경멸하는 마음을 가져?

원균으로 해군의 선봉을 잡아 적의 소굴을 바로 들이치게 할 것이야!

이에 많은 신하들은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내세 웠으나 선조가 워낙 광기를 부리는 통에어찌할 수 없었다. 당시 신하들의 반응을 대강 보면 이러하다.

– 이정형 : 변방의 일이라 멀리서 헤아릴 수 없사 오니 천천히 처리하시오소서. (선조의 광기를 가라앉

히려는 것이 분명하다)

– 유성룡 : 설혹 그가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잘하도록 책려하시는 것이 좋을 듯싶사옵니다. (이순신밖에 적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답답 하여 한 말이 분명하다)

– 윤두수 : 원균과 이순신을 같이 통제사로 만들고 협력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식견없고 눈이 어둡기로 유명한 윤두수조차 이순신을 없애는 데에는 반대한 것에 주목할필요가 있다)

– 이정형 : 경상도가 온통 쓰러져 버린 것이 원균 때문이옵니다. 어찌 원균에게………….

– 유성룡: 겨울이면 수군에서는 노군들을 모두 집 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이옵니다. 그런데 어찌 겨울에 이순신이 가토를 잡을 수 있으리이까?

하물며 곽재우와 다툼이 잦았던 간신 김쉬조차도 선 조의 노발대발이 이해가 가지 않아 이순신을 자기도 모르게 변명하고 있다. 더구나 선조가 진상조사를 위해 파견한 어사 남이신마저도 “가토는 풍랑을 만 나 7일간 섬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사옵니다.”라 는 장계를 보냈다.가토가 풍랑을 만났으면 이순신에게 풍랑을 없앨 재주라도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겁 많은 남이신은 선조가 이순신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를 알고 거의 ‘알아서 긴’ 셈이지만 그래도 사정이 너무도 딱하여 이렇듯 우회적으로 써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는 요지부동,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선조는 갖은 발악을 다하여 이순신을 옭아매어 마치 철천지원수처럼 이순신을 다루어 정 유년 2월 27일, 이순신은 한산도에서 금부도사에 의해 포박된다.

그러나 이순신은 담담했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는 듯, 그 표정은 허탈하면서도 침착하게묵묵히 포 박을 받았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서 태을사자는 은동에게 말했 다.

“너의 결심이 어찌되었거나 이순신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분명 상감은 무엇인가에 씌워있다. 이대 로라면 김덕령과 마찬가지로 이순신은 죽고 만다. 아무리 죄가 없어도 죄를 몰아죽이는 것이 상감의 특성이니, 이대로 그냥 두면 이순신은 김덕령처럼 물고가 나고야 말 것이야.”

은동은 분통이 치밀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모든 조선의 백성들이 피를흘리고 고통 을 겪으면서 싸우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상감이라는 자는 그 수족 같은 신하들을 난 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둘씩 잡아죽이는 것 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니. 은동은 분통이 치밀어 더 견딜 수가 없었다.

“죽여 버리겠어! 상감이고 뭐고! 그놈만 없어져 버 리면 되잖아요!”

“은동아! 그건 안 된다!”

“왜 안 돼요! 염라대왕에게서 받은 술수는 아직 한번 더 쓸 수 있어요! 그 따위가 무슨 상감이야! 상 그런 녀석은 살아 있을감이면 백성을 위해야지!

가치가 없다구요! 당장…….”

태을사자는 흥분한 은동을 차분한 눈초리로 보면서 고개를 서서히 저었다.

“지금 상감을 없앤다고 난리가 끝나느냐? 사람을 죽여서 진정으로 평화가 오고 일이 순리대로 풀릴 것으로 믿느냐?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끝내 은동은 치미는 분통을 참지 못해 으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무엇이 순리란 말인가요? 손발을 다 묶어 놓고 무엇을 하라는 건가요! 도대체 빌어먹을, 나 쁜 녀석들은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어떻게 옳고 곧은 수단으로만 그들을 대적하라는 건가요! 다 죽여요! 상감이고 뭐고! 내가 책임지면 되잖아요! 내가 지옥에 가든 벌을받는 내가 없애 버릴 거예 요! 그러면 되잖아요!”

“은동아…….”

태을사자는 고개를 저으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너도 이제 컸으니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더 이상 이야기를 않겠다. 아니, 할 수가 없구나.우리가 계 책을 내주면 우리도 인간사에 영향을 주는 것이 되 어 버리니까. 이 일은 마수들이직접 꾸민 것이 아니 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그러고는 다시 조용히 은동에게 말했다.

“네가 이순신을 구하면, 나도 오엽이를 구해주겠다. 그릇된 방법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너는 반드시 생각해 낼 것이다. 나도 반드시 오엽이를 구 해주마. 약속하지.”

“그러면 보름 뒤의 일은……?”

“너는 이순신에게만 신경 쓰거라. 내가 반드시 오엽 이를 데리고 너를 만나러 갈 것이다. 맹세하마. 되 었느냐?”

“하지만 나도 가야 해요!”

순간 태을사자는 슬픈 얼굴을 했다. 감정이 없는 태을사자로서는 놀라운 변화였다. 그러나은동은 그 런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안 된다. 그러면 오히려 일이 그르쳐. 내 말을 믿거라. 나는 결코 허언을 하지 않는단다.”

태을사자는 그 말을 끝으로 이상해하는 흑호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은동은 한동안 분에 못 이겨 엉엉 울고만 있었다.

한참을 간 뒤에야 흑호는 태을사자에게 말했다.

“흠…… 그런데… 은동이가 괜찮을까유?”

“은동이는 아직도 선한 영혼을 지녔네. 잘 이겨내고 꼭 잘해낼 걸세. 설령 잘해내지 못한다해도, 인간 의 일에 우리가 개입할 수도 없으니 할 수 없는 노 릇 아닌가?”

“그런데 오엽이는 어떻게 구하려구? 우리 둘이 합한다 해도 호유화의 상대가 될까……?”

돌연 태을사자의 눈이 빛났다.

“나는 이제 알 것 같네. 이제야 몇 년을 끌어온 일 의 전말이 잡혀. 이제 두고보게. 모든 것의 결론이 곧 나게 될 걸세. 한 가지만 알면… 한 가지만 더 알면 되네………….”

그날 조금 뒤, 은동을 찾아갔던 유정은 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다시 혀를 차며 탄식했다.

“만나자마자 이별인가. 이 아이가 또 어디를 간 것 일까? 아미타불・・・・・・.”

한편 이순신은 한산도에 모여든 백성들의 통곡과 함께 한양으로 압송되어 3월 4일에 옥에 갇히게 되 었다. 옥에 갇힌 이순신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긴… 김공이 죽을 때 이미 예측은 했었지만…….’

김덕령이 애매하게 맞아 죽었을 때 이순신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슬퍼하고 애석해했다. 그런데 정말 이순신도 같은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담담했다.

‘허나 별일은 없겠지…………. 아마 별일은 없을 것이야…….’

이순신이 애초에 계획해 두었던 2백여척의 군선들 은 거의 건조가 완료되어 배치된 상태였다. 이제 자신이 없어도 자신의 전술만 잘 따를 자가 삼도수 군통제사에 앉는다면 왜군에게패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누구일까? 이억기가 될까? 혹시 원균이 되는 것은…….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 허허………… 그러고 보니 나 도 참 흉한 짓을 많이 했군. 그러나 원균은 안 돼. 그의 사고방식으로는 모처럼 건조한 전선들도 무용 지물이 될 거야. 왜군들도 결코바보는 아니거든 원균이 통제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오래 전 부터의 이순신의 생각이었다. 이순신의생각으로는 이억기가 그래도 믿을 만했다. 그래서 이순신은 자 신이 창피를 당하고 남의 전공을 가로챈다는 말을 들으면서까지 원균의 흉한 행적을 알리고 원균을 멀 리 충청도로 쫓아보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니 설마 그 구설수 많은 원균이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의 자리에 앉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 각이 그에 미치자 마음이 편했다.

‘내 할 일은 다 했다. 나는 내 모든 지략과 정열을 쏟았다. 다시 난리가 났어도 이번에는 왜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육군에서도 대비를 했을 테니. 그리고 수군은 이미 정비를 끝냈으니 이억기가 잘 해 주기만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없다. 우리가 이 긴다. 나는 죽더라도,더 이상 여한은 없다…………..’

이순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막상 준비를 거의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려니 그동 안의 신경발작 같은 것도 거의 사라져 버려, 실로 오랜만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순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런 이순신을 곁의 옥에 서 지켜보는 봉두난발의 사내가 하나 있었다.

그는 행색이 거지처럼 보일 정도인 것으로 보아 옥 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이 분명하였다.그러나 그 의 눈빛은 너무도 맑았다. 바로 은동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순신이 잠이 들자 은동은 품안 에서 누런 종이를 꺼내어 휙 하고 이순신의 옥을 향 해 뿌렸다. 그러자 그 부적들은 공중에서 타들어가 며 이순신의 손발에 휙 하고빛을 뿌리고 잠시 후 사라져 갔다. 은동은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고문을 받아도 몸이 많이 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디 백성들을 생각하시어 옥체보중하시옵소 서………….’

결국 은동은 과거 돌산도의 난민들을 생각하고 마음 을 돌렸다. 그때 은동이 치료해주던 무지한 백성 들, 그리고 그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던 오엽의 모 습, 조용히 바닷가에서 이야기를해주던 태을사자와 흑호. 그리고 장래에 다가올 자신의 위험을 알면서 도 몸을 사리지 않던이순신의 모습……. 은동은 거 기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만이 아니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어서 세상살이는 가치있는 것이다.백성들을 위 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저 난민들을 위해서,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절대 쓰러지시면 안 됩니다. 이수사님……………’

은동은 공력을 발휘하여 임시로 이순신의 육체를 강 건하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처음에 은동은 파옥을 하여 이순신을 꺼내려는 생각도 했고, 선조를 죽여버리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모두는 종국에는 좋은 결과를 거둘 일은 못 되었다.

이 난리통에 수군은 분명 전황에 막대한 영향을 끼 치는 존재였고, 그 수군은 이순신밖에는통제할 사 람이 없었다. 그러려면 이순신은 어쨌건 다시 싸움 에 나서서 공을 세워야 했고, 어쨌거나 이 난국을 참고 버티어 넘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 니, 은동으로서는 일단버티는 것 외에 뾰족한 수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태을사자에게 오엽을 맡긴 것이 잘되었 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이순신이 언제 자신의 술법으로 보호할 겨를도 없이 맞아 죽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김덕령이라면 원래 신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오래 버 틸 수 있었겠지만 이순신은 버티기는커녕 곤장 두어대만 맞아도 죽을 정도로 심신이 허약한 사람이 었다. 그러니 한시도 눈을 뗄수 없었으며 그러자니 자연 자신이 오엽을 찾으러 갈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보름 후인 3월 13일이 다가오자 은동 의 마음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엽의안위는 태 을사자가 장담하였으니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것만이 아니라 자꾸만 호유화의얼굴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 원수의 요물이 자꾸 생각나는 것일까? 갈가 리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데…………….’

그러나 호유화의 생각은 아무리 잊으려해도 계속 떠올랐다. 그날, 그곳에 나가면 호유화를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복수를 하건 무엇을 하건 간에 호유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은동의 마음을 한없 이 두근거리게 했다.

‘안 된다! 안 돼!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되어 먹은 놈일까? 그 요물을 만나서 어쩌겠다고! 안돼…… 내가 자리를 비우면 이수사님이 고문 때문에 돌아가 실지도 몰라.’

사실 은동은 법력은 비록 고강해졌지만 흑호나 태을 사자처럼 둔갑술을 쓰거나 소리 소문없이 몸을 옮 기고 하룻밤 사이에 전라도를 다녀올 정도의 술법은 아직 배운 바가 없었다. 오로지 치고 싸우는 공격술 법과 몸을 보호하는 술법만을 익혔을 뿐이다.

이 의금부의 옥으로 들어오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들 었다. 그러니 순식간에 옥 밖으로 나갔다가 호유화 를 만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고, 또 호유 화에게 자신이 맞아 죽어 버리면 이순신 또한 죽어 버릴 공산이 컸다.

그러나 은동은 가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럴까? 내가 미쳤나? 그 요물에게 뭐 하러 가서 목숨을 내준단 말이야? 왜 가고싶은 거 야? 왜?’

하지만 아무리 해도 은동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 었다. 오로지 애가 타서 마음만 바짝바짝 타들어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