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6권 – 8화 : 마계의 싸움
마계의 반격
이순신이 투옥되어 죽을 지경에 놓이자 알만한 중신 들은 모두 근심에 잠겼다. 지금 난리가한창인 마당 에 명장 이순신을 죽인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많은 중신들은 의논 끝에 이순신을 구명하는 상소를 올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선조가 노기등등해 있는 지금, 구명상소를 올린다는 것은 실로 목숨을 건 일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김덕령의 사건 때에도 구명상소를 올린 바 있 던 노신 정탁(鄭琢)이 나섰다.
“내 나이 이미 일흔둘, 살아야 얼마를 더 살겠소. 구국의 동량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 늙은목숨, 아 깝지도 않소.”
그리고 정탁은 애절하게 은근히 선조의 부당한 행 위를 한편 어르고 추켜세우면서, 한편은달래는 투 로 이순신의 구명상소문을 올렸다. 이는 유성룡, 이 항복, 이덕형 등 많은 신하들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당시 이순신의 죄명은 네 가지였다.
첫째, 조정을 속여 임금을 업신여긴 죄. 둘째, 적을 놓아주어 나라를 저버린 죄. 셋째, 남의공을 빼앗 고 넷째, 남을 죄에 빠뜨린 죄였다.
이중 첫째는 이순신이 선조의 말도 안 되는 군명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나 원래 전장의 장수는 왕명도 듣지 않을 수 있는 재량권이 있는 것이 고금의 법례 였으니 말도 되지 않는 죄였다.
두 번째는 가토를 놓아주었다는 죄목을 말하는 것이 나 이 또한 어사까지 파견하였고 가토의상륙날짜와 왕명이 전달된 날짜가 틀리니 역시 혐의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죄는 바로 부산에서의 방화작전을 말하여 이순신이 안위의 공을 빼앗았다는 것이었으나 이 또 한 증거 불충분이었으며 안위 당사자도 전혀 그에 대해 항변하지 않았다.
선조는 앞서의 전공까지 모두 위조로 조작하여 이순 신을 죽이려는 광기를 부렸으나 이순신은 평소에 워낙 세밀하고 꼼꼼하게 모든 서류를 작성했으므로 감찰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허점을 찾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티끌만한 허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 서 선조는 가장 최근의 부산포 작전으로 죄를 씌우 려 했지만 그 또한 아무 증거가 없었다.
네 번째 죄는 원균이 자기의 첩의 자식에게 공을 준 것을 고발한 것을 말하는 것이나 이 또한 당시 조사 로서 원균을 충청병사로 전역시켰던 선례가 있는 터라 누가 보아도 이순신의죄는 없다고 할 수 있었 다.
이에 선조는 모진 고문을 틈 나는 대로 가하여 이순 신을 때려죽이려 하였으나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 천하장사인 김덕령보다도 더욱 모진 고문을 가하였 으나 이순신은 죽지 않고 버텨낸 것이라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였으나 이는 은동이 보이지 않게 법력으로 이순신을 수호해 주어 그리 된 것이었다.
좌우간 정탁이 목숨을 건 상소를 올리고 조정대신들 도 이구동성으로 이순신을 살려줄 것을 주장하자 선 조도 견딜 수 없어서 결국 이순신을 삭탈관직하여 권율 도원수부에 백의종군하게 하는 것으로 형을 낮추었다. 사실 아무런 혐의가 없음에도 백의종군 을 하게 하는 것은지나친 일이었지만 이순신이 선 조의 광기 앞에서 살아난 것만도 기적이라 중신들은 두말없이 따랐다.
그리하여 이순신은 병든 몸을 조금 구완한 뒤 무관 의 졸병이 되어 권율 도원수부로 떠났다. 이때 이순 신을 위문하러 구름 같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유성 룡, 이원익 등 거의 모든 신하들이 이순신을 염려해 주며 길을 배웅해 주었다.
이때 이순신은 탈진 상태에 있었으나 은동은 호유화 의 도움을 받아 수시로 둔갑을 해가면서이순신을 음으로 양으로 보살폈다.
이순신은 그 은동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잠깐 받았던 고문으로도 몸이 크게 상해 있었는데, 은동이 이순 신 모르게 산삼 한 뿌리를 먹이자 몸이 조금 나아 졌다. 그 산삼은 전에 흑호가새로 캐다준 것으로 호 유화는 전에 오엽으로 변하였을 때 산삼을 팔았다 가 둔갑술로 금세산삼을 도로 되찾아 왔었는데, 그 산삼을 내주어서 이순신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이후 은동은 이순신의 수하가 되기를 자청하여 이순신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되었다. 여기는 호유화 의 농간과 둔갑술도 어느 정도 작용했으나 그보다는 이순신이 은동을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은….. 아니, 금호라고 합니다.”
“허허, 예전에 아주 영특한 꼬마 의원이 있었느니 라. 그 아이와 알게 모르게 닮았구나. 허허・・・・・・.”
그런 말을 들으며 은동은 좀 섬뜩했으나 오년 사이 에 십년을 자란 은동을 이순신이 알아볼리 만무했 다. 그렇게 은동은 이순신을 보살피며 권율 도원수 부에 도착하였다. 호유화도 다시다른 아낙네의 모습 으로 나타나서 아예 은동의 아내 행세를 하면서 이 순신의 수발을 들었는데 워낙 미모가 빼어나다 보니 별별 일이 다 생겼다.
명나라 장교가 호유화의 미모에 혹해서 수작을 걸다 가 행방불명이 되기도 했고, 그 외 몇몇건달들도 수 작을 걸고 농짓거리를 했으나 대부분은 어디론가 실 종되어 버렸다. 몇몇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정신이 나간 반편이나 병신이 되어 버리곤 했다. 은동은 보다 못해 호유화에게 말했다.
“좀 심하지 않아?”
“저런 놈들은 그래도 싸.”
“그래도 살생을 하는 것은……”
“죽이진 않았어. 집어다가 한 이삼천리 떨어진 암초 같은 데다가 버려뒀지.”
“그러면 죽인 것과 무엇이 달라?”
“어쨌건 내가 죽인 건 아니잖아. 호호호…….”
은동은 말문이 막혔다. 은동도 호유화에게 추근대는 놈들이 결코 곱지는 않았지만, 호유화가너무 가혹하 게 처리하는 것 같아 근심스럽기는 했던 것이다.
“용모를 조금 못 나게 하고 다니면 되잖아. 그러면 추근대는 놈들도 없을 거구.”
그러나 호유화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워낙 이 남자로는 둔갑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호유화였는 데, 못생긴 용모로 변한다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라는 것이다.
“예쁜 게 나쁜 거야? 나쁜 건 흑심을 품는 놈들이 라구. 놈들은 벌을 받은 거니까 그래도 싸.그런 생 각을 하는 놈들은 죽어도 싸지, 뭘.”
좌우간 그렇게 호유화와 은동은 이순신을 보호하기 도 하고 아웅다웅하기도 하면서 세월을보냈다.
그러는 동안 흑호와 태을사자는 두 사람 앞에 나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중간계에서 삼신대모 등을 만 나이 중요한 사태를 설명하려 갔던 것이다.
호유화와 은동은 겉으로만 부부행세를 하며 지냈지 만 실제로도 신혼이나 다를 바 없이 깨가쏟아지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순신은 내내 침울하며 더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원균은 애초에 자신이 통제사가 되면 왜군을 싹 몰 아내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러나막상 자신이 그 자리에 앉고 보니 겁이 났다. 비록 군선은 이순 신이 충실하게 불려서 막대한 숫자로 늘어났으나 자 신은 다룰 자신이 없었다. 그제야 원균은 후회했다.
이때까지 이순신의 뒤만 따라다닐 때는 이순신이 별 것 아니고 자신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 상 그 자리에 앉고 보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 이 아니었다. 과거의 용맹은 어디에 갔는지 원균은 꼬리를 도사리고 절대 출진하지 않으려 했다. 원균 은 이때에 와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가 왜 그랬던 가? 내가 무엇에 홀린 것일까? 내가 무엇을 믿고 수군통제사가 되려 했던가? 아아, 나는 아무래도 제 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원균은 혼자 밤이면 술에 만취되어 엉엉 울기도 했다.
“이공! 이공! 내 당신을 잘못 보았소. 내가 미친놈 이오! 내가 미친 놈!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소! 제발 돌아와 주시오. 나를 좀 도와주시 오! 나를!”
그러나 이제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원균은 완전히 겁을 먹고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얼마나겁을 먹고 몸을 사렸는가 하면, 도원수 권율이 지나치게 나가 싸우지 않는다고 직접 내려가곤장을 여러 번 때렸을 정도였다. 결국 원균은 창피하기도 하고 겁도 나고 하여 술을 진탕마시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권율 도원수부에서 이 일을 전해 듣고 길게 탄식하였다.
“차라리 그냥 현상유지만 해주어도 그만인 것을………….나가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불쌍한 군사들과 백성들은 어찌할꼬…., 어찌할꼬…….”
그러나 결국 원균은 자포자기의 기분으로 군선과 장 병들을 모조리 휘몰아 대군으로 부산 방면으로 출동 한다. 그리고 7월 15일,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은 이 를 갈며 달려든 왜군들의 야습을 받는다. 왜군들은 이순신이 비로소 통제사에서 물러났다는 소리를 듣 고 환호성을 올렸다. 이제야말로 복수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동안 그 얼마나 많은 인명과 장비가 이순신 한 명 때문에 수장되었던가? 다 이긴 싸움을보급이 끊어 져 이기지도 못하고 굶어죽고 얼어죽은 군사가 그 얼마이던가?
“조선수군을 전멸시키자!”
왜군의 의기는 하늘을 찔렀다. 모든 장수가 이를 갈 며 나섰다. 그래서 모인 선단은 개전 이래 최대 규 모인 1천 척에 달했다. 실로 왜국 역사상 최대의 수 군이 조직된 셈이었다.
그러나 원균은 자신이 한 짓에 너무나 겁에 질려 있 어 전에 이순신과 함께 싸우던 그 정도의 수완조차 도 발휘하지 못하고 진군 중에도 술만 퍼 마셨다.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왜군의 야습이 있다는 보고에 원균은 허 둥지둥하다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대장이그 모양이 니 명령을 받지 못한 군대는 자동적으로 개미떼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배는 오히려 많았다. 게다가 배 를 부리는 수군과 장수들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일사불란한 작전이 없었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는 적선에 비장하게 돌입하며 자폭하 였고, 그 외 이순신이 키운 수많은 장령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다. 그러나 아무리 배 한 척, 한 척이 용맹을 가지고 싸운들 체계적인 지휘가 허물어지니 오합지졸에 불과하였다.
이순신과 난민들이 피땀을 흘려 건조한 군선들, 이 순신이 노심초사하며 군량을 조달하여 길러낸 수군 들이 속속 물속으로 잠겨들었다. 이때 조선수군의 피해는 정확히 집계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 으나 대략 1만 이상의 수군이 희생되었고, 2백여 척의 이순신의 목숨 같던 선단은 모조리 불타고 깨 트려져 버렸다.
한편 원균은 겁에 질려 수군대장임에도 불구하고 배조차 버리고 육지로 달아났다. 그러나원균은 원 래 몸이 비대하여 빨리 뛸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달 아날 수 없게 되었음에도 왜군들은 소리를 지르며 원균을 끝까지 추적하려 하였다.
그때 원균은 칼을 짚고 한 소나무 아래에 섰다. 숨이 차고 힘이 없어 도저히 칼을 들 기운도, 도망칠 기운도 없었다. 그때 비웃는 소리 같은 것이 희미하 게 원균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서야 원균은 머리가 트이는 것 같았다.
“나………… 나는…. 나는 조종받고 있었다! 나는 홀 린 거야!”
원균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마수의 암묵 적인 지배를 받다가 이제야 제정신이 든것이다. 그 러나 그 보이지 않는 마수는 원균의 마음에 희미한 목소리를 남겼다.
– 조종받았다구? 그렇지 않아……. 그건 네가 원래 가지고 있던 마음이다. 네 마음이라구.나는 너를 조종하지 않았어. 너의 마음중에 우리가 필요한 것 만 남기고 가려두었을 뿐이야………..우리가 너를 조 종한 것이 아니야…………. 네 스스로, 네 탐욕과 욕심 에 조종받은 거야…….
“아아…………, 내가… 내가…….”
원균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칼을 짚고 섰다. 그의 주변에는 왜군들이 실실 웃으면서 날이시퍼렇게 선 왜도를 쥔 손에 침을 뱉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공! 미안하오! 나는 저승에 가서도 이공을 뵐 40…….”
원균이 말을 다 잇지도 못하는 사이 왜군들의 칼은 원균의 몸으로 수도 없이 날아들었다.
조선수군은 전멸하였다. 글자 그대로 십분의 일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몰살된 것이다. 2백여척의 전선 은 모조리 땔감이 되어 흩어졌고 수천문의 총포는 깊은 바다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1만이 넘는 수군들 과 더 많은 노군과 사공들이 전멸당하여 목이 달아 났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 1만의 수 군의 영혼들은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사라져 저승 에는 단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영혼 들을 거두던 수많은 저승사자들조차 모조리 실종되 어 버렸다.
“무…… 무엇이라구!”
중간계에서 하일지달등과 함께 삼신대모를 만나고 있던 태을사자와 흑호는 몹시 놀랐다. 삼신대모마저 도 놀랄 정도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가! 누가 그 수많은 저 승사자들을 해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마수가 그랬는지, 혹 은 성성대룡이 그랬는지 그것조차 알 수가 없었다. 태을사자는 단언했다.
“성성대룡의 짓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어떻게 단언하는가?”
“저승사자들은 제가 통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들에게 마수들의 요기에 대해 충분히 경계하도록 일러두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생계에 마수는 몇 마 리 남아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소리 한 번 질러 보지 못하고 소멸되려면 막강한 법력과 함 께 저승사자들에게 의심받지 않을 신분이 필요합니 다…………. 그것은…….”
“그렇군! 대룡이 어찌 이런 짓을……!”
삼신대모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자 태을사자는 말했다.
“저희가 급히 가보겠습니다. 호유화, 아마도 호유화와 저희가 힘을 합치면 성성대룡을 잡을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삼신대모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아무리 상황이 급 박해졌더라도 수많은 신장을 풀어 소란스럽게 일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천기를 흐트러뜨리게 되 니까. 마침내 삼신대모는 결단을 내렸다.
“가게! 그러나 주의하게. 성성대룡의 환계의 제일 인자, 무서운 능력의 소유자라네.”
“알겠습니다. 더구나 대룡은 은동의 원수이기도 합 니다. 반드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삼신대모는 다시 한 가지 당부를 했다.
“그동안 마수들은 행동을 자제해 왔네만, 이제 아무리 대룡의 힘을 얻었다고 하나 행동이지나치게 노골적이 된 것 같네. 더구나 일만의 영혼을 모조리 삼키다니…………. 그건 행여 놈들의 암흑의 대주술이 이제 본격화된 것을 의미할지도 몰라. 일만의 영혼 이 더 있으면 완성된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네. 좌우간 그 점을 유념하게. 놈들의 행적을 잡 으면 그때는 우리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니 그 일 도 잊지 않기를 바라네………….”
“알겠습니다!”
태을사자와 흑호는 함께 급히 생계로 내려갔다. 그 리고 하일지달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급히 흑호 의 뒤를 따랐고 다른 팔신장과 팔선녀 중 일곱도 하 일지달을 따라갔다.
한편 참혹한 패전의 소식이 들려오자 이순신은 통분 하여 몇 번이고 기절을 했다. 은동은 놀랍기도 하고 덩달아 원통하기도 하였지만 서둘러 이순신을 구완하여 정신을 차리게 했다.뭐니뭐니해도 정신을 차리게 하는 데에는 법력을 조금 불어 넣어주는 것이 제일이었다.
이순신은 정신을 차리자 곧 권율에게 말하여 연해안 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길을 떠나겠 다고 청했다. 사실 이 원균의 패전에는 권율의 책임 도 컸다. 권율이 선조의 말만믿고, 또 이순신이 쾌 히 승전한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원균을 너 무 몰아붙여 패전을자초하게 된 것이다.
권율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순신을 급히 현 장에 파견하게 하였다. 이순신은 눈물을뿌리며 길 을 떠났는데 도원수부에 있던 군관 등 몇 명이 이순 신과 동행하였다. 실제로 대패를 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오기는 했으나 그 피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 지 이순신은 눈으로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이제는 안심이라던 수군이 하루아침에 모조리 없어졌으니 이순신의 낙담 이 오죽하랴. 이순신은 갑자기 병이 위중하여 길도 제대로 가지 못하였다. 그러나 은동은 호유화와 함 께 빈틈없이 이순신을 모셨다.
이순신은 곤양을 거쳐 진주 방면으로 나아가는데, 이순신의 기가 너무 약하고 몸이 못 견뎌하여 말을 오래 탈 수 없어 하루에 수십리를 채 가지 못하였 다. 이순신의 상태로는 말도 탈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일기를 쓰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으 니 그때의 눈물겨운 행로는 생생히 기록되어 전해지 고 있다. 이순신은 일기에 비록 글로 적지 않았으나 암담한 미래를 자주 탄식하였는데, 이순신을 옆에서 모시던 은동은 그 말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이순신이 연안가를 돌아보며 얻는 정보란 것도 거의 눈을 가리고 싶을 정도로 비참했다. 각포구에 한두 척씩 배치되었던 전선을 이순신이 세 배 이상으로 늘려 놓았는데, 배가 남아있는 포구는 하나도 없었 다. 더구나 수군들도 모조리 전사해 버려 포구의 작 은 마을들은 모조리 줄초상의 울음바다였다. 아버지 와 아들이 다같이 죽어 대가 끊겨 버린 집도 적지 않았고, 아비와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여인네들의 통 곡소리는 내로라는 호유화마저도 차마 듣지못할 정 도였다.
그런데도 마을사람들은 이장군님이 돌아오셨다고 반 기면서 왜 가셔서 이 꼴을 당하게 하였느냐고 원망 하고 통곡하기를 몇 번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 마다 이순신은 격심한 마음의고통을 느끼고 몇 번이 나 정신을 잃고 혼절하기를 거듭했다. 은동은 서투 나마 전에 의원 흉내를 냈던 적도 있었고, 이순신의 처방전을 아직도 몇몇 기억하고 있어 이순신을 위 기에서 여러 차례 구해냈다. 이순신은 정신이 흐릿해 지면 곧잘 헛소리를 했다.
“이제 무엇으로 싸울꼬…………, 무엇으로 싸울꼬∙∙∙∙∙∙.”
또 어떨 때는 이런 말도 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내 몸 하나 깨끗 이 보전하고자 수많은 생명이 죽는데 손을못 썼구 나. 세상에 나같이 죄 많은 자가 있을까…”
그때마다 은동은 장군님의 잘못이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도 못해 분함만 삭혔 다. 하루는 은동이 이순신이 마음아파 하는 것을 보 다 못해 나아가 이순신에게 고했다.
“장군님,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왜 조선수군이 전멸한 것이 장군님 탓입니까? 무능한 원균과 조 정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힘을 내세요, 장군님……”
그러나 이순신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눈물만 흘릴뿐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그리 수군을 많이 모집할 자도 없 었을 것이고, 또 내 이름이 아니었다면그리 수군을 모으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아 놓고 떼죽음을 시켜 버렸으니 이 죄를 어찌하랴. 1만 명이 죽었다면 내가 1만 번 다시 태어나도 갚아줄 길이 없으니 이 죄 를 어찌하겠느냐……………”
은동은 그런 생각은 너무 지나치다고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이 곧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던 중 은동 은 어느날 밤 난데없이 삼신대모를 만나게 되었다. 삼신대모는 팔신장과 팔선녀 중 하일지달을 뺀 칠선 너와 함께 소리소문도 없이 은동의 옆에 와 서 있었 다.
호유화는 재빨리 은동의 옆에 와서 말을 건넸다.
“세상에, 대모님이 생계까지 행차하시다니. 어인 일이신가요?”
은동도 삼신대모가 자신에게 따뜻이 정을 베푼 것을 생각하고는 얼른 공손히 절을 했다. 그러자 삼신대 모는 웃으며 절을 받더니 힐끗 은동의 기색을 살피 며 물었다.
“어떠냐? 이순신은?”
그러자 운동은 슬프게 답했다.
“안 좋습니다…….”
그 대답에 삼신대모도 말을 하지 못했다. 삼신대모 는 묵묵히 서 있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이제 모든 것이 밝혀졌다. 마수들의 계획과 성성대 룡의 목적…………, 그리고 이 난리와의 연관까지도 ……. 은동아, 네가 중요한 일을 해주어야 한다. 들 어 주겠니?”
은동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했다.
“이번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한 가지 큰 조건이 필 요하다. <해동감결>을 기억하느냐?”
삼신대모의 물음에가 은동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거 렸다.
“죽지 않을 자 세 명이 죽고, 죽어야 할 자 세 명이 죽지 않아야 한다는 말・・・・・・, 그 말은 조만간에 이루 어질 것이다. 아니,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 말은 무슨 의미이지요?”
“죽지 않을 자 셋은 신립, 김덕령, 그리고 정운, 이 세 사람이었다. 그리고 죽어야 하나 죽지않은 자 셋 중 둘은 바로 박홍과 김명원, 또 한 명은 나오지 않 은 듯하다. 그 사람만 나오면이제 우리는 행동을 개시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 단서가 잡힐 것이야.”
삼신대모가 말하자 삼신대모와 같이 온 팔신장 중 명림답여(冥林踏輿)라고 자신을 밝힌 신장이 나섰 다.
“그 책을 지은 인간이 누구이던 간에 그는 실로 크 나큰 예언을 하였다. 우리는 성계의 파격적인 허가 를 받고 그 책의 내용이 천기의 변화되는 흐름까지 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까지도 알아내었단다. 인간이 할 수 없는 풀이까지도 우리는 할 수 있었단 다.
그 책에 의하면 이 시기의 내용은 천기와 많이 다르 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반면에 미래의내용은 정해 진천기와 크게 달라지지를 않았단다. 그렇다면 이 책은 지금 천기가 흔들릴 것까지도 미리 예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지.”
“그러면 성계에서 정한 천기보다도 이 책은 더 앞질 러 천기가 흔들릴 것까지를 예측한 것이란 말인가 요?”
호유화가 은동 대신 묻자 팔선녀 중의 하나인 미미 옥랑(美眉)이 그야말로 구슬이 구르는듯한 목소 리로 말했다.
“그 예언이 시투력주의 천기보다 정확한지의 보증은 없어요. 허나 만약 저 예언대로 생계에서의 일들이 돌아간다면, 천기보다 <해동감결>의 내용이 이 시 기에 있어서만은 더 맞다는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러 니 태사자의 의견은 저 책의 예언대로 따라 기회 가 오기를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가만, 천기를 어떻게…………. 아니, 그러면 성계의 천기가 아니라 저 책의 내용을 더 믿자는건가요?”
너무나 의외의 발상이라 호유화마저도 놀랐다. 그러자 삼신대모는 말했다.
“나는 가능하다고 믿네.”
“도대체 어떻게요!”
“나는 그 뒷구절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 믿네. 죽지 도 살지도 않은 자 셋이, 죽지도 못하고살지도 못 하는 자 셋을 이겨야 난리가 끝날 것이다… 난리 가 끝난다고 저 책은 단정 짓고 있네. 그리고 저 구절에 조건이 붙은 것은 천기가 불확실해질 것을 미리 보고 씌어진 것이 분명해.. ・・・・・・. 그러니 지금 일 루의 희망은 그 책뿐이니라.”
삼신대모는 잠시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입을 열었다.
“천기는 복원력을 가지고 있네. 그리고 어찌 되었건 이 <해동감결>의 예언서는 천기를 어느 부분 짚어 낸 것이네.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반드시 일정하게 흐르는 것만도 아니야.성계도 미래는 읽을 수 없네. 다만 미래가 이루어지게끔 영향력을 끼치는 곳이지. 그런데 저예언서는 천기를 미리 읽어 만들 어졌다는 것만은 틀림없네.
그렇다면 <해동감결>이 말하는 미래가 분명히 존재 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 미래에 맞추어천기가 흘러 가는 데에 맞추면 되는 것일세. 이제 이순신이 왜 란종결자가 될 조건도 틀어졌고, 다시 수많은 영혼 들이 마수들의 손아귀에 넘어갔지. 이제 시간이 별 로 없어.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큰 타격은 이번 패 전으로 말미암아 성계의 천기제작이 혼돈에 빠져 버 린 것일세. 그것이 마수들이 노린 가장 큰 타격이었 어……………. 이제 성계는 전혀 이 일에 끼어들 여지가 없게 되었네. 광계는 마계를 상대하는 데 바쁘고, 환계는 지도자가 배신하여 위험한 상태이네. 놈들은 성성대룡을 이용하여 뒤집어질 뻔한 싸움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요?”
“성성대룡을 잡는 것도 중요하고 마수들을 해치우는 것도 중요하네. 그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천기 를 일단 제자리로 올리는 것이야. 그러려면 이순신 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승전을 하여 다시 왜란종결 자의 지위를 찾아야 하네. 그래야 왜군들은 다시 패 주할 것이고 역사는 천기대로 흘러가게 되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리 성성대룡과 마수들을 잡아 보아도우주의 질서는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작은 곳 에서 틈이 나기 시작하여 크게 번져 나가는 것이야. 그러면 우리는 패하는 것이고 우주는 마수들의 판이 되는 거야…”
대뜸 은동이 삼신대모에게 소리쳤다.
“그렇다면 이제 다 틀렸어요! 이제 다 끝입니다! 이 지경이 되었는데 이순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 왜란을 종결짓겠습니까?”
그러자 호유화도 나서서 외쳤다. 호유화는 은동과 정을 가진 후로 마음이 퍽 온화해지기 시작하여 이 순신을 몹시 불쌍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이제 수군은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제아무리 천하 명장이어도 무엇을 가지고 싸우겠어? 거기다 몸까 지약한 저 사람이? 웃기지 마! 좋아! 좋다구! 내가 법력을 쓰겠어! 까짓 왜놈들배 수천척이어도 겁낼 것 없다구! 그리고 당신도 법력을 빌려줘!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그러나… 이순신 스스 로 하라는 건, 그건…… 그건 도저히 말이 안 돼 ・・・・・・ . “
삼신대모는 묵묵히 은동과 호유화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말했다.
“아니 된다. 인간의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하느니…….”
이번에는 은동이 외쳤다.
“이제 더 무엇을 하라는 말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죠? 이장군님이 신이라도 됩니까? 대체 무엇을 가지고 전쟁을 하며, 무엇을 가지고 전공을 세운단 말입니까? 천기는 다틀렸어요! 이제 다 끝 이에요! 아니, 이순신이 스스로의 힘만 가지고 이 기라구? 도대체 말이되나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러나 삼신대모는 다시 고개를 저으며 되받았다.
“틀리지 않았다. 은동아, 나는 믿는다. 절대로…………… 그 예언은 절대 틀리지 않았어…………. 믿음을 가져 라, 은동아. 너는 천기를 원망했었다. 그러나 천기 는 결국 너에게도 순리대로 찾아왔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 천기는 이미 다 틀어져 버렸다면서요!”
“아니다. 아직 아니야. <해동감결>이 있다. 그곳에 기록된 미래가 있어. 절대 포기하면 안된다. 은동 아, 이순신에게 힘을 주어라. 그 길 밖에는 없다. 이순신이 실패하면 성성대룡을처치하고 마수들을 다 잡더라도 우리가 패하는 것이 된다. 은동아, 너 밖에는 할 사람이 없어……. 우리도 힘을 주고 싶 어 미치겠다만 그러면 이미 우리는 패하는 거야. 마 수들도 그래서 직접 힘을 쓰지 않고 있는 거란다. 다행히 너는 인간이야. 너밖에는 할 수 없어…..”
“하지만 마수들은 이미 직접 이장군님을 죽이려 했어요!”
그러나 삼신대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들은 성성대룡의 명을 받고 호유화가 있는 곳을 캐려고 갔던 거란다.”
호유화는 벌컥 짜증을 냈다.
“도대체 어떻게! 저 다 죽어가는 늙은이 힘으로 수십만 왜군을 막으라구! 내 법력을 다 줘도 그건 못할 거야! 도대체 어쩌란 말야!”
그러자 삼신대모는 호유화에게 말했다.
“유화낭자, 낭자에게도 부탁할 일이 있네.”
“나요? 내가 뭘?”
“성성대룡이 없어진 후 환계는 혼란의 소용돌이네. 그들을 그대로 두면 자칫 모조리 마계의손아귀로 떨 어질 우려가 있어. 더구나 성성대룡은 환계의 신임 이 아직도 무거운 터라 자칫하면 환계 전체가 배신 할지도 모르네.”
“그래서요?”
“환계에서 성성대룡의 위명을 누를 수 있는 것은 자 네뿐이네. 자네가 환계의 지배자가 되어주게. 그렇 지 않고서는 누구도 환계를 수습할 수 없는 형편이 라네.”
호유화는 그 말을 듣자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안 해!”
“낭자.”
“난 남자가 아니라구요! 이제부턴 강공의 부인이 야. 호호호….., 환계건 뭐건 나는 몰라. 나는 죽 든 살든 은동이・・・・・・ 아니, 낭군 곁에 있을 거야.”
“둘의 마음은 알지만 아직 혼례도 안 하고 무슨 소 리인가? 이 할미가 나중에 중신을 서줄것이니 이 번은 좀 도와주게.”
“마음으로 언약했으면 그만이지, 뭘! 좌우간 난 안가. 그렇지요, 낭군님?”
그러자 은동은 좀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웬만하면 가 보지그래.”
갑자기 호유화는 벌레 씹은 얼굴이 되었다.
“뭐라구? 나더러 가라구?”
“환계의 처지는 내가 잘 모르지만 호유화의 고 향….. 아니지, 따지고 보면 친정 아냐? 그곳이 그 리 난리가 났다는데 안 갈 수 있겠어?”
“칫! 내가 보기 싫다 이거지? 이거 벌써부터 소박 을 맞히려고 하네?”
호유화는 투덜거렸으나 내심 꼭 가기 싫은 눈치도 아닌 듯싶었다. 결국 호유화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호유화는 삼신대모에게서 온갖 선물들을 엄청나게 받을 것을 언약받은 다음에야혀를 날름 내밀며 간드 러지게 말했다.
“호호호, 그럼 섭섭하지만 잠시 후에 봐요. 낭군님, 나 잠시 다녀올게요.”
은동은 호유화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느닷없이 낭 군님 소리를 듣자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몸을 떨고 얼굴이 붉어졌다. 삼신대모는 급한 나머지 호유화에 게 당했다고 생각하였으나 워낙 급한 판이라 그저 미소만 짓고 말았다. 호유화는 이번에는 장난기를 거두어 정색을 하고다시 은동에게 말했다.
“좋아, 할 일은 해야지. 나도 사실 고향 동포들이 걱정 안 되는 바가 아니야. 가급적 금방올 테니, 은동이도 힘 내줘, 응?”
그러고 나자 벌써 호유화 등 모두는 보이지 않게 되 어 버렸다. 은동은 혼자 한숨을 쉬었다.얼결에 호 유화까지 보내 버리고 태을사자와 흑호마저도 없자 적적했고, 이순신을 격려하여싸우게 하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하여야 이장군을 기운이 나게 할 수 있을까?’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이순신은 고문을 받 은 상처를 온 몸에 남긴 채 옥에서 나왔고 연안을 순시하는 임무를 자원했다. 하지만 이순신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지울 길이 없었다. 더욱이 이순신은 연안을 순시하고서 더욱더 비참한 기분에 빠졌다. 아무 것도 남은 것이없었고, 정말 너무할 정도로 조 선군은 전멸 상태였다.
은동도 괴로워했지만 이순신에게 말을 걸 생각조차하지 못했다. 원래가 이런 상황에 빠진 이순신에게 기운을 내어 싸우라는 소리를 할 만큼 은동은 뻔뻔 스럽지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내가 이장군님 입장이 더라도 차라리 자결해 버리고 싶겠다.’
더구나 호유화와 태을사자, 흑호마저도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지 종적조차 보이지 않았다.은동은 답답 할 따름이었다.
8월 2일이 되었다. 이순신은 진주에 도달하여 그곳 에서 요양하고 있었다. 그 전날 아침, 갑자기 이순 신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이순신의 병구완을 하느라 곁에서 밤을 새우던 은동 은 놀라 깨었다.
“장군님, 왜 그러십니까?”
그러자 이순신은 엄숙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꿈을 꾸었다.”
“그런데 왜 매무새를 가다듬으십니까?”
“내일 교서가 내릴 것 같구나………….”
이순신은 전에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은동은 어리 둥절했으나 다음날 정말로 선전관 양호라는 자가 교 서를 가지고 이순신을 따라왔다. 그리고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은동은 하마터면 뛰어나가 선전관이라는 작자를 두들겨 팰 뻔했다.
‘이제 와서 싸우라구? 싸워야 할 때 잡아 가놓고 군 대가 하나도 남지 않은 지금 다시 싸우라구? 도대 체 이런 말도 안 되는 개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마터면 은동은 선조를 염라대왕의 주술로 그 자 리에서 죽여 버릴 뻔까지 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그 러나 이순신은 오히려 담담하고도 엄숙하게 그 교서 를 받는 것이었다.
은동은 그 모습에서 불길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