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4화
잠시 후 왕자가 일행을 바라보고는 라한트에게 뭔가를 물었고, 그의 대답을 들은 후 일행에게 다가왔다.
“감사합니다. 저희가 곤경에 처한 것을 구해 주셨다구요.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그의 말에 역시 일행들의 입이 나섰다.
“아닙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왕자님, 저희는 그냥 할 일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왕자 옆에 서 있던 라크린이 왕자에게 말했다.
“왕자님, 저 전사 분은 소드 마스터이십니다. 실력이 굉장하시죠.”
그러면서 가리키는 사람이 엉뚱하게도 그래이였다. 그것을 보고 일행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보았습니다. 난전이라 정확히는 보지 못했지만 검기가 뿌려지는 것을 보았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그 정도 실력을 가지신 분은 이분인 듯 싶군요.”
라크린의 말은 크게 틀린 것은 없었다. 그냥 보기에는 그래이가 가장 전사 같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드는 여성처럼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굴 역시 깨끗한 여성이었다. 그러므로 직접 보지 못한 라크린이 오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했다. 물론 그때 같이 싸운 라인델프도 있지만 드워프가 검기를 사용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기에…
그러나 그 말에 이드는 별 상관이 없는 듯했다.
“아! 소드 마스터셨군요. 대단한 실력이시겠군요. 저도 저희 제국에서 소드 마스터 분들을 몇 분 뵈었는데 정말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계셨죠.”
“아니요… 저기… 왕자님, 제가 아닙니다. 그 소드 마스터는 제가 아니라 여기 이드입니다.”
그래이가 왕자의 말에 재빨리 이드를 끌어당겨 내세웠다. 그러나 장난치고 싶어진 이드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래이를 바라보았다.
“그래이, 왜 그래… 너 맞잖아. 너 그렇게 사람들 주목받는 거 싫어하니?”
이드의 말에 당황하는 그래이와 그의 말에 동참해 주는 일행들… 물론 일리나는 별 표정이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표정.
‘그런데 하엘은 사제이면서 거짓말에 동참해도 되려나? 상관없겠지? 직접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거짓말하면서 별생각을 다하는 놈이다. 아무리 봐도 중원에 있을 때도 장난 꽤 치던 놈인 것 같다.
“야 임마! 말은 똑바로 하자! 어떻게 내가 소드 마스터냐? 안 그래요, 일란?”
그러나 아무 말 없는 일란. 그러자 당황한 그래이가 하엘을 바라보았으나 역시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제 말이 부담스러우셨던 모양이군요. 그럼 앞으로는 자제하겠습니다.”
“아니요, 왕자님, 그런 게 아니구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이분 레이디를…”
그러나 라한트 왕자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드가 그를 찌르듯이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바로잡아야 한다. 앞으로 얼마간 같이 다닐 텐데…’
“이것 보세요, 왕자님… 이번에 확실히 하는데 저는 레이디가 아닙니다. 엄연히 남. 자. 입니다.”
“하하, 그러십니까. 죄송하군요. 제가 실수를…”
“어쨌든 왕자님, 제가 아닙니다… 말들 좀 해봐요…”
그러자 일란 등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만 놀리기로 할까나? 왕자님, 그 녀석 말이 맞습니다. 소드 마스터는 여기 이드입니다.”
그러자 라한트와 라크린이 의외라는 눈빛과 맞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이드를 바라보았다.
“제가 잠시 장난을 좀 쳤습니다. 제가 맞습니다.”
그러나 이드의 말에도 기사들과 왕자는 별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듯했다.
“제가 알고 있는 분들은 전부 다 체격이 좋으신데… 대단하시군요, 이드님.”
“하하, 좀 그렇죠.”
“자~ 이만 출발하죠. 지금 출발을 해야 저녁때쯤 마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죠.”
“그리고 왕자님, 마차는 버리고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한트님. 말이 세 마리뿐이니 저와 라일이 한 말에 타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 후 일행은 대충 짐을 챙긴 다음 말에 올랐다. 라한트가 말을 몰며 물었다.
“여러분들은 어딜 가시는 겁니까?”
“말씀 낮추십시오, 라한트님. 그리고 저희들은 레이논 산맥에 약간의 볼일이 있습니다.”
“레이논… 그곳에는 무엇 때문에… 드래곤이 살고 있다고 해서 일대에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만…”
“그건 저희 일행 중 한 명이 그곳에서 누굴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 저희 때문에 늦으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군요.”
“별 말씀을요. 거기다 저희는 그렇게 급하지 않으니 신경 쓰시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일행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에야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마을은 그렇게 크진 않았으나 작은 편도 아니었다. 대략 보기에 500여 가구 정도가 모여있는 마을 같았다.
일행은 우선 여관부터 찾아보았다.
“저기, 실례합니다. 여기 여관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이가 지나가는 중년의 아저씨에게 물었다.
“여행자들이신가 보군요. 저쪽으로 쭉 가시다 보면 마을의 중간쯤에 여관 4개 정도가 모여 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그 아저씨의 말대로 말을 타고 조금 걷자 곧 여관 4개가 조금씩 사이를 두고 늘어서 있는 곳이 나왔다.
“일란, 어느 여관으로 할까요? 너는 저 바람의 꽃이라는 곳이 좋을 것 같은데.”
“음, 내 생각 역시 그렇군. 라한트님은 어떠십니까?”
“예, 저도 저곳이 좋을 것 같군요.”
일행이 말에서 내려 여관으로 다가가자 여관에서 한 소년이 달려나와 일행들을 맞았다.
“잘 오셨습니다. 말은 제게 주십시오.”
그리고는 말을 받아 마구간으로 들어가는 소년을 보며 일행들은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관 1층은 식당인 듯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식사를 하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그들은 지금 들어선 일행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들의 할 일을 했다. 어떤 이들은 일행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우선 일행만 하더라도 마법사, 엘프, 드워프 등 보기 힘든 조합이었고, 왕자 일행은 고급 옷을 걸친 소년과 갑옷을 걸친 기사 셋이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시선을 끌 만도 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일이 아니기에 이상 그저 흥미거리에 불과했다.
“어서 오십시오. 묵으실 겁니까, 손님?”
“4인용 방 두 개와 2인용 방 하나 있습니까?”
그러자 주인장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4인용 방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3인용 방이 하나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이드가 말했다.
“그럼 그걸로 주세요. 일란, 저는 옆 여관으로 갈게요.”
“하지만 이드군, 그래도 괜찮겠는가?”
“괜찮아요. 그럼 방 잡고 여기로 올게요. 저녁 식사는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라한트 왕자가 한마디 했다.
“저희들 때문에…”
“아닙니다. 별말씀을. 네 분이 한 방을 쓰십시오, 그 편이 안전하기도 할 테니까요.”
그때 말을 매어 두었던 소년이 다가와서 일행들을 각자 방으로 안내했다.
“이 방과 이 방들입니다. 모두 한데 붙어 있습니다. 식사를 하시겠다면 제가 미리 주문해 놓겠습니다.”
“아니 됐네, 동료 한 명이 있는데 오면 내려가서 직접 주문하지.”
“예, 편히 쉬십시오.”
한편 이드는 여관을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여관 ‘불의 꽃’으로 향했다.
“여기 여관은 전부 다 꽃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나?”
그렇게 말하며 이드는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여관 역시 ‘바람의 꽃’과 마찬가지로 1층은 식당인 듯 사람들이 있었다. 손님 역시 ‘바람의 꽃’과 비슷한 숫자가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저쪽은 조금 조용한 데 반해 이쪽은 엄청 시끄럽다. 여관의 이름답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드는 카운터로 가서 방을 잡았다.
“여기 열쇠 있습니다, 손님. 그런데 식사는…”
“아니요, 됐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이드는 방으로 향했다. 그의 방은 2층 복도를 따라 있는 방 중 두 번째 방이었다. 방은 깨끗했다. 창으로는 맞은편의 ‘바람의 꽃’이 보였다. 방을 한 번 훑어본 이드는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계단을 내려오는 이드에게 한 사내가 다가왔다. 굉장한 덩치에 허리에는 투핸드 소드 정도의 대검을 차고 있었다. 그는 이드를 보며 실실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드는 별로 거슬리는 것이 없다는 듯이 그를 비껴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 사내가 이드의 앞을 막아섰다. 그래서 살짝 옆으로 비꼈더니 역시나 그쪽으로 섰다.
주위에 술 마시던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도 했다.
‘하~ 이런 녀석을 일일이 상대할 수도 없고…’
이드는 그렇게 한숨을 쉰 다음 계단의 난간을 잡고 옆으로 뛰어넘었다. 그러자 그 덩치는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드와 마찬가지로 계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이드의 길을 막았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까지나 점잖게…’
그러자 그 덩치는 실실 웃으며 답했다.
“뭐 별로… 그냥 아가씨가 예뻐서 한 번 사귀어 볼까 해서 말이야.”
‘으~ 그럼 한마디면 떨어지겠군. 가서 저녁도 먹어야 할 텐데 다들 기다릴 텐데.’
“뭔가 잘못 아는 것 같은데… 저는 남자입니다. 여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비켜주시죠.”
그러자 그 덩치는 웃긴다는 듯 한 번 웃고는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이것 봐, 아가씨! 그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속아넘어가 줘야 하나?”
“하~ 말하기도 지겨워. 비켜.”
“오! 강하게 나오시는데, 안 그래?”
그러자 그의 동료로 보이는 몇몇 청년들이 웃어대며 재밌어했다.
‘짜증나네…’
이드가 덩치를 막 날려버리려는 찰나였다. 저쪽에 앉아 있던 여행자로 보이는 일행들 중 한 청년이 일어났다.
“이것 봐, 레이디를 괴롭히면 안 되지.”
‘꽤하게 생겼군. 하지만 여기서 도움을 받으면 일이 좀 복잡해지지. 내선에서 해결을 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이드는 덩치에게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런 이드를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이드는 손을 내밀어 그의 배에다 손바닥을 대고는 진기를 가했다.
“커헉…!”
쿵! 쿵!
“덩치가 크니까 쓰러지는 소리도 시끄럽군. 그리고 형, 도와주려고 해서 고마워요.”
멍하게 서 있는 청년을 보고 이드는 감사 인사를 한 후에 여관을 나섰다.
“저것들 패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밤에 쳐들어오지는 않으려나… 그럼 귀찮은데…”
이드는 ‘바람의 꽃’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어디까지나 귀찮은 것이다.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식당 한 곳에 일행들이 앉아 있었다. 각자 앞에 맥주 한 잔씩을 놓고 말이다. 물론 모두 다 맥주는 아니었다. 라한트와 하엘, 일리나는 각자에게 맞는 것을 잡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여관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해서 말이죠.”
“뭐, 별로. 우리도 지금 내려왔거든. 그런데 무슨 여관을 잡았나?”
“이 여관 바로 맞은편 여관으로 했어요. 그런데 주문은 했어요?”
“우린 대충 주문했지. 자네만 하면 되네.”
“그래요. 그런… 점원, 여기 트란트 라이스.”
이것이 이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 트란트 라이스라는 것은 중원의 볶은 밥과 비슷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도 의외로 중원과 비슷한 음식이 몇 가지가 있었다. 뭐 완전히 같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일행은 잠시 후 나온 음식들을 먹으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정리했다.
“맛있군… 그런데 기사단 여러분들께서는 여정을 어떻게 정하고 계십니까?”
일란의 말에 라크린이 검은 머리의 기사 길렌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길렌트가 일행들을 향해 말했다.
“제가 이 일대의 지리를 대충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국까지의 최단거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마을 역시 피할까 합니다. 물론 보급 문제도 있으니 중간중간에는 들려야 할 겁니다.”
하엘이 길렌트의 말을 듣다가 그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럼 대충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까요?”
“확실치는 않지만 대충 10일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물론 수도까지입니다. 그러나 가다가 제국의 영지에 들려 호위를 받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위험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일란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누가 공격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에게나 도움을 청한다는 건…..”
이번에는 라한트 왕자가 답했다.
“아닙니다. 저희들이 가는 길에 워이렌 후작의 영지가 있습니다. 그분은 제게는 외할아버님이 되시는 분이죠.”
그의 말에 일란 등은 그런가 했다. 사실 이들이 제국의, 그것도 왕가의 일을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그런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왕자 역시 내부의 소행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인가?’
이것이 몇몇의 생각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기사단장과 일란, 그리고 이드 정도였다. 일리나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알 수 없는 것이고 말이다.
이들의 생각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왕자의 여행 일정을 안다는 것과 체계적 훈련을 받은 인물들, 그리고 라크린에게서 들은 현재 제국의 내부 문제 등이었다. 물론 라크린이 제국 내부 정세에 대해 자세히 말한 것이 아니라 약간의 언질을 준 것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 역시 그것에 대해 자세히는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기사단장인 그가 자세히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우선 내일은 제가 탈 말과 여행에 필요할 물품 등을 마련해 놓아야겠군요.”
“예!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내일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한트님에겐 힘드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적들을 피하는 데도 좋을 것 같고 말입니다.”
“좋으신 생각이십니다. 일란님, 그럼 내일 떠나기로 하죠.”
“그럼 내일부터 서둘러야겠네요. 그럼 저하고 일리나, 그래이가 식품들을 준비하죠.”
“그래, 그래라. 그리고 기사님들과 라한트님께서는 말과 각각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주십시오.”
그의 말에 뭐가 불만인지 그래이가 투덜거렸다.
“그럼 이드나 일란, 라인델프는 뭘 합니까? 저희만 일거리가 있는데 말이에요.”
“그건 네 팔자지. 하엘이 널 지목했기 때문에 네가 가는 거지. 다른 사람을 집었다면 다른 사람이 갔을 거야…”
“윽, 그래도…..”
“자, 식사도 끝냈으니 각자 방으로 가서 쉬자구. 내일도 또 움직여야 할 테니 충분히 쉬어 두어야 한다구.”
그 말에 모두들 일어섰고, 이드는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불의 꽃
으로 향했다.
이드가 여관으로 들어서자 이드를 보고 한 사내가 일어섰다. 그는 바로 아까 이드에게 맞아 쓰러졌던 덩치였다. 그는 씩 웃으며 이드에게 다가왔다.
“미안하군. 내가 장난이 좀 심했어. 이만 화해하자구.”
‘호~ 이 녀석 의외로 괜찮을지도. 거기다 꽁한 것 같지도 않고..’
“나야말로 좀 심했던 것 같네요. 사과를 받아줄게요. 그리고 아까의 것 나도 사과하죠.”
그러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뭐, 내가 먼저 실수한 거니까. 그런데 너 엄청 세더군. 어떻게 한지도 모르겠더라구. 자, 저 자리로 가지. 내가 술 한잔 살 테니까…”
이드는 그 덩치가 앉았던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덩치에게 시선을 옮기며 답했다.
“저~ 나는 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니 왜?”
“글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맥주라면 조금 하지만….”
“그 정도면 됐어. 어서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거의 이드를 끌고 가는 듯한 덩치는 이드를 앉히고는 친구들을 소개했다. 그들은 모두 2남 1녀로서 덩치까지 합치면 4명 모두 용병이란다.
“나는 라울 페리온스, 그리고 이 녀석은 그렌플. 성은 없어. 그리고 이 녀석은 트루닐. 그리고 우리 동료 중 유일한 여성인 라미 일린시르. 지금은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중이지.”
“나는 이드. 그냥 이드라고 부르면 돼…”
“그래? 그런데 너 마법사냐? 아까 어떻게 한 거야?”
덩치 라울의 물음에 그의 동료들이 관심을 보였다.
“응? 그…거? 그러니까……정령술이야..”
“응? 그럼 너 정령사였냐? 검도 차고 있잖아.”
“조금 쓸 줄 아니까요. 그리고 몸을 지키는데도 좋으니까 들고 다니는 거죠..”
이드의 말에 모두들 그런가 하는 듯하다. 모두 마법이나 정령술,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니 이렇게 말하더라도 별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들 어디서 오는 거예요?”
“우리? 우리야 뭐 그냥 떠돌아다니는 신세니까. 얼마 전에 아나크렌 제국의 구석에 몬스터가 자주 나타나서 그거 사냥하는 데 잠깐 갔다가 이제 일거리 찾아서 다시 돌아다니는 거지..”
‘아나크렌이라………………………………….’
“그럼 지금 아나크렌 제국은 어떤데… 뭐 이상한 건 없어요?”
“이상한 거? 글쎄, 나는 잘….”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그렌플이라는 사내가 말을 받았다.
“난 약간 들은 게 있지.”
“그래, 어떤 건데?”
“뭐, 확실한 건 아닌데… 아나크렌 제국에 내분이 있는 모양이야. 듣기로는 라스피로라는 공작이 반기를 드는 쪽의 중심이라고 하더군. 용병 친구에게 들은 거라 확실한지는 잘 모르겠어. 그리고 확실히 나도는 소문도 아니야. 그 친구도 그쪽으로 아는 녀석에게 들었다고 하더라고. 술김에 들었다고 하던데 말이야.”
‘라스피로 공작이라…’
“그런데 너는 그런 걸 왜 묻니?”
여성 용병이라는 라미가 이드에게 물어왔다.
“그거요? 좀 궁금해서요. 저도 그런 말을 얼핏 듣기는 했는데 사실인가 해서 한 번 물어본 거예요.”
“그래? 뭐, 상관없지. 우리야 그런 전쟁이라도 난다면 돈벌이가 되니까. 그런데 넌 뭐 하는 녀석이야?”
“뭐 하는 건 없어요. 일행이 있는데 같이 여행하고 있죠.”
“그래! 그럼 너 우리하고 다녀보지 않을래? 우리들 중에는 마법사나 정령술 그런 거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하하하, 저는 그런 거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그러냐? 그래도…”
“그럼 저는 이만 쉴게요. 음료 잘 마셨어요.”
그리고는 곧바로 방으로 올라가 버리는 이드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이드는 자신의 허리에 걸린 검을 풀어놓고 침대에 누웠다.
“라스피로 공작이라… 어떤 녀석이지? 내일 한 번 말해봐야겠군.”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귀에 스치는 바람의 정령들의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면서…….
다음날 일어난 이드는 카운터로 내려가 숙박비를 계산하고 바람의 꽃
으로 향했다.
여관의 식당에는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식당의 한쪽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잘 잤어요? 일리나, 하엘.”
“네. 이드는요?”
“좋은 아침이네요.”
이드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요? 아! 난 간단한 스프하고 담백한 스테이크, 과일즙 많이 뿌려서.”
“일란은 깨서 메모라이즈 중이고, 그 사제 분은 씻고 계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아직도 꿈나라구요.”
“그래요? 아침부터 할 게 있을 텐데 깨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엘이 빵을 뜯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님들이 앉으시고 난 다음 깨울 거라고 하셨어요.”
잠시 후, 이드가 나온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계단을 내려오는 일행이 있었다.
바로 그래이, 일란, 기사 등이었다.
“어? 이드, 너도 벌써 와 있었냐?”
“그럼. 내가 너처럼 잠꾸러기인 줄 아냐? 빨리 와, 앉아.”
그런 후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각자 할 일로 흩어졌다.
“빨리 끝내고 오십시오.”
일란의 말을 들으며 각자 맡은 것을 사기 위해 나갔다. 그중에 그래이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했지만, 지가 어떻게 하엘을 이기겠는가…..
‘저 녀석 결혼하면 꼼짝도 못하고 살겠군…’
이드는 그래이를 바라본 감상이었다.
이 세계의 사제들은 결혼하는 것을 금하지는 않는다. 물론 몇 가지 종교는 금하기는 하나 그렇게 심하게 규제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남은 이드와 일란, 라인델프는 한자리에 앉아 술을 시켰다.
식사할 때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지 각각 마시는 술이 달랐다.
라인델프는 맥주, 일란은 포도주, 그리고 이드는 달콤한 과일주였다.
이드는 달콤한 과일주를 한 모금 마시며 어제 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란… 제가 어제 들은 이야기인데요. 아나크렌 제국에 반기가 일기는 하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그 반기의 중심에 라스피로 공작이라는 작자가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확실한 정보는 아니에요. 용병에게 들었는데 그도 술 취한 어떤 친구에게서 들었다고 하더군요. 라스피로… 그런 사람 알아요?”
“라스피로라… 들어본 것도 같아. 공작이라는 계급이니…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요 얼마 간 거의 정치에는 나서지 않았다고 하더군.”
맥주를 마시고 있던 라인델프가 그 말을 듣고 잘못 들은 거 아니냐고 한마디했다.
“아니요. 라인델프. 어쩌면 이걸 준비하느라 조용했는지 모르잖아요.”
“글쎄, 모르겠군. 이드. 그에 대해서는 왕자나 기사들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어. 우리들이야 워낙 시골구석에 살던 사람들이라 그런 일에는 잘 신경 쓰질 않아…”
“그렇군요. 저번에 말하기를 영지와도 한참 떨어져 있다고 하셨죠.”
“그래. 외진 곳이기는 하지만 조용하고 좋은 곳이지. 사람들이 많은 곳과는 틀리지.”
“음~ 그 말 대충 이해하죠…”
그렇게 셋이서 술 한 잔씩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임무(?)를 뛰고 나갔던 이들이 돌아왔다.
이보는데 2시간 정도 걸린 셈이었다. 그리고 그래이는 예상대로 모든 짐을 혼자서 다 짊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