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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80화


그러고도 이야기가 잘도 오간 것을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디처들과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마을을 나선 이드들은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느긋하게 산책하듯이 걸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자신과 제이나노의 짐을 라미아에게 건네고 제이나노를 안아든 채 부운귀령보로 날듯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이드의 앞으로는 라미아가 방향을 잡아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둘의 속도는 어제처럼 빠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전날과는 달리 하루 종일 달려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턱대고 최대의 속력을 낼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목표한 곳까지 같은 속도로 달리기 위해선 힘의 분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리를 생각지 않고 무턱대고 내공을 끌어올려 상승의 경공을 펼치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 지쳐 버리게 된다.

물론 드래곤 하트를 가진 이드와 라미아로선 별달리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어라고 달릴 필요는 없다. 더구나 그들 사이엔 그 엄청난 속도감을 견디지 못할 평범한 사제가 끼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조절한 것임에도 이드와 라미아의 움직임은 여전히 빠르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 정도의 속도만 유지되더라도 쉽게 오늘 노숙할 곳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이런 속도라면 하거스가 말했던 중간중간 나온다는 몬스터와 마주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일이 없었다면 말이다.

“우욱…. 우웨에에엑….. 으~ 뱃속이 다 뒤집어지는 느낌이야… 으윽.. 커억….”

“하아~ 이것 참. 어때? 다 토하고 나니까 좀 괜찮아?”

“으으… 말시키지 마….요.”

이드는 라미아와 함께 멀찍이 서서 토악질을 해 대는 제이나노를 보며 불쌍하다는 듯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듬직한 나무 둥치를 부여잡고 콧물, 눈물 흘려가며 헤롱거리는 모습이 너무 안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무 둥치를 부여잡고 뱃속과 씨름하길 십여 분. 겨우 속을 진정시킨 제이나노에게 물의 하급정령인 운디네를 불러 준 이드는 땅의 정령인 노움을 불러 제이나노가 만들어 놓은 토사물을 땅속으로 묻어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 운디네가 건네주는 물로 세수를 마치고 다가오는 제이나노를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꽤나 힘들었는지 힘이 쏙 빠진 듯한 모습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잠깐 고생하더니…. 꼴이 말이 아니네. 그러저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멀미라니….”

이드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이나노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들이 출발한 지는 한 시간. 경공을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점점 안색이 나빠지던 제이나노가 기어이 참지 못하고 일을 벌인 것이다.

처음 그의 반응에 이드는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경공을 펼치는 사람에게 안겨서 멀미를 일으켰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드가 펼쳤던 경공은 큰 진동이나 움직임이 없는 상승의 부운귀령보. 그런데 멀미라니.

신법이란 걸 들어보지도 못한 그레센의 일리나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뭐, 종족이 달라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긴 하지만….

특히 더 이상한 건 전날 이드가 그를 안고 경공을 펼쳤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경공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었는데….

이드는 라미아로부터 간단한 회복마법을 받고 있는 제이나노를 보며 자신이 세운 계획이 삐딱하게 어긋나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그 사이 회복마법이 효과가 있었던지 제이나노가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라미아와 이드를 바라보았다.

“흠, 흠… 미안해요. 저도 이렇게 갑자기 멀미가 나리라곤… 하지만 눈앞으로 또 발밑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리는 게…. 참아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배를 타고도 멀미란 걸 한 적이 없었는데….”

정말 스스로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이나노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이드가 아니었다. 잘못하다간 미랜드 숲까지 경공을 펼치지 못한 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제는? 어제는 괜찮았잖아. 그땐 지금보다 더 빨랐었는데….”

이드가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나 그것이 궁금하긴 그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막힘 없는 수다로 라미아와 이드를 몰아세운 그 제이나노가 말이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라미아가 살짝 다가와 이드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이드님, 이러지 말고 다시 한번 경공을 펼쳐 보는 건 어때요? 회복마법도 걸었겠다. 혹시 알아요? 이번엔 괜찮을지.”

이드는 그녀의 말이 괜찮다 싶었는지 어떠냐는 시선으로 제이나노를 바라보았다.

이드의 시선에, 아니 이미 라미아의 말을 듣고서부터 제이나노의 얼굴이 다시 푸르죽죽해졌다.

정작 당하는 당사자 입장인 제이나노로서는 다시 한번 뱃속이 몽땅 뒤집히는 경험은 사양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문제의 원인은 자신. 싫은 표정은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그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삼십 분 후. 제이나노는 또 하나의 나무를 부여잡고 이제는 올라올 것도 없는 뱃속을 다시 한번 뒤집어야 했다.

“아우… 이거, 이거…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계획을 다시 짜야 되는 건가.”

이번에도 멀찍이 서서 고생하고 있는 제이나노를 바라보며 이드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확실히 경공을 이용한 이동 계획은 제이나노의 멀미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라미아의 생각은 이드와는 조금 다른지 아까와 마찬가지로 경공을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내놓았다.

그녀로서는 미랜드 숲까지 도착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늘어나는 노숙 일자를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그녀도 딱딱한 땅바닥에 등을 대고 자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특히 그녀 역시도 얼마 전까지 검이었다곤 하지만 엄연한 여성. 딱딱한 땅바닥보다는 편안한 침대를 그리고 따뜻한 목욕물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의견은 이드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녀가 내놓은 방법이란 바로 슬립마법과 수혈(睡穴)을 짚어 제이나노를 재워 버리자는 것이었다. 잠자고 있는 상태라면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제이나노의 손이 바르르 떨린 것을 두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이어지는 이드의 반대에 가만히 사그러들었다.

수혈을 짚는 것이나 마법을 거는 것이나 강제로 잠이 들게 하는 것이기에 몸에 무리가 간다며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 번이라면 모르지만 며칠 동안 걸리는 거리를 계속해서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럼, 숲까지 쭉 걸어서만 갈 생각이에요?”

라미아가 투덜거렸다.

“별수 없잖아. 제이나노도 삼십 분 정도는 괜찮은 것 같으니까 중간중간 삼십 분 정도씩 경공을 펼칠 생각이야. 아마…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세 배 정도 더 걸리겠지만… 그게 어디냐. 자, 그만하고 빨리 가자. 빨리 움직여야 노숙할 만한 장소라도 찾을 수 있지.”

이어진 이드의 말에 라미아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어찌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둘의 발걸음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탁한 목소리에 다시 한번 멈춰져야만 했다.

“이, 이봐요. 나도…. 으윽… 있다구요. 그렇게 둘이서만 가지 말아요. 그리고 그전에…. 아까처럼 물의 정령 좀 불러줘요…”

타다닥…. 화라락…..

아직 해가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초저녁. 이드와 라미아, 제이나노는 그런 태양과 서로 누가 더 붉은가를 겨루기라도 하듯이 자신을 붉게 불태우는 모닥불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 앉아 있었다.

그런 세 사람의 앞으로는 마을에서 준비해온 저녁거리가 놓여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은 한 시간쯤 전으로 허공을 날아가던 라미아가 발견한 곳이었다.

주위보다 약간 언덕진 이곳은 울창하진 않지만 보기 좋은 아담한 숲과 작은 개울을 가진, 그야말로 야영하기엔 더없이 좋은 최고의 조건들을 갖춘 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이드와 라미아는 좀 더 간다고 해서 이런 좋은 장소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을 한 것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릇을 깨끗이 비운 제이나노가 누구에게든지 모를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렇게 더운 날 하루가 지나서 상하지나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고기와 야채가 이렇게 싱싱하다니. 라미아양의 마법이란 건 대단하군요.”

오전에 두 번이나 속을 비웠던 때문인지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릇을 바라보던 제이나노가 라미아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라미아는 자신에게로 향하는 그의 시선에 방긋 웃어 보였다. 무엇에 관해서건 칭찬이란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었다.

“헤헷… 별거 아니에요. 여관에서 음식을 받았을 때 간단한 상태유지 마법을 건 것뿐인걸요. 웬만큼 마법을 한다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간단히 시전할 수 있는 마법이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마법을 접하긴 이번이 처음인걸요. 아~ 역시 동행하길 잘한 것 같아요. 앞으로 식사 때는 싱싱한 요리를 맛볼 수 있을 테죠.”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드는 그의 말에 고개를 슬쩍 돌리며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제이나노가 저렇게 라미아를 칭찬해 대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에게서 좋은 요리 솜씨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런 이유에서라면 빨리 꿈 깨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라미아의 과거가 검이었다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는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다. 덕분에 라미아가 사람으로 변한 후 라미아에게서 제대로 된 요리를 얻어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맛있는 요리를 기대하는 제이나노라니.

하지만 자신의 웃음소리에 멀뚱거리는 제이나노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지 않은 칭찬에 방글거리는 라미아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 전혀 실력 없는 라미아의 요리를 먹고 고생할 제이나노의 표정이 보고 싶다는 심술궂은 생각이기도 했다.

이드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노숙에 어울리지 않는 차까지 라미아에게서 건네받은 제이나노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엘프는 왜 찾고 있는 겁니까? 아무 이유 없이 찾고 있진 않을 거 아닙니까.”

어제 질문의 연장이었다.

그리고 그에 답하는 이드의 답은 너무 간단했다. 이미 전날 라미아와 의견을 나누며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고 제이나노에게 대충 이야기해 주자고 결론을 내렸었다.

어차피 같이 다니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기 때문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

“….”

“…. 뭘….. 물어볼 건데요?”

전혀 생각밖이었던 이드의 말에 잠시 굳어 있던 제이나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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