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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86화


하거스는 이드들에게 안전을 생각한 당부를 건네고는 큰 소리로 출발신호를 내렸다.

신호에 따라 상단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확실히 평야에서 보다 신중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드는 잠시 걷는 속도를 줄여 자연스럽게 뒤쪽의 상단에 합류했다. 하거스의 말에 따른 것이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위험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상대해준 하거스의 말을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였다. 이드와 라미아. 이미 몬스터라는 종(種)을 가지고서는 그 두 사람에게 위험이란 단어의 의미를 느끼게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차나 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산길은 멀리서 보았던 대로 상당히 잘 다듬어져 있었다. 이드와 라미아는 그런 도로 덕분에 별달리 삐걱대는 소리도 없이 앞으로 나가는 화물차를 슬쩍 바라보고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길의 한쪽은 웅장하고 박력 있게 솟은 자연의 석벽이 존재했고 그 반대편엔 울창하면서도 활기차고 아름다워 보이면서도 기운찬 모습의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말 몬스터만 나오지 않았다면 명산이라고 불러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 또 그 반대편에 솟은 석벽과 어울려 만들어지는 풍광은 사람들의 발길을 절로 잡아 끌듯했다.
정말 몬스터가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주위로 간간이 보이는 부러진 나무나 검게 그을린 나무, 또는 여기저기 새겨진 총알자국은 앞의 생각이 힘들 것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한다면 몬스터가 있는 지금이 이곳의 자연환경에 더욱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약 몬스터가 없어 사람들이 몰려온다면? 그때도 이런 자연의 광경 그대로를 즐길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엘프가 숲을 지나면 산새가 지저귀며 반기고, 사람이 숲을 지나면 초목이 부러져 길이 생긴다. 라는 그레센의 말대로 아마 뭔가 달라져도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없이 마냥 아름다운 경관에 푹 빠져 있는 이드와 라미아였다. 그런 두 사람에 반해 나머지 용병들과 상인들은 주위의 경관에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주위를 경계했다.
그들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기에 한시도 경계를 늦출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상황은 주의를 경계하는 용병과 상인들을 놀리라도 하는 듯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상단은 이 산자락을 따라 형성된 길의 반을 지나고 있었다.

“모두 그 자리에 정지. 길 앞으로 장애물 발견.”

“정지, 정지.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주위를 경계해.”

앞서 가던 하거스의 목소리에 상단과 함께 움직이던 책임자가 다시 한번 상단 주위의 호위무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의 말에 따라 용병 중 몇몇이 화물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서 주위를 살폈다.
그 사이 저 앞서 가고 있던 하거스가 돌아왔다. 그런 그의 얼굴엔 낭패한 표정이 역력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상단의 책임자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표정을 굳히며 앞으로 나서며 다가오는 하거스를 맞았다.

“무슨 일인가? 몬스터가 나타났나?”

“몬스터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보다 더 골치 아플지도 모르겠습니다.”

급한 물음에 하거스가 고개를 내 저었다. 그 모습에 상단 주위의 시선이 모두 하거스에게 몰렸다. 그들 역시 상황이 궁금했던 것이다.
맞은 일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는 일은 곧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일인 때문이었다.
하거스는 순식간에 자신에게 모여드는 대답을 재촉하는 시선에 길 앞에 벌어진 상황을 설명했다. 아니 설명이랄 것도 없었다.
길 앞의 상황은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길이 막혔습니다.”

“음?…. 길이 막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짐작도 못한 하거스의 말에 모두 얼굴 가득 궁금한 표정을 그려 넣었다. 그 사이 이드와 라미아, 그리고 제이나노는 어느새 그 상단 책임자의 바로 뒤쪽으로 다가와 하거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길이 막혔습니다. 길옆에 있는 석벽이 무너져서 길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습니다. 주위를 살펴봤는데, 여기저기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앞서 지나간 사람들과 몬스터 사이에 전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 그 무너진 석벽도 그들이 몬스터를 피하다 무너트린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상단 책임을 맞은 중년인의 얼굴위로 황당하다는 표정과 함께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원망의 표정이 떠올랐다.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미리 연락을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미리 대비라도 할 것인데…
하지만 그의 그런 화는 이어진 하거스의 말에 피시시 사그러 들 수밖에 없었다.

“주위 상황으로 봐서 아마 저 일이 있은지 하루 정도밖에 되지 않은것 같았습니다. 이미 저희가 마을을 출발한 우에 일어난 일이죠.”

“하아~ 그렇지 않아도 바쁜 상황에… 그래, 무너진걸 치우고 지나갈 수는 있겠나?”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여기 있는 용병들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 할 것 같습니다.”

하거스의 말에 화물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용병들 중 몇몇이 싫은 표정을 역력히 드러내 보였다. 저 말대로 라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막노동이란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래 걸리겠나? 오래 걸린다면, 지금 바로 말머리를 돌려서 평야에서 기다렸으면 하네 만.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이 좀 위험한 곳인가.”

“아니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충 따져봐도 두 세시간 후면 길이 열릴 겁니다. 말머리를 돌린다 해도 평야로 나가기 전에 길이 열리는 셈이죠.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길이 열리는 즉시 출발하는 쪽이 더 낳을 테죠.”

하거스의 상황 설명에 상단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거스의 말대로 였다. 두 세 시간만에 길이 열린다면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가 하거스의 말에 동의하자 상단은 하거스의 지휘에 다시 출발해 석벽이 무너진 곳 근처로 움직였다. 용병들과 멀리 떨어질수록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무너진 부분은 생각 외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 벽이 돌로 이루어진 만큼 길을 막고 있는 것은 큼직큼직한 바위들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한쪽에서만 봐서는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규모를 확인한 상단 책임자는 잠시 굳어지더니 하거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의 얼굴엔 정말 시간내에 치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정도 규모라면 중장비를 이용할 수 있었던 때에도 하루 이상은 충분히 걸릴 불량이었던 것이다.

“…. 정말 세 시간 안에 해결되겠나?”

“하하… 걱정 마십시오. 뭘 걱정하시는 지는 충분히 알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의 실력이 어디 보통 실력입니까?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호언장담하는 하거스의 말에 상단 책임자도 수긍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온 상인들과 함께 화물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빠지자 하거스는 멀뚱이 서있는 용병 몇 명을 지목해 뽑았다. 뽑힌 사람들은 하나같이 덩치가 좋은 것이 상단의 용병 중 상당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같은 용병으로서 그들의 실력을 잘 아는 하거스는 그들로 하여금 앞에 있는 바위들 중 그 크기가 큰 것을 잘게 부수게 할 생각이었다. 곧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무너진 석벽 주위는 바위가 부숴 지는 쾅쾅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쿵쾅거리는 소리에 맞춰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돌덩이와 흙덩이를 라미아와 함께 바라보고 있던 이드는 옆에 서있는 하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현재 감독이라는 명분으로 이드 옆에서 느긋하게 팔짱을 끼고 작업하는 걸 구경 중이었다.

“근데… 저렇게 시끄럽게 해대면 몬스터들이 꼬일 텐 데요.”

“아, 아… 상관없어. 어차피 이곳이 막힌걸 아는 놈들이야. 여기서 이렇게 시끄럽게 하지 않아도 이곳에서 습격을 할 놈들이지. 지금까지 상대해본 바로는 그 정도 머리는 있으니까. 아마 조만간에 습격이 있을 거야.”

“……….”

이드의 말에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답하는 하거스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용병들은 질색하는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주위경계에 나섰다. 과연 하거스의 말 대로라면 어디서 튀어나와도 튀어나올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상황파악하나는 정확한 사람이었다
하거스를 그렇게 생각하던 이드의 팔을 라미아가 톡톡 두드렸다. 그런 라미아의 얼굴엔 약간 심심하단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드님, 저희가 저걸 처리하면 어때요? 괜히 여기서 시간을 보낼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끄덕끄덕. 사람들을 놀래킬 재미난 장난거릴 찾은 아이의 모습으로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있잖아요. 그레센에서 이드님이 잠깐 용병 일을 했을 때. 그때 카논의 병사들을 상대로 메이라라는 여자애와 같이 썼던 수법 말예요. 그 애는 마법으로, 이드님은 정령으로 그들을 한꺼번에 날려 버렸잖아요.”

라미아의 말과 함께 순간 이드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영상이 있었다. 고운 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허공에 떠올라 허우적대는 사람들과 정령의 바람에 휩쓸려 까마득히 날아가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순식간에 막힌 길 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메이라와는 격이 다른 라미아의 마법실력이라면 눈앞의 모든 바위를 들어올리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곧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내 저었다. 이드의 대답에 라미아는 금새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이드를 톡 쏘아댔다.

“왜요? 안그러면 오늘도 밖에서 노숙하게 되잖아요.”

이드는 투덜대는 라미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주며 산의 한쪽, 나무는 없지만 완만하게 등선이 진 곳을 눈짓해 보였다.

“나는 오늘 노숙보다 오엘양의 실력을 확인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이드의 행동에 뭔가를 눈치 챈 듯 이드가 바라봤던 곳을 바라보며 가만히 살피던 라미아가 뭔가를 알아낸 듯 샐쭉이 이드를 바라보았다.

“흐음… 심술쟁이. 저 정도면 상단이나 용병들에게 별다른 피해가 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걸 혼자만 알고 있다니…”

“네 말대로 위험하지 않을 정도니까. 게다가 그런 말하는 너는 왜 알리지 않고 소근거릴까…헤헷….”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을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눈꼴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보던 제이나노가 막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였다.
챙 하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한 용병의 고함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의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왔어. 못생긴 놈들이 몰려왔다. 전부 싸울 준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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