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87화
“왔어. 놈들이 몰려왔어. 전부 싸울 준비해!”
그의 말에 시끄럽게 쾅쾅거리던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대신하는 하거스의 고함소리가 들려와 용병들을 움직였다.
“작업중지. 모두 화물과 상인들을 보호한다. 파웰씨, 상인분들과 함께 화물차 옆으로 피하십오.”
“아, 알았소. 모두 저리로 피하십시다.”
상단 책임자 파웰이 하거스의 명령에 가까운 말에 다른 상인들과 함께 급히 화물차 옆으로 다가왔다.
모두 다급하긴 하지만 당황하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 제법 이런 상황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화물 옆에 도착하자 가까이 지키고 있던 용병들이 그 주위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들 주위를 다시 바위를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던 뛰어난 실력의 용병들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고 늘어섰다.
그리고 그런 모든 사람들의 앞으로 피렌셔를 제외한 하거스를 비롯한 나머지 디처의 팀원들이 서 있었다.
이틀 동안 동행하며 들었던 대로라면 피렌셔가 빠진 이유는 그가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사람보다는 좋지만 용병으로선 별달리 뛰어나다 할 수 없는 실력.
해서 그는 정확한 단검 실력으로 후방에서 지원하거나 주로 머리를 쓰는 일을 한다고 했었다.
이번에 뒤로 한 발짝 물러선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디처의 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이드와 라미아도 바쁘게 움직이는 용병들을 잠시 바라보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같이 서있던 제이나노를 제일 안쪽에 모여있는 상인들 사이로 밀어 넣고 자신들은 그 앞에 서있는 용병들 사이로 끼어 들었다.
용병들은 두 사람의 그런 행동에 그들을 한번 일별한 후 별말 없이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개중엔 걱정스런 표정으로 뒤로 빠지라고 하는 사람이 몇 있긴 했지만 대부분의 용병들이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이드와 라미아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이드와 라미아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는 디처의 리더인 하거스의 두 사람에 대한 실력평가를 말이다.
이쪽에서 전투 준비를 완전히 끝마칠 때쯤 자신들이 들킨 것을 눈치 챈 몬스터들이 사나운 인상으로 그르르륵거리며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하늘을 바라보는 돼지 코의 오크 일곱 마리와 초록색의 파충류와 같은 피부에 오크 세 배에 달하는 크기의 트롤 세 마리였다.
전력 상 많은 수는 아니지만 엄청난 재생력과 힘을 자랑하는 트롤이 세 마리나 끼어있는 덕분에 용병들 주위엔 자연스레 긴장감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 긴장감이 흐르다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이드와 라미아 앞에서 였다.
긴장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두 사람으로선 지금의 분위기에 같이 긴장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은 공격할 능력 없는 강아지를 앞에 두고 긴장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 앞에 있는 것은 강아지보다 훨씬 못생겼고 귀엽지도 않은 몬스터이긴 하지만 말이다.
‘흐음…. 그런데 말이야. 라미아, 저 녀석들이 저렇게 팀을 짜서 공격했었던가? 난 오크하고 트롤이 같이 다니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오크와 함께 있는 트롤의 모습에 이드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라미아에게 물었다.
그레센에서 이미 몬스터를 꽤 보았고, 싸워도 봤던 이드였지만 저렇게 다른 몬스터끼리 팀을 짜서 공격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흔치는 않은 일이긴 하지만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에요. 특히 이곳처럼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가 다수 서식하는 곳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죠. 저 녀석들도 어느 정도의 지능이 있는 만큼 자신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자신들보다 강한 몬스터와 같이 활동하는 거죠. 대신 공격해서 건진 것들은 트롤들이 더 많이 가지게 되겠지만 말이에요. 아마, 이드님이 일리나와 함께 라일로 시드가님의 레어를 찾기 위해 산맥을 좀 더 헤매고 다녔다면 볼 수도 있었던 광경이죠.’
이드는 이어진 라미아의 설명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럴 수 있을 만큼 이 산에 몬스터가 많다는 설명에 그저 경치만 좋게만 볼 산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이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네 명의 디처 팀원들과 십여 명의 용병들이 몬스터들을 향해 뛰쳐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들로부터 기합과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드는 그 중 디처 팀원들을 찾았다.
그들과 함께 달려나간 오엘의 실력을 보기 위해서 였다.
디처의 팀원들은 오크를 다른 용병들에게 넘기고 트롤들만을 상대하고 있었다.
삼 대 사. 디처가 한 명이 많은 상황이긴 했지만 그들은 전혀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디처의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트롤 역시 호락호락한 몬스터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질긴 재생력과 힘은 그레센의 웬만한 기사라 해도 힘에 부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밀리지도 않는 것을 보면 그들의 실력이 확실히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오엘은 청령신한공의 무공으로 혼자서 한 마리의 트롤을 상대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한 힘이 실린 공격을 유연하게 넘겨버리는 보법과 그로 인해 생긴 허점을 깊게 베어내는 검법은 트롤의 힘과 재생력을 쓸모없게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트롤을 공격해 들어가는 초식 뒤에서 화물을 지키고 있는 용병들로 하여금 ‘과연 얼음공주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만큼 화려하고 정확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는 달리 오엘을 바라보는 이드의 표정엔 불만과 아쉬움이 하나 가득 떠올라 있었다.
청령신한공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저 실력만으로도 뛰어나다 하겠지만 청령신한공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드가 보기엔 지금 오엘의 공격은 본래 청령신한공의 위력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는 그저 그런 수법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청령신한공을 익히고 펼쳐내는 무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특히 중간중간 보이는 저 의미 모를 동작은 뭐란 말인가.
옥빙누이의 손을 거친 청령신한공을 저렇게밖에 펼치지 못하는 오엘의 모습은 잔뜩 기대하고 있던 이드로 하여금 짜증스럽게까지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드의 모습에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라미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안 좋은가요? 오엘 씨의 실력이?”
라미아의 질문에 점점 커져 가던 불만이 탈출구를 찾은 듯 이드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실력? 저건 실력이라고 부를 것도 못 돼. 저렇게밖에 못 할 거면 도대체 청령신한공을 왜 익힌 거야? 그 이름에 먹칠하기 위해서? 아님, 자신의 재능이 형편없다는 걸 자랑하려고?
자신이 익히지 못 할 것 같으면 다른 사람에게 넘기든지. 도대체 저게 뭐야!!! 정말 선대의 전수자들이 봤다면 통곡하겠다, 통곡하겠어.
도대체 저런 실력으로 청령신한심법은 어떻게 익힌 거야? 정말, 심법을 익힌 게 기적이다. 기적! 게다가 저렇게밖에 못 할 거면서 용병일을 한다고 설치긴 왜 설쳐?”
정말 평소의 이드라곤 생각되지 않는 거친 말투였다.
더구나 점점 높아져 가는 이드의 목소리에 주위의 시선을 생각한 라미아가 급히 사일런스의 효과가 있는 실드를 형성하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이미 용병들의 사나운 시선이 하나둘 이드에게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얼음공주로 불릴 만큼 용병들에게 인기가 좋은 오엘이었다.
그런 오엘을 저렇게 신나게 씹어대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 지금이 전투 중이 아니라면, 누군가 한방 날렸어도 벌써 주먹을 날렸을 만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아~…..”
라미아는 전투 후 있을 상황에 미리부터 나직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드야 다칠 일이 없겠지만 덤벼드는 용병들은 어떨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두 명은 저기 화물들과 함께 실려가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전투가 끝난 후에도 그녀가 걱정하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드 주위에 있던 용병들보다 오엘이 먼저 이드의 말에 따지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전투 중인 그녀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이드의 흥분된 목소리가 컸던 것이다.
“도대체 내가 왜 네 놈에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편인 오엘의 눈이 더욱 날카롭게 빛을 발하며 이드를 바라보았다.
이 모습이 정말 얼음공주의 진면목인 듯했다.
하지만 이드의 표정도 만만치 않았다.
그 예쁘장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불만 가득한 표정만이 남아 오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말했잖아. 당신이 청령신한공에 먹칠을 하고 있어서라고.”
오엘은 이드의 대답에 절로 검으로 향하는 손을 겨우 진정시키고 말을 바꿔 다시 물었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자신이 왜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아, 그럼 내가 도대체 어떻게 청령신한공을 잘못 익히고 있다는 거지? 난 이미 청령신한공 상의 무공을 반이나 익히고 있단 말이야. 네 녀석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전혀 없어.”
“호오~ 절반씩이나? 대단한데? 하지만 원숭이도 잘만 가르치면 그 정도는 가능하지. 개중에 특출난 놈들은 완전히 흉내내는 것도 가능할 거야.”
“이익….”
오엘은 자신의 말에 한심하다는 듯 답하는 이드의 말에 정말 검을 뽑고 싶어 졌다. 더구나 자신을 원숭이와 비교하다니… 그럼 자신이 모양만 흉내내는 원숭이란 말인가. 오엘은 이번에야말로 참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검을 뽑으려는 순간 그녀의 손을 눌러 저지하는 손이 있었다. 두툼하면서도 강인한 손의 주인은 하거스였다.
가만히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가 검을 뽑으려는 오엘의 모습에 직접 나선 것이다. 사실 그가 듣기에도 이드의 말은 심했다. 오엘의 검술이 자신이 보기에도 조금 허술해 보이긴 하지만 분명히 그냥 그런 검술은 아닌 듯했고, 실제 그녀의 실력 역시 트롤을 상대할 정도로 뛰어나다면 뛰어났다.
헌데 이 이드라는 소년은 그녀의 그런 실력을 확인하고도 그런 말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만한 실력이 있거나, 무언가 알고 있거나… 두 가지일 것이다. 어느 쪽이더라도 오엘이 검을 뽑아서 좋을 건 없었다.
“진정해라. 오엘, 그리고 자네도 말이 좀 심했어. 게다가 설명도 하지 않고 그렇게 비꼬기만 해서야… 우선 왜 그런지 설명부터 해 줘야 이쪽도 이해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하거스의 말에도 이드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라미아가 대신 나서기로 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저 오엘이 검을 뽑아 들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여기 이드님이 화를 내시는 건 이드님 말 그대로예요. 오엘씨가 청령신한공을 제대로 익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 말은 아까도 들었지. 하지만 뭐가 부족하단 말인가? 내가 보기엔 이 정도도 상당한 실력 같은데… 물론 몇 가지 결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경험 부족일 뿐이지 않은가.”
“그건 청령신한공에 대해 하거스씨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럼, 내가 청령신한공에 대해 알면….. 나도 저 이드군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이 말인가?”
하거스는 그렇게 말하며 이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생각대로 두 사람은 오엘이 익히고 있는 청령신한공이란 무공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익히고 있는 오엘 그녀보다 더욱 자세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라미아의 말대로라면 청령신한공이란 무공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무공일지도 몰랐다.
하거스가 그런 결론을 내리는 사이 가만히 있던 이드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듯이 오엘이 익힌 청령신한공은 원숭이 흉내내기일 뿐이란 말이죠. 그래도 인간이라고 심법은 어떻게 익혀 내력을 사용하는 모양인데, 그 외의 것은 말 그대로 흉내내기입니다. 더구나 그 흉내내기도 시원찮아서 중간중간 어이없는 허점을 보이기도 하고 필요 없는 동작도 내 보이고 있죠. 그런데 고작 그런 실력을 가지고 용병일을 하고 있으니….. 대체 뭐가 그리 급해서 벌써 검을 들고나선 건지 이해가 가지 않네요.”
“하지만 그걸 가지고 그렇게 심하게 말하는 건 좀 심했어.”
저쪽에서 울그락 붉으락 얼굴을 붉히고 있는 오엘을 생각해 나무라듯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이드의 말에 그는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제 누님이 익혔던 무공입니다. 하거스씨도 아실지 모르지만, 무림에선 무공이란 것을 특별히 생각합니다. 선대의 무공을 찾아 익혔다는 것만으로도 생판 모르는 사람을 자파의 웃어른으로 모실 정도죠. 좀 더 따지고 들면 오엘씨는 제 누님의 제자…. 정도로 봐도 될 겁니다.
그런 오엘씨가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는 건 누님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이죠. 그리고 그런 상황이니… 누님의 동생인 제가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죠. 오엘씨를 누님의 제자로 본다면, 전 그녀의 사숙 뻘이 되니까요.”
“……”
확실히 이드의 말대로 옛날 중국의 무림이란 곳에서 그랬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그들의 전통이다.
하지만 하거스가 그렇게 생각하는 반면 오엘의 생각은 전혀 그렇지 못한 듯했다. 그녀의 얼굴은 더욱더 붉어지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상대는 스스로 자신의 웃어른에 사숙을 자처하고 있지 않은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보다도 어린 네가 사숙? 웃기지 마! 게다가 청령신한공을 익히지도 못한 네가 내가 똑바로 익히는지 못 익히는지 어떻게 알아.”
오엘이 씩씩대며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이번엔 하거스도 나서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전적으로 이드의 말이 맞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오엘에게 나쁘긴커녕 좋은 쪽으로 작용할 듯했기에 조용히 뒤로 빠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저렇게 씩씩대는 오엘을 이드가 어떻게 제압할지 궁금하기도 한 하거스였다.
“호~ 그럼 내가 청령신한공을 제대로 익히고 있다면 널 어떻게 평가하던지 그에 따른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