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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89화


그런 덕분에 이드와 용병들은 라미아의 바램대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그 후로 이드는 상단과 함께 움직이며 틈나는 데로 오엘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를 수련시켰다.

간단한 체력 훈련에서부터 보법을 생활화하는 것, 강호에 산재한 간단하면서도 기초적인 검식의 반복, 그리고 며칠 만에 하나씩 던져주는 청령신한공의 무공 한 초식 한 초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많은 변초에 대한 활용.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내공을 수련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까지. 완전히 저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이미 그녀가 거쳐온 것이기에 쉽게 끝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던 도중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녀가 천으로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던 검에 대한 것이었다.

정말 검을 알았다고 할 경지가 되지 않는 한 자신의 손에 익은 검 단 한 자루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오엘에게 설명하던 이드는 그녀가 현재 쓰고 있는 검과 천에 둘둘 말아 들고 다니는 검 두 자루의 연원에 대해 물었다.

신한검령검법이 쌍검을 쓰는 검법도 아니고 아직 오엘이 검을 가리지 않는 경지에 든 것도 아닌 이상, 두 자루의 검 중 하나만을 택해 손에 완전히 익혔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이드의 말에 따라 천에서 풀려난 검을 처음 본 순간, 이드는 다시금 놀란 신음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내보인 검. 그것은 다름 아닌 옥빙누이가 쓰던 소호(所湖)라는 검이기 때문이었다.

비록 신검이나 보검 축에 들진 못했지만 그 풍기는 예기(銳氣)와 기운이 범상치 않아, 당시 평범한 청강검을 사용하던 옥빙누이에게 남궁체란이 의자매가 된 정표라며 선물한 검이었다.

확실히 평범한 검은 아니었는지, 몇 백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 풍기는 예기와 기운이 조금도 줄지 않은 소호를 매만지던 이드는 오엘에게 소호검을 천에 싸 들고 다니는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대답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소호를 천에 싸 들고 다닌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위기 상황을 대비해서라고 했다.

확실히 소호의 예기라면 웬만한 상황하에선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검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대단하다 할 만한 소호 때문에 일어날 사소하다면 사소할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좌우간 그렇게 모습을 보인 소호는 그때부터 태양 아래 자신의 몸을 드러낼 수 있었고, 오엘은 소호를 손에 익히기 위해 며칠간 소호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아야 했다.

그리고 원래 쓰던 검은 이드가 파기하려다, 아직 그 상태가 괜찮다 생각했는지 라미아에게 호신용으로 건네어졌다.

그렇게 며칠간 나름대로 시끌벅적하고 즐겁게 상단과 동행한 세 사람은 드디어 목적한 미랜드 숲이 멀리 보이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상단이 따라가는 길은 미랜드 숲을 비켜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는 이곳에서 갈라져야 했다.

또한 오엘이 실제로 디처팀에서 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며칠간이긴 했지만 동행했던 사람들, 특히 디처의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중 제이나노는 자신의 수다를 받아주던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이유인지, 아니면 다시 침묵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인지 필요 이상으로 그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요란했는지 정작 가장 아쉬워해야 할 오엘조차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정도였다.

이드와 라미아, 제이나노 그리고 새롭게 일행이 된 오엘은 떠나가는 상단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미랜드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큰 숲을 찾아오긴 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한눈에 다 담지 못할 정도로 꽉 차오는 숲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빽빽하게 들어선 큼직한 나무들과 원래의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초록색으로 물든 대지.

그리고 그런 큰 숲을 감싸 안는 형상으로 숲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하고 화려해 보이는 산의 모습.

정말 뭐가 있어도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분위기를 내보이는 숲의 모습에 이드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 더 이상 다른 숲을 찾을 필요는 없겠는걸. 이런 숲에 ‘그들’이 없다면 다른 어디에도 없을 것 같으니까 말이야.”

“확실히 ‘있어’ 보이는 분위기의 숲이네요.”

이드의 말에 입이 심심했는지 제이나노가 재빠르게 대답했다.

사실 그런 생각은 여기 있는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말에 그들의 뒤에서 라미아와 함께 걷던 오엘은 궁금한 표정으로 뭔가 물으려다 움찔하고는 라미아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며칠간 수련을 받고 또한 그때마다 꼬박꼬박 사숙이라고 존대를 하기 했지만….

아직은 그런 것이 불편한 그녀였기에 이드보다 편한 라미아에게 고개가 돌려진 것이었다.

“저기, 저 사숙…. 께서 말씀하시는 ‘그들’이란 게 누구죠? 얼마 전부터 저기 제이나노란 분에게 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숙… 께선 누굴 찾고 있는 듯하던데 말이죠.”

아직은 사숙이란 말이 입에선 그녀의 말에 라미아는 예쁘게 웃어 보이며 눈앞을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숲을 가리켜 보였다.

“글쎄…. 누굴까요? 하나가 아니라, 그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고 숲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퀴즈를 내는 듯한 라미아의 말에 오엘은 두 눈을 또로록 굴렸다. 하지만 제법 머리가 좋은 그녀였기에 곧 답을 얻었는지 라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답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이 구한 답을 말했다.

“…. 설마…. 엘프?”

“딩동댕!”

“마, 말도 안 돼. 봉인이 깨어진 지 이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엘프나 드워프 같은 유사인족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구요.”

“헤헷…. 제이나노와 같은 말을 하네. 하지만 찾을 수 있어. 우리도 무턱대고 찾아 나선 건 아니거든.”

오엘은 묘하게 확신에 찬 라미아의 대답에 뭐라 더 말하지도 못하고 앞서가는 두 사람과 그 앞으로 보이는 거대한 미랜드 숲을 바라보았다.

‘수련이고 뭐고…. 나 혹시 이상한 여행에 끼어든 게 아닐까?’

정말 헤어진 지 삼십 분도 채 되지 않는 디처의 팀원들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딴생각을 하다 문득 정신을 차린 오엘은 저 앞에 가고 있는 라미아의 모습에 급히 걸음을 옮겼다.

오엘은 빠르게 라미아에게 다가가며 방금 했던 생각을 지워 버렸다. 이상한 여행이든 힘든 여행이든 어차피 시작한 여행이고 무공에 대한 올바른 수련을 할 수 있다. 그거면 된 것이다.

오엘이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는 사이 이드를 선두로 한 네 명의 일행은 어느새 미랜드 숲의 외곽 부분에 이르러 있었다.

눈앞에 서 본 숲은 멀리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멀리서 볼 때는 한 치의 틈도 없이 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듯했지만,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이좋게 나뭇가지를 걸치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 빽빽해 보였던 것은 아마 이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숲이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자연의 신비인지 겹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절묘하게 비집고 쏟아져 내리는 햇살 덕분에 전혀 어둡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을 잠시 정신없이 바라보던 네 사람은 이드의 말에 따라 숲의 외곽 부분에 야영하기로 하고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해는 한쪽으로 기울어 저녁 시간이 가까웠음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드와 라미아, 단 두 사람이었다면 이곳에서 노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곧장 숲으로 들어가 탐지 마법 내지는 모종의 방법으로 엘프를 찾아 그곳에서 쉬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원래 예정에 없던 동행 둘 때문이었다.

만약 이 두 사람 앞에서 그런 마법을 썼다간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플 뿐이다.

물론 탐지 마법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 탐지 영역이 문제인 것이다. 어떤 인간의 마법사가 이 넓고 거대한 숲은 한 번에 탐지해 내겠는가. 그것도 나름대로 그런 마법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을 엘프들을 말이다.

‘쳇, 그럼 뭐야. 내일 숲에 들어가더라도 한 번에 탐지 마법으로 찾아내는 짓은 못하는 거잖아.’

꼭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엘프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니, 찾는다기보다는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탐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고 평화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방법은…..

“글쎄…. 찾게 되더라도 반감이 상당할 텐데….”

이드가 내일 일을 생각하는 사이 저녁 준비가 끝났는지 라미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이드는 마지막 돌을 옮겨두고 몸을 돌렸다. 밤의 편한 잠을 위해 구궁진을 설치한 것이다. 평소 이드의 행동대로 내일 직접 부딪히며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노숙의 특성상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눈을 뜬 일행은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숲으로 들어섰다.

아직 새벽이랄 수 있는 시간이라 숲 속의 공기는 상당히 차가웠고, 발에 걸리는 이름 모를 풀들과 나뭇잎들엔 맑은 이슬이 가득했다.

그러나 곧 태양이 달아오르자 이슬은 사르르 말라 버리고, 서늘하던 공기도 훈훈하고 상쾌하게 바뀌었다.

“자, 그럼 어떻게 찾을 생각인지 한번 들어볼까요?”

숲 속 깊이 들어왔다고 생각될 때쯤, 제이나노가 이드와 라미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두 사람이 워낙 자신했던 덕분에 제이나노의 눈은 대체 어떤 방법을 쓸까 하는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 좀 더 들어간 후에 말해주지. 이 미랜드 숲 중앙 부분까지는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거든.”

“에엣? 그럼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요?”

“괜찮아. 우리니까 그 정도만 들어가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이 숲 전체를 뒤지고 다녀야 할 걸. 그럼 슬슬 가보기로 하고….. 오엘?”

이드의 말에 미랜드 숲의 크기를 짐작하고 있던 오엘이 재깍 고개를 돌렸다.

“오엘은 조금 떨어져서 유한보로 나무를 스치듯이 지나가도록 해. 이렇게 나무가 많은 숲일수록 유한보를 다듬기엔 최적의 장소거든. 단 여기서 주의할 점은 멀리서 피하는 게 아니라, 나무가 앞으로 내민 팔꿈치 정도의 거리에 닿았을 때, 앞으로 내미는 발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에서 유연하게 바람이 스치듯 스쳐 지나가야 한다는 점이지. 그럼 시작해. 오엘.”

“하지만 사숙. 여기서부터 숲의 중앙부분까지 계속해서 유한보를 펼치는 건 무리예요.”

“아아, 걱정 마. 중간중간 가다가 쉴 테니까. 여기 제이나노도 쉬어야 하거든. 그리고 수련은 힘든 게 당연한 거야.”

그 말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이드의 모습을 뾰족히 바라보던 오엘은 곧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한보의 보법에 따라 세 사람과의 거리를 맞추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말 이드와 함께 다니고부터는 얼음공주에 걸맞지 않게 다양한 표정을 내보이는 오엘이었다.

이드는 등 뒤로 느껴지는 오엘의 움직임에 빙긋 만족스런 미소를 떠올렸다. 처음엔 너무 미숙하게 익히고 있는 청령신한공 때문에 화도 났지만, 그 후로 자신의 명령에 착실히 움직이며 수련하는 그녀의 행동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저번에 봤던 아나크렌에서 기사들을 수련시키는 방법과 비슷하네요.”

천천히 이드 옆으로 다가서며 라미아의 말이었다.

“뭐, 기초적인 수련이나 어딜 가든 크게 다를 것은 없으니까. 특히 순간적인 반응 속도와 보법을 익히는 데는 이런 수련이 제일이거든.”

“으음… 그런데… 엘프들을 찾을 방법은 생각해 봤어요?”

뒤에 있는 제이나노가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로 소근거리며 묻는 라미아의 말에 이드가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세 개 정도…. 하지만, 별로 좋은 방법들은 아니야.”

“뭔데요. 뭔데요.”

별로 자신 없는 표정을 한 이드의 말에도 라미아는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재촉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천천히 자신이 생각한 방법을 늘어놓았다. 물론 뒤에 오는 제이나노가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다.

우선 첫째 방법은 지금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외부인의 침입을 느끼고 다가올지도 모를 엘프를 기다리는 것이다. 숲의 중앙까지 가는 도중 한 명이라도 나타나 준다면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이드의 감각을 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그를 잡아 사정을 설명하고 찾아가면 된다. 느낌상 가장 마음에 드는 방법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으로, 하나는 저번 라일로 시드가 때와 같이 천마후의 방법으로 엄청난 소리로 그들을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나올지 의문이다.

“마지막 하나는….. 정말 내키지 않지만, 숲을 파괴하는 방법이 있지. 이리저리 부수다 보면 숲을 끔찍이 아끼는 그들인 만큼 뛰쳐나올 거야.”

정말 내키지 않는지 머리를 쓸어대며 인상을 구기는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정말…. 엘프를 아내로 둔 사람 맞아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숲을 파괴할 생각을 다하고….”

“그래서 제일 마지막으로 넣은 거야. 정 안 될 것 같으면….. 저 두 사람이 보던 말던 탐지 마법을 쓸 거고.”

사실 이드도 세 번째 방법은 생각만 했지 쓰고 싶지가 않았다. 엘프인 일리나도 문제지만 스스로 숲을 헤집는 건 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해서 불러낸 엘프들과 자연스레 대화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든 처음 방법대로 숲의 중앙으로 가는 사이 엘프 쪽에서 먼저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었다.

그러나 두 시간 후.

이드는 사방에서 자신들을 향해 활과 검, 그리고 마법을 겨누고 있는 십여 명의 엘프들의 모습에 조금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 하…. 나타나길 바라긴 했지만….. 이런 걸 바란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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