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68화
1503화
이드는 황녀의 질문에 내심 웃음을 삼켰다. 무엇이냐가 아니라, 먹는 거냐고 묻는다.
즉, 이미 먹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다.
“사탕입니다. 달콤하지요.”
“달콤해?”
“굉장히 달콤한 포도 맛입니다.”
“먹을래.”
평소 포도를 좋아하는 황녀는 달콤한 포도라는 말에 아무 의심 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포장지를 깠다.
“그런데 주변에서 낯선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말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런 거 몰라.”
순진하게 답하는 황녀다.
하긴 이 어린 황녀에게 누가 악심을 품을까. 또 황궁에서만 살아서 외부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황녀에겐 그다지 필요치 않은 교육이긴 했다.
“그럼, 이번에 잘 알아두세요. 낯선 사람이 주는 건 절대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알았어. 앞으론 아바마마께 물어볼게. 그러니까 이제 줘.”
“하핫, 여깄습니다.”
분명 알았다고 하면서 사탕을 달라고 재촉하는 황녀. 이드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손에 막대 사탕을 쥐여줬다.
“예쁘다.”
황녀는 알록달록한 사탕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달콤한 냄새를 참지 못하고 사탕을 입으로 가져갔다.
곁에 있던 유모는 이드가 등장한 그 순간부터 줄곧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드의 말처럼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건 먹지 못하게 해야 옳지만, 아무리 봐도 상대는 이 별궁에 머물고 있는 사신.
완전히 모르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귀한 손님이라고 윗선에서부터 강조한 인물. 그런 사신이 제국의 황녀에게 해코지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거기에 옆에는 황제의 시종까지 붙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행여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인 유모였다. 자신이 벌을 받는 것보다 더.
그러는 사이 유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탕을 입에 넣은 황녀는.
“아하하항!”
행복해했다.
혓바닥 위에서 녹아내리는 단맛에 놀란 두 눈은 반짝거리고, 새콤달콤한 냄새에 작은 코가 강아지처럼 움찔대는 중이다.
“더 드릴까요?”
“응! 더 먹을래!”
“대신 먹은 후에 꼭 양치질을 하셔야 합니다. 충치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이드는 막대 사탕을 꺼내주며 유모에게 당부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황녀는 건네받은 사탕을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는 듯 양손으로 꼭 움켜쥔다.
역시 아이들의 환심을 사는 데는 사탕이 최고다.
그렇게 사탕을 넘긴 이드가 황녀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런데 황녀께선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응? 핫!”
사탕의 달콤함에 목적을 잊고 있던 황녀가 화들짝 놀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황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공주 마법사, 응, 나 공주 마법사님을 찾으러 왔어.”
공주 마법사는 어떤 마법사일까.
“잘못 아신 것이 아닙니까? 저 별궁에 공주님은 없습니다.”
“아니야 있어. 오라버니가 봤대. 공주님처럼 엄청 예쁜 마법사가 별궁으로 가는 걸.”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하는 황녀. 그리고 공주 마법사는 진짜 공주가 아니라 예쁜 마법사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럼 황녀가 말하는 공주 마법사는 라미아를 말하는 거겠지?’
외모는 둘째치고, 일행 중 마법사처럼 보이는 사람은 라미아뿐이다. 그나저나 황궁에 들 때,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 황자도 끼어 있었던 모양이다.
“공주 마법사를 찾아서 어쩌시려고요?”
“내 스승님이 되어 달라고 할 거야.”
“오호.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발언이다. 단순 호기심인 줄 알았더니. 황녀에게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법사가 목표라면, 스승이 되실 분은 황궁 내에도 많을 텐데요.”
“틀려. 난 마법사가 아니라, 공주 마법사가 되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황궁 마법사들 중엔 공주 마법사가 없어.”
말인즉, 황궁 소속 마법사 중에는 공주 마법사로 불릴 정도로 예쁜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그나저나 마법사를 실력이 아니라, 외모로 나누다니.
“크흠.”
“풉! 커험!”
그에 시종과 시녀, 경비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해 난감해했다. 오직 유모만이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돌릴 뿐.
“……그거 참 슬픈 일이네요.”
이드도 묘한 기분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라미아와 비교된 황궁의 모든 여마법사들이 일순간 못난이가 된 까닭이었다. 남편으로서는 기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할까.
“응, 그래서 공주 마법사를 만나려고 왔어.”
“그런데 어쩌지요? 별궁에 있는 마법사는 황녀님의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황궁에서의 일이 다 끝나면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거든요.”
“괜찮아. 내가 부탁하면 내 스승님이 되어 줄 거야. 아바마마도 그랬는걸.”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말이 평소 황제가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잘 보여줬다. 하지만 황제라고 만능은 아니다.
라미아를 스승으로 만들어 달라니.
그건 신도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다. 오직 이드만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
황녀가 귀엽긴 하지만 그도 황녀를 위해 이 황궁에 머물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억지로 그런 사실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다. 대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이 어린 황녀와 잠시 어울려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황녀께서 직접 부탁해 보시죠.”
“그러고 싶지만, 유모가 별궁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
“제가 허락하면 괜찮을 겁니다.”
“정말이야? 유모.”
“네, 허락을 받은 후라면 괜찮습니다. 전하.”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유모의 시선 끝에는 새로운 시종 하나가 서 있었다. 이드를 안내하던 자와 마찬가지로 황제를 모시는 시종 중 하나였다. 이 소란을 전달받고 달려온 것이리라.
이제 황제의 허락도 얻었겠다. 이드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가실까요. 황녀 전하.”
“좋아요.”
황녀는 막대 사탕을 다른 손으로 옮겨 쥐고, 딴에는 우아하게 이드의 손을 잡는다. 그 뒤를 유모와 시종이 따랐다.
“흐흐흐흥! 흐흐흐흥!”
입은 달콤하고, 공주 마법사까지 만날 수 있게 되어 신이 나 콧노래를 부르는 황녀. 이드는 그녀를 조금 놀려주고 싶었다.
“기분 좋으십니까?”
“신나.”
“그런데 하나 명심하셔야 합니다. 혹 공주 마법사가 스승이 되기 싫다고 해도 떼를 쓰면 안 됩니다. 그러면 큰일나요.”
“어째서?”
“떼를 쓰면 공주 마법사가 화가 나서 저주를 내릴지도 모르거든요.”
“그대 말은 틀렸어. 공주 마법사는 흑마법사가 아니라서 저주는 할 줄 몰라.”
“어? 그런 겁니까?”
“당연하지. 그댄 그런 것도 몰라?”
“호오~ 처음 듣습니다. 그런 설정이 있었군요.”
마법사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원작이 그런 것일까. 묘하게 설정이 디테일 한 것 같다.
놀려주고 싶었는데, 실패다.
“그런데 그대는 누구야? 이런 멋진 사탕도 주고, 공주 마법사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혹시 공주 마법사의 동료야?” 아쉬워하는 이드를 올려다보며 묻는 황녀.
그에 이드는 다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동료보다 더 가까운 사람입니다.”
“친구?”
“공주 마법사의 남편이 바로 접니다.”
“엑! 거짓말! 공주 마법사는 결혼하지 않는단 말이야.”
벌써 독신이 유행인 걸까.
“어쩔 수 없게도 여기 공주 마법사는 결혼했습니다. 유부녀지요.”
“그럴 수가…….”
이게 뭐라고 굉장히 충격받은 얼굴로 입을 떡 벌리고 있는 황녀다.
이드는 이런 반응이 어쩐지 뿌듯해서 웃음이 났다.
이런 것이 여동생이나, 어린 조카만 보면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은 오빠나, 삼촌의 마음일까?
그러는 사이 별궁에 다 도착한 일행.
입구에서는 스폴이 나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나온 탓인지, 복장이 꽤 어수선했다. 거기에 은근히 이드를 쏘아보는 눈길이라니.
이 상황이 그 때문에 생긴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다. 아마 라미아가 말해 줬겠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서 오십시오. 소드 팰러스 사신단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스폴 세이벤이 황녀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반가워요. 스폴 경.”
그녀의 인사에 이드의 손을 놓고 제법 의젓하게 한쪽 손을 내미는 황녀였다. 스폴은 그 작은 손을 잡고 예를 올린 후 몸을 일으켰다.
“두 분 명예 후작 부인께서 황녀 전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
“고마워요.”
별궁의 구조에 익숙한 황녀가 방긋 웃으며 척척 앞서 걷는다.
그 사이 스폴이 이드 옆으로 붙어 서며 조용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예고도 없이 황녀를 데려오시면 어떡해요? 급하게 접객 준비하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모르시죠?”
“그렇다고 황녀를 별궁 앞에 그냥 세워둘 수도 없잖아.”
어차피 별궁으로 들어오려면 황녀를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 작고 귀여운 생물을 못 본 척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난 허락을 받았다고.”
아무렴, 주인의 허락도 없이 외부인을 별궁으로 데려올까.
상대가 아무리 아이라고 해도, 그건 편하게 쉬고 있을 일리나와 라미아에 실례인 행동이다.
이드는 생각이 든 순간 바로 부인들에게 의사를 묻고 허락을 받은 후에 동행을 입에 올린 것이다.
“전 허락한 적 없는데요.”
“…… 당연하지. 황녀가 만나고 싶은 건 공주 마법사인데, 스폴 경은 공주가 아니잖아.”
“왠지 기분 나쁜데요. 지금 그 말.”
여자의 본능인가.
공주라는 말이 미모를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면서도 예민하게 구는 스폴이다. 그러는 사이 일행이 접객실에 도착하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시녀들이 접객실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드러나는 환한 내부.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공주 마법사 라미아와 일리나.
어느새 갈아입었는지 편한 복장이 아닌, 각각 적과 녹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걸친 모습.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황녀가 입구에서 그대로 멈춰 버렸다.
놀라운 것을 본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입에서 반쯤 녹은 막대 사탕이 굴러떨어졌다. 황녀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동안 멍하니 있더니, 어렵게 다시 입을 열었다.
“공주 마법사만 아니고・・・・・・ 공주 기사님도 있었어?”
그런 황녀의 눈은 라미아와 일리나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