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14화


551화

“…..”

이드는 자신의 말에 무표정인 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마인드 마스터 마인드 마스터, 하더니 왜 조용하지?’

환호성을 바란 것은 아니다. 이드는 오히려 과도한 관심이 피곤한 사람이었다. 이미 중원과 옛 그레센, 그리고 한국에서 평균 이상의 관심과 환호를 받아 봤기 때문이었다.

경험자인 이드 개인의 생각으로는, 유명세란 있으면 가끔 편하게 써먹을 수 있지만 그보다 피곤하고 귀찮은 일이 더 많은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도 당연히 놀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라지 않으니 오히려 이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이드의 반응도 에단보다는 못했다.

“응? 왜・・・・・・ 안 놀라냐?”

에단은 결정적인 장면에서 다음 화로 넘어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바라보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는 당연히 그들이 이드의 말에 놀라서 기함할 거라고 확신했다. 천재적인 번뜩임으로 이드의 정체를 스스로 추리했을 때도 놀라서 가슴이 무너질 것 같았는데, 이것들은 심장에 강철 코팅을 한 것도 아닐 텐데 왜 놀라지 않는 것일까.

그때 케마란이 불퉁한 눈으로 에단을 노려보았다.

“너무하세요, 선배. 이 중요한 때에 이런 농담은 좀 아니라고 봐요.”

“노・・・・・・ 농담?”

에단의 입이 어이없다는 듯 쩍 벌어졌다.

“그럼 아니냐? 네가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거기 서서 대놓고 어디 한번 놀라 봐라! 하고 있는데 그걸 모르면 바보지. 그보다 마스터, 에단이 그렇게 부르니 저도 마스터라고 부르겠습니다. 마스터도 너무 가볍게 행동하시면 안 됩니다. 에단 저놈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데일리 경까지 내보낸 이 시점에서 그런 실없는 농담은 너무하십니다. 더구나 전 둘째 치고 여기 두 후배들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따르겠다고 나선 자리인데요.” 에단을 향해 눈을 부라리던 록이 이드를 보며 따졌다.

갑작스러운 화살에 이드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진실만 이야기한 자신이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크키키킥]

라미아의 입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라미아 우, 웃으면………… 쿡…………… 실례예요.”

일리나가 그런 라미아를 손에 올려 막았다.

하지만 이드가 보기에는 동족이 아닌 이상 알아보기 어려운 조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라미아보다 눈이 완전한 초승달이 되어 자신을 보고 있는 일리나의 웃음이 더 노골적으로 보였다.

‘왜 내가 순식간에 개그맨이 된 거야. 이게 다 이 자식 때문이야!’

이드의 눈이 날카롭게 에단의 목을 조였다.

“마, 마스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뒤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여기 앉아!”

이드가 비어 있는 옆자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그곳은 맨바닥이었다.

“마스터, 하지만 여기엔 자리가…….”

“그냥 앉아.”

이드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에단은 이드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두 이쁜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 꿇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마, 마스터. 제가 실수했습니다. 그래도 후배들 앞인데 좀…”

에단이 애처로운 얼굴을 하며 모기 날갯짓만 한 목소리로 사정했다.

이드는 에단을 향해 씨익 웃어 주며 한 자 한 자 끊어 말했다.

“꿇어 앉아.”

이드를 만나고 지금까지 이런 적은 처음이다.

“옙!”

이번에도 말대답을 했다가는 한 대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에단은 즉시 쿵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그 모습에 록과 케마란이 끌끌 혀를 차고, 네리베르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에이, 씨. 괜한 짓은 해 가지고 후배들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냐.’

록의 놀림은 둘째였다. 원래 남자 친구 놈들끼리는 그러고 노는 거니까.

하지만 에단도 할 말은 있었다. 혼자 간직하고 있던, 누구한테 자랑할 수도 없었던 대단한 비밀이 드디어 밝혀지는 장면을 정말 제대로 즐기고 싶었을 뿐이니까.

다만, 문제는 그 기대가 정도 이상이었다는 점일 뿐이다.

이드는 에단이 머리까지 숙이고 있자 그제야 세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잠깐 잡음이 있었지만 이야기를 계속하죠. 우선 제 소개는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했으니까요.”

…농담이………… 아니었습니까?”

이드와 마주 앉은 세 사람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가 이드를 향했다.

“록이 말한 대로 지금 농담을 하거나 장난을 칠 상황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힐끔.

대화가 이어지자 에단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얼굴을 살폈다. 이미 꿇어앉은 거 처음 목표는 확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무표정은 아니지만, 표정이 뭔가 애매하다? 에단이 이드의 눈치를 한번 보고는 한마디 거들었다.

“야, 이거 거짓말 아니다. 아까도 아니었지만 완벽한 진실이다.”

“아니, 거짓말이라는 게 아니라, 그게 좀………….”

애매하던 표정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변했다. 동시에 록의 엉덩이가 슬그머니 끌려나와 소파 끝자락에만 엉덩이를 붙인다.

이때 이드가 말을 더했다.

“쯧. 이곳에도 주민등록증 같은 게 있으면 편하겠는데. 이어서 이야기하겠지만 잘 생각하세요. 에단이 작성했던 보고서. 거기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어야 삼검왕의 일인이 직접 움직일까요?”

들썩들썩.

이어진 이드의 말에 소파 끝에 걸쳐 있던 록의 엉덩이가 공중부양을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얼굴에 불안과 환희가 뒤섞여 괴이한 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엉덩이를 완전히 들어 올리기에는 아직 뭔가가 조금 부족했다.

그 순간 옆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두 아가씨의 입이 벌어졌다.

“꺄…..”

“꺄?”

“꺄아아아아악~!!!”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뭐, 뭐야?”

한 템포 쉬고 이어진 비명과 같은 두 아가씨의 호들갑에 록이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그는 황당한 표정으로 후배들을 바라보았다.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눈은 별이 쏟아질 듯 반짝거리고 있었다. 약간의 소스가 더 필요했던 록과는 달리, 두 아가씨는 이미 일리나가 엘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도 오래전 마인드 마스터와 함께했던 장본인.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을까.

두 아가씨는 지금까지 잘만 보던 이드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힐끔거리며 연신 꺅꺅거렸다.

록은 두 아가씨의 반응에 두 사람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알기로 네리베르는 자신 이상으로 상대의 말을 허투루 믿을 아이가 아니었다.

이드가 난리법석인 두 아가씨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설명하기 힘든 감성이 깃든 얼굴로 이드를 바라보던 록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로크크 빈델입니다. 록이라고도 부릅니다. 원하시는 대로 불러 주십시오. 지금까지의 무례는 용서하십시오.”

깨방정을 떨어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사내다운 무게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거 없습니다. 말하지 않은 내 잘못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앞서 드렸던 말은 좀 더 생각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드는 록의 요청을 가벼운 미소로 넘겼다.

그 순간 틈이 생기자 케마란이 끼어들어왔다.

“정말, 정말!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어제 제게 무공을 가르쳐 주셨던 분이 마인드 마스터라니.”

덥썩.

그렁그렁한 눈으로 몽롱하게 이야기하던 케마란이 이드의 손을 낚아챘다.

“분명 약속하셨어요. 제 무공을 봐주시기로, 꼭, 꼭 약속 지켜 주셔야 해요.”

케마란은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무공을, 누구도 도와주지 않던 링스피어의 무공을 마인드 마스터가 도와주기로 했다는 사실이. 이미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이. 꿈과 같았다.

이드는 재차, 삼차 확인하는 케마란에게 알았노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가만히 있던 네리베르도 나서며 자신의 약속도 잊지 말라고 말했다.

“검후님을 꼭 찾아 주세요.”

이드가 부드럽게 웃었다.

“그건 누가 부탁하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저 깍쟁이. 네가 이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하면 난 뭐가 돼? 큼. 이드 님, 저도 꼭 부탁드려요. 제발 검후님을 안전하게 찾아 주세요. 대신 제 무공은 절반만 봐 주셔도 좋아요.”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는구나?”

“이 좋은 기회를 놓치면 바보예요.”

케마란이 귀엽게 혀를 내밀며 대답했다.

사실, 검후를 찾는 일에 그녀가 링스피어를 익히는 걸 절반만 봐 주든 완전히 봐 주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다만, 검후를 위한 마음에 꺼낸 말이 귀여울 뿐이었다.

그 사이 에단이 록의 곁으로 꾸물꾸물 게걸음으로 다가가 물었다.

“근데 넌 마스터의 정체가 놀랍지도 않냐? 왜 그렇게 덤덤해?”

에단 자신은 이드의 진짜 정체를 추리해 내고는 얼마나 놀라워했던가. 천재적인 번뜩임으로 스스로 알아낸 자신도 그렇게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이놈은 인간미도 없이 놀란 모습이 너무 얕았다.

“안 놀라기는. 많이 놀랐다. 자그마치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시다.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지. 다만, 너무 놀라운 일이라 어떻게 놀라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그렇다고 내가 후배들처럼 비명을 지를 수도 없는 일 아니냐?”

“……인간미 없는 새끼.”

“그런 너는 이 새꺄, 이런 엄청난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하여튼 너 나중에 한번 보자.”

“미친놈.”

에단은 두고 보자는 록의 말을 비웃어 주었다.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비밀이니까 숨긴 것을 두고 따지면 어쩌잔 말인가. 이놈이 많이 놀라긴 많이 놀란 모양이다 싶은 에단이었다.

도무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두 아가씨를 일리나의 도움을 받아 겨우 진정시킨 이드가 에단을 다시 소파에 앉도록 허락하고는 이야기를 이었다.

“자, 그럼 우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거 같은데. 누굴 먼저 볼까요?”

라울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적진에서 생긴 생각지 못한 불화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던 여유가 전날 들어온 짧은 보고로 끝나 버린 때문이었다.

“설마 제일 가능성이 없다고 인간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는데, 정말 왜 이러니?”

새하얀 미간에 살짝 주름이 졌다.


라울은 작은 구슬을 도록도록 굴리더니 검지를 올려 원을 그렸다.

“돌아라.”

기이잉.

라울의 말이 스위치가 된 듯 방 중앙에 황금색 수레바퀴가 떠올라 돌기 시작했다. 수레바퀴 아래 그림자에서 시작된 수십 개의 황금색 선이

혈관처럼 사방으로 퍼졌다가 되돌아오길 반복하자 황금 수레바퀴 위로 영상이 떠올랐다.

그것은 수일 전 나무 위에서 어떤 남자가 확인하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라울은 손가락을 돌려 영상을 조정하더니 한 부분에 멈춰 세우고 화면을 확대했다.

흐릿하던 영상이 맑아지며 바로 앞에서 본 듯 이드의 얼굴이 황금 수레바퀴 위로 떠올랐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우리도 찾고 있기는 했지만, 왜 하필 지금 나온 거니? 귀찮게.”

휘릭.

다시 라울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이드의 얼굴 뒤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애송이 기사단 인솔 교사도 아니고. 격 떨어지게.”

라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음?”

다음 순간 무언가를 느낀 듯 라울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영상의 옆으로 일단의 글들이 올라왔다.

-소드 팰러스에서 전달. 이드에 관한 소드 팰러스 내 조사 내용 재검토 완료. 검후와의 관련성은 확인할 수 없다.

짧은 글이었지만 가볍지 않은 내용이고, 발신처였다.

하지만 라울은 가벼운 코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기대 할 데가 없어서 소드 팰러스에 고급 정보를 기대할까! 차라리 이쪽에서 움직이는 게 빠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