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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39화


676화

창밖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쉴라는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기사단에 적응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은색 기사단의 기사분들이 모두 마음씨가 좋기 때문이겠죠.”

나란히 서 있던 일리나가 소파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쉴라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스스로 잘 관리하고 있다고 자신하지만 기사단의 모두를 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은색 기사단에도 타 기사단이 가진 몇 가지 고치기 힘든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기사단 이전에 인간이 단체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필수적으로 생기는 문제들이다.

당장 은색 기사단에 새로운 수련 기사나 정식 기사가 입단한다고 해서 처음부터 마음을 열어 열렬히 환영해 주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상대를 경계하고, 살핀 후에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때 동료로서 받아들인다.

어쩌면 검 끝에 인생을 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기사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쉽게 동료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주었다가 어설픈 실력으로 죽어 버리면 그 슬픔을 감당해야 하니까.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는 전원 여성으로 이루어진 은색 기사단의 충격이 더 크기 때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평균적으로 여성이 섬세함 감성을 가졌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니까.

그런 이유로 인해 쉴라도 기사단에 들일 기사를 뽑을 때 평소 이상으로 눈을 번뜩이며 까다롭게 군다.

그런 면에서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특별했다.

이미 두 사람의 얼굴과 이름은 익숙했고, 평소에도 귀여워해 주며 서로 마음도 열었다.

그뿐인가. 평소 행동이 좀 이상해서 그렇지, 임무나 실력에서는 믿을 수 있는 스폴의 인정을 받아 실력 면에서도 믿을 만했다.

뭐, 아직 실전을 겪지 않았다는 점이 걱정되긴 하지만, 실력과 강한 마음만 있다면 그 정도는 쉽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과 친분을 가지고 돌보고 있는 이드의 존재가 있었다.

그는 은색 기사단의 동료 기사를 구해 주었고, 검후의 숲에서는 같이 피 흘리며 싸우기도 했다. 거기서 확인했던 이드의 실력이 뛰어났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이러니 그를 봐서라도 그가 아끼는 것으로 보이는 케마란과 네리베르에게 눈꼬리를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내일 다른 오색 기사단에서 지원이 옵니다.”

그 말에 일리나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자자수 영지로 출동하는 것은 세 개 기사단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섯 개 기사단에서 당장 내일 달려올 이유가 없었다.

“화원을 지킬 전력인가요?”

“네. 곧 자자수 영지로 출동하기 때문에 화원을 지킬 전력이 줄어들게 되니까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지원하겠다고 나서더군요.”

청색과 황색 기사단에서만 나섰다면 눈에 빤히 보이는 꿍꿍이에 비웃어 주겠지만, 모든 기사단에서 동시에 나온 소리였다. 은색 기사단의 출동 후 귀한 포로를 가둬 둔 화원의 방어가 약해지는 것을 그냥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히 어떤 자가 소드 팰러스에서 소란을 일으키며, 화원에 숨어들 생각을 할까! 자신감과 오만이 버무려진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변화였다.

검후가 실종되어 내부가 불안할 뿐 아니라 쉴라가 삼검왕을 의심하고 있다고 대놓고 말해 버렸다. 자연히 내부의 적에게 등을 찔릴 수 있는 상황을 대비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위해 전력을 파견한 것이다.

‘검후님을 찾기 위해 소드 팰러스를 떠날 때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으면서’

쉴라는 문득 떠오르는 원망과 섭섭함을 속으로 삭이며 말했다.

“흑색과 적색 기사단은 몰라도 청색과 황색 기사단은 온전히 지원하겠다는 목적만으로 오는 게 아닐 거예요.”

“정말 지원을 위해 보낸 기사들일 수도 있지 않나요? 두 기사단의 모든 기사들이 삼검왕을 위해 검후님에게 등을 돌리지는 않았을 수도 있어요.”

일리나의 말에 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열 명 정도라면 확실히 자신과 함께하기로 한 기사들로 가려 보내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각 기사단에서 열 명인가요?

“네. 네 개 기사단에서 사십 명. 그래도 상급 기사를 같이 보내 주겠다는 건 거부했어요. 화원의 일이니까 온전히 화원의 상급 기사가 책임지고 관리하겠다고.”

평기사도 아니고, 각 기사단의 핵심 전력이랄 수 있는 상급 기사가 딴생각을 품으면 곤란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당장 화원에 남을 기사의 지휘에 끼어들어 혼선이 생길 테니까.

“은색 기사단에서는 어느 기사분이 남게 되나요?”

“데일리 경과 스위트 경이 남은 기사들을 지휘합니다.”

“데일리 경이요?”

일리나가 귀에 익은 이름이 들려오자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쉴라는 그 모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듯 설명했다.

“실제 상황이 발생하면 지휘는 스위트 경이 합니다. 데일리 경은 일리나 님께서 적을 상대하시는 사이 혹시나 생길 빈틈과 기사들의 희생을 막는 일을 맡을 테니까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황 판단이 아직 미숙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기사단 내에서 손에 꼽히니까요.”

“아니요. 그걸 걱정한 게 아니라, 데일리 경의 성격을 보면 이번 출동에 나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아….. 하하. 그러…………셨군요.”

괜한 지레짐작으로 부하의 모자란 부분만 언급한 꼴이 된 쉴라가 말문이 막혀 붉어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창밖에서 신입들의 이름을 부르는 자오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오자 쉴라가 창밖을 돌아보며 얼굴을 식힌 후 말했다.

“저 아이들은 이번 출동에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지요?”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일리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네. 힘든 수련이라고만 말해 뒀으니까요.”

“틀린 말씀은 아니죠. 어지간한 수련보다 짧은 실전이 몇십 배 힘든 게 당연하니까요.”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특별 수련.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은색 기사단과 함께하는 실전이었다.

“하지만 무서워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보다는 기사단과 실전을 함께한다는 사실을 기뻐할 것 같네요.”

일리나가 그동안 지켜본 두 사람의 성격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만 가지고 실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일리나는 길지 않은 시간 정든 두 사람의 안전을 재차 부탁했다.

“모쪼록 은색 기사단에서 두 사람을 잘 돌봐 주세요.”

“그런 부탁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뭐래도 은색 기사단의 수련 기사 저희들의 동료로서 아끼고 살피는 것이 당연하죠. 뭐, 차후 두 사람이 진짜 은색 기사단의 기사가 되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네?”

“호호, 그런 게 있답니다.”

일리나가 자신의 말에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쉴라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바로 당신 때문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인드 마스터와 엘프 일리나.

과연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그 전설의 밑에 있을 기회를 버리고 은색 기사단을 택할까? 쉴라 자신이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았다. 자신도 당장 책임과 걱정거리만 없다면 이드에게 새롭게 무공을 배워 보고 싶으니까.

‘뭐, 그런데도 우리 은색 기사단을 택해서 정식 기사가 되겠다면 전력으로 귀여워해 줘야지. 심지어 마인드 마스터를 버리고 택해 주었으니까.’ 

일리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쉴라를 보다 말했다.

“제가 남는다는 사실은 기사분들이 알고 있으신가요?”

“네. 모든 기사에게 알려 두었어요. 최소한 화원 안에서 행동하시는 데 불편은 없으실 겁니다. 지원 올 기사들에게는 외부 조력자로 따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당장 오늘부터 수련장을 쓸 수 있을까요? 일전에 이드가 쉴라 경과 대련했다는 수련장이요.”

“물론 가능해요. 그런데 수련장은 어째서…………….”

“케마란과 네르베르의 수련 때문에요. 실전이 특별 수련의 핵심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수련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쉴라는 빈틈없는 일리나의 목소리에 빡빡한 수련으로 힘들어할 두 수련 기사를 위해 작게 애도를 보냈다.

그러나 그 애도는 두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두 사람과 같이 쉴라 경도 함께 수련장에 나와 주셨으면 해요.”

“……저, 저도 말인가요?”

갑작스러운 지명에 침을 삼킨 쉴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끄덕. 일리나가 가볍게 수긍했다.

순간 쉴라는 이드의 검에 튕겨 날아갔던 경험이 떠올라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렀다.

단장 자리에 오른 이후 수련장에 나오라는 말이 이렇게 두렵기는 또 처음이었다.

일리나, 마인드 마스터의 아내인 엘프.

다른 말로는 고수!

듣기로 검후와 비슷한 시기에 이드에게 무공을 배웠다고 한다. 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공을 수련한 엘프는 얼마나 강할까?

고수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쩐지 이드에게 대련을 신청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시비를 거는 듯한 수련장으로 나오라는 말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같은 여성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나요? 출정 전에 할 일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변명을 해 버린 것이 부끄러웠다. 그런데 또 묘하게 그립고 익숙한 느낌이다.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뒤지던 쉴라는 금방 검후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 앞에서는 쉴라도 언제나 꼬마 아가씨에 지나지 않았었다. 설마 수련장으로 오라는 일리나의 말에 검후를 떠올리게 될 줄이야!

일리나는 여러 가지로 인해 심경이 복잡한 쉴라를 보며 말했다.

“이드에게 부탁받은 일이 있어요. 한 가지를 확인해 달라는 것과 수련을 진행해 달라는 것이에요.”

“아…….”

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의 이름이 언급되자 수련장에서 확인할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되어서다. 수련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음 날, 은색 기사단을 제외한 네 기사단에서 파견된 기사들이 화원의 입구 너머 공터로 모여들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화원의 입구는 넘었지만, 아직 황색 기사단이 도착하지 않아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공터에 기사단별로 도열해 있었다.

기사들 앞에는 열 명의 기사들을 이끌고 온 상급 기사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 심각한 얼굴을 하며 분위기를 잡고 있었지만, 그들 뒤에 서 있는 평기사들의 얼굴에는 온전히 감추지 못한 기쁨과 기대감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력만큼이나 미모도 뛰어나 제국 모든 기사의 인기인이자 선망의 대상인 은색 기사단의 둥지에 발을 들이지 않았는가! 보통은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금남 구역에 말이다!

수련생 시절 여수련생의 기숙사를 공략해 볼 의기를 가졌던 기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흥분이 아니겠는가!

“으흐흐, 이게 꿈이냐 생시냐. 내가 화원에 들어오다니.”

“꿈이면 깨우는 놈은 죽인다. 다른 놈 제치고 여기 오려고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나는 이번 기회에 절대로 은색 기사단의 기사와 사귀고 만다.”

“당연하지! 화원에서 며칠이나 살면서 그것도 못 하면 죽어야지!”

처음에는 앞뒤로 같은 기사단의 기사들끼리만 떠들었다.

“미리 경고하는데, 너희들 내가 찜한 기사 앞에는 얼쩡거리지 마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찔러 버릴 테니까.”

⋅쯧쯧쯧. 네들이 그러고도 오색 기사단이냐? 여기사 때문에 동료를 찌르겠다니!”

“이미 사귀고 있는 레이디가 있는 놈은 꺼져~”

“야, 사귀는 사람도 있으면서 너희는 저놈을 왜 데려온 거냐?”

“그러니까. 저 새끼가 진짜 나쁜 놈이라니까. 이미 임자 있으면 양보할 줄을 알아야지. 승부라니까 무조건 죽자고 달려들어서 짝 없는 동료를 밀어냈다고.”

“저런 동지애도 없는 시키!”

“그러니까 말이야.”

“………누가 보면 너희들이 같은 기사단 소속인 줄 알겠다?”

“기사단 이전에 애인 없는 남자들끼리 같은 소속이다. 이 시키야!”

그러나 곧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한 기사들이 평소의 경쟁심은 어디다 갖다 버리고 한마음이 되어 수다를 떨어 댔다.

“제발 어여쁘고 애인 없는 여기사들이 많이 남아 있도록 해 주소서~!”

이미 여기에 기사는 없다. 오로지 미팅을 준비하는 솔로만이 존재할 뿐이다!

…..임무를 기억이나 할까?

평소 근엄하고 위엄 있던 모습은 원래 쓰던 방 쓰레기통에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드물게 제대로 자신들의 임무에 대해서 고민하는 기사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로 사귀는 연인을 두고 있는 기사들이 그랬다.

그리고 입구에서 그렇게 떠들어 댄 기사들의 목소리는 화원을 지키고 있는 은색 기사단 기사들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가고 말았다. 

“어휴…….”

양쪽으로 갈라선 세 명의 기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보들이 지원을 위해 파견된 기사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은 것이 그녀들의 심정이었다.

“침입자가 아니라 당장 저놈들을 경계해야 할 것 같은데………….”

한 기사의 작은 목소리에 두 기사의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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