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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04화


841화

스스스스

음울한 붉은색으로 너울거리는 강사가 마치 메두사 머리의 뱀처럼 보였다.

프리실라의 눈가가 떨렸다. 차라리 뱀이라면 귀엽다. 마나에 민감한 그녀의 눈에는 실처럼 가는 강사가 뱀보다 백배 천배 무서웠다. 강사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이 4클래스 마법에 필적했다. 보는 눈이 사라졌으니, 실력을 숨기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절대 그냥 실력 좋은 기사가 아니야. 제국에 이런 실력을 가진 젊은 기사가…………… 혹시, 검왕자인가?’

프리실라는 젊다는 점에서 게일을 떠 올렸다.

하지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 정체가 무슨 상관인가.

“겨우살이의 가지. 손가락 없는 여자. 마지막 핏방울처럼 한정 완전 해제를 명령한다.”

강사를 본 프리실라가 즉시 베릴의 목줄을 모두 제거하는 주문을 외웠다. 모든 리미트가 제거될 경우 베릴의 수명이 이틀로 줄지만, 애초에 이렇게 쓰기 위해 만든 마수가 아니던가.

“이번엔 아니지.”

이드는 프리실라의 주문과 동시에 쩍 벌어지는 베릴의 아가리를 보며 곧장 몸을 날렸다. 앞서는 몰라서 막지 못했지만, 또 눈앞에서 사람이 개 먹이가 되는 꼴을 볼 수는 없었다.

죄인이라면 개 먹이가 아니라, 뱀의 먹이로 던지더라도 상관하지 않겠지만 저들은 아니다.

튀어 나간 이드의 모습이 끊어진 필름처럼 공간을 툭툭툭 건너뛰었다.

그에 베릴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 속에서 마나가 덩어리로 뭉치더니 이드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공을 들인 공격도 의미 없는 판에 부지불식간의 공격이 이드에게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펑!

가볍게 흔들리는 손에 베릴의 공격이 쿠크다스처럼 부숴져 버렸다. 이드는 그 흐름 그대로 금나수로 베릴의 목을 긁어내며 상자를 뜯어냈다. “꾸어엉!”

그에 베릴이 몸부림을 치며 이드를 공격했다. 마나탄에 팔치온과 등의 뿔까지. 마치 수십 명이 합공하는 것 같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드는 그것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일라이져를 슬쩍 흔들었고, 붉은 강사들은 살아 있는 뱀처럼 베릴의 공격을 물어뜯어 요격했다.

차락.

그리고 남은 다섯 개의 상자를 모두 뜯어낸 순간 이드가 몸을 뒤집으며 벌어진 베릴의 아가리 속에 일라이져를 쑤셔 박았다.

다음 순간 뒤통수를 뚫고 나온 검신에서 수십, 수백의 강사들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폭죽이 폭발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불꽃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잔인함의 극치였다.

검이 박힌 머리를 시작으로 베릴의 전신이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작은 바둑알 크기로 말이다.

만약 마수에게 피가 흘렀다면 이 자리는 벌써 피바다로 변했을 것이다.

상자를 잃고 산산조각 난 베릴은 웨어울프의 형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본래 이리 허무하게 사라질 마수는 아니었지만, 소프트웨어의 부실에 근접전에 해박하지 못한 프리실라. 그리고 무엇보다 이드라는 대적 불가의 적이 상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겠다.

순간 흩어지는 베릴 너머로 이드의 눈이 프리실라와 마주쳤다.

“똥개도 없으니, 이제 똥개 주인인 당신 차례야.”

이드가 검으로 프리실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흥, 고작 강아지 하나 쓰러트렸다고 나 정신의 관 6장로 프리실라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지. 파이어 월!”

프리실라가 말과 함께 지팡이에 박힌 마나석에 입술을 대고 시동어를 말하자 지팡이에 인첸트된 마법이 두 사람 사이에 불의 벽을 만들었다. 하지만 파이어 월은 어디까지나 잠시의 시간 벌이용일 뿐.

지팡이를 박아 세운 프리실라가 두 손을 펼쳐 내밀었다. 

“모여라!”

짧은 주문과 함께 프리실라의 손가락 끝에 붉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뒤이어 차르륵 소리를 내며 작은 금속 상자들이 하얀 팔을 타고 굴러 나와 허공에 원을 만들었다.

프리실라는 원 중앙에서 마수의 검은 그림자가 뭉게뭉게 생겨나는 모습을 보곤 붉은 입술을 길게 찢으며 말했다.

“다음은 내 차례라고 했지? 그 차례, 영원히 오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내가 가진 헤드 박스는 끝이 없거든.”

“이런 미친년이 있나!”

이드는 관람차처럼 회전하고 있는 상자와 프리실라를 번갈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고개를 저었다.

“뭐? 미친년?”

“그래. 이 미친년아. 내가 그 상자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를 것 같아? 그러고도 네가 마법사냐? 처형 집행자지? 도대체 사람 머리를 얼마나 자른 거야? 거기다 그걸 내 앞에서 자랑해? 이거 미친년에다 멍청한 년 아냐.”

“뭐, 멍청?!”

프리실라는 미친년이란 말보다 멍청하다는 말에 더 화가 난 듯 반응했다. 피에 미친 천재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젊은 나이에 정신의 관 장로에 오른 자신과 멍청이라는 단어는 가장 관계가 없는 단어였다.

“그래. 사악한 흑마법사를 벌하러 온 토벌대 기사 앞에서 머리 자른 걸 자랑하면, 정의의 기사님이 화가 나겠냐. 안 나겠냐!”

물어 뭐 하나 당연히 나지. 그것도 아주 많이!

이드는 그 분노를 담아 수라참마인의 일식과 함께 달려 나갔다. 너울거리던 강사가 한데 모이며 이드의 앞을 가로막은 파이어 월과 함께

프리실라를 보호하고 있는 보호막을 갈랐다.

앞서 이드의 공격을 막아 낸 붉은 보호막이 이번엔 말랑한 두부처럼 쪼개졌다.

“거기다 내가 원견 마법을 부쉈다는 건 말이야.”

갈라진 마법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른 이드. 그의 일라이져가 허공에 붉은 꽃잎을 수놓으며 프리실라의 손과 상자들을 휘감았다.

하나하나가 실초이며 검강인 꽃잎은 검은 그림자와 상자, 그리고 손의 연결을 찰나에 끊어 냈다. 거기에 프리실라와 그녀의 손 사이 연결도 끊어 버린 건 덤.

툭!

양손이 땅이 떨어졌다. 끊어진 팔목에서는 한 점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마법사에게 손은 주문을 외우는 입만큼이나 중요한 것. 손을 잃으며 프리실라의 전력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봐도 좋았다.

어쩌면 인체 실험을 즐기는 그녀에게는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녀가 해 온 일을 보면 오히려 세상에는 좋은 일이다.

이드는 아직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그녀의 가슴에 은백 무극검강을 두른 일라이져를 밀어 넣었다.

“적당히 봐주지 않겠다는 의미란 걸 알았어야지.”

파파팍!

마법사를 지키는 마지막 성벽인 로브가 검강에 저항하며 작은 불꽃이 튀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큭・・・・・・ 쿨럭!”

프리실라가 기침과 함께 피를 왈칵 토해 내고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손목과 가슴에의 통증이 이제야 왈칵 밀려든 것이다.

그녀의 비명은 묘하게 그녀가 연구실 벽에 박아 두고 알람으로 사용한 실험체 여성의 비명과 꼭 닮아 있었다.

“이제 적당히 닥쳐. 너무 시끄럽잖아. 정신의 관 장로님이면 이 정도 고통은 웃으며 참아 넘겨야지.”

“이 저주받을 개자식! 으윽!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무사하지 못할 이유라도? 오히려 이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무사할 줄 알아? 당신에게 잡혀 온 사람들도 당신처럼 그러던가?” 

당연히 그런 사람은 없었다. 제발 살려 달라며 비는 사람들뿐이었다.

“……기다려라. 철저히 준비해서 죽여 줄 테니까. 리콜!”

그러나 그런 실험 재료와 자신은 달랐다. 눈물과 콧물로 화장이 번져 엉망이 된 얼굴을 든 프리실라가 이를 갈며 비장의 수단으로 아껴 두고 있던 시동어를 외웠다.

일단 정신의 관으로 복귀만 한다면 모든 힘을 끌어모아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드를 가장 잔인하게 죽이겠다고 다짐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한데 그녀와 눈을 마주친 이드가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시동어를 외쳤는데 왜 자신은 아직 이곳에 있단 말인가?

“리콜! 리콜, 리콜?!”

이드는 발작적으로 시동어를 외치는 프리실라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다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마법사를 상대하면서 공간 이동으로 도망칠 길을 차단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거 내가 아끼는 검이야. 그걸 이유 없이 너 같은 것 몸에 박아 둔 게 아니라고.”

이드는 자랑이라도 하듯 일라이져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형의 기운에 대한 침습성이 강한 무형기류가 프리실라의 마나 써클을 꼼짝도 못 하게 묶어 두고 있었다. 똥개조차 단거리 공간 이동을 하기에 만약을 대비해 박았는데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기름 없는 차는 고철값이라도 나오지 마나가 없는 마법은 그야말로 허공에 삽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난 당신처럼 멍청하지 않거든.”

“아악! 저주받을 놈! 당장 이 검을 뽑아! 내 마나 써클을 돌려놓으란 말이다. 이 천년만년 아귀가 뜯어 먹을 개자식아!”

마법사이기 때문일까. 마나 써클에 이상이 생기자 완전히 눈이 돌아갔다. 자신이 이드의 손에 잡혔다는 것도, 손이 잘리고, 가슴에 칼이 박혔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모습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가슴에 검을 박고 저렇게 피거품을 물며 악을 쓸 수는 없다.

“욕 참 구수하네.”

이드는 그 모습을 웃으며 반겼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처절해 보이겠지만, 죄에 대한 벌로는 아직이다. 제대로 벌을 받으려면 수백 번 죽어도 모자라다.

그나저나 바닥이 참 얕은 여자다.

젊은 나이에 장로라는 자리에 오른 탓일까. 요염한 척 교양을 떨더니 바닥이 금방 드러났다. 아귀에게 뜯어 먹힐 개자식이라고? 한국 인터넷에 떠도는 욕에 비하면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다.

“그래도 아무리 가벼워도 욕은 욕이니. 벌을 받아야지?”

그래야 자신의 처지도 다시 깨닫지 않을까? 저렇게 바락바락 소리치는 모습은 훌륭한 포로의 자세는 아니다.

이드는 버둥대는 프리실라의 한쪽 종아리를 밟아 부러트렸다.

빠각!

뼈가 조각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발광을 멈춘 프리실라가 입을 딱 벌리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드는 교묘하게 다리의 신경을 자극하며 실핏줄이 터진 프리실라의 눈을 내려다보았다.

“미리 말해 두는데 다시 시끄러워지면 마지막 남은 다리도 부숴 주겠어.”

“…끄으….흐흐”

자존심보다는 본능일까. 덜덜 떨리는 턱을 억지로 악문 프리실라는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꿈이야. 이러면 안 된다고!’

자신과 같은 강력한 마법사가 가진 힘도 모두 써 보지 못하고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머릿속으로 수없이 현실을 부정해 보았지만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좋아. 잘 알아들은 것 같네.”

흐느끼듯 비명을 삼키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곧이어 프리실라의 몸을 뒤지며 혹시 더 있을지 모를 상자를 찾기 시작했고, 이드는 곧 로브 안에서 서른 개의 상자를 더 발견해 낼 수 있었다.

베릴의 목에 있던 것에 프리실라가 꺼냈던 것까지 더하면 육십 개가 넘었다. 그 말은 즉 평소 프리실라가 육십 개의 살아 있는 머리를 가지고 다녔다는 뜻. 이드는 부서진 뼈와 신경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더했다.

실로 섬뜩한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이 정도면 미쳤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다.

뽑아낼 정보만 아니었다면 바로 죽이는 것이 세상에 도움이 될 인간이었다.

혀를 찬 이드는 전투가 있었던 주변을 돌아보고는 정신의 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원견 마법이 파괴당했는데도 아직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프리실라를 포기한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진짜 개털인 거 아냐?”

찝찝했지만 진짜 털어 보기 전에는 아직 모를 일.

이드는 자신이 만든 공터에 장력을 뿜어 흔적을 지우고는 프리실라의 뒷덜미를 잡아 올렸다.

이제 복귀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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