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12화
849화
사뿐사뿐.
작은 살쾡이 한 마리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나무둥치 사이를 건너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녀석의 눈은 한시도 베일록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사의 눈과 귀 대신하는 패밀리어, 라미아가 말했던 놈이다.
둘로 나뉜 적을 따라 반으로 줄어든 눈 덕분에 사각이 늘었으니, 그 김에 눈 하나를 더 처리하면 훨씬 움직이기 편하지 않겠는가. 거기다 마침 적당하게도 지금 있는 곳이 숲속이다.
‘작은 살쾡이는 한입에 꿀꺽할 녀석들이 널리고 널린 곳이 숲 아니겠어?’
패밀리어가 죽더라도 큰 의심은 하지 못하리라.
다음 순간.
부운귀령보를 극성으로 끌어 올려 바람에 흩어진 안개처럼 사라졌던 이드가 살쾡이 위에 나타났다. 눈앞에서 보아도 사라지고 나타남을 인지하지 못할 것 같은 은밀함. 때문에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살쾡이도 제 머리 위에 나타난 이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능히 신공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보물 같은 보법.
뚜둑.
이어서 살쾡이의 목을 낚아챔과 동시에 그 목을 꺾었다. 마법사의 패밀리어가 된 것 말고는 죄가 없는 놈이기에 고통 없이 보내 주었다.
다음 생에는 인간과 엮이지 않기를 빌어 준 이드가 베일록들을 보았다.
패밀리어가 죽으면 영적으로 연결된 마법사도 충격을 받고, 그것을 확인한 정신의 관에서 연락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다다닥.
그런데 잠시 기다려도 베일록들의 달리는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즉, 연락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보는 것만 되는 모양이네. 그럼・・・・・・ 고맙지.’
히죽.
입가에 감사의 미소를 지은 이드는 라미아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는 귀신처럼 날아올라 남아 있던 원견 마법을 소리 없이 소멸시킨 후 정령을 불러냈다.
“드라이어드. 우리 저기 가는 사람에게 숲에서 달리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려 줄까?”
이드가 베일록 일행 중 가장 뒤에 처진 남자를 가리키자, 머리에 이름 모를 야생화를 단 풀잎 인형이 파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고,
“크헙!”
그 직후 답답한 신음과 함께 이드가 가리킨 남자가 아주 대차게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얼마나 강하게 넘어졌으면 쿵 하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잘했어!”
이드는 그런 남자의 발아래, 걸리기 딱 좋은 아치 형태로 삐죽이 배를 내밀고 있는 나무뿌리를 보고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파스락.
그러자 드라이어드 머리 위 꽃잎의 색이 변했다. 아무래도 칭찬받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넘어진 마법사가 일어나지 못하자, 멈춰선 사람들이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상태는?”
“보기보다 심합니다. 넘어질 때 발목이 심하게 걸렸던 모양인지, 발목 인대가 끊어지기 직전입니다.”
가장 먼저 마법사를 살핀 티엔이 나무뿌리를 툭 차며 말했다. 그는 내심 이럴 줄 알았다 생각했다. 아무리 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했다고 해도, 마법사가 밤중에 숲속을 달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무래도 당장 움직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마스터, 포션을 쓰면 바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법사의 말에 티엔이 살살 고개를 저었다. 포션이 강력한 치료제인 것은 맞지만, 만병통치의 만능은 아니다. 특히 병에는 큰 효과가 없고, 치료 후에는 적당한 휴식도 필수다.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바로 뛰어나가는 것은 정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아니면 피해야 할 일이다.
“만에 하나 바로 움직일 수 있어도 금방 탈이 날 겁니다.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되면….”
“무슨 소리를・・・・・”
“티엔의 말이 옳다. 넌 구출 작전에서 빠져 있어라.”
“하지만 제가 빠지면 프리실라 장로님의 구출이…”
“문제없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예비는 항상 준비되어 있다.”
제자의 말을 자른 베일록이 티엔과 비히더를 바라보았다. 마치 너희가 예비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모습에 두 사람은 바로 수긍하고 나섰다.
“하하. 예비 여기 있습니다. 장로님의 제자 분을 온전히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 둘이라면 충분히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런고로 넌 현 지점에 대기하거나, 상황을 보다 관으로 복귀해도 좋다. 다만 날 따라오거나 스켈이 있는 쪽으로 합류하는 것은 금지다.”
베일록은 괜히 다친 제자를 써서 구출 작전에 변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부정적인 변수가 될 바에야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낫다.
그의 능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고집을 부리던 마법사도 베일록이 강하게 말하자 별수 없이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오가 결정되자 베일록을 선두로 한 구출조가 다시 숲길을 달려 사라졌다. 초 단위로 계획을 세워 둔 베일록의 입장에서는 더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할 수 없었던 것.
홀로 남은 마법사는 멀어지는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다 새초롬히 솟아 있는 나무뿌리에 이를 갈았다.
“젠장, 겨우 이런 나무뿌리 따위에 걸려서 이 중요한 순간에 빠지게 되다니!”
베일록이 냉정하게 죽음을 명령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을 세우면 보상도 확실하다. 이번에 프리실라의 구출에 손을 보탰다면 그 보상 또한 적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 했지만, 실패.
마법사의 분노가 담긴 주먹이 나무뿌리를 때려 부수려 할 때였다.
따끔.
어깨와 팔꿈치 사이 한 지점에 따끔한 느낌이 나더니 갑자기 팔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고, 그 증상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대체 이게…….”
“그래. 그래. 걱정 말아. 설마 내가 일 시켜 놓고 다치게 두겠니?”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몸이 굳을 때보다 더 놀란 마법사가 고개도 돌리지 못한 상태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나, 거기 귀여운 나무뿌리의 의뢰인이오. 만나서 반갑소.”
여유롭게 마법사 앞으로 걸어 나온 이드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이드의 어깨에서 그의 귓불을 잡고 있던 드라이어스가 나무뿌리위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잘했다는 듯 나무뿌리를 토닥토닥 두드리자 불쑥 솟아 있던 나무뿌리가 다시 땅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설마……. 정령이라고? 그럼 정령사?”
이드와 드라이어드를 바라보는 마법사의 입이 놀라움에 떡 벌어졌다. 눈앞에서 제국 황제를 봐도 지금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 같은 얼굴이다. 하지만 그만큼 현재 그레센 대륙에서 보기 힘든 존재가 바로 정령과 정령사였다. 자연의 사랑을 받아 교감하고, 땅과 나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인간의 언어로 전해 줄 수 있는 정령사는 그 자체로 특별한 존재였고, 점점 그 숫자가 적어져 더욱 귀해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놀라도 그렇지. 적의 출연보다 정령에 더 놀라다니!
이드는 혹시 사람을 잘못 골라잡은 게 아닌가 걱정하며 입을 열었다.
“굉장히 놀라네. 정령하고 정령사 처음 봅니까?”
“처음 봅니다. 낯선 정령사여. 확인 차원에서 묻겠소만. 당신이 내 발을 걸어 넘어트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나의 적이요?”
“당신이 보고 판단한 대로겠죠.”
이드가 나무뿌리를 땅속으로 되돌린 뒤에 옷을 잡고 클라이밍 중인 드라이어드를 가리켜 보이자 마법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관 바로 앞에서 이중 함정에 빠지다니. 빌어먹을 일이군. 당연하겠지만, 마스터께서 프리실라 장로님을 구하기 위해 달려간 곳도 함정이오?”
이드가 정령사이기 때문인가. 마법사의 말투가 상당히 정중하다. 굳이 그의 질문에 답할 이유는 없지만,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은 아니지만, 당신들에겐 함정보다 무서운 사람이 그곳에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드의 대답에 마법사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프리실라 장로님이 붙잡힌 이유를 이제 알겠군. 그나저나 토벌대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보다 귀하다는 정령사가 끼어 있고, 그 정령사가 여기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소. 하지만 나에게서는 아무것도 얻어 낼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날 죽이시오.”
“순순히 항복할 생각은?”
“죽더라도 마스터를 배신할 생각은 없소.”
“확실히 그렇게 나올 거라고 듣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그렇게 질색하지 마시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당신 마스터의 정보를 캐려는 게 아니니까.”
“내게 얻을 것은 그것 말고 없을 텐데?”
마법사가 슬그머니 눈을 뜨며 말했다.
“있죠. 가령…… 당신들 골덴 기사단 말고 창을 들고 있던 자와 로브를 걸친 마법사가 누구냐는 것? 프리실라 말로는 기사단에 속한 기사는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
일부러 프리실라의 이름을 꺼낸 것이 도움이 된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자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던 마법사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베일록의 정보도 아니고, 티엔과 비히더의 정보는 주지 못할 것이 아니라 판단한 것이다. 그들이야 베일록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쉽게 목숨을 내놓고 있지만, 살 수 있다면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니겠는가.
“……티엔과 비히더는 부관주께서 프리실라 장로님을 구출하러 나가는 걸 허락하는 조건으로 붙이신 자들이오.”
과연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던 프리실라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나보다. 구출하겠다는데 조건을 붙이다니. 보통은 반대가 아니던가?
“구출조를 감시하는 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까?”
끄덕.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견 마법과 패밀리어 말고 아티팩트 형태의 눈도 가지고 있습니까?”
“모르겠소. 하지만 최소한 우리 골덴 기사단에서 그런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확실하오.”
“그럼 만약 가지고 있다면 티엔과 비히더라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겠군요. 두 사람에 대해 아는 정보는?”
“티엔은 용병으로 고용된 것이고, 비히더는 부관주님의 연구 마법사요.”
이드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용병과 마법사라니. 그건 두 사람의 복장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드는 마법사를 닦달하지 않았다.
이드의 질문에 두 사람을 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듯 대답이 늦기는 했지만, 이어지는 대답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기색은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소속도 다른 것 같으니 알면 또 얼마나 알까.
“그럼 마지막 질문. 먼저 간 구출조가 세운 구출 계획은 뭐요?”
베일록과 관계된 질문이 나오자 마법사가 무겁게 입을 닫았다. 베일록에 해가 될 말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보였다.
그에 이드는 더 보지 않고 그의 혼혈을 눌렀다.
“이런 충성심 있으면 좋은 곳에 쓰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럴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들인 것을. 누가 장애인을 데려다 쓸까. 귀족 출신도 아니고, 배운 것도 없는 평민이나 고아 출신의 장애인을 말이다.
“드라이어드, 이 사람 보관 좀 하자.”
파스락.
드라이어드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나무에 걸쳐진 굵은 넝쿨들이 움직였다. 마치 뱀처럼 슬금슬금 움직이던 넝쿨이 정신을 잃은 마법사를 휘감아 마치 고치처럼 만들어서는 나무에 매달았다.
초록의 잎사귀에 둘러싸인 모습이. 어지간해서는 찾기 힘들어 보였다.
“너, 굉장히 유능하구나.”
생각지 못한 기발한 보관 방법에 칭찬을 겸해 드라이어드의 머리를 쓰다듬은 이드는 곧 베일록들이 달려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럼 우리 차례차례 넘어트려 보자.”
파스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