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13화
850화
이미 한번 해 봐서인가.
두 번째까지도 문제가 없었다. 처음부터 잘하기도 했지만, 정령인 드라이어드가 배우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이었다. 함정은 더욱 능숙하고, 교묘해졌다.
그녀가 지구에서 활약했다면, 사상 최악의 장난꾸러기 자리를 노려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구와 그레센에 모두 요정과 정령이 장난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 태생적으로 이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래이드의 목표는, 이젠 한 마리 고치가 되어 버린 마법사가 말했던 비히더였다.
하지만 그를 살핀 결과 도저히 실수처럼 꾸며 낙오시킬 수가 없다고 판단. 그에 대한 공략을 포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지극히 마법사다운 방법으로 어두운 밤의 숲을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는 두 다리로 달리는 베일록이나 그의 제자들과 달리 간단한 부유 마법으로 몸을 가볍게 한 후, 나머지 이동과 안전을 티엔에게 맡겨 버린 것이다. 자연히 발을 걸어 넘어트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비히더를 잡자고 티엔의 발을 걸 수도 없었다.
딱 봐도 한가락 할 것 같은 그가 운동 신경 모자란 마법사들처럼 발이 걸려 넘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괜히 시도했다가 드라이어드의 장난질이 들통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서 꿩 대신 닭으로 베일록의 또 다른 제자의 다리를 부러트렸다.
제자들의 똑같은 실수에 방방 뛰며 화를 낸 베일록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제자를 버렸다.
그렇다. 분명히 말해 ‘버렸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앞서와는 달리 대기하라거나, 복귀하라는 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반복적인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방심이고, 해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이래서 성공도 실수도 처음이 중요한 법이지.’
과연 사형제라는 걸까. 앞서와 마찬가지로 나무뿌리에 화풀이를 하려는 마법사 뒤에 나타난 이드가 그의 사혈을 눌렀다. 사혈을 적당한 힘으로 누르자 마혈을 짚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났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 파악은 했을 테고. 베일록의 계획에 대해 말해 줄 생각이 있습니까?”
“죽어랏!”
없는 것 같다.
살기와 함께 회색의 눈에 급격히 마력이 차오른다.
이드는 즉시 손가락으로 내력을 주입해 남자의 숨을 끊었다.
이미 확보한 포로도 있고, 전혀 협조적이지 않은 것까지 확인했으니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괜히 쓸데없는 포로를 늘릴 필요는 없다.
“드라이어드.”
꾸드드득.
이드의 부름에 드라이어드가 움직인 나무뿌리가 죽은 남자를 감고 땅속으로 사라졌다. 그냥 두면 어차피 짐승의 먹이가 될 것, 수고한 나무에게 보상으로 준 것이다. 어차피 죽어 버린 고깃덩이. 썩으면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파스락.
드라이어드가 일을 끝냈다며 이드의 귓불을 당겼다.
파스락, 파스락,
“그래, 그래, 잘했어.”
아무래도 칭찬을 원한 모양이다. 그제야 귓불을 당기는 걸 멈췄다.
“그럼 이번에는 좀 변형해서 다시 가자!”
파스락!
그러나 아쉽게도 세 번째 성공은 없었다.
아무래도 뻔한 패턴을 세 번이나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눈을 노렸는데.
“실드!”
보기 좋게 막혀 버렸다. 속도는 빨랐지만, 단순한 나뭇가지가 실드를 뚫을 수는 없는 거니까.
그보다 문제는 베일록이 기다렸다는 듯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이거, 어쩐지 들킨 것 같지?”
미리 대비하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반응 속도였다.
파스락.
뜻밖의 실패에 드라이어드도 기가 죽은 모양이다. 머리에 있는 꽃이 우중충한 색으로 변하며 힘없이 늘어진 것이 티가 확 났다. 뭐, 이런 솔직한 감정 표현 때문에 정령들이 귀여운 것이기도 하지만.
“네 잘못 아냐, 두 번이나 성공했잖아. 충분히 잘한 거야.”
그사이 베일록들은 달리던 것을 멈추고 사방을 경계하고 섰다. 동시에 라이트 마법으로 주변을 밝혔다.
이 캄캄한 숲 속에서 라이트라니. 은밀히 이동하는 것은 완전히 포기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발각당한 상황에 은밀히 움직인다고 애쓰는 것도 에너지 낭비니까.
“겨우 이딴 얕은수가 통할 줄 알았느냐. 나와라. 나오지 않으면 이 숲과 함께 깡그리 불태워 주마.”
“파이어 윌.”
분노한 베일록의 경고에 맞춰 비히더가 네 사람의 주변으로 불의 고리를 만들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혀를 찼다.
“그 얕은수에 제자를 둘이나 잃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말이야. 그나저나 여기까진가 보네. 아무리 그래도 진짜 불을 붙이게 할 수는 없지.”
그러기엔 자신을 도와준 나무와 드라이어드에게 미안하다. 명색이 하이엘프의 남편인데, 숲을 보호하긴커녕 불태우도록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방화범은 때려잡아야지!
“그래도 그냥 나가긴 아쉽고. 우리 마지막으로 한탕만 더할까?”
파스락!
어느새 기운을 차린 드라이어드가 쌀알만 한 엄지를 치켜든다.
귀여운 녀석.
“해 버려. 드라이어드.”
파스락! 파스락!
이드의 말에 드라이어드가 힘을 썼다. 그러자 땅에서 굵직한 넝쿨이 베일록들을 노리고 솟아올랐다.
“얕은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번! 재가 되어라.”
화르르륵!
노기 가득한 베일록의 마법에 현실로 소환된 마나의 불꽃이 순식간에 넝쿨을 태웠다.
그 순간 이드가 비히더와 티엔 사이에 귀신처럼 솟아났다. 마법사의 정보도 있으니, 아티팩트의 확인을 위해 비히더를 첫 번째 목표로 잡은 것.
“큭!”
갑자기 나타난 이드에 두 사람이 흠칫 몸을 떨었다. 즉시 각자의 무기를 잡았지만.
“이런, 실례, 후후.”
가볍게 웃으며 하는 말에 소름이 돋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전혀 강해 보이지 않는 이 남자를 상대로 본능이 격렬하게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이대로 공격하려 하면 죽는다. 무조건 죽는다.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최고 레벨의 경고였다.
어차피 이대로 가만있어도 죽는다는 걸 알지만, 알면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리석은 본능이 잠시 뒤 있을 일을 생각할 새도 없이 코앞의 현실에 굳어버렸으니까.
그사이 이드는 기감을 열어 비히더와 티엔을 살폈다.
‘젠장, 공돈을 너무 먹어서 토해 낼 때가 된 건가.’
티엔은 뭔가 무시무시한 힘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에 진저리 쳤다. 마치 마왕이 자신을 꿀꺽 삼키기 전에 혓바닥으로 핥아 보는 것 같은 환각이 보였다.
당연히 진짜 마왕의 혓바닥이 아니라 기감을 탄 이드의 내력이었지만 말이다.
“찾았다. 역시 당신이 가지고 있었군.”
비히더를 돌아본 이드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티, 티엔!”
“치잇! 날 부를 시간에 도망부터 치란 말입니다!”
비히더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자 티엔이 이를 악물고 창을 휘둘렀다. 이드에게 창을 들었다가는 비히더뿐 아니라 둘 다 죽는다는 예감에 그의 창은 비히더의 복부를 때렸다.
그 충격에 비히더가 뒤로 튕겨 났다. 이드의 손이 코앞에 이른 순간이었다.
비히더는 복부의 충격보다 이드의 손이 멀어진다는 것이 기뻤다. 하지만 그 기쁨은 지극히 짧았다.
덜컥.
이드의 손에서 일어난 기묘한 흡입력에 튕겨 나가던 비히더가 빨려 들어왔다. 비히더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렸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한쪽 팔이 이드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마법을 쓰라고 이 멍청아!”
그 모습에 티엔이 고함을 지르며, 창을 휘둘렀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은 우직한 베기. 그것은 본능적으로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직감한 선택이었다.
까앙!
“브, 블링크!”
그리고 그의 공격이 이드의 맨손에 막히는 순간. 블링크를 사용한 비히더가 티엔의 후방에 나타났다.
그에 티엔이 급히 비히더가 있는 곳까지 물러섰다.
“고,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그렇죠? 팔 하나면 목숨값으로 싸지요.”
“무슨 소립니까?”
“아직 정신 못 차리셨네. 저기 괴물 손에 들려 있는 마법사님 팔 말입니다.”
티엔이 혀를 차며 이드를 가리켰다.
그 말대로 이드의 손에는 어깻죽지에서 잘린 팔 하나가 들려 있었다.
비히더가 블링크를 사용하기 직전 손끝에서 뿜어진 지검으로 잘라 낸 팔이었다.
비히더는 놓쳤지만, 팔을 얻은 이드는 만족하며 웃었다.
사람의 잘린 팔을 들고 웃는 모습이 미친놈처럼 보였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드가 목표로 했던 물건이 이 팔을 감고 있는 소매 안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사의 몸에 아티팩트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하지만 이드는 그중 목표물을 정확히 찾아낼 수 있었다.
유독 튀었기 때문이다. 안쪽으로 수렴하고 있는 다른 물건들의 마나 패턴과 달리 비히더의 소매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은 확산하고 있는 마나 패턴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년이 여기 자신이 있다고 마구 전파를 쏘아 내는 것처럼 말이다.
“허락받지 않은 들여다보기는 범죄입니다.”
상큼한 미소와 함께 이드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붉은 수라검기가 낚싯줄처럼 뿜어져 비히더의 팔을 휘감았다.
투두두두둑.
잘게 잘린 팔이 땅에 떨어지며, 소매 속에 들어 있던 수정구가 박힌 완드의 파편이 나타났다.
“참, 수정구 큰 것도 박았다.”
좋은 영상을 얻기 위해 크고 비싼 카메라 렌즈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드에는 평균보다 큰 사이즈의 수정구가 박혀 있었던 것.
그리고 그런 이드를 향해 불길이 들이닥쳤다.
한 박자 늦게 자신의 팔이 작은 고기 조각으로 변한 것을 깨달은 비히더가 고통과 분노를 담아 공격한 것이었다.
“아악! 죽어 버려! 프롬 플레어젯!”
네 사람을 지키던 파이어 윌의 구성식이 변형되었다. 흐름이 단절되고, 단면의 압력이 극도로 높아졌다. 그리고 그 단면이 이드를 향하더니, 마치 전투기 엔진에서 뿜어지는 불길 같은 강렬한 화염이 뿜어져 나오며 굉음을 냈다.
쿠콰콰콰
위력은 좋지만, 공격이 너무 직선적이다.
이드는 불길이 닿기 전 가볍게 도약해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제트기의 분사구가 방향을 바꾸듯 불길이 이드를 쫓아 방향을 틀었다. 소리만 닮은 게 아니었다.
그래 봤자 맞추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드가 간발의 차로 계속 불길을 피하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국!
땅이 작게 흔들리더니 땅에서 거대한 손이 솟아나 불길을 피하는 이드의 앞을 막아 왔다.
“태워 버려!”
조금 늦었지만, 남아 있던 베일록의 제자가 전투에 끼어든 것이다. 그는 이드를 공격하기보다는 막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자신의 공격보다 비히더의 불길이 더 강하다는 것을 긴박한 와중에도 용케 파악한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자신들의 힘만 파악해 냈을 뿐, 이드가 어떤 존재인지 티끌만큼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퇴로를 막았다 생각한 순간.
이드가 파옥권의 강기를 감아 팔을 휘둘렀다.
퍼서석!
그러자 수분이 다 빠진 사과를 베어 문 듯 힘없는 소리와 함께 흙 손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렸다. 이드가 아니라 소도 지나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구멍.
이드는 그 구멍을 통해 유유히 불길을 피해 나왔다.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그 앞으로 거친 바람을 몸에 두른 베일록이 나타났다.
“기다렸다. 이놈!”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마치 수년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얼굴로 이드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