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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24화


861화

“저건 마력 폭주 현상이 아닙니까?”

“마력이 설정된 출력값을 넘었습니다.”

“저 상태라면 설정 한계를 넘은 마력 충돌로 마법진이 폭주할 겁니다!”

두 눈을 부릅뜬 마법사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한다. 랜달이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 실체화한 마법진의 상태를 읽지 못할 마법사는 없었다. 동종 업계 관계자의 모임은 이래서 편하다. 따로 설명이 필요가 없으니까.

설명을 재촉하던 해더웨이도 입을 닫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거기에 뛰어난 두뇌는 이후에 펼쳐질 상황까지 순식간에 분석해 냈다.

“목줄이 끊어지겠군요.”

“빠, 빨리 막아야 합니다. 저 아까운 걸!”

누군가 아까워 죽겠다며 안달을 했다. 벨리훌의 목줄은 수와 폭발력, 위치 등 다방면에서 성능이 뛰어난 만큼 제작에 상당히 많은 돈이 들었는데. 그것이 허공으로 날아가게 생겼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해더웨이는 평소처럼 냉정했다.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목줄은 포기합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방법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끄응…….”

그 말에 안달하던 마법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아깝지만 부관주 두 사람이 끊어졌다고 단언한 목줄을 안정시킬 능력은 없다. 그럴 능력이 있었으면 벌써 장로를 거쳐 부관주가 되었을 것이다.

마법사들이 입을 닫자 해더웨이가 말했다.

“하지만 목줄을 포기할 때 하더라도, 차후를 대비해 원인은 파악해야겠지요. 랜달 님?”

“계산상 1분 15초 후 마나 충돌이 일어납니다. 원인은 벨리훌의 목줄의 출력을 조종하는 133개소의 마나 터미널을 동시에 공략당한 것입니다.”

준비한 듯. 질문과 동시에 나온 답에 해더웨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공격 방법은 파악되었습니까?”

“다행히 라인이 살아 있어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만…… 일단 보시죠.”

랜달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쓰다, 빠르게 파괴되어 가는 마법진 위로 또 다른 영상 하나를 만들었다.

영상의 주인공은 한 손에 글레이브를 쥔 채 땅에 쓰러진 오크였다. 특이한 점은 글레이브도 오크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

강력한 충격을 받은 듯 글레이브는 부서졌고, 오크도 사지가 멀쩡한 놈이 없었다. 마나 폭주의 충격을 고스란히 맨몸으로 받아 낸 탓이다.

하지만 영상을 본 마법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크의 상태가 아니었다. 오크들이 있는 장소가 문제의 마나 터미널이라는 것이고, 가진 장비가 눈에 익은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지금 저거……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황색 유니온에서 부리는 놈이 아니오? 아니, 저놈이 왜 저기에?”

“보면 모릅니까? 딱 봐도 저놈이 마나 터미널을 부순 거잖습니까.”

“아니, 내 말은 황색 유니온이 저걸 왜 부수냔 말이오!”

생각지 못한 범인의 정체에 마법사들은 가벼운 패닉에 빠졌다. 다른 마법진을 봐도 같았다. 그 위에는 모두 황색 유니온의 오크가 뒹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1분 15초의 시간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폭발합니다. 모든 분들은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그리고 형태를 유지하던 마법진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 그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마법사가 크게 소리치고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

하지만 그가 말한 충격은 없었다. 귀를 울리는 폭음도 들리지 않았다.

“……”

본능적으로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였다는 것을 깨달은 마법사가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자,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붉어진 마법사가 말했다.

“거, 몰랐던 모양이오만, 정신의 관은 견고한 공간 결계가 보호하고 있어서 이 정도 충격에는 영향이 없다오. 큼. 큼.”

아무렴 땅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마탑을 만들었는데, 그런 것도 생각지 않았겠냐며 말을 더했다. 당장과 같은 상황이 아니라도 지하에 있는 이상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그대로 생매장당하고 만다.

그런 어이없는 경우를 피하기 위한 안전장치는 필수다. 그런 설명에 고함을 친 마법사를 따라 다리에 힘을 주던 몇몇 마법사들이 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가볍던 분위기도 잠시였다.

곧 방 안의 분위기가 다시 심각해졌다. 폭발에서 안전하다고 끝날 일이 아니었다.

“분명 배신입니다. 황색 유니온이 배신한 것입니다. 모두 보셨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니온의 마법사들은 배신할 자들이 아니오. 아니, 배신할 수 없도록 맹약이 걸려 있다는 것을 알지 않소.”

“그럼 답은 간단합니다. 프리실라나 베일록. 둘 중 하나, 또는 둘 다 적에게 붙은 것입니다.”

“그것도 말이 되지 않소. 관의 장로가 배신이라니. 프리실라 장로가 대가 좀 약하긴 해도 그럴 리는…..”

“하지만 두 장로나 골덴 기사단이 아니고서는 리더 홀을 조종하는 방법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배신자 때문에 두 개 유니온을 빼앗기고, 벨리홀의 목줄까지 잃었습니다. 이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확인을 해야겠지만, 분명 그렇습니다.”

마법사들은 두 장로의 배신은 쉽게 믿지 못했지만, 배신자의 존재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히 확신하고 있었다.

외부의 침입과 적에게 돌아선 배신자는 무게가 달랐다.

“부관주님. 이 일은 그냥 침묵하고 넘길 수 없지 않겠습니까.”

“탑주님의 의사를 어기게 되더라도. 우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법사들이 당장이라도 배신자를 찾아 나설 듯 와 하고 일어났다.

“랜달 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눈을 감고 있던 해더웨이가 눈을 뜨며 물었다.

그 질문에 목줄과 이어져 있던 라인을 툭툭 털어 정리하던 랜달이 손을 멈추고는 허리를 세웠다.

“저는 해더웨이 부관주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탑주님의 원래 명령대로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관의 장로가 등을 돌린 이상 외부의 위험도는 최소 두 배 이상 높아졌을 테니까요.”

본래 아는 놈이 더 무섭다지 않은가.

‘역시 대단한 괴물이야. 두 장로 모두 사로잡아 정보를 빼낸 것이 분명해. 그런 괴물이 있는 곳에 맨몸으로 나갈 수는 없지.’

랜달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다수의 의견에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서 반대해 두면 최소한 자신에게 나가 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소수의 마법사도 있었다.

“분명 배신자의 존재는 확실하며, 확인해야 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똑 부러지던 해더웨이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듯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이냐.”

그리고 때마침. 그런 해더웨이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줄 사람이 나타났다. 토벌대를 대비해 바이트 타블렛의 마지막 연성에 열을 올리며 지하에서 나오지 않던 탑주가 나타난 것이다.

“탑주님을 뵙습니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가 나타나자 마법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에서 반가움과 홀가분함이 숨겨지지 않았다. 마치 제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곤란해하다가 사건을 해결해 줄 부모를 만난 아이 같다.

“그래. 그보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을 것이냐?”

탑주의 재촉에 해더웨이가 담담한 목소리로 사실을 전했다.

“쯧, 아깝게 되었군.”

이야기를 모두 들은 탑주의 첫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배신자에 대한 분노나, 가까워진 토벌대와 수상한 감시조에 대한 우려는 한 톨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에 가장 먼저 배신자를 언급했던 마법사가 한 발 나서며 목소리를 높였다.

“탑주님.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배신자를 찾아 처단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맡겨 주신다면 저와 동료들이 직접 나서 일을 해결하겠습니다.”

마치 기사 같은 기백으로 나선 매부리코의 마법사.

‘새 장로 자리를 노리는 것인가? 애쓰는군.’

랜달은 그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를 알 것 같아 작게 혀를 찼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장로 자리를 노리는 매부리코 마법사의 방법은 틀렸다. 아니나 다를까. 탑주가 살랑살랑 손을 저었다.

“세토나 마법사의 의견을 잘 들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탑주님. 이대로 두면 관의 정보가 적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상관없다. 바이트 타블렛이 진리의 빛을 뿜기 시작하면, 관이 가진 전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 순간 저들이 가진 정보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쫓아도 의미가 없다.”

“어째서 의미가 없다 하십니까?”

“보아라.”

탑주가 한 손을 들어 방의 한쪽 벽을 가리키자, 벽에 푸른빛이 맺히더니 마치 유리처럼 변하며 하늘의 모습이 들여다보이기 시작했다.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그 사이를 날고 있는 새.

하지만 단순히 새라고 하기에는 모양과 크기가 이상했다. 목도 꼬리도 길고, 날개에 깃털도 없다. 무엇보다 바람이 타고 흐르며 매끄러워야 할 새의 등에 우뚝 솟은 것은?

“용기사 용기사다!”

눈을 가늘게 뜬 마법사가 새의 정체를 파악하자, 다른 마법사들도 우르르 벽에 달라붙듯 다가섰다.

“그럼 이들이 프랑 기사단이란 말입니까?”

“하지만 토벌대가 도착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하루의 시간이 남았을 텐데요?”

“용기사들만 먼저 온 것일 테지요.”

“아, 보십시오. 여기 용기사 뒤로 기사가 둘이나 더 타고 있습니다.”

와이번을 타는 용기사의 특성상. 숫자만으로 단순히 전력을 계산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기사의 숫자는 세배다.

거기에 토벌대에서 용기사와 함께 보낸 만큼 가리고 가린 뛰어난 기사들일 것이 분명하다.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전력이다.

“과연 탑주님의 혜안은 참으로 넓으십니다.”

그뿐인가. 싸우겠다고 나서면 차라리 방법은 단순하다. 문제는 와이번을 타고 배신자와 감시조가 도망가 버릴 경우다. 딱 닭 쫓던 개 꼴 나기 좋은 상태인 것이다.

나서지 않았으면 몰라도. 싸우러 나서서 도망치는 적을 힘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것은 코앞으로 닥친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서도 결코 좋지 못한 일이 될 게 분명했다.

“그래. 그런 것이다. 이제 우리의 진짜 싸움이 곧 시작한다. 사소한 일은 잊어라. 토벌대와의 진짜 전투가 시작되면 그때 배신자를 찾아 대가를 치르게 해도 늦지 않다. 그보다는 우리의 연구를, 우리의 원대한 목표를 세상에 알릴 준비에 힘써라.”

“예. 탑주.”

“예. 스승님.”

대답하는 목소리가 기사 못지않게 쩌렁쩌렁 울린다.

“두 부관주는 나를 따라와라.”

마법사들을 안정시킨 탑주가 방을 나서자. 그 뒤를 해더웨이와 랜달이 조용히 따랐다.


“거북이 같은 놈들일세.”

“저들도 용기사가 왔음을 알아본 것이 아닐까요?”

“그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 하지만, 판단력과 참을성 있는 적은 성가시지.”

어차피 싸울 생각은 없다. 그래서 적의 함정을 폭파시키기 직전 최대한 빠르게 감시조와 합류해서 외곽으로 빠진 것이다.

아무리 외부 자극에 무던하다고 해도.

이만큼 큰 충격을 받으면 어떤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단테의 말처럼 때마침 나타난 용기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곳은 몰라도 마법사들이 바글거리는 정신의 관이라면, 하늘을 나는 용기사들도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뭐・・・・・・ 이제 나머지는 토벌대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우린 자리나 깔자.”

이제 편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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