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42화
878화
게다가 그 덕분에 빠르게 이 조를 볼 수 있었다. 방어 대형으로 움직였으면 몇 배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뭐, 뭐야!”
“지원 병력인가?”
“겨우 교대 시간이 된 건가?”
누군가 반기며 하는 말에 어느 기사가 시계를 꺼내어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직 한 시간도 넘게 남았어.”
“아직도 그렇게나 남았다고? 그럼 저 삼 조는 뭐야?”
거대한 원숭이처럼 유독 긴 팔을 가진 골렘과 싸우던 이 조는 갑자기 등 뒤에 나타난 삼조를 보고는 처음엔 소스라치게 놀라다, 곧 토벌조의 기사임을 알아보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일 조처럼 세 시간을 꽉 채운 것도 아니고, 두 시간이 조금 못 되게 지났을 뿐인데.
이 조의 모습은 꼭 하루 종일 싸운 듯, 피로와 긴장에 절어 파김치 같았다.
이드는 그런 이 조의 기사들과 그들이 맞서서 싸우고 있는 골렘.
그리고 골렘 너머 그 안쪽에서 꽁지만 겨우 보이고 있는 청색 기사단을 확인하고는 토벌대를 멈춰 세웠다.
“역시….. 편하게 교대하지는 못하겠네. 스폴 경. 방어 대형 짠 후 현 위치에서 대기해.”
“단장님은 어쩌시려고요?”
이드의 말에 따라 충실하게 수신호를 마친 스폴이 물었다. 그 주변으로는 황녀를 중심으로 아이넬 기사단이 다가와 있다.
“가서 교대 시간이라고 알려야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다고 해서 얌전히 교대해 줄 것 같지 않으니까. 분명 우리가 온 걸 알 텐데. 돌아보지도 않고 있잖아.”
아무리 싸움에 정신이 팔렸어도 그렇지.
어디 산 너머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조의 토벌대 수백이 말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못 들은 척하고 있다는 것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이대로 기다렸다가는 교대 시간이 되어도 교대해 줄지 의문이다.
“그러니 직접 가서 말해 줘야지. 집에 갈 시간이라고.”
“그럼 명예 후작님이 돌아오실 동안 이 조에 있는 부상자를 치료해도 괜찮겠지요?”
“물론입니다. 저보다는 황녀 전하의 뜻이 먼저지요.”
황녀는 이 조가 아니라 토벌대 전체에 대한 명령권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권위를 생각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록마틴 후작의 권한을 정지시키는 것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니 정확히 따지면 이 조에 대한 명령권도 이드보다 우선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일리나와 라미아, 두 사람과 눈을 마주친 이드가 훌쩍 몸을 날렸다.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선 기사들의 머리 위를 지나며, 이드는 그중 유난히 몰려 있는 골렘들의 머리를 토토토톡 하고 사뿐히 지르밟아 주고는 다시 몸을 날렸다.
퍼퍼퍼펑!
그어어어!
“와아아!”
그와 동시에 이드의 뒤로 골렘들의 머리가 폭발하며, 골렘과 기사들이 서로 다른 의미를 담아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드가 골렘의 머리에 박아 넣은 경력에 의한 폭발이었다. 마침 적당하게도 이드에게는 골렘들에게 천적과 같은 파옥수라는 공격기가 있어 아주 손쉽게 골렘의 머리를 자갈 조각으로 만들 수 있었다.
“명예 후작님은 그냥 조용히 가시는 법이 없네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신혼 생활을 보내고 싶은 이드로서는 실로 억울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누구보다 조용히 시온 숲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그저 평화를 원하는 마음을 몰라주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일단 정식으로 교대하지 못하고 있으니, 지원의 형태로 부상자의 치료부터 하도록 하죠. 기사들은 부상자를 빼내서 옮겨 주시고, 마법사와 신관은 부상자를 치료하도록 하세요.”
“충!”
과연 황녀의 권위는 대단했다.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무엇보다 같은 토벌대의 동료들을 구하고 치료하는 일인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그리고 기사들이 움직이며 생긴 빈틈을 비집고, 외교관들이 황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과연 듣던 대로 황녀 전하께선 마음이 따뜻하십니다.”
“누구보다 먼저 다친 기사들을 돌보시니 말입니다.”
간신처럼 웃으며 연신 칭송의 말을 더하는 자들, 정말 외교관이 천직이 아닐 수 없다 싶은 모습이다.
툭. 툭.
이드가 발을 놀릴 때마다 허공의 공기가 발에 차였다. 그 반동으로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낙엽이 떨어지는 듯 작은 소리만 났다. 용천혈에서 시작된 기묘한 인력으로 인해 대기가 단단히 응집해 이드의 발판이 되어 준 것이다. 고절한 경신비결이라기보다는 허공답보의 경지가 깊어지고, 외기에 대한 이드의 지배력이 강해졌기 때문에 할 수 있게 된 진화된 허공답보였다. 이 방법이면 적은 내공으로 더 빠르고, 더 높이 날 수 있다.
물론 이것 말고도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가진 이드에게는 그렇게 큰 의미는 없었다.
“상당히 넓은데?”
허공에 뜬 덕분에 이드는 땅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2층은 중간에 벽이 있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굉장히 넓었다. 일단 트여 있는 공간만 해도 축구장 3개 넓이다.
1층도 그렇더니. 2층도 넓은 것이 땅값 걱정 없이 던전을 건설한 것 같다.
아니다. 어차피 허가 없이 몰래 지었으니, 돈이 필요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토벌대로서는 다행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정신의 관이 이렇게 넓지 않았다면, 토벌대의 그 많은 인원을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넷으로 나누어도 700명인데. 그 많은 인원을 밀어 넣으려면 어지간한 마탑의 규모를 가지고서는 어림도 없다.
“어쩌면 정신의 관을 지을 때부터 토벌대와 싸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지.”
가능성은 높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각 없이 마탑을 이렇게 넓게 지을 이유는 없으니까.
동시에 그런 던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골렘들을 보며, 어쩌면 저놈들을 이용해서 던전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법이 만능의 힘이기는 하지만, 건축이라는 작업을 백 프로 마법이 감당할 수는 없을 테니까. 특히 세부 구조를 잡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이 꼭 필요하니 말이다.
대략적인 구경을 마친 이드는 시선을 앞에 있는 청색 기사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앞쪽, 토벌대와 떨어진 청색 기사단이 더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는 놈들도 함께 눈에 담았다.
“거미 골렘인가?”
생김새는 일단 거미를 닮았다. 그런데 우선 컸다. 당장 바닥에서 머리까지의 높이만 기본 3미터가 넘었다.
성인 남성의 허리만큼 굵은 여덟 개의 다리와 머리에 솟아 있는 날카로운 뿔. 그리고 입과 엉덩이에서 뿜어내는 불길이 섞인 부식액이 제법 인상적인 놈이다.
그래도 가장 이드의 관심을 끈 점은 빠르다는 것과,
“저 덩치로 거꾸로 매달리는 게 되는구나.”
진짜 거미처럼 벽과 천장을 평지처럼 오간다는 데 있었다. 거기다 잘 만들어진 고층 빌딩의 한 층 같은 입구와 달리 청색 기사단과 거미들이 싸우는 곳은 딱 봐도 동굴처럼 원형으로 만들어져, 거미들이 움직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었다.
“그나저나 저 거미들 꽤 하나 보네. 청색 기사단이 여기서 막힌 걸 보면.”
이드는 거미 골렘을 응원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입술을 참으며 청색 기사단 뒤에 내려섰다.
“…..·충. 명예 후작님을 뵙습니다.”
아무리 무시하고 싶어도 여기까지 직접 와 버리면 그러기 힘들다.
가장 뒤에 서 있던 기사가 돌아보며 가슴을 두드렸다. 그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 더 돌아서긴 했지만, 대부분의 기사들은 요지부동이다.
그렇다고 그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적을 앞에 두고 한눈을 파는 것이야말로 미친 짓이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청색 기사단과 거미 골렘의 싸움이 마침 멈춰 있다는 것일까.
그런 두 무리의 중앙에 부서진 골렘의 파편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크게 다친 기사도 없어 보이고, 역시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 실력을 뽐내며 혼자 날뛰는 모습도 결코 보기 좋은 것은 아니다.
이드는 기사들 사이에 서 있는 모이엔을 찾았다. 그는 이드가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야 겨우 아는 척을 했다.
“명예 후작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교대 시간이라면 아직 멀었을 텐데요.”
“이 조가 너무 고생이 많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록마틴 후작님의 명령으로 조금 일찍 교대하게 되었습니다.”
“음. 곤란합니다. 마침 이 층의 대장 놈과 마주 선 참이라.”
이드와 대화를 하면서도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던 모이엔이 손가락을 들어 거미 골렘들 너머 컴컴한 동굴 속을 가리켜 보였다.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 안에 있습니다. 화염 거미가.”
동굴의 어둠을 꿰뚫어 보는 정도야 쉬운 일이다. 과연 그 안에 거대한 덩치의 거미가 있기는 했다.
밖에 있는 거미 골렘과 똑 닮은 형태에 세 개의 긴 뿔만 추가되어 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큰 차이점은 크기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얼굴만 해도 세 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 뒤의 몸체까지 생각하면, 가볍게 십 미터가 넘어갈 거체라는 결론이 나온다.
“덩치가 상당하네요. 그런데 화염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처음 동굴을 공략하니 화염을 뿜더군요. 마치 드래곤의 브레스처럼 말입니다. 그 앞에 선 것이 우리 청색 기사단이 아니라 다른 기사단이었다면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을 겁니다.”
유난히 힘을 주어 말하는 ‘다른 기사단’,
이드는 그 기사단이 은색 기사단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청색 기사단의 기사들은 몰라도 모이엔은 쉴라에 대한 생각이 복잡한 것 같았으니까.
어쩌면 그가 무리하게 2층까지 공략해 내려온 것도 은색 기사단을 속도에서 이기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생각은 사실 반쯤은 정답이기도 했다.
당장 모이엔은 전날 은색 기사단이 거대 마수를 가장 먼저 처치했다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쉴라는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데 말이다. 짝사랑만큼이나 처량한 혼자만의 승부욕이랄까?
그러나 이드로서는 쓸데없는 경쟁심에 상관없는 사람을 말려들게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대단하군요. 알겠습니다. 놈을 상대할 때는 주의하도록 하지요.”
“그 말씀은 설마 지금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가라는 말입니까?”
“당연합니다. 록마틴 후작님의 명령이니까요.”
높낮이 없이 평온한 이드의 말에 모이엔이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이제 조금이면 놈을 사냥할 수 있습니다. 원래 제가 받은 시간도 남았지요. 그런데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불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토벌대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토벌대를 책임진 대장군의 명령을 들어야지 않겠습니까?”
즉, 명령을 듣지 않겠다면 나가라는 말이다.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났다.
빙긋 웃는 이드와 입을 악다문 모이엔.
누구에게서 난 소리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불쾌하군요. 여러 가지로.”
“그 불쾌함은 나가셔서 대장군과 풀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황녀 전하의 안전을 지키는 것만으로 정신이 없거든요. 아~주 힘들어요. 아, 돌아가시는 길에 황녀 전하께 인사를 드리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장군에 직접 여기까지 내려온 황녀까지.
괜히 고집 피우지 말라는 이드의 뜻이 확실하게 박힌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