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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59화


895화

막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 그들을 물리고 록마틴 후작과 이드가 마주 앉았다.

후작은 탑주와 비밀 이야기를 했는지, 그렇다면 그 내용이 무엇인지 정중히, 그러나 엄히 물었다.

마탑의 정체를 밝힌 이드가 탑주와 연관이 있다고는 의심하지 않는다. 거기다 실제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그렇게 티 나게 비밀 이야기를 하지는

않을 테니까.

오히려 분열을 조장해 자중지란을 노리는 수작이 아닌지 경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이상 록마틴 후작은 하나하나 확인하며 신중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에 이드는 당시의 대화를 사실대로 밝혔다.

생명의 관에서 귀한 전리품을 얻었고, 탑주는 그걸 돌려받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저주를 풀어 주는 대가로. 물론 바이트 타블렛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다행히 그 기색을 알아차린 록마틴 후작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생명의 관을 파괴하고 이드가 얻어 낸 전리품은 온전히 이드의 것. 후작이 아니라 황제라 해도 뭐라 참견할 수 없는 것이다. 협조 요청을 해 오면 또 모르겠지만, 마법사도 아닌 록마틴 후작이 굳이 이드의 심기를 거슬러가며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 알고자 하지도 않을 테고.

“휴~ 그럼 명예 후작은 돌아가서 쉬시오. 나는 오늘 일을 황실에 급히 알려야겠소.”

통신구를 두고 길게 이어질 보고 생각에 벌써부터 힘이 드는지 긴 한숨을 쉬는 록마틴 후작이다.

하지만 급히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는 없다. 당장 각국 외교관들도 자신들의 막사에서 수정구를 붙잡고 열심히 혓바닥을 놀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이쪽의 대처가 늦을수록 손해가 늘어나고,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라미아가 들고 있던 황금 접시를 내보이며 물었다.

“이 물건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흠, 일단 전리품은 모두 수거한 뒤에 토벌이 끝난 후 분배할 계획이지만, 획득 과정이 워낙 분명한 만큼 특별한 일만 없다면 그 주인은 명예 후작입니다. 하지만 적의 손에서 나온 것이니. 혹, 어떤 문제가 있는 물건이 아닌지는 알아보아야겠지요. 앞서 획득한 상자처럼.”

“하지만 그 상자에 대한 조사도 아직 덜 끝나지 않았나요?”

라미아의 말대로다.

오늘 아침에 받은 보고에 따르면 아직 상자를 열지도 않았다고 한다. 추가로 적힌 토리빈 마법사의 말에 따르면 상자 외부에 대한 조사만 최소 삼 일이 필요하다던가?

그런데 이 황금 쟁반은 척 보기에도 상자보다 더 복잡해 보인다. 그나마 마음 편한 것은 상자처럼 사람 머리가 들어 있을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정도?

“혹시 후작 부인께서 조사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맡겨만 주세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황금 접시를 품에 넣는 라미아다.

생명의 관에서 얻은 전리품을 연구했다면 초인 마법에 관해 토리빈 마법사보다 좀 더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권해 봤던 록마틴 후작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당한 것 같지만, 좋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알려 주십시오. 별문제만 없다면 그건 명예 후작의 것이니까요. 그리고 후작 부인께서 시간이 나신다면 토리빈 마법사의 일도 좀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접시의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접시를 넘겨받아서 그런가 라미아기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록마틴 후작과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드는 그가 통신 마법사를 부르는 것을 보고는 막사를 나왔다.

이드가 막사로 돌아오자 황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남겨진 만큼, 탑주와의 만남이 궁금했던 것이다.

“탑주는 어땠습니까?”

그중 가장 안절부절못하던 비올라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한 듯, 아직 자리에 앉지도 않은 이드를 보며 물었다.

“얼굴 좋더라. 여유도 넘치고, 잘 먹고, 편하게 잘 있나 봐.”

“아니, 그런 거 말고요!”

아무리 그래도 탑주다. 설마 굶을까.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만 비올라다.

“목소리가 높다?”

“그, 그러니까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이드는 쩔쩔매는 비올라의 모습에 혀를 차고는 자리에 앉았다.

“네 말대로 보통 마법사는 아닌 것 같더라. 7클래스 마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섀도 체이서라는 초인 마법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토벌대를 바라보던 눈과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 이드다.

당당하고 빛이 났다. 거기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나, 실패나 패배에 대한 의심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자신에 대해 그만큼 강력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보기 쉽지 않다.

‘그런 강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하는 일은 절대 허술하지 않지.’

오만이나 자만과는 분명 달랐다.

어쩌면 정신의 관의 나머지 층에 대한 공략이 예상보다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싶다. 그 탑주가 자신만만하게 6층부터가 진짜라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록마틴 후작에게 주의를 당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드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비올라는 역시 탑주는 대단하다며 묘하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마치 연예인의 사생팬 같다.

“처음 볼 때도 그러다니. 너 그러다 위험한 범죄자가 되는 수가 있다.”

“위험한 범죄자는 또 뭡니까? 전 그저 탑주를 존경할 뿐입니다. 위대한 마법의 선구자로서.”

“그 선구자를 뛰어넘을 거라며?”

“물론 그럴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탑주가 이룬 업적이 흐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무한한 마법의 역사에 저와 함께 이름이 새겨질 위인이 될 겁니다.”

이게 과연 탑주에 대한 칭송인지, 스스로에 대한 과한 자신감에서 나온 자기 자랑인지 헷갈린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볼 때마다 그렇지만 저런 생각을 가지고 탑주의 반대편에 섰다는 사실이 참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무리 천재들 중에는 괴짜가 많다고 하지만, 저런 괴짜는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래. 마법 역사에 이름을 새기든, 묘비에 이름을 새기든 그건 뒤에 알아서 하고, 혹시 이 물건에 대해서 아는 거 있냐?”

라미아에게 받은 황금 접시를 탁자에 올린 이드가 물었다.

반들거리는 광택에 굉장한 예술가가 새긴 듯 생동감 있는 와이번까지. 그냥 예술 작품으로 두어도 보기 좋을 것 같다.

“이게 탑주가 상품으로 내놨다는 그 물건이군요.”

한 걸음 먼저 복귀한 쉴라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비올라는 품에서 하얀 장갑을 꺼내 끼고는 접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하고 무거운지 라미아에게 록마틴 후작의 막사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던 사람들이 잠시 말을 멈출 정도다.

그렇게 한참을 살피던 비올라가 작업이 끝난 듯 쟁반을 탁자에 내려두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휴~ 역시. 일단 어떤 물건인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오~ 그래? 어떤 물건인데?”

이드가 반색을 했다. 혹시나 싶어 꺼내 본 것인데. 안다고 하니, 라미아의 고생을 덜 수 있을 것 같다.

“실물을 본 적은 없습니다. 생명의 관에 있을 때 정신과 영혼의 관으로 넘어가는 필요 재료에 대한 요구 서류 속에서 본 적이 있는 물건입니다. 거기에 적혀 있던 이 접시의 이름은, ‘황금의 둥지’였습니다.”

“황금의 둥지?”

“이름이 어째 미묘한데?”

나름 기대를 가지고 비올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황금은 둘째 치고 둥지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

“호, 혹시・・・・・・ 그 접시에서 황금이라도 솟아나는 건가요?”

뭔가 욕망이 폭주한 듯한 친구의 발언에 네리베르가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하아~ 케마란, 제발요.”

“아~ 왜!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

물론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황금을 만들어 내는 접시라니. 만에 하나 정말 그런 거라면 대륙 경제가 위험하다.

“그런 재주가 있으면 좋기는 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런 물건이 있었으면 마탑에서 초인 마법이 아니라 황금으로 대륙을 지배했겠지.”

무력과 함께 대륙의 운명을 잡고 흔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황금에서 나오는 재력이다.

당장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거상의 경우 어지간한 귀족들도 쉽게 다루지 못한다.

비올라는 더 이상 엉뚱한 말이 나오기 전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냥 보면 접시처럼 보이는 이 황금의 둥지는 두 가지, 아니, 세 가지 기능이 숨겨진 방패입니다.”

“방패? 이렇게 작은데 말인가요? 팔에 고정할 수 있는 밴드도 없고.”

방패라는 말에 쉴라가 반응했다. 검과 방패를 주무기로 사용하고 있기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크흠, 당연히 크기 조절은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관심을 보이는 쉴라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비올라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점잔을 떨었다. 평소 전혀 관심 없는 척을 하지만, 그의 인생 첫 데이트 상대였던 쉴라를 항상 신경 쓰고 있는 비올라였다.

나름 순수 총각에 모태 솔로랄까?

아무튼 그런 거야 무슨 상관인가.

“크기 조절도 기능 중 하나인가 보군요. 그런 방패는 은색 기사단에도 있죠.”

“어허, 기본이라니까요. 누가 기본을 숨겨진 기능이라고 합니까?”

“호오~ 그럼 크기 조절을 제외하고도 세 가지 능력이 더 있다는 건가요?”

“흥, 당연하죠.”

두 가지 이상의 마법 기능을 가진 아티팩트는 귀하다.

딱 자기 취향의 무기에 쉴라가 두근거리는 표정을 하고 있자, 괜히 비올라가 우쭐해서는 큰소리를 친다.

“지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우쭐하기는. 그러지 말고 설명이나 마저 해 봐.”

이드가 보기 흉하다는 듯 퉁명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찔린 비올라가 매끈한 머리를 붉히고는 쪼그라든 목소리로 황금의 둥지에 대해 설명했다.

황금의 둥지의 첫 번째 기능은 소유자의 보호다.

소유자가 원할 경우, 황금의 둥지는 소유자의 전신을 돌로 된 갑옷으로 보호한다. 이 갑옷은 돌로 되어 있지만, 마치 옷처럼 소유자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은 물론, 가죽 갑옷처럼 가볍고, 어지간한 강철 갑옷보다 단단하다고 한다.

두 번째 기능은 표면에 그려진 와이번에 있다.

소유자가 원할 경우 표면에 그려진 와이번이 강력한 불길을 뿜어낸다. 그 화염은 진짜 와이번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데.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 정해진 횟수만큼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충분히 대단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불길이면 일반 병사는 단숨에 소대 단위로 살상할 수 있고, 어지간한 상대는 공격을 방패로 막고 불을 뿜으면 피하지 못하고 끔찍한 화상을 입거나 즉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니까.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기능.

“이 세 번째 기능이 황금의 둥지의 핵심입니다. 소유자가 원할 경우. 이 안에 있는 와이번이 둥지에서 날아오릅니다. 돌로 만들어진 와이번은 무겁고 단단하며, 강력한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불까지 뿜어내며 소유자의 명령을 따릅니다. 일종의 소환마라고 할 수 있지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특별한 마법을 익힐 필요도 없고, 마나도 쓰지 않고 강력한 소환마를 부린단 말입니다. 그것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신이 말하고도 짜릿한지 캬~ 하고 감탄하는 비올라다.

이드가 그런 비올라에게서 황금의 둥지를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처음 느꼈을 때와 마찬가지로 미세한 초인기만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비올라가 말한 기능들을 가동하기에는 턱도 없는 양.

그만큼 힘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는 것일까.

“소환마도 사용 시간에는 한계가 있겠지?”

“그거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불을 뿜어내는 것도 횟수 제한이 있는데 무려 명령대로 움직이는 돌 와이번에 한계가 없을까.

“흐음.”

이드가 황금의 둥지를 앞에 두고 턱을 쓰다듬었다.

그사이 비올라의 설명을 들은 모두가 뜨거운 눈빛으로 황금의 둥지를 바라본다.

그가 언급했던 세 가지 기능은 누구나가 모두 탐낼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이드는 황금의 둥지를 탁자에 내려 두고는 비올라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황금의 둥지도 초인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

“당연하죠.”

“그럼 여기에도 사 조가 가져온 상자처럼 초인을 재료로 해서 만든 거냐?”

흠칫.

“아…….”

순간.

황금의 둥지를 향해 반짝이던 눈들이 화들짝 놀라 떨렸다.

마탑에서 초인기가 담긴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지, 무엇이 들었는지, 뒤늦게 생각해 낸 것이다.

한순간 화려한 외형과 기능에 혹해 ‘가지고 싶다’라고 생각한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에 가볍게 진저리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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