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81화


917화

그렇게 존 워스의 사냥이 한창일 때, 이드가 장내에 도착했다.

“휘우~ 엉망이네. 완전 개판이구만.”

무너진 바위 위에 올라서 내려다본 동굴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동굴 이곳저곳이 무너져 있고, 초인들은 사방에서 머리를 들이미는 샌드웜과 싸우고 있었다.

10층 입구에서 잡은 샌드웜이 선상에 잡혀 올라온 장어라면, 여기 있는 샌드웜은 물 만난 장어였다.

사방에서 머리를 들이미는 공격도 입체적이고, 거체도 적극 이용한다. 위험하다 싶으면 꼬리를 말고 도망갔다 다른 곳에서 다시 머리를 들이민다.

거기에 다른 놈들과 협력까지 하는 것이 생기긴 지렁이처럼 생겨서는 영악하기가 뱀 같은 놈들이다.

『이제 좀 샌드웜 같네. 입구에서는 너무 쉬웠죠.』

라미아의 반응을 보면 이게 원래 모습인 듯하다.

“뭐든 제 구역에서는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지. 그보다 이 인간은 어디 있나?”

이드는 난장판에서 존 워스를 찾기 시작했고, 곧 오조 후방에서 어떤 초인의 생명을 꺼트리고 있는 그를 찾을 수 있었다.

“완전 살판났네. 살판났어. 아주 그냥 사신이 따로 없네.”

이드는 그 주변, 존 워스에게 죽은 것으로 추측되는 시신들을 발견하고는 혀를 찼다. 벌써 적지 않은 수가 살해당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존 워스의 암살자 행세가 너무 뛰어난 것도 있지만, 혼란 중이라 암살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컸다.

아무나 죽이지는 않는 걸 보면, 미리 정해 둔 목표가 있나 봐요.』

“내가 보기에 목표를 정해 놨다기보다는 그냥 기사단장 이상의 실력자면 다 노리는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세 명이 더 죽었다. 하나는 머리를, 둘은 심장을 찔려 즉사했다. 그리고 이드의 말을 증명하듯 셋 다 기사 단장급의 실력자였다. 실제로 그중 두 명은 작은 기사단의 단장이었다.

셋을 처리한 존 워스는 다시 자리를 옮겨 그와 비슷한 급의 실력자들을 찾아 죽이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단장급이다 보니 그 옆에 부하 기사들이 붙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럴 때는 그들까지 같이 죽어 나갔다.

핵심 전력에 포함되지 않은 외곽이라서인지 존 워스를 상대하거나 막을 인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저대로 그냥 두고 볼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고민 중이야.”

생포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던전에 따라 들어온 목적이었다.

그리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해서 정보를 캘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존 워스의 암살행을 지켜보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요?』

“이대로 초인파의 핵심 전력을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초인파의 핵심 전력을 어떻게 확인해요?』

라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기 존 워스가 하고 있는 단장 죽이기. 내 생각엔 저게 바로 초인파 핵심 전력의 멱살을 잡아끄는 작업 같거든.”

아무리 전투 중이라고 해도 단장만 속속 암살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을 끝까지 눈치채지 못하고 막지도 못한다면 그것은 초인파의 실책이며 무능이다.

단장의 죽음은 그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단장으로 있는 기사단의 죽음이라고 봐야 했다. 단장을 죽일 정도라면 그 단원도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초인기가 막혀서 잔뜩 체면을 구기고, 이상한 소문까지 돌아 해결을 위해 오 조를 만들어 던전 공략에 나섰다가 실패. 초인파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 불 끄러 나왔다가 기름만 뿌린 격이니까.”

그리고 이때 가장 골치 아픈 점은 일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불씨만 키웠으니.

이대로 두면 소문이 진짜가 되어 퍼지게 된다. 수십 년에 걸쳐 힘들게 쌓은 초인의 위치가 하루아침에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분명 초인들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될 일.

초인파 입장에선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당장 초인파에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항~ 그러니까 단단히 힘을 모아서 찝찝한 소문과 함께 한 방에 날려 버릴 거란 말이죠?』

그 말에 이드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바로 그거야. 그때가 초인파가 진지해지는 순간이란 거지.”

사실 토벌이 시작된 후 초인들 개개인은 열심이지만, 초인파는 예상만큼 적극적이지 못했다.

아무래도 전면에 나선 황녀 때문이 아닌가 싶지만 추측일 뿐.

이유가 어찌 되었건 이번 일로 초인파의 입장이 완전히 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존 워스가 얻는 게 뭐에요?』

사실 이 부분은 이드도 딱히 답을 찾지 못한 부분이었다.

“나도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어차피 초인파 뒤통수를 칠 거 좀 더 찰지게 치겠다는 건지. 존 워스가 오면서 갑자기 기류가 이상하게 꼬였어.” 이드가 머리 아프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모으고 끙끙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이드라도 이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가 그저 존 워스 개인의 초인 혐오 때문이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을 테니까.

결국 이드는 답을 구하길 포기했다.

동시에 존 워스의 생포 역시 포기했다. 이리저리 계산해 본 결과 현재는 존 워스를 그냥 두는 것이 이익이다 싶어서다.

“뭐, 검후의 행방은 에단이 쫓고 있으니까. 곧 좋은 결과가 있겠지.”

사실 희망 사항에 가까운 말이었다.

납치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존 워스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다. 검왕 정도 되는 인물이 독하게 침묵을 고집하면 입을 열게 만들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될 경우 소득 없이 일만 복잡해진다.

그럼 이대로 돌아가요?』

할 일이 없어졌으니 그래야 했다.

한데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의 눈에 마침 제 세상을 만난 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존 워스가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끄덕거리던 이드의 고개가 옆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암살 혐의는 몽땅 마탑에서 뒤집어쓰겠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죠?』

아무렴 존 워스가 직접 암살자로 뛰었다는 것을 모르는 이상 다른 곳을 의심하긴 어려울 것이다.

“나쁜 놈이 또 나쁜 짓하는 건 재미없지.”

『무슨 흉한 생각을 하는 건데요?』

이드의 입가에 번지는 살벌한 미소에 라미아가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흉하긴. 난 그냥 초인파에 기회를 주려는 것뿐이야. 자신들을 암살한 적이 누구인지 알아볼 기회.”

「에휴~」

이드는 라미아의 한숨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범고래를 불렀다.

“범고래야. 우리도 웜 던지기 좀 해 볼까?”

‘던지기 좋아해!’

신이 나 두 팔을 번쩍 든 범고래.

이드는 그 모습을 보고는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 앞에는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 워스가 있었다.


이드와 라미아가 수다를 떠는 사이.

열심히 초인 사냥에 열을 올린 존 워스는 점점 오 조의 핵심 전력이 있는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실 아직 발각되지 않은 것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모두가 샌드웜이 통로를 부수고, 거체로 통로를 가로막아 존 워스의 움직임을 가려 준 덕분이다.

‘상상 이상으로 쉽군.’

마치 하늘이 초인을 잡아 죽이기를 바라고 길을 열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한 존 워스다.

무엇보다 평소엔 가슴에 묻어 둬야 했던 초인에 대한 혐오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그런 마음으로 기분 좋게 다음 목표의 등 뒤로 접근할 때였다.

퍼거거걱!

끄에에엑!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등 뒤 동굴 벽이 무너지며, 그 속에서 샌드웜 한 마리가 튀어나와 존 워스를 향해 날아든다. 언뜻 10층 입구에서 발터의 손에 끌려 나온 샌드웜이 떠오르는 모습. 당연하게도 이드와 범고래의 공동 작품이다.

특히 신경 써 던진 덕분에 쩍 벌어진 흉한 아가리가 정확히 존 워스를 향하고 있다.

‘…….’

매우 당황스러운 순간이지만 존 워스는 침착했다.

사람이 당황하는 이유는 그 상황이 위험하기 때문인데, 샌드웜 정도는 전혀 위협으로 느끼지 않는 존 워스로서는 당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즐거운 일이 방해받은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평소라면 그런 기분을 만든 흉한 벌레의 머리를 갈라야겠지만, 현재 그의 우선순위는 벌레가 아닌 초인.

존 워스는 버릇없는 벌레를 무시하고 목표를 우선하기로 했다.

마침 목표와 그 주변의 초인들이 샌드웜의 출연에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그 찰나의 사각에 숨어 목표의 심장을 찌르고 자리를 뜨기로 한 것이다. 이런 공간의 사각으로 이동하는 기술은 일류 암살자라도 힘든 일이지만, 존 워스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의 검이 목표물의 심장을 향해 날아들던 순간 목표가 디디고 선 땅이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뒤이어 그가 땅을 박찬 순간 땅이 물러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허허.”

결과적으로 심장을 찌르던 검은 허공을 베었고, 존 워스는 엉거주춤한 흉한 모습으로 초인들 앞에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존 워스는 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허탈하게 웃었다.

얼마나 신이나 방심하고 있었기에 이런 얕은수에 걸려 버린 것인지. 가벼운 자책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웬 놈이냐!”

그때, 뒤늦게 존 워스를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는 목표다. 운 좋게 존 워스의 검에서 살아난 행운아지만, 그 운이 길지는 않았다. 

“쯧.”

마치 실수를 재확인시키는 것 같은 목소리에 못마땅한 듯 혀를 찬 존 워스가 들고 있던 검으로 목표의 목을 잘라 버린 것. 이번에는 다시 땅이 움직이는 행운은 없었다.

단장의 목이 바닥을 구르자 한 박자 늦게 소속 기사단의 기사들이 소리쳤다.

“암살자다! 단장이 암살자에 당했다!”

“모두 조심해! 마탑 놈들이 샌드웜 사이에 암살자를 섞었어!”

암살자는 언제나 민감한 문제였다. 스무 명의 기사들이 소리치자 열 배가 넘는 살기를 담은 삼 백의 눈동자가 존 워스를 향했다.

눈빛에 물리적인 힘이 실릴 수 있다면 존 워스가 가루가 되었을 상황.

그 속에서 존 워스는 오히려 웃었다.

“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

그의 눈가에는 묘한 광기가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차가운 이성 역시 살아 끊임없이 주변을 살핀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스스슥.

그러나 그런 존 워스의 눈을 가리며 움직이는 초인들, 그들은 본능처럼 존 워스의 퇴로를 차단하며, 순식간에 몇 개의 포위망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순간.

“죽여!”

존 워스와 가장 가까이 선 초인이 소리치며 몸을 날리는 것과 함께.

슈슉! 슈슈슛!

존 워스의 검에서 검강이 폭발했다.

절대의 기사와 수백 명의 초인,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샌드웜의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좋은 구경을 혼자 하려니 아깝네.”

그리고 그 난장판의 중심지가 훤히 동굴의 천장.

그 속을 파고 들어앉은 이드가 느긋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