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49화


486화

“…크르….큭”

악문 이빨 사이로 씹힌 기침 소리가 잘려 나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산적질을 하던 동료들에게 싸가지로 불렸던 파이온은 기침과 함께 타고 올라온 핏덩이를 닦아 내며 이어지는 기침을 겨우 주워 삼켰다.

그리고 어느 건물의 굴뚝 그림자에 숨어 영주성에서부터 추적해 오던 에단이 여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확인했다.

“……………저놈의 나머지 일행도 저곳에 머물고 있겠지?”

파이온은 에단의 일행인 이드와 일리나가 싸우던 모습을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당장이라도 그들을 만나고 싶은 파이온이었지만, 여관 주변으로 순찰을 도는 병사를 확인하고는 몸을 웅크렸다. 저들이 찾는 것이 바로 영주성 테러의 범인인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테러가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 줄 사람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산적 동료들뿐이었다. 파이온은 날이 밝은 지금은 움직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밤에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위험한 시선을 피할 수 있다.

그렇게 판단을 내린 파이온은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다가 사람들의 시선이 지붕으로 향하지 않는 것을 확실히 확인하고서 허연 연기가 오르는 굴뚝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순간 뜨거운 불기운과 독한 연기가 동시에 그의 눈과 코와 입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크루・・・・・・ 크륵………….”

다시 기침이 튀어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방에 깔려 있는 기사와 병사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이곳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물론 이대로 있다가는 저들의 손에 잡히기 전에 훈제 육포로 변해 버릴 테지만, 그에게는 이 열기와 연기로부터 자신을 지켜 줄 힘이 있었다.

……………끝없는 발걸음 돌고 돌아 감싸 안아라. 프레스 웹.’

파이온이 자기 암시를 위한 주문을 외우며 마음속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그렸다.

슈르르륵—

다음 순간 하얗게 솟아오르던 연기가 휘리릭 감겨 오르다가 떨어져 나갔고, 그 자리에 옅은 하늘색의 투명한 막이 생겨나 파이온을 감싸 안으며 연기를 밀어냈다.

반구의 형태를 띤 프레스 웹은 파이온을 단단히 감싸고서 굴뚝의 벽면에 그를 껌처럼 밀어붙였다. 공기가 압축된 공간은 약간 갑갑했지만, 부상을 당한 지금은 오히려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느낌 덕분에 안정감이 있었다.

이대로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죽일 놈의 하이탈. 나는 이대로 죽지는 않는다. 절대로 이대로 잡아먹히지 않아!”

몸이 안전해지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의 얼굴에 파이온은 뿌드득 이빨을 갈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프레스 웹이 형성되면서 울컥 밀려난 연기를 들이마신 여주인의 기침 소리가 굴뚝을 울렸다.

“어, 어머나, 연기가 왜 이러니. 연기가………… 콜록! 콜록! 바람이 거꾸로 불었나. 콜록! 굴뚝 청소부를 한번 부르든지 해야지. 콜록! 콜록!”


탁탁탁!

거칠지만 가벼운 발소리가 다급하게 가까워지더니 방문이 급하게 열렸다.

“마스터! 큰일 났습니다.”

이드는 그 문 앞에서 숨을 씩씩거리며 서 있는 에단의 모습에 한쪽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문 앞에서 서서 소리치지 말고 이리 와. 거기서 소리치면 밖에서도 다 들린다고!”

이드는 자신의 말에 문을 닫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다가오는 에단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쯧쯧쯧!”

이드에게 정보를 전했지만 이어지는 상황과 에단의 귀환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던 대장이 그 모양을 보고 혀를 차고 말았다. 가끔가다 한 번씩 저렇게 덤벙대는 꼴을 보면 속이 터지는 대장이었다.

“엇! 대장도 와 계셨습니까?”

낯설지 않은 소리에 돌아본 에단이 뚱한 얼굴의 대장을 발견하고는 반색을 했다.

“그래, 와 있었다. 그런데 널 보니 복장이 터질 것 같아서 돌아가고 싶다, 임마.”

“에이,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정보를 하나 알아왔는데, 좀 골치 아픈 일이니까 대장이 좀 봐 주십시오. 아무래도 마스터는 이런 쪽 일은 약하신 것 같으니까요.”

‘이걸 그냥!’

이드는 자신의 앞에 앉아서 대놓고 자신을 까는 에단의 모습에 손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차마 휘두르지는 못하고 작게 한숨만 내쉬었다.

그 모습을 눈치챈 대장이 죄송하다는 표정을 하고는 이드를 대신해서 사정없이 에단의 뒤통수를 날렸다.

“야, 임마. 도대체 이드 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존경한다며? 그럼 예의를 좀 지켜라. 응? 도대체 애도 아니고 말이야.”

“에이, 씨! 남의 뒤통수는 왜 자꾸 때리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제가 중요한 정보를 물어 왔단 말입니다. 뒤통수 맞다가 그 정보가 날아가면 책임지실 겁니까?”

으슥한 밤길에 단단한 방망이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도 아니고, 손으로 가볍게 두드린 정도로 날아갈 기억력이라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금붕어다. 일리나와 라미아가 두 사람의 모습에 큭큭대며 웃었다.

대장은 삐딱선을 타는 이 쓸모없는 대화를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탈선한 대화의 주제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래서, 네 정보라는 게 뭐냐? 설마 벌써 날아간 건 아닐 테고. 뭐, 영주성을 공격한 놈이 얼마 전 잡혀 온 산적들이라던?”

멈칫.

비꼬듯 흘러나온 대장의 말에 에단은 움찔하고 말았다. 자신이 가지고 온 정보가 바로 저것이 아닌가. 에단은 뭔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는 얌전히 자리에 앉아 양손을 살살 비벼 가며 입을 열었다.

“알고 계셨어요?”

“당연하지. 병사들이 들고 다니는 범인 용모파기를 길드에서 알아 내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범인 이름이 파이온이란 것까지 안다.” 하이탈의 산적이라고 하면 모르는 용병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과 특징이라면 정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병사들이 들고 있는 용모파기를 입수한 순간 그들이 따로 조사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에단은 조용히 입을 닫았다. 자신은 산적이란 것만 들었지 이름은 알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드는 그에게 하이탈 자작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나올지에 대해 생각한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운이 좋으면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파이온이라는 범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하이탈의 지배자 체면이 땅에 떨어진 사건이야. 분명 체면을 회복시킬 결과물이 필요할 텐데, 그렇게 되면 잡히지 않는 범인보다 그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우리들을 이용하자 싶어질 테지. 그게 가장 쉬운 일이니까. 운이 나쁘지 않으면 협력자 정도로 얘기가 되어서 감옥에 갇힐 것이고, 운이 나쁘면 공범으로 목이 잘릴 거야.”

이드의 이야기를 들은 에단은 가만히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결론대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조용히 아나크렌으로 넘어가시죠?”

에단이 말했다. 운이 나쁘지 않은 결과가 감옥살이라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마지막 방법 중의 하나죠.]

같은 의견을 냈던 적이 있던 라미아가 에단을 지지하고 나섰다.

“본국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떻겠습니까?”

의견이 극단적으로 흐르자 대장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본국에서 이드 님에 대한 신원을 보장하거나 귀족 작위에 대한 확답만 해 주어도 하이탈 자작 쪽에서 허튼 행동을 보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하이탈을 나서서 아나크렌으로 진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나온 의견 중 가장 원만한 해결 방법이었다.

“그럴 거면 마스터의 행선지인 소드 팰러스에 연락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에단도 대장을 따라 급히 말을 꺼냈다. 겨우 이드를 소드 팰러스로 향하게 만들었는데, 까딱 잘못하면 이드의 행선지가 바뀌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드 팰러스의 요청으로 움직이던 중에 발생한 일이니 만큼 소드 팰러스 쪽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럼 상황을 지켜보다가 소드 팰러스의 도움을 받도록 하죠. 아나크렌 쪽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쉽게 예측이 힘드니까요.”

이드가 가볍게 소드 팰러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아나크렌에 대한 불신을 은근히 내비치는 순간이기도 했다. 용병 길드에서 새롭게 접한 정보로 인해서 나온 반응이었다.

“예, 그럼 바로 연락할 수 있는 라인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으음.”

이런 이드의 반응에 에단은 가볍게 대답할 수 있었지만, 같은 의견을 냈던 대장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입맛이 썼다. 이드의 모습에서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아나크렌의 속사정이 알려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결론이 나온 만큼 저는 일어나 보겠습니다.”

이드가 소드 팰러스를 선택한 상황에서 계속 자리를 지키기 어색한 입장의 대장이 일어났다.

“그럼 저도 같이 나가서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놓고 오겠습니다.”

그를 따라 에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드는 일부러 연락을 위해서 찾아온 대장에게 감사를 표하고 배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을 따라 길드 사무소를 찾아간 에단이 돌아왔다. 연락만 하면 언제든지 받아 줄 라인을 만들어 두고 돌아온 것이다. 이드는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는 그에게 방에 가서 쉬도록 했다. 이후부터는 사건이 조용히 끝나길 바라며 기다릴 뿐이었다.

전날처럼 관광을 할 수도 없었다. 하이탈의 거리는 살얼음판과 같았다. 거리에는 나와 있는 사람보다 기사와 병사가 더 많았다. 나와 있는 사람의 걸음은 한결같이 살금살금 조심스럽다.

난전을 펴고 있던 상인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집과 숙소에서 이번 사건이 자신들에게 피해 없이 빠르게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거리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따뜻한 햇살을 즐기던 이드가 일리나의 손을 잡았다.

“왜요, 이드?”

이드의 곁에서 온기를 나누던 일리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우리가 꽃도 아니고 가만히 햇빛만 감상하고 있기는 심심하잖아요. 좀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자구요.”

이드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머, 이드!”

일리나는 넓은 2인용의 침대로 향하는 이드를 따라가며 살짝 볼을 붉혔다.

[이드! 저도 같이 있는데 무슨 짓이에요!]

그 뒤를 뿔난 라미아가 따라붙었다.


좋지 않은 예상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영주성에서 연락관이 찾아오자, 여관 주인이 에단을 통해 이드 일행에게 영주의 호출을 알렸다.

이미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 둔 일행은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연락관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아까 방에서 하고 있던 건 뭡니까?”

에단은 연락관이 온 것을 알리기 위해서 방에 들어갔다가 침대 위에 둘러앉은 라미아와 일리나, 이드의 모습을 보았던 걸 떠올렸다. 세 사람의 중앙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그림들이 그려진 판과 수십 장의 카드, 주사위가 놓여 있었다.

“그냥 가만히 있기에는 심심해서 말이야. 내가 있던 곳에서 하던 놀이야.”

“음. 체스 같은 건가요? 그거 재미있습니까?”

“그건 나보다는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 본 일리나에게 물어봐야 알 수 있겠지? 어땠어요, 일리나?”

“무언가를 사고파는 게 그렇게 재미있는 줄 처음 알았어요. 호호호.”

일리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맑게 웃어 보였다.

[조심해요, 일리나. 잘못하면 그거 중독된다고요.]

거기에 라미아의 웃음까지 이어지자 앞서가던 연락관이 궁금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이드가 그를 보고 마침 잘됐다는 듯이 물었다.

“참, 그런데 영주성에 몹쓸 짓을 한 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안타깝게도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이탈의 모든 사람이 나섰으니 곧 잡힐 겁니다.”

수많은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하이탈의 주민들의 수많은 눈을 모두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락관은 그렇게 자신했다.

“그럴 겁니다. 빨리 범인이 잡혀야 하이탈의 지배자께서도 걱정을 덜고 저희 같은 여행객도 맘 편히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말씀하시죠?”

이드의 말이 중간에 멈추자 가만히 듣고 있던 연락관이 말을 재촉했다.

“아, 말씀드리기 죄송한 일이라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서 말입니다. 방금 제가 급한 일이 생각이 나서 그런데 자작님을 뵙는 것을 내일로 미룰 수는 없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하이탈의 지배자이신 자작님을 뵙는 어려운 기회인데, 맨손으로 간다는 것도 상당히 결례가 될 것 같습니다. 자작님께는 내일 찾아 뵐 때 존경과 사죄를 담아 충분한 선물을 올리겠습니다.”

“예?”

갑작스러운 이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해 모였다.

그때 이드의 귓가로 그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조용히 속삭여 왔다.

ᅳ잘했다. 그대로 성으로 갔다가는 너희들 모두 죽었을 것이다!

오러텅.

마법사들의 매직 마우스와 같이 은밀하게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사들과 초인들의 기술이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