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495화
931화
한편 그들이 라미아를 향해 뜨겁게 불타오를 때 그들의 상관이자, 스승이며, 주인인 장로들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일말의 기대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라미아의 실력은 그들이 이를 갈고 달려든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6개 단말과 라인이 모두 막혔습니다.”
봐라. 결과가 증명하지 않는가. 거기에 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좋군. 그럼 비선을 열어 보지. 하이드 마나를 시작으로 은폐 마법진을 모두 가동하고 라인을 연결해라.”
기존의 주시 마법을 모두 차단당한 때문에 만들어 낸 일종의 꼼수다. 기존과 같은 형태의 주시 마법을 설치해 라미아의 관심을 돌리고, 은폐로 숨기고 변형시킨 주시 마법으로 이드를 관찰하려는 것이다.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이드와 싸우고 있는 상대의 눈을 빌리는 것이다. 그게 가장 쉽고 확실하니까.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바로 이드와 싸우는 것이 인간도 아니고, 몬스터도 아닌 규정된 육체를 가지지 못한 마수라는 것이다.
이 마수는 마법사의 통제를 받는다. 당연히 이 통제는 마법에 의한 것이고, 이런 마법은 주시 마법과 그 근본 원리가 비슷하다.
즉, 라미아가 주시 마법을 역으로 추적해 온 것처럼 마수에 대한 통제 라인을 조종해서 마수의 통제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단순히 얼굴 좀 보자고 시작한 일이 심각해질 수가 있다. 저들이 초인기 아티팩트의 사용법을 알아낸 것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큰 문제로 번지는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이것이다.
“흐음. 드디어 그 비싼 얼굴을 보게 되는 건가?”
말과 함께 몸을 앞으로 내민 장로 하나가 조롱을 담아 말했다. 사실 이드의 얼굴을 모르지는 않는다. 토벌대에 속한 중요 인사에 대한 정보는 모두 확보한 후다.
하지만 이드의 전투력은? 이드가 던전을 공략하는 모습은? 이드가 마수를 처리한 방법은?
여태껏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려고 지금까지 갈아 넣은 수정구와 마법진의 값을 생각하면 수도에 작은 저택 하나를 살 만한 돈이 나온다.
그러니 백번 말해도 비싼 얼굴이 맞다.
“모든 마법진을 가동시켰습니다. 곧 영상이 연결됩니다.”
마법진의 운용을 위해 장로급만 있는 이 자리에 따라 들어온 마법사의 떨리는 목소리를 끝으로, 미리 준비한 수정구 위로 선명한 영상 하나가 튀어나왔다.
“우냐아아아~”
그것은 나타난 순간 흉악한 울음소리를 냈다.
검은 배경과 리본을 꼬아 만든 화환 안에서 핑크색 젤리를 휘두르며, 용맹한 울음으로 보는 사람의 심장에 흉악한 타격을 주는 그놈.
바로 새끼 치즈냥 되시겠다.
“……”
순간 방 안에 기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멍하니 영상을 보던 장로 하나가 마음속에 든 말을 툭 꺼내고 말았다.
“귀엽군.”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마법사를 노려보는 장로는 억지로 영상에 눈을 두려 하지 않는다. 저 영상을 봤다가는 화가 풀릴 것 같아서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넘치는 핏물과 번들거리는 살기, 그에 더한 초절한 검기와 무시무시한 무공이지. 귀여운 아기 고양이 영상이 아니다. 물론 두 영상 모두 치명적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후후훗. 당했군. 그럼 난 보고하러 먼저 가겠네.”
그런 중에 부탑주가 짧은 웃음과 함께 자리를 떴다. 옆에서 마법진을 다루는 마법사를 닦달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로 보려 해도 현장에 설치된 장치가 적의 손에 들어간 이상,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탑주가 자리를 뜬 후에도 장로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우냐냐냐~”
“켈켈켈. 고녀석 귀엽구만.”
바로 아기 고양이의 흉악한 귀여움에 홀려 버렸기 때문이다. 목적한 바를 이루진 못했지만, 마음은 평화롭고, 불만이 없다. 극히 드문 일이다.
“……고양이나 한 마리 키워 볼까.”
결국 어느 장로의 입에서 그 소리까지 나오고 난 후에야 영상이 끝이 났다. 아니, 끝을 냈다. 그대로 있다가는 이쪽의 모습이 노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라미아가 완벽하게 정신의 관의 눈을 가려 둔 사이.
이드는 검은 마수를 압박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상대하기엔 벽 너머 공간을 가득 채운 마수의 크기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우선은 적을 압박해서 고정된 형태를 가지게 만들어 처리하는 게 베스트다. 그런데 그 모습이 멀리서 보면 꼭 허공에 칼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희도 돕게 해 주십시오.”
그에 딜런들이 움직이려 했지만, 이드가 그들을 막았다.
딜런과 기사들이 결코 약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마수는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치명적으로 위험하다.
“입구에서 하던 이야기 기억하나? 안에 가득한 어둠이 독이나 적의 공격이라면 무시무시할 거라고.”
바로 이 마수가 그렇다. 처음 무형기류의 검막으로 밀어낼 때는 알지 못했는데, 벽을 넘는 순간부터 모든 공간을 통해 이드에게 침투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부분에도 강력한 독성이 들었음을 감지한 이드다.
그에 이드는 검막과 호신강기로 그 모든 것을 차단하고 마수를 압박하고 있지만, 지원조 기사들은 이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눈, 코, 입은 말할 것도 없이, 피부를 통해 스며드는 마수의 독기에 순식간에 녹아내릴 것이 분명하다.
이런 설명을 듣고도 이해 못 하면 바보다.
“그런데 나 독 저항 초인기가 있는데. 그래도 나서면 안 되겠지?”
“꿈도 꾸지 말아!”
“……그렇게 단호하기 있냐?”
칼 같은 부정에 조금 마음에 상처를 입은 기사가 우울하게 말했다. 하지만 기사들의 판단이 옳은 것이다.
그들도 마음 같아서야 하나라도 나서서 무력한 자신들을 대신해 줬으면 싶지만, 그레이트 급이 아닌 이상 기사 하나가 나서 봐야 이드에게 도움은커녕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라미아 님을 완벽히 지키는 것에만 집중하자. 명예 후작님과 함께 싸우는 것은 실력을 키운 후다.”
과연 그럴 기회가 다시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치지지직-
검강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마수의 육체가 타들어 갔다. 검강의 강력한 힘 앞에서는 마수도 저항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문제는 그래 봐야 마수의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이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운 마수의 크기를 생각하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사라지는 마수의 크기는 0.001%나 될까?
이래서야 10만 번은 휘둘러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마수가 재생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정말 하루 종일 검을 휘두를 수는 없지.”
아무래도 검으로는 부족하다. 절대 검이 약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강약 이전에 상성의 문제였다.
무림에서 만들어진 수라삼검과 난화십이식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그렇다 보니 무림에 존재하지 않는 몬스터를 상대하기에 모자란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지간한 것들이야 상황에 따라 이드가 보완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일정한 형체도 없는 이런 마수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였다.
그루루루룩!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데 그 소리가 검강에 베여 괴로워한다기보다 이드의 공격을 비웃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착각일까.
끄루루룩!
착각이 아니라는 듯 다시 들려온 마수의 비웃음. 그에 이드의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이 자식이 지금 날 비웃어?”
드래곤을 굴복시키고, 혼돈의 파편을 잠재운 검법을 일개 마수가 비웃었다. 이드로서는 기가 막힌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동시에 불끈 오기가 치밀었다.
12대식을 사용하면 일격에 정리될 상황이지만, 아무래도 이런 마수 따위에 쓰기에는 출력 과다다. 거기에 12대식을 본 마탑과 소드 팰러스가 움츠러드는 것도 이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에 검을 놓고 철황권을 사용하려 했다. 저 빌어먹을 비웃음만 아니면 말이다.
아무리 명예와 권력에 미련이 없는 이드라도 자존심이 있지, 마수의 비웃음을 듣고 그냥 검을 거둘 수는 없었다. 이드는 철황권을 사용하려던 마음을 깨끗하게 접었다. 라미아를 불러 범위 마법으로 마수를 일격에 죽여 버릴 생각도 접었다.
“아까 한 대 맞고 죽는다고 소리치던 것도 까먹고 말이야. 넌 죽었어. 어디 계속 비웃을 수 있나 보자고.”
마수가 얌전한 사자의 코털을 아주 제대로 건드린 순간이었다.
휘이이이-
다음 순간 이드는 바람의 정령을 불러냈다. 적이 안개처럼 흩어져 있어 문제라면 결국 그걸 모으면 해결될 일. 자고로 먼지와 안개를 몰아내는 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 아니던가. 소환된 바람의 정령이 방 전체를 질주했다. 양을 모는 개처럼, 냉기를 몰아내는 서큘레이터처럼 휘몰아치는 정령의 꼬리를 따라 마수의 육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어어억!
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마수도 몸의 세세한 부분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는 없는지, 어미를 따르는 새끼 오리들처럼 정령의 꼬리에 휩쓸리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워하는 소리를 냈다.
그래 봤자 늦었지만.
이드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일라이져를 들었다.
화르르륵.
분노를 담은 검강이 일라이져에서 활활 타올랐다. 이드는 검을 휘두르는 수고를 들일 필요도 없었다. 마수를 꼬리에 달고 온 정령이 놈을 검강에 때려 박았기 때문이다.
퍼퍼퍼펑!
그게 시작이었다. 바람의 정령과 함께 곳곳에서 생겨난 바람이 마수를 끌어와 검강에 내던졌다. 제법 덩어리가 커서 지직거리며 타지 않고 폭발했다. 정령이 끌어온 덩어리는 작았지만, 여럿이 더해지면 제법 크고, 충격은 커진다.
끄어어억!
마수의 비명은 그 증명이다. 동시에 사방의 어둠이 출렁였다. 동시에 사방에서 이드를 압박해 들어오는 힘이 수 배 강해졌다. 또 어둠이 뭉쳐 호신강기를 두드렸다.
마치 깊은 바닷속 난리가 난 해저에 있는 듯하다. 따지고 보면 다를 것도 없다. 달리 생각하면 이드는 마수의 배 속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걱정 없다. 이드는 마수의 위산에 녹아내리기엔 너무 단단하고 날카로우니까.
“그러게 항상 입조심을 해야지. 먹는 것도 웃는 것도 말이야.”
그러는 사이 다시 한 바퀴를 돈 정령에 의해 마수의 몸이 또 폭발했다. 마수의 전체 몸의 5%는 사라진 것 같다.
이 정도가 되자 마수도 급해졌다. 이대로면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못 하고 검강에 타 재가 되어 사라지게 생겼으니까. 그어어어-
그에 마수가 이드를 향해 몸을 몰아가는 정령 앞에 벽을 세웠다. 자신의 몸을 훔쳐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이드가 벽을 넘는 순간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마수의 몸을 압축시키려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알아서 뭉쳐 주었으니.
“상을 줘야지!”
우우웅!
맑은 검명과 함께 무형대천강이 검은 벽을 내리쳤다.
퍼퍼펑!
끄어어어억!
“계속 이렇게만 해라.”
그럼 마지막 한 조각까지 귀여워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