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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화


442화

우디를 따라 집 밖으로 나오던 이드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높디높은 나무 위에서 로프도 없이 번지점프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저…….”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아이들이 아니라 몇 년간 제대로 단련한 무사라도 절대 무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너무 황당한 장면에 딱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몸은 제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이드가 순식간에 태세를 정비하고 화살처럼 몸을 튕기려는 순간, 어느새 손에 짧은 단봉을 든 우디가 그것으로 손바닥을 쳤다.

짜악!

둥실.

순간 땅으로 떨어지던 아이들이 허공에 떠올라 정지되었다. 이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매달려 있는,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 모습에 뛰어나가려던 이드는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멈춰 서야 했다.

“앗, 장로님!”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한 아이가 우디를 보고는 소리쳤다. 가장 먼저 뛰어내린 테이었다.

“이 녀석들! 정령수에서 그런 장난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또 장난을 쳐?”

아무래도 이런 장난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잘못 했어요. 손님들이 나오셔서 빨리 내려오려고 그랬어요.”

“그럼 제대로 내려와야지, 왜 뛰어내려. 저번에 또 그러면 벌을 준다고 했던 건 기억하고 있는 거냐?”

“어…… 어…… 장로님. 한 번만!”

“한 번은 무슨 한 번이야. 요 녀석들. 혼 좀 나 봐라. 내 꿈에도 정령수에서 뛰어내릴 생각은 두 번 다시 못 하게 만들어 주마.”

“장로님. 다시는………….. 우아아악!”

우디는 테이의 말을 더 듣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단봉의 끝을 흔들었다. 순간 단봉에서 정령수로, 정령수에서 정령으로 이어지는 한줄기 작은 힘의 흐름이 일어났다. 그러자 살랑살랑 흔들리는 단봉의 헤드를 따라 아이들도 흔들리더니 그 속도가 단계별로 빨라졌다. 그에 따라 아이들의 얼굴도 재미에서 스릴로, 다시 공포에서 고통과 구토로 넘어갔다. 개중에는 끝까지 재미있다고 웃고 있던 녀석도 있었지만, 허공에 흩뿌려지는 토사물에 기겁을 하고 울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처참한 모습을 차마 더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저런 일 자주 있나요?”

“네… 조금. 아직 어려서 장난을 치기를 재미있어 하는 데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정령수가 장난을 받아 주고 장난꾸러기 정령들이 아이들을 부추겨서 조금 심하다 싶은 경우가 많아요.”

대답하는 일리나의 볼이 살짝 붉다. 마을의 장난꾸러기와 그런 아이들에게 열심히 화를 내고 있는 우디의 모습을 이드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저런 장난을 받아 주는 걸 보면 아직 어린 정령수인가 봐?”

비명과 함께 전투 기동을 체험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킥킥대던 채이나의 말이었다.


이드는 채이나의 말에 정령수라는 이름을 입에 머금고 몇 번 굴렸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라미아가 다가와 그의 귓가에 정령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의 설명을 들은 이드가 홀로 생각에 잠겼다.

‘정령수라니, 저런 신비한 존재도 있단 말이지? 겉모습은 나무지만 누구도 정령수를 단순히 나무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

[채이나의 마을에도 정령수가 있나 보죠?]

이드에게 설명을 마친 라미아가 말했다.

“네. 감사하게도 저희 마을에는 현명한 정령수가 있습니다. 어머니나 마을의 누구보다 나이가 많은 정령수죠.”

허공에 난무하는 토사물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웃느라고 정신없는 채이나를 대신한 마오의 대답이었다. 그의 말대로 엘프들에게 있어 정령수의 존재는 감사할 일이었다. 그의 존재 덕분에 어릴 때부터 정령과 교감하는 법을 익히고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범위가 극도로 한정적이지만 강력한 정령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정령수가 있다는 것은 안전한 대피소 그 이상의 안정감을 준다. 특히 여타 다른 종족의 눈을 피해서 은밀하고 위험한 곳, 그것도 강자 생존의 법칙이 지켜지는 숲에서 생활하고 있는 엘프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살아온 시간만큼 많은 관계를 쌓아서 아이들이나 마을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능숙한데, 그에게 듣기로는 그도 어렸을 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아이들과 엘프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주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관계를 쌓아 가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사이의 기준을 잡았다고요. 그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는데 그건 그들이 애초에 나무에서 파생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배우는 것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같이 생활한 엘프답게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정령수의 특성까지 알고 있는 마오였다.

“그러니까 저 정령수는 그 기준을 아직 잡지 못한 어린 정령수일 거라는 말이구나. 어때요, 일리나?”

“맞아요. 진짜 나이를 따지면 수백 년이 지났겠지만, 그가 정령수로서 깨어난 지는 고작 70년이 지났을 뿐이니까요. 어리다기보다는 아직 많이 미숙한 정령수라고 할 수 있어요.”

영혼의 격이 높다는 말이 지식이 많고, 모든 것에 능숙하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깨어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과 저런 장난을 치는 걸 보면 마오의 말대로 정말 배우는 게 늦은 것 같았다.

“확실히 70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죠.”

“그가 깨어났을 때 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셨어요. 마을의 일로 조금 걱정이 많으셨거든요. 지금은 아이들의 장난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지만요. 호호.”

일리나가 작게 웃으며 우디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 아이들은 땅으로 내려져 있었다. 우디는 아이들 사이에서 토사물을 뒤집어쓰거나 어지러워 해롱거리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물로 씻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걱정거리는 해결은 됐어요?”

일리나가 웃음을 보이는 걸 보면 심각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아직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 이드였다. 조금 전만 해도 그녀가 사는 마을의 일을 좀 더 신경 써 주지 못한 걸 아쉬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70년 전의 일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면 결코 단순한 걱정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야기하는 일리나의 표정이 가벼울 수도 없을 것이다.

이드의 말도 일리나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일리나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게 조금……?

“에?”

이드는 생각과는 다른 일리나의 반응에 놀랐다. 정말 아직 해결되지 않은 70년이나 묵은 문제거리가 있다는 말인가. 이런 이드의 생각이 좀 심각한 표정으로 얼굴에 나왔던 모양이다. 일리나가 서둘러 양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니, 아니. 심각하거나 위험한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단지, 조금…….”

“조금?”

“조금………… 곤란한 고민거리라고 해야 할지. 특히 마을을 책임지고 계신 아버지께는요. 하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이미 포기하신 일이에요. 이제는 익숙해지셨다 싶기도 하고요.”

일리나가 시선을 돌리며 조금 곤란한 듯 말했다.

이드는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 이드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을 제외하고 모든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있다. 단지 해법을 찾고, 그 해법을 실행할 수단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일리나가 그런 이드의 생각과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이드는 문득 가능하다면 그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미래의 장인어른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드가 이런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우디가 먼저 그들을 불렀다.

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미 대부분 일어나 얌전하게 서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못한 아이들 곁에는 어느새 채이나가 서서 그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배가 아프도록 시원하게 웃던 모습과는 다른 자상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마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 듯했다.

“자, 이드. 우리도 가 봐요.”

일리나가 이드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드는 해결되지 못한 일이 뭔지 궁금했지만 그 이야기를 묻는 건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디의 부름이다. 지금 이드의 일차 목표는 우디에게 잘 보이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헛수고일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일리나,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 같네요.]

라미아가 날개를 펼쳐 일리나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느긋한 날갯짓이나 움직이는 속도를 보면 물리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사실 난다기보다는 마법의 힘으로 비행하고 있을 뿐인 라미아였다.

그녀의 말대로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달려오는 엘프는 아무도 없었다.

인간의 마을이었다면 아이들의 부모가 한걸음에 달려 나왔을 것이다. 꼭 부모가 아니라도 마을 사람 누군가 나와서 아이들이 우는 이유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에 대한 일리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모두 아이들이 어떤 장난을 치고, 왜 우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최근 들어 자주 있는 일이거든요. 최근에는 제가 벌을 준 적도 있어요.”

그녀의 말에 순간 우디와 같은 모습으로 가차 없이 단봉을 휘두르는 일리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듯했다. 육아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우디는 이드들이 다가오자 그들에게 아이들을 한 명씩 소개해 줬다.

그 다음에는 이드들을 한 사람씩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특히 이드와 라미아를 신경 써서 아이들에게 소개했는데, 그는 두 사람이 곧 마을의 가족이 될 거라고 말했다.

“거 봐, 내 말이 맞잖아!”

그 말을 들은 테이가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테이의 말을 듣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이드들을 향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채이나와 라미아가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아름다운 다크엘프인 채이나와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강철의 새의 형태를 하고 있는 라미아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 존재감을 보였다.

그나마 채이나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 어른이라는 점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어 아이들이 수줍게 선망의 눈길로 바라만 보고 있었지만, 자신들보다 작은 라미아는 만만하고 쉬워 보였는지 이드에게 달라붙어 라미아를 잡아 보기 위해 열심히 손을 뻗고 있었다.

우디의 한마디 말에 마을의 가족으로 정해진 이드는 벌써 그들에게 만만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으익’

이드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라미아는 아이들의 과감한 대시에 나지도 않는 식은땀이 나는 느낌을 받았다. 이드의 머리 아래쪽에서 흔들리는 수십 개의 팔과 손이 마치 지옥의 늪처럼 보였다. 저기에 잡혔다가는 뼈도 추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잠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게나. 나는 저녁에 자네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어. 자네들을 정식으로 모두에게 소개해야지. 일리나, 나중에 숙소로 안내해 드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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