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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13화


949화

이드가 구멍 안으로 들어간 후 20분.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일리나는 어느 쪽이 좋을 것 같아요?”

“이그렌이 사용할 건가요?”

“적당히 챙겨 주긴 했는데, 아무래도 좀 불안한 느낌이라서요.”

“다 좋아 보이는데. 어떤 기능들이 있는 거예요?”

몇 가지 아티팩트를 놓고, 라미아와 일리나는 이그렌에게 추가로 지급할 아티팩트를 고르고 있었다.

황녀는 그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드가 구멍에 들어가 20분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당장 자신도 입이 바짝 바르는데 두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말이다. 거기에 두 사람 만큼은 아니지만, 걱정이 없어 보이긴 스폴도 마찬가지.

자신만 따돌려지는 느낌이 싫었던 황녀가 마른 입술을 적시고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도저히 모르겠네요. 두 분은 걱정되지 않으세요?”

“이드 말씀이신가요?”

하소연하듯 말하는 황녀에 라미아가 말했다.

“아니면 누구겠어요? 벌써 20분이 지나고 있는데,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

딱히 부정적인 발언으로 걱정을 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을 나누고 싶었을 뿐.

그러나 그런 황녀의 모습에 라미아와 일리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릴 뿐이다.

“공략을 함께하셨는데도 황녀 전하께선 이드를 너무 모르시네요. 혼자 움직인 게 한두 번도 아닌데.”

“그땐 두 분이 함께하셨지만, 이번엔 혼자 가셨잖아요.”

“이드에겐 아무런 차이도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안에서 일이 있기는 있을 거예요.”

“다만 일이 있는 쪽은 이드가 아니라, 적들일 테지만요. 기습하려는 적을 발견했다면 확인만 하고 나올 사람이 아니니까요.”

“조금 늦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

환상의 호흡으로 한사람처럼 답하는 두 사람에 황녀는 정신이 없었다. 검후를 찾기 위해 함께하기로 한 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의 차이라니.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양측이 가진 이드에 대한 정보량에는 그만큼 메꾸기 힘든 간격이 있었으니까. 서로 비슷한 시야를 가지려면 최소한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아야 했던 것이다.

라미아는 머리를 부여잡는 황녀가 귀여웠다.

좀 더 괴롭혀 볼까 싶기도 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깝다. 조금만 늦게 오지.”

때마침 이드가 어둠을 헤치고 구멍 밖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구멍을 나서자 가장 먼저 록마틴 후작이 달려왔다. 그에 라미아와 일리나를 보는 이드다. 두 사람이 반겨 줄 줄 알았는데, 후덥지근한 록마틴 후작이라니. 조금 섭섭했지만, 티 내지 않았다.

“무사히 복귀해서 다행이오. 조금만 더 늦게 돌아왔다면, 이쪽에서 먼저 진입할 뻔했소.”

말하는 표정이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그럼 제가 늦지 않게 잘 돌아온 모양이군요.”

“그런데 늦은 이유가 무엇이오? 안에서 전투라도 있었던 것이오?”

“살펴보니 좀 특이한 기습을 준비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도저히 그냥 나올 수가 없더군요.”

특이한? 그 말에 록마틴 후작을 비롯한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특이한 준비이기에… 아니, 그건 들어가면 직접 보게 될 것이고, 그럼 이제 해결이 된 것이오?”

“그걸 알리러 나왔습니다.”

“역시, 명예 후작께 부탁드리기를 잘한 것 같소. 먼저 가시오. 우리는 그 뒤를 따르겠소.”

이드의 성과에 선두를 양보하는 록마틴 후작이다.

이드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덕분에 록마틴 후작의 사조가 아니라, 이드가 이끄는 삼 조를 선두로 구멍 안으로 들어서는 토벌대다.

“크, 크다~”

“작은 영지가 들어서도 될 것 같은데?”

“미친 흑마법사들이지만 능력 하나는 알아줘야겠어.”

안쪽으로 들어선 기사들은 가장 먼저 그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까마득히 높아 보이는 천장에서는 아른거리는 신비한 빛이 쏟아지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제국의 땅 한 조각을 떼어다 놓은 듯한 풍경이 있었으니까.

그것도 지상도 아닌 수백 미터 지하에 말이다.

“그나저나 저 검은 숲은 뭐지?”

“아니, 그보다 숲 중앙에 있는 성을 봐. 군데군데 부서지고, 연기도 나는데?”

대략 20분 전쯤 부서진 것으로 보이는 성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드를 향했다.

“명예 후작이 말한 특이한 기습이 저 성을 말하는 것이오?”

“……마법도 쉽게 닿지 않는 거리에서 기습이라니요. 전 좀 이해가…….”

물론 부정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드는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저 성에서 초장거리 타격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한번 보시겠습니까?”

어차피 가야 할 길에 있는 성이다.

이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간 토벌대는 금방 성에 닿았다.

가까이서 확인한 성은 멀리서 볼 때보다 더 엉망이었다. 벽에는 커다란 칼자국에 구멍까지 뚫려 있고, 성벽의 한쪽은 허물어져 있으며, 깃발은 꺾였다. 거기에 양념처럼 군데군데 쓰러져 있는 적의 시신까지.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엉망인 성의 상태와 달리 단단하게 닫혀 있는 성문을 깨끗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문보다는 벽을 타는 게 더 빨라서 말입니다.”

이드는 성문 앞에서 묘한 표정을 한 사람들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크크큭.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수없이 벽을 탔습니다.”

“많은 전투를 경험하신 모양이군요?”

“저 말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명예 후작님. 저놈이 탄 벽은 레이디가 있는 저택의 벽입니다. 비교 거리가 아닙니다.”

넙데데한 얼굴에 걸걸한 웃음을 걸고 나온 남자의 말에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졌다.

조금 가벼워진 분위기에 이드는 사람들을 성벽으로 안내했다.

“성안은 별로 확인할 것이 없었습니다. 밖에서 보기만 그럴듯할 뿐 흔한 용병 숙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 외에 돈주머니가 좀 굴러다녔지만, 각자 저승길 노잣돈으로 쓰도록 손대지 않았다.

“이게 놈들이 기습에 쓰려던 물건입니다.”

성벽에 오른 이드가 원통의 물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드에게는 낯선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건 캐논이 아니오. 주로 전함에서나 쓰는 것인데.”

“하지만 성에서 써도 이상할 것은 없지요. 거기다 사정거리가 길어 최근에는 배치하는 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이 거리에서 토벌대가 진입할 때마다 캐논을 쏘면. 크흠. 제법 힘들었겠습니다.”

사실 제법 힘든 수준이 아니다. 피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기사 자존심에 순순히 인정하지 못할 뿐이지.

그때 록마틴 후작이 전방에 있는 캐논들을 살폈다. 모두 합쳐 31정. 대부분 이드의 검에 부러진 듯 중간이 잘려 있고, 멀쩡한 것은 5정 뿐이다.

“내가 알기로 캐논은 모두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토리빈 마법사. 이 캐논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보실 수 있겠소?”

“그렇지 않아도 살피고 있습니다. 잠시만…….”

저기 한구석에서 부서지지 않은 멀쩡한 캐논을 잡고 달라붙은 토리빈을 포함한 마법사들.

잠시 후 토리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성벽에 오른 사람들 중 타국의 외교관들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편히 입을 열었다.

“확인이 끝났습니다. 이 캐논은 마스에서 나온 것입니다.”

“확실한 것이지요?”

“국가에서도 중히 여기는 물건이라 재차 확인을 마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형태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포신의 재질, 마법진의 핵심 배치로 보아 마스의 것이 분명합니다.”

“노예들도 그렇고 또 마스인가?”

마수라는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탑주가 방문했을 때 어깃장을 놓던 모습이나, 인공 초인으로 만들어 쓴 노예들에 이제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캐논까지.

그것도 한두 정도 아니고 무려 31정이나 나왔다.

이 정도가 되면,

“이거 혹시 마스와 마탑이 손을 잡은 것은 아니겠지요?”

이런 말이 나올 만했다.

그러나 록마틴 후작은 그 말을 꺼낸 사람에게 주의를 주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 마스의 노예야 각국에서도 암암리에 구해 가고 있는 것이고, 캐논도 돈만 들이면 구하지 못할 것이 없소.

무엇보다 마법사들이 모인 마탑이니, 방법만 알면 따라 만드는 것도 문제가 없는 일. 토리빈 마법사?”

“그렇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조법을 함부로 내놓을 리가・・・・・・.”

“방금 가능하다는 말씀 들었을 것이오. 그러니 행여 섣부른 추측으로 토벌대 안에 혼란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토리빈 마법사의 말을 중간에 끊은 록마틴 후작의 눈이 날카롭게 좌중을 훑었다.

반론은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했다. 그 말처럼 토벌의 가장 중요한 시점에 어설픈 정보로 토벌대가 흔들릴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느긋한 성격에 잔정이 많은 분인 줄 알았더니. 한 성격 하시는 분이셨네.’

그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이는 이드다.

아니면 저 모습이 진짜인지도 모른다. 프랑 기사단과 함께 자주 전장을 누볐다는데, 말랑말랑한 성격일 수가 있겠는가. 아마 토벌대 수장으로서 지금까지 보인 모습은 토벌대의 성격과 황녀가 함께라는 점을 고려한 결과가 아닐까?

사람들의 입을 봉한 록마틴 후작은 마법사들로 하여금 캐논을 챙기게 했다. 나중을 위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적들이 쓰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라보다 성벽을 따라 후방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성벽에 이어 검은 숲을 가르고 있는 커다란 벽이 나타났다. 캐논을 이용한 기습에 급히 숲으로 진격했다면 아무것도 모르고 토벌대는 둘로 갈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도 소용없기는 마찬가진가.”

어느 쪽이 던전의 끝으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으니, 토벌대도 결국 둘로 나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나뉘겠죠. 오 조와 이 조를 토벌대와 분리시켜야 하니까요.”

조용히 다가온 일리나가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쪽의 핵심 목표일 테니까요. 존 워스까지 움직인 걸 보면 확실하단 거죠.”

“위장술이 대단해요. 저도 이드가 말해 주기 전까지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작정하고 숨기는데 어쩔 수 없죠. 거기다 평범한 방법도 아닌 것 같고. 그런데 라미아는 어딨어요?”

동급 혹은 그 아래로 보던 자의 위장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살짝 우울해진 일리나의 모습에 이드가 급히 말을 돌리며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한쪽에서 제국 소속의 마법사를 상대로 고집을 부리고 있는 라미아를 볼 수 있었다.

그런 그녀 앞에는 아공간에 반쯤 들어가 있는 캐논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호기심에 몰래 캐논을 챙기다가 들킨 모양이었다. 일반 마법사였다면 크게 경을 칠 일이겠지만, 상대가 라미아다 보니 강하게 제지하지는 못하는 상황.

“저기 있네요. 가 볼래요?”

“어…… 우리 먼저 내려갈까요?”

괜히 저 자리에 끼고 싶지 않은 이드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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