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29화
965화
스팟!
구름을 가르는 새처럼 가볍고, 새벽 안개처럼 유유한 걸음.
부운귀령보의 보법에 따라 첫발을 디디는 순간 이드의 몸이 허공에 흩어지는 귀신처럼 사라졌다.
순간 이드는 부운귀령보의 또 다른 공능을 타고 허공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 이드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이 허공을 유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놈도 있었다.
씨야아아앗!
인간이 아닌 뱀 대가리였다.
놈은 충직한 부하처럼 대화 중에는 가만히 있더니, 이드가 사라지자 맹렬히 혀를 날름거린 후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진득한 독액을 쏘아 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허공에 독을 쏜 것 같을지 몰라도, 그 앞에 선 이드의 입장은 달랐다.
거기에 반응한 건 큰 뱀만이 아니었다. 좀 전 이드에게 머리를 잘린 놈들과 같은 놈들이, 큰 뱀을 타고 올라 독아를 번들거리며 화살처럼 날아왔던 것.
“역시 보이나 보네.”
이드는 신기했다.
기습을 발각당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지만, 도대체 어떻게 부운귀령보의 공능을 꿰뚫어 본 것일까?
그런 의문과 함께 이드가 손을 들었다.
이런 독액은 굳이 손댈 것 없이 피해 버리면 간단하지만, 아래에는 일리나와 기사들이 있었다. 그 위로 독이 뿌려지는 걸 그냥 둘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물론 일리나도 그렇고, 기사들의 실력을 믿고는 있지만, 괜히 사람 목숨을 가지고 모험할 필요는 없으니까.
마침 독에 상극인 불과, 뱀을 잡을 그물도 가지고 있고 말이다.
화르르륵.
활짝 편 장심에서 일어난 열화인의 붉은 화염이 뿜어지고, 철사분영편의 초식을 타고 일렁였다.
넓게 퍼진 화염은 지독한 욕심쟁이처럼 독액과 뱀을 한 번에 집어삼켜 그 안에 가둬 버렸다.
치이이익!
샤아아악!
강렬한 화염에 독이 타며 독연이 피어오르고, 뱀이 거목을 으스러트릴 것 같은 강한 힘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나 철사분영편이 만들어 낸 그물은 질기고 강력했으며, 또 촘촘했다.
뱀의 몸부림을 제압하는 것 따위의 일은 이드에겐 식은 죽 먹기다.
그물을 조였다.
그러자 몸부림치던 뱀의 몸이 타들어 가 독액으로 녹아들며,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독액만이 남았다. 불순물이 타 버리고 남은 독의 정수였다. 씨아아앗!
공격이 실패하자 뱀 대가리가 직접 움직였다. 놈은 와이번도 단숨에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아가리를 쫙 벌리고서 달려들었다.
거대한 덩치에 비해 속도는 오히려 작은 녀석들보다 빨라 놈의 뒤로 검은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그래 봐야 이드를 잡아내기엔 한참 모자란 속도다.
“으악~ 냄새. 이 자식이 어디다 썩은 내 나는 입을 들이대!”
장난 같은 말과 함께 장난처럼 뱀 대가리의 공격을 피해 낸 이드의 모습이 허공에 다시 나타났다. 뱀 대가리가 부운귀령보를 꿰뚫어 보고 있으니, 더 이상 모습을 감출 이유가 없는 탓이다.
그렇게 코를 막고 모습을 드러낸 이드는 악취 나는 거름통을 치우듯 급히 몸을 트는 뱀을 발로 찼다.
마치 장난 같은 가벼운 발차기였지만, 그렇다고 그 속에 든 힘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꽈드드득.
온몸의 뼈란 뼈는 모조리 조각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이드의 발이 닿은 곳이 등에 닿을 듯 푹 꺼지더니, 곧이어 뱀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그런 놈의 몸이 튕겨 나가는 곳에는 해더웨이 등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충격이 클 것이다! 마나 출력을 올려!”
이드는 해연히 놀라는 마법사들의 표정에 살짝 웃었다.
뱀이 그쪽으로 튕겨 나간 것? 당연히 우연이 아니다.
노리고 그쪽으로 찼다. 튕겨 나가는 각도 따위 1밀리미터 단위로 조종이 가능한 이드였으니까.
“아, 이건 반품. 이런 불량품은 즉시 반품하자는 주의라.”
거기에 더해 이번엔 끓고 있는 독액 주머니에 주먹을 가져가는 이드다. 짧은 접촉의 순간, 이드의 손에서 전해진 내력이 독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이드의 허리가 권투 선수의 그것처럼 부드럽게 회전하더니 샌드백을 치듯 독액 주머니를 때려 냈다.
날아간 독액 주머니는 벽에 부딪힌 후 일어나려 꿈틀거리는 뱀의 턱밑에 박혀 들었다.
콰릉!
끼에에엑!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독액 주머니였지만, 그 충격량은 어마어마했다. 얼마나 강력한지 뱀이 부딪혀 흔들리던 석벽에 금이 갈 정도다. 뱀이 죽을 듯이 다시 꿈틀거렸다.
하지만 독액 주머니의 공격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일차적으로 강력한 충격을 준 독액 주머니가 갈라지며 그 안에서 독액이 쏟아져 나와 뱀의 몸통을 태웠다.
치이이익-
뱀이 쏘아 낸 독이지만 열화인의 화독을 머금어 변화된 독의 정수였다. 때문에 독액의 주인인 뱀에게도 통하게 된 것.
무엇보다 독은 그냥 물처럼 흘러내리지 않았다.
독은 빠르게 회전하며, 뱀의 몸을 파고들어 기어코 구멍을 냈다. 당연히 그 뒤에 있는 것은 해더웨이와 마법사들.
“반품은 했으니, 본사에서 불만 신고도 받아야지.”
이드는 뻥 뚫린 뱀의 몸통 너머로 나타난 마법사들을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슈루루루룩!
그러자 회전하던 독이 링의 형태를 띠고는 마법사들의 보호 마법 위로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마법사들의 보호 마법을 녹이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마나 독만이 마법을 녹일 수 있는데, 도대체 언제?!”
그 모습에 마법사들이 기겁을 했다. 마법을 녹이는 독이라니. 자신들이 제작한 마수의 독에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보다 마법을 녹이는 독은 얼마나 지독할 것인가!
즉시 대응하려는 마법사들을 해더웨이가 천천히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아니, 해더웨이의 눈짓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은 것이다.
“신기하군요. 무공으로도 이런 일이 가능한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해더웨이는 독에 녹아 들어가는 보호 마법을 바라보며, 순수한 호기심을 보였다.
“마법처럼 무공의 한계도 그 끝이 없지.”
“과연 무공의 주인인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는 것입니까.”
“별말씀을. 난 그보다 내 은신술을 마수 따위가 어떻게 꿰뚫어 봤을까가 궁금한데. 말해 줄 수 있소?”
“간단합니다. 냄새입니다. 뱀의 혀가 감지할 수 있는 냄새는 개의 후각보다 월등하니까요.”
“과연. 뱀의 형태를 띠는 만큼 그 능력도 가진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저 마수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 초인기 중 뱀의 후각을 가진 초인기가 있다고 해야겠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이드가 그 말에 혀를 찼다.
이곳이 무엇을 연구하던 마탑이던가. 바로 초인을 연구하고 이용하는 곳이 아니던가.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모든 마수의 능력은 초인에게서 추출한 것.
“기분이 나빠졌군.”
짧은 말, 그와 함께 보호 마법을 녹이는 독의 회전력이 올라갔다.
그러자 더욱 빠르게 보호 마법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보기 싫어졌으니 빨리 끝을 내도록 하지.”
“마침 원하던 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르문간드의 진짜 모습을 보여 드리지요.”
아마 요르문간드라면 저 뱀의 이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해더웨이가 짧은 주문과 함께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뒤늦게 몸을 일으키던 뱀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몸을 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뱀의 아가리가 네 조각으로 찢어져 벌어지고, 몸에는 빽빽하게 수백 쌍의 다리가 솟아났으며, 검은 몸 위에는 독이 안개처럼 일렁이며 아른거렸다.
쌰아아아~
입을 벌리고 위협하는 놈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뱀이 아니었다.
“・・・흉측하네.”
이드의 눈이 절로 일그러졌다.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이드는 그 중 특히 발이 많은 놈들과는 친하지 않았다. 거기에 이놈은 독한 냄새까지 뿜어내는 것 같지
않은가.
놈이 몸을 꿈틀거리자 몸에 두른 검은 독기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일리나는 기사들을 데리고 통로 안으로 물러나 있는 게 좋겠어요.”
이대로 두면 이 공간은 금방 독으로 가득 찰 것이 분명하다.
숨 쉬는 공기가 독으로 바뀐다면 아무리 기사들이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들의 힘은 호흡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 아니, 그 전에 생물인 이상 호흡하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에 일리나는 빠르게 기사들을 통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밖의 상황을 살피던 기사들이 쉴라의 명령을 받고 복귀하는 기사들을 빠르게 안으로 끌어당겼다. 동시에 마법사와 초인들이 독이 통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손을 썼다.
기사들이 모두 통로 안으로 복귀하고, 일리나가 이드 옆에 섰다.
“기사들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일리나는 왜 피하지 않았어요?”
“이드가 있는데 저만 뒤에서 편히 있을 수는 없죠. 무엇보다 이 정도 독은 저도 문제없어요. 라미아가 준 아티팩트도 있고.”
안다. 그녀가 말하는 아티팩트는 이드에게도 있다. 필요 없다는 데도 만약은 모른다며 라미아가 이드의 몸에 붙여 둔 아티팩트 중 하나다.
“그리고 하나보단 둘이 상대하는 쪽이 전투가 빨리 끝나잖아요. 오래 끌면 독이 쓰러지는 조원들이 생길지도 몰라요.’
“음. 그렇지는 않을 것 같지만.”
언뜻 돌아보니 통로를 막은 마법과 초인기가 아주 단단해 보인다.
비록 요르문간드의 독이 독하긴 해도, 다른 공격 없이 독만으로 저 방비를 넘어 기사들을 녹이려면 20시간 이상은 필요할 것 같다.
“뭐, 일리나가 있어 주면 든든하긴 하죠. 그런 의미에서 빨리 좀 끝내도록 해요.
“빨리요?”
“하던 일도 있어서 저도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어서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좀 힘을 내 볼 생각이에요.”
벌써 여기 도착한 지 이십 분이 넘어가고 있다.
이드가 새로 작동시켜 놔두고 온 대천사 라미아의 은혜의 작동 시간도 끝나고 오 조 초인들이 밀리고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초인들이 모두 당한 후에 돌아가게 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아무래도 이번 진입에서 끝을 볼 것 같으니. 더 이상 설렁설렁하지 않으려고요. 준비하고 있던 상황도 충분히 무르익었고, 괜히 힘 빼고 스트레스 쌓을 일이 없다는 거죠.
무엇보다 일리나에게 이런 흉험한 뱀 새끼를 붙인 놈들도 그냥 둘 수 없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악당들은 일리나에게 양보할게요.’
“그렇지 않아도 부탁하려고 했는데. 고마워요.”
방긋 웃은 일리나가 꿈틀거리며 접근해 오는 요르문간드를 보며 가볍게 바닥을 차고 올랐다.
“살려 둬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리 말해 줘요.”
짧게 남겨진 말이 미소와 어울리지 않게 살벌하다.
끼에에엑!
촤르르르륵!
요르문간드가 솟아오르는 일리나를 보며 요란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그러자 수백의 발이 휘둘러지며 창칼처럼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움직임에 당할 일리나가 아니다.
그녀는 소검후다. 차르르릉!
일리나는 자신을 향한 다리 위를 검으로 미끄러지듯 지나치며, 보호 마법 뒤에 숨은 해더웨이를 향했다. 요르문간드가 그녀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며 돌아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요르문간드는 이드가 상대할 테니까.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없다.
그것을 증명하듯 뒤에서 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주인은 허락도 없이 남의 와이프를 노려보면 모가지가 떨어진다는 상식도 알려주지 않았던 모양이지?”
끼이이익!
알까 보냐. 그딴 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