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738화


1173화

라미아와 일리나가 나서서 두 기사가 장비를 걸치는 걸 도왔다.

파츠 아머의 끝을 조이고, 귀걸이와 목걸이를 걸고, 양손에 각각 팔찌와 반지가 하나씩 끼워졌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드 일행이 비켜서며 바인과 해쉬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에 반응은 정확히 두 부류로 갈렸다.

“과연 감찰관의 솜씨가 범상치 않습니다. 각 부위의 파츠 아머가 맞춘 듯 몸에 딱 맞는군요.”

“맞춘 거나 다름없지요. 오로지 두 사람을 위해 만든 물건이지 않습니까. 나도 감찰관이 떠나기 전에 하나 의뢰해 보고 싶군요.”

우선 기사들의 몸에 대어진 파츠 아머에 집중하는 부류.

그리고.

“어머나, 예뻐라.”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은 장신구들인 것 같지 않나요?”

“빛의 반사 각도나, 투명도를 보면 최고 품질의 보석인 게 확실해요!”

“어허. 어찌 아름다움만 따지십니까. 대결에 나서는 기사들이 장비한 물건입니다. 당연히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겠지요.”

“허허. 그 귀한 아티팩트가 한 사람당 7개씩이라니. 저만하면 자작의 기사들 장비가 허술하다 할 만합니다, 할 만해요.”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7개가 아니라 6개. 귀걸이는 두 개를 한 쌍으로 봅니다.”

쓸데없는 참견쟁이가 끼어 있는, 장신구에 눈을 반짝이는 부류다.

“메이드복뿐 아니라 파츠 아머도 색다른 맛이 있는데?”

“우리 집 메이드들에게도 입혀 봐야겠습니다.”

또 양측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극소수의 제삼 부류도 있었다. 물론 철저하게 외면받았지만.

그나마 개인 취향에 대해 비난받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드가 말했다.

이쪽이 파츠 아머를 즉석에서 만든다고 시간이 걸린 반면, 톤 자작 측은 벌써 한참 전부터 기사단장이 대결에 나갈 기사들을 데리고 들어와 있었다.

“괜찮소. 나로선 손님들이 즐겼으니 그걸로 족하오. 그런데・・・・・・ 아니오.”

‘아니긴. 당신도 친칠라구먼.’

말을 하다만 톤 자작이지만, 이드는 분명히 봤다. 그 눈이 바인의 목에 멈췄다 떨어지는 걸. 과연 유명한 물건이라는 걸까.

친칠라 놈, 생각보다 더 유명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면 대상인의 눈썰미일까.

‘뭐든 상관없지. 물어도 대답은 안 해 줄 거니까.’

설령 순순히 대답해 준다 한들 이미 앞서 오간 말들이 있다. 긴가민가 싶어도 쉬이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현 수칵 기사단의 장비를 다 해도 바인의 목에 걸린 목걸이 하나만 못하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질 테니 말이다.

그 꼴을 당한 톤 자작의 얼굴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드는 충동을 참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바인 경과 해쉬 경이 상대해야 할 숫자가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어느새 톤 자작 주변엔 기사단장을 제외하고도 상당한 수의 젊은 기사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이들은 모두 기사단 안에서 바인과 해쉬, 두 기사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기사들이었소. 아무래도 공평하기 위해선 감찰관이 직접 이들 중에서 상대를 고르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오.”

그야말로 쓸데없는 친절이었다.

오히려 바인과 해쉬 정도의 실력자는 이렇게 많고 흔하다고 돌려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드는 도열한 기사들의 얼굴을 살피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군요. 그런 거라면 준비를 잘못하셨습니다. 저희 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저들보다 최소 두 단계 이상 윗길의 기사를 데려와야 상대가 될 겁니다.”

“잇……. “

그리고 이런 이드의 말에는 톤 자작보다 기사들이 먼저 반응을 보였다.

바인과 해쉬의 일이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자신들을 우습게 보는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드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기사들이 아닌 톤 자작이지 않던가.

“앞서 말했을 텐데요. 여태까지는 바인 경과 해쉬 경의 장비가 부실했다고. 지금 두 기사의 장비는 그 말을 증명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당연히 같은 실력이라면 상대가 될 리가 없겠지요. 이대로라면 너무 시시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뿌득・・ 좋소. 원하는 대로 상대를 준비하지. 하지만 후회하지 마시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흥, 솔론 단장은 당장 감찰관이 말한 정도의 기사들을 데려와 주게.”

“명을 따릅니다.”

이드는 도열한 기사들을 데리고 파티장을 나가는 기사단장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사이.

“흐음. 저 장비들이 감찰관이 그렇게 자신할 정도란 말이지.”

“바벨의 감찰관이면 저 정도의 귀물을 가지고 있다는 걸까.”

“피터 자작. 혹시 저것이 어떤 물건들인지 좀 알려 줄 수 있소?”

피터와 마리는 이드의 말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거리를 좁혀 오는 것을 겨우겨우 막아 내야 했다. 잠시 후, 솔론 단장이 한눈에 보기에도 앞서 보았던 기사들보다 노련해 보이는 이들을 대동하고 돌아왔다.

그들을 본 바인과 해쉬가 단단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상대의 실력을 알기 때문이리라.

평소의 자신들이라면 절대 이길 수 없으리라는 사실 역시.

“긴장할 것 없어요. 저 중에 바인 경과 해쉬 경이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으니까요.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만 적절히 잘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지 말고 아티팩트 사용법에 대해서나 한 번 더 들어 둬요.”

이드는 라미아에 눈짓을 하고는 새로 등장한 기사들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불쑥 손을 내밀어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을 본 바인 경과 해쉬 경이 바짝 긴장하는 것을 봤습니다. 사정을 이미 알 테고. 내가 여러분들을 요청했으니 부디 오늘까지 이어 온 신뢰를 해치는 오해는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지랖일지도 모를 말을 마친 이드는 마지막으로 솔론 단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단장의 실력도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하하하. 저는 봐주십시오.”

그리고 그 손을 솔론 단장이 마주 잡는 순간.

이드는 솔론과 같이 진심에서 나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카논무파 확인 완료.’

설마 톤 자작의 저택에 와서 처음으로 확인하는 카논무파의 무공을 익힌 사람이 다름 아닌 수칵 기사단장이 될 줄이야.

카논무파의 기조가 바뀌기라도 한 걸까.’

이드는 잡았던 손을 놓고 물러나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카논무파의 인물은 모두 소외받는 환경에서 성공이 간절했던 기사들이었다. 하지만 솔론 단장은 전혀 그런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면 혹 솔론 단장이 카논무파의 무공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룬 후 톤 자작의 눈에 들어 기사단장이 된 것일까.

이드로서도 솔론 단장에 대한 정보는 없었기에 지금 당장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바벨에서 조사해야 할 대상이 늘어난 것만은 확실했다.

‘돌아가면 피터 씨가 먹을 보약이라도 좀 보내 줄까.’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드는 이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다른 수확이 있었다.

힐끗.

이드는 톤 자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솔론 단장을 돌아보았다.

만약 그에 대한 앞선 짐작이 틀렸다면,

‘어쩌면 카논무파의 이파리가 아니라, 제법 굵은 줄기를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 속단하기엔 일러도 너무 이르다. 아무래도 피터에게 전할 때 특히 조심을 당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기사들이 준비되자 파티장 밖으로 무대가 옮겨졌다.

아무리 넓어도 실내에서 싸울 수는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내부에는 부서지기엔 아까운 귀중품이 너무 많았다.

“이거, 가만 보면 그날 결투의 재탕 같지 않습니까?”

“재탕이라기보단 복수전이겠죠. 그것도 패자 쪽에서 적극적으로 원한.

그나마 파이트머니가 만족스러워서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바인과 해쉬 몫의 파이트머니도 따로 챙겨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드는 싸울 준비를 마친 두 사람 앞에 섰다.

“설명은 잘 들었죠?”

“네. 확실하게 숙지했습니다.”

“그럼 저 기사들을 상대해도 질 수 없다는 것도 알 테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기세요. 아. 그리고 혹시, 저들 중 싸우길 원하는 상대가 있나요?” 

“없습니다.”

바인이 고개를 저었지만, 해쉬는 달랐다.

그녀는 도열한 기사 중 한 명을 콕 찍었다.

“저는 마지막으로 도비드 경과 싸워 보고 싶습니다.”

그녀가 말한 도비드는 콧수염이 멋진 중년의 기사였다. 지금의 해쉬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인물.

“굳이 그를 고른 이유라도?”

“맘에 들지 않아서입니다. 분명 거절했음에도 치근덕거렸거든요. 가정도 있으면서.”

“아하.”

더 이상의 설명은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라미아가 조용히 해쉬의 손목에 팔찌 하나를 더해 주며 속삭였다.

“확실히 끝장내 버려요.”

어쩐지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다. 또 그에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해쉬까지. 이드는 공유하기 힘든 여자들끼리의 동지 의식이라도 생긴 것일까.

어쨌든, 이드는 순식간에 해쉬를 중심으로 모여든 여성들을 피해 도열한 기사 중 바인과 해쉬와 대결에 나설 상대를 골랐다.

가장 먼저 도비드를 지목하고, 그 후 바인이 맡을 인물까지. 두 사람 모두 서 있는 기사 중에서도 수위에 드는 실력자들이었다. 이드가 결코 약자를 골라내는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는 걸 기사들 본인은 물론,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결투가 아니기에 참관인은 두지 않았다.

대신 공정한 대결을 위해 판정은 파티장의 가장 고위 귀족인 후작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그와 동행한 호위 기사가 후작의 손발이 되어 움직였다. 그 역시 이번 대결이 기대되는지, 제법 적극적인 모양새였다. 가장 먼저 싸움에 나선 사람은 바인이었다.

“앞서 결투에서 보였던 못난 모습을 만회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각오를 다지는 바인에 이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만 따지면 상대가 위에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상황만 보지 말고, 머리를 잘 쓰세요. 그렇게만 하면 쉽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장비를 잘 사용하라는 말이다.

이드의 마지막 충고를 끝으로 두 기사가 마주 섰다.

중간에 선 후작의 호위 기사가 주의할 점을 고지하는 사이, 이드가 톤 자작에게 말했다.

“그런데, 저 기사에게 장비는 따로 더 해 주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물론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다.

“시작!”

다음 순간.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고.

쿵!

콰앙!

두 번의 굉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땅을 박찬 바인의 발끝에서 땅이 뭉개지며 한 번.

그 힘으로 일순간 거리를 좁힌 바인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대 기사의 복부를 검면으로 쳐올리는 순간 다시 한번. 

“쿠어어억!”

뒤이은 답답한 숨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기엔 복부를 타격당한 기사가 저택의 지붕보다 더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

“일단 일승이군요. 간단하네요.”

이드는 입을 떡 벌린 톤 자작에게 별것 아닌 듯 승리 선언을 날렸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