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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52화


1187화

야산을 오른 후, 시종 ‘반대’를 외치던 것과는 완전 반대의 답을 결과라고 내놓은 타란 백작.

그가 할 말을 잃어 눈만 껌뻑이는 두네르를 뒤로하고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턱. 터더턱.

그러자 피오 단장과 구른 단장, 그리고 언제 마탑의 마법에 흔들렸냐는 듯 떡 벌어진 어깨를 활짝 편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마법사들은 올 때처럼 한마디 인사도 없이 내려가는 기사들을 보며 흉을 보았다.

그에 반해 타란 백작을 직접 상대했던 두네르는 우묵한 눈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 마탑이 가장 경계해야 할 상대가 바로 타란 백작이겠구나.”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그의 말처럼 마스나 마탑, 둘 다 이번 위기를 잘 넘겨야 할 테지만 말이다.


“괜찮겠습니까?”

“무엇이 말인가?”

한편, 묵묵히 이동하던 타란 백작은 서둘러 자신 옆으로 다가선 구른 단장의 질문을 받았다.

“마탑이 원하는 결과를 너무 쉽게 내어 준 것 말입니다.”

“저들이 원한 결과. 자넨 그렇게 생각하나 보군.’

“아닙니까?”

“아니, 맞는 말이네. 하지만 나는 저들이 아니라 림몬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든 것이네.”

림몬은 왕궁이 자리한 마스의 수도다.

백작이 두네르에게 말했듯, 마탑만큼이나 지금 결과를 원하는 것이 바로 마스였다. 지금보다 더 못한 결과가 나왔어도 마스는 어떤 방법으로든 사용하려 했을 터였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혹여 이번 일로 마탑이 마스를 만만히 보는 경향이 생기지나 않을지 조금 우려스럽습니다.”

“흐흐, 그거야말로 림몬에서 알아서 할 일. 안데르 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자넨 가끔 쓸데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경우가 있어.” 

나이가 든 후 오히려 담배가 는 노 재상을 떠올린 타란 백작. 그러나 내심 고개를 저었다.

연륜 깊은 그의 주장이 힘을 냈다면, 마탑의 마법에 대한 확인도 없이 지금처럼 성급하게 제국을 향해 검을 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마도 오늘의 임무도 일을 저지른 후 아차 싶은 마음에 내려왔으리라.

“하하하. 제가 좀 그렇지요. 재상님이 계신데……”

“그렇지. 그러니 그분과 왕께서 보실 보고서는 자네가 꾸미게.”

“그…… 제가 말입니까? 백작님께선 무엇 하시구요?”

왕이 봐야 할 보고서를 떠넘기다니. 말은 저렇게 해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나? 나는 전쟁을 준비해야지.”

“……예?”

“저 너머에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검왕이 있지 않나. 그와 싸우려면 별 의미 없는 글 몇 자 적는 시간도 아껴서 싸울 준비를 해야지 않겠나?” 타란 백작은 대답과 함께 자작령의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이어 하얀 치아를 내보이며 웃기 시작했다.

직접 겨룬 적은 없었지만, 세간의 평가로 보면 타란 백작의 실력으로는 절대 검왕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간의 실력 차.

과연 군을 이끄는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어떨까. 타란 백작은 개인 간의 전력이 아닌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에서는 쉽게 패배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변경백으로서 제국과 싸워 온 시간이 얼마인가.

‘이미 쏘아진 화살. 그렇다면 그 사이 내가 즐길 수 있는 것을 즐겨도 벌을 받지는 않겠지.’

예상치 못한 명령과 함께 검왕과 대치 상태에 들어선 타란 백작. 하나 어느덧 그는 검왕이라는 이름에 강렬한 호승심을 자극받고 있는 상태였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라’는 말을 적절하게 잘 실천하는 중이라고 할까.


그런 한편, 이드는 라울과 이야기를 끝내고 자신의 자리를 피터에게 양보했다.

마리에게 끌려온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온 송아지 같았다. 이드는 손을 들어 그를 반기고는 말했다.

“그럼 두 분 이야기 나누시죠.”

“이드 님?”

일부러 자리를 비운 사실을 들킨 것도 두려운데, 이드까지 자리를 비운다는 말에 피터가 길 잃은 어린양 같은 눈을 했다.

하지만 라울이 지원을 안 해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피터가 일부러 자리를 비운 것도 사실. 바벨 소속도 아닌 자신이 이 이상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는 것도 적당하지 않다고 이드는 생각했다.

해서 입술만 움직여 힘내라고 말해 주고는 지하실을 나섰다.

지하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 틈을 통해 피터의 이름을 부르는 라울의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큰일이야 있으려고.

‘아무렴. 죽이지는 않지. 죽고 싶을 정도로 갈구긴 하겠지만……..’

말 그대로 피터가 힘내서 잘 견디고 나오면 끝날 일이니까.

그렇게 피터에게 짧은 배신감을 안겨 준 이드는 지상으로 올라와 사랑하는 아내들을 찾았다.

“라미아, 일리나. 우리 좀 바빠질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어요?”

이드가 지하로 내려간 사이, 정원에 앉아 드라마를 보며 수다를 떨던 두 여인이었다. 그녀들의 고개가 자연스레 이드를 향했다. 이드는 라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미쳤네요. 마스.”

“미쳤지. 제국과 바벨에 동시에 싸움을 걸었으니까. 제정신이면 이럴 수 없지.”

“이드는……… 전쟁이 일어나면 마스가 불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군요?”

이드 쪽으로 몸을 기울인 일리나가 말했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일리나에 고개를 끄덕인 이드가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저택으로 연락 좀 넣어 봐. 바벨의 정보가 빠르긴 하겠지만, 이 정도 일이면 저택에서도 뭔가 알고 있지 않겠어?”

검후가 황제를 만나기 전이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현재 두 사람은 서로 오해를 푼 상태였다. 아직 온전히 예전의 관계로 돌아갔다고 할 순 없지만, 이 정도 큰일이 발생했다면, 그것도 소드 팰러스의 검왕과 관련한 일이 발생했다면 실시간으로 내용이 전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에 세 사람은 자리를 옮겨 저택과의 통신을 열었다.

“이드님!”

잠시 후, 통신구 위로 영상이 떠오르는 순간,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검후와 황녀. 그리고 에단이었다.

이드는 아직 밝은 창밖을 확인하고 황녀를 보았다. 자신이 알기로 황녀가 저택을 방문하는 시간은 대개 해가 지고난 후의 밤.

하나 지금은 환한 낮이다. 이곳이 낮이라면 아나크렌도 낮일 터.

“세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보니, 내가 연락하길 기다렸나 보군요?”

“네. 저도 지금 막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어요. 지금 막 황궁에서 급한 연락이 왔답니다.”

“혹시 그 연락이란 것이 마스와 전쟁이 날 것 같다는 내용인가요?”

“……어떻게 아셨어요?”

두 눈이 동그래진 검후가 물었다.

깜짝 놀라긴 그녀 양옆에 있는 황녀와 에단 역시 마찬가지. 특히 황녀의 경우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카논에 벌써 소문이 돌고 있는 건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저도 지금 막 라울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마스에서 추격대와 검왕의 등을 찔렀다죠?”

“아, 바벨, 확실히 그쪽이라면 알 수 있었겠네요.”

혹시 정보가 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은 이번 사건에 카논의 암수가 뻗어 있는 것은 아닐까. 짧은 순간 좋지 않은 가능성들을 떠 올리던 사람들은 바벨이라는 이름에 금세 납득해 버렸다.

결과적으로 제국이나 마스, 어느 쪽에서든 정보가 새어나간 것은 마찬가지지만 바벨이라면 해당 정보를 통해 제국에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평소 철저하게 중심을 지키는 행동과 이미지 관리가 중요한 것이다.

물론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제국의 속도 편하지는 못했다.

자국의 정보가 외부로 새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 보고만 있는 게 정상인가.

하지만 알아도 막을 수 없기에 포기해 버린 것이다.

아니, 인정해 버렸다고 해야 할까. 꾸준히 기밀에 대해 관리를 함과 동시에 바벨과는 따로 협의를 해 버린 것이다.

그나마 황제와 황궁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는 일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까.

“바벨에서 이드님께 어떻게 이야기를 하던가요?”

“전쟁의 가능성을 언급하더군요.”

이드는 다시 한번 라울과 나눴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 주었다.

“하아, 정확하네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세 사람은 씁쓸한 표정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제국의 황족이고, 에단은 제국의 정보 라인에서 일하던 요원이다. 당연히 외부로 정보가 새고 있는 상황이 편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이 정도로 중요한 정보라면 더더욱.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제국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기로 했습니까?”

그 질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황녀에게로 향했고, 그녀는 무거운 눈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지금도 아바마마께서 대신들과 함께 논의하고 계실 거에요. 하지만…..”

잠깐 말을 멈춘 황녀가 마른침을 삼키고는 한층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뗐다.

“마스에서 강경한 행동을 이어 간다면,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큰 게 사실입니다. 벌써 대신 중 많은 수가 전쟁을 주장하는 상태이기도 해요.” 황녀의 목소리는 무거우면서도 담담했다.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 안에 두려움은 없었다. 그녀가 참혹함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정신의 관 토벌에도 직접 참가한 그녀가 그걸 모를까.

오히려 너무나 잘 알았다. 다만 힘을 가진 자는 전진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그녀가 황녀로서 받은 교육에 의하면 지금은 제국의 위엄을 보일 때였다. 게다가 그런 이론적인 부분을 떠나서, 제국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다면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에요. 제국의 신하라면 어떠한 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지요.”

검후는 그 모습을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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