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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68화


1203화

게르만은 지금 이 사태가 혼란스러웠다.

오랜 시간 머리가 혼탁했다. 대략 수십 년 정도. 지금처럼 정신이 맑았던 적은 자신이 온전히 살아 있을 때 이후 처음이다.

그런데 이 맑은 정신으로도 어째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대체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간 대화다운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묻고 싶고, 알고 싶은 일이 쌓이고 쌓였지만, 지금은 저 한 가지 의문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을

정도다.

도대체 저런 자들이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

기억은 희미하지만, 눈앞의 기사는 마법과 같은 검술로 자신을 압도했고,

지금 나타난 여성은 허락 없이는 들어설 수 없는 이 공간을 제집처럼 쉽게 찾아들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무엇보다 혼돈의 파편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내가 저지른 죄를…………?

게르만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바짝 말라 버린 몸에 침을 만들 정도의 수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모래가 넘어가는 것 같은 까끌한 감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는 중에 이드가 손을 떼고 그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하지.”


이드가 자리를 옮긴 빈자리

“나나~ 흐흐흥~~나난나~”

라미아가 그 자리를 채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현실을 침식한 아스트랄 플래닛에 부분 융합을 통해 영혼을 붙잡아, 육체에 불사성을 부여한 키메라 시스템이라니.

이걸 직접 만지고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꽤 신이 나 있었다. 이드를 만나기 전까지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던 그녀는 전력으로 맞붙을 수 있는 마법 전투도 좋아하지만, 그만큼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법칙을 만나는 것도 좋아했다.

게르만과 고목의 상태와 연결 통로의 구조는 이미 이드를 통해 전달받았기 때문에 두 번 수고할 필요는 없었다. 신묘한 재주가 많은 무극신기의 정보는 매우 믿을 만했기 때문이다.

파파파파팟!

활짝 펼친 라미아의 열 손가락 끝이 반딧불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그녀의 손가락이 게르만과 고목의 이곳저곳에 닿았고, 그때마다 닿은 곳은 빛이 났다.

사실 그건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면 굉장히 복잡한 구조를 가진 그것은 일종의 미세 마법진이었다.

안정. 분리. 고착. 통제. 압축 등. 비록 크기는 작지만 마법진의 구성은 단단하고 섬세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처녀자리 작은 별~”

가사를 살짝 바꾼 ‘작은 별’.

그 노래를 따라 반짝이는 빛이 하늘의 별자리 중 처녀자리 모양을 그렸다.

치지지지지

완성되는 순간.

게르만의 등 뒤, 고목과 결합된 거대한 흉터 같은 일부분이 까맣게 타 떨어졌다. 앞서 이드에 의해 막힌 통로가 확실히 정리된 것. 지지지지직-

하지만 무언가 타들어 가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단순히 뒷정리나 하려고 나선 라미아가 아니다.

‘꼭 살려 둘 필요는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살아 있으면 어떻게 쓸모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녀는 최대한 안정적으로 게르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위해, 그를 잡고 있는 키메라 시스템을 탐색하고 복제하기 시작했다.

잘만 하면 게르만을 살려서 데리고 나가는 것은 물론, 새로운 리치 마법을 완성할 수 있을 기회다.

“나난 나난 나난나~

그런 상상에 그녀가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더욱 신나졌다.

그렇게 보기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지만, 그 처리는 확실했다.

게르만에 공급되는 마나의 흐름은 다섯 배 높아졌고, 마나에 섞여 들어오는 해석 불가의 의념은 십 분의 일로 줄었다.

전체적인 효율은 이드가 손을 대고 있을 때의 열 배 이상.

그 증거로 게르만의 안광이 한층 깊어졌다. 그 효과를 가장 먼저, 그리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그는 생전 마법사로서의 높았던 지성이 복구되는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다만 마주한 이드로 인해 그러한 감정을 오래 누릴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그 어떤 마법사도 이렇게 간단하게 내게 걸린 저주를 풀어내지는 못할 텐데.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역시나 이기적인 인간이로군.

“날 말하는 것인가?”

혀를 찬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있나? 당신의 정체가 게르만이냐는 질문에는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더니, 자기소개도 없고. 그러면서 또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싶다? 하긴, 그런 이기심을 똘똘 뭉친 인간이니 혼돈의 파편을 그리 쉽게 풀어 주었겠지.”

“…….”

“다시 입을 닫는 건가? 뭐, 좋아.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달라질 건 없어. 당신은 다시 저 나무의 노예가 될 뿐이야. 그러길 바라는 건가? 당신이 저지른 죄로 인해 대륙이, 카논이 어떻게 변했는지. 정말로 궁금하지 않나?”

잠시 말을 끊은 이드가 굽혔던 허리를 펴며 한발 물러서서는 다시 말했다.

“정말 그런 거라면 고개를 흔들어 이대로 영원히 노예 짓이나 할 수 있도록 놔줄 테니까. 아, 대신 당신의 위대한 모습을 영상으로 좀 담아 가는 건 괜찮겠지? 심심할 때마다 좀 봐야겠어. 정말 재밌을 것 같거든.

바짝 마른 미라 영감의 모습이라니. 재미는커녕 훌륭한 공포 영화다.

이드는 가만히 게르만의 답을 기다렸다.

사실 그가 인정하지 않아도 그는 게르만이다. 그걸 이드가 알고, 게르만이 알고, 라미아가 안다.

하지만 이드는 그의 입으로 직접 답을 듣고 싶었다.

그가 인정을 해야, 그가 감추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죽을 듯이 부정해서야 그 속에 든 이야기를 진실하게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 내 꼴을 사람들에게 보일 순 없지.”

정말 영상으로 남기겠다는 말이 무서운 건 아니리라.

십 분.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을 망설인 후, 게르만이 그런 핑계와 함께 입을 열었다.

“좋소. 내가 게르만이오.”

“혼돈의 파편을 봉인에서 해방시킨 해방의 마법사?”

“그 칭호도 내 것이 맞소. 신을 배신한 오만의 증거…………… 이제 답해 주시오. 당신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것이오?”

혼돈의 파편에 대한 일이기 때문일까. 그에 대해 말하는 게르만의 눈은 마치 죽은 생선 같다.

이드는 그 모습에 팔짱을 풀고서 한발 다가갔다.

“말했지 않소. 혼돈의 파편에게 직접 들었다고. 그들 때문에 가장 큰 고생을 하고 있다는 내 말에는 거짓이 없소.

게르만이 대화를 할 의사를 확실히 보이자, 이드의 말투도 달라졌다. 원만한 대화를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그대들이 누구이기에. 어떻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오? 내가 사랑하는 조국은? 설마 카논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오?” 

가장 부정하고 싶은 사실을 인정해 버렸기 때문일까.

게르만은 가슴이 꾹꾹 내리누르고 있던 질문들을 쏟아 냈다. 사실 그로서는 궁금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이드의 정체는 물론이고, 혼돈의 파편, 카논 제국, 대륙의 사정 등. 마치 오래전 무인도에 떨어진 사람처럼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드도 그의 질문을 통해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그가 최소 40년 이상 외부의 소식을 전해 들은 바가 없다는 것. 그 말은 곧, 최소한 그때부터 이 꼴을 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드는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입으로는 게르만이 원하는 몇 가지 답을 내놨다.

“그레센은 별로 변한 것이 없소. 카논 제국도 멀쩡하고, 혼돈의 파편에 대해서도 알려지지 않았지.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오.” 

“아아…… 역시…….”

대답을 들은 게르만이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 표정은 또한 미묘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혼돈의 파편을 세상에 풀어 준 게르만이다. 대신 그 후에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역시 잘 알게 되었다.

그런 그의 입장에선 그런 혼돈의 파편이 나간 세상이 여태 멀쩡하다는 사실에, 안도와 함께 의문이 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이라는 말을 해석해 보자면, 비록 물밑으로는 복잡한 일이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그들을 세상에 풀어 주었다는 사실을 혼돈의 파편에게 직접 들었다고 했소. 그렇다면 혹시 내가 그들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도 알고 있소?”

“내가 당신에게 듣고 싶은 게 그 부분이오. 우리가 아는 건 카논의 대륙 통일과 역사에 당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 두 가지가 전부니까.”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대답해 드리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대답해 주시오. 도대체 세상은 그 약속을 “부끄러운. 지키려 하는 혼돈의 파편을 어떻게 막고 있는 것이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드래곤도 더 이상 세상에 없을 텐데.”

의문이 가득한 게르만의 질문을 들은 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랜 시간 이곳에 잡혀 있었던 게르만이다. 한데 그런 그의 입에서 드래곤이 언급된다고? 그것도 그들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까지 더해서? 아무래도 게르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지 않은가.

– 이드.

이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놀란 라미아와 잠시 눈빛을 교환하고는, 단어를 고른 후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별과 별이 낳은 초인에 대해 말했다.

“아아…… 그런 일이…….”

설명을 들은 게르만은 깊이 감동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멸망에 대항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 것이다. 다만 아쉽게도 말라비틀어진 몸에서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럼 이제 당신 이야기도 들어 봅시다. 아니, 그보다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소. 게르만, 당신이 이곳에서 마법 노예 꼴을 하고 있던 것도 꽤 된 듯한데, 도대체 드래곤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아는 거요? 당신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혼돈의 파편이 드래곤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설마 혼돈의 파편이 이곳까지 찾아와 게르만에게 보고를 할 리도 없을 텐데 말이다. 그랬다면 굳이 카논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겠지.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는 이드에 게르만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 어깨는 이미 이드의 손에 파괴된 상태. 그 사실을 깨달은 게르만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그 눈은 하늘에 뚫려 있는 구멍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 이드와 리마아의 눈이 구멍을 향할 때,

게르만이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느 날이었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희미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이곳에 멈춰 있던 어느 날. 저기 뚫린 구멍 속으로 많은 드래곤이 떨어졌소. 내 평생에 그렇게 많은 드래곤을 본 날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소..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답이다.

“……!!”

이드와 라미아의 눈이 소리 없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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