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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69화


1204화

어렵게 알아낸 바에 따르면 함정에 빠진 드래곤들은 세상 밖으로 쫓겨난 상태다.

함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함정에 빠져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한데 그 ‘알 수 없었던 일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인 게르만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이야.

“라미아?”

“현재 좌표 확인 중이에요. 만약 이곳이 차원 좌표 상의 허수 공간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라미아의 손이 바빠졌다.

미세 마법진과 대비되는 거대한 마법진으로 공간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선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 순서가 좀 많이, 급하게 당겨졌을 뿐.

그러는 사이 이드는 게르만과 눈높이를 맞췄다.

“방금 당신이 한 말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묻겠소.”

“거짓은 없소. 어차피 저 마법사가 확인한다고 하지 않았소. 그나저나, 저렇게나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만한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저 마법사는 어느 마탑 출신이요? 스승은 누구이고?”

라미아의 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던 게르만이 이드의 말에 겨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연신 라미아를 향하는 시선을 막을 수는 없었다.

라미아의 말처럼 이 꼴을 하고서도 마법에 대한 호기심이 여전한 것이, 천생이 마법사인 듯했다.

“마법을 급격히 발전시킨 새로운 이론이 나온 것이오? 그렇다면 이제 나와 같은 과거의 마법사들은 그저 낡고 저급한 과거에 불과하겠구려. 심지어 이드를 향해 이렇게 묻기까지 했다.

“마법에 대한 질문은 나중에 당신이 내 질문에 정확히 답해 주면, 그때 말하겠소. 우선은 내 질문이 먼저요. 방금 당신은 저 구멍으로 드래곤들이 사라졌다고 했소.”

드래곤들을 집어삼켰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마치 주변의 별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구멍을 바라본 이드가 말을 이었다.

“그럼,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아시오? 드래곤들이 왜 저 안으로 들어가야 했는지에 대해서 아느냐는 말이오.”

“그때 이미 내 정신은 정상이 아니었소. 그저 보고 기억했을 뿐, 유감스럽지만 앞뒤 사정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소.”

그야말로 자유 의지를 빼앗긴 노예.

하물며 몬스터라는 호칭도 아까웠다. 그저 본능뿐인 벌레보다 못한 상태일 때 일어난 일이다.

그 말에 이드는 추가적으로 다른 일에 관해 알아볼 생각은 깨끗하게 단념했다. 어차피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그럼 그때 이후, 저 구멍을 통해 드래곤이 더 들어가거나 나간 적은 없는 거요?”

“내가 알기로는.”

“그럼 혼돈의 파편은 어떻소?”

“음? 무슨 말이오?”

이드의 말에 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게르만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눈빛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이드는 그런 상대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저 구멍으로 들어가서 돌아오지 못하는 건 드래곤만이 아니오. 혼돈의 파편. 몰아낸 드래곤들이 돌아오지 못하도록 혼돈의 파편도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소?”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어떻게 그런 일에 대해서까지 알고 있는 거요?”

게르만은 벌써 몇 번이나 했던 질문을 또 반복했다.

어째서 이들은 이곳에 잡혀 있는 자신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을 알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과거에도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던 자신의 죄를 아느냐는 말이다.

게르만은 답답함에 크게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그 대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소리친다고 들어 줄 상대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 제국의 황궁 마법사라는 권위가 통하지 않는 상대다.

아니, 혼돈의 파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저들에게 자신은 오히려.

그는 곧 대답을 재촉하는 이드의 말에 답했다.

“당신의 말대로요. 혼돈의 파편들도 저 안으로 들어갔소. 다섯이 들어가서, 하나가 돌아왔었소.”

그 대답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대로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대륙에서 활동하던 혼돈의 파편은 둘이었다.

“그럼 최근에는? 최근에 저 구멍을 통해 넘어온 혼돈의 파편이 더 있지 않았소?”

“하아…… 둘이요.”

게르만이 이제는 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한숨을 더해 말했다.

사실 이 정보만큼은 쉽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저 알 수 없는 자들을 움직일 가치 있는 정보로써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걸 알아낸 후, 확인만 남겨 놓은 것 같은 모습에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금 자신의 처지를 자각했기에. 무언가를 거래할 것이 아니라, 그저 사정하고 애원해 상대의 동정심을 바라야 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게르만은 품고 있던 것을 온전히 풀어놓기로 결심하고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저 구멍에서 나온 둘 중 하나가 누구인지도 짐작하고 있소.”

“누구요?”

“무우.”

“무우?”

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다. 하지만 짐작되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혼돈의 파편을 만나고 싸우며 저들의 이름에 대해서는 거의 다 알고 있었다. 다만 딱 하나. 진짜 얼굴을 보지도, 이름을 듣지도 상대가 하나 있었더랬다.

“혹시 그 이름의 주인이, 과거 당신의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서 전쟁을 일으켰던 그자요?”

“멸망을 깨운 첫 번째 벌이었소. 흐흐.”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자괴감으로 범벅이 된 기괴한 웃음소리.

그 모습에 이드는 내심 혀를 찼다.

그러나 동정할 생각도 없고, 위로할 말도 없었다. 자신으로 인해 세상이 멸망하게 생겼는데, 저 정도면 차라리 멀쩡한 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게르만을 위해 저 상처를 덮어 줄 의리도 없었다.

“멸망을 말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혼돈의 파편이 무엇을 위해 준비된 존재인지 아는 모양이오?”

“좀 더 자세한 것은 후에 알았지만, 계약을 마친 직후, 계약의 빠른 이행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 얼굴과 이름을 빼앗아 간 존재들이오. 모를 수가 없었지. 그리고 변명은 아니지만, 나는 그들이 고대에 잊힌 신이라고 여겼소. 일종의 고대 정령 말이오.”

변명이 아니라며, 스스로의 부족한 지식이 만들어 낸 착각을 고백하는 게르만. 그 말에 거대한 마법진을 지워 낸 라미아가 차갑게 말했다.

“지금 당신의 무식을 고백하는 건가요? 고대 정령은 일종의 개념이 실체화된 것. 그들은 하나로서 오롯하므로, 절대 함께일 수 없는 존재들이에요. 그런데 같이 봉인된 혼돈의 파편 여섯을 보고 고대 정령이라고 여겼단 말인가요!”

라미아의 말에 따르면, 그건 고대 정령에 대한 기본 지식만 있어도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서로의 개념을 흐트러트리는 공격이 되는 존재가 바로 고대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소.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자만과 오만이 내 눈을 가리고, 이성을 비틀어 낸 결과였소. 잘못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게르만의 고개가 점점 아래를 향했다.

미친 듯 매달려 봉인을 풀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돌아보면 광기의 순간이었다. 어떻게 그 독하도록 복잡한 봉인을 풀어낼 수 있었는지. 자아를 빼앗기고 이곳에 갇히기 전.

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던 게르만은 심지어 그것이 신이 자신을 통해 한 일이 아닌가 하는 망상을 하기도 했다.

신관도 아닌 마법사가 할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그만큼 그때의 게르만은 현실을 회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부정하고, 분노하고, 책임을 회피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현재의 게르만은 순순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봉인을 풀어낸 후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혼돈의 파편에 대한 봉인을 자신이 풀긴 했지만, 봉인에서 나온 그들은 자신의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래, 마치 용사의 봉인에서 풀려난 마왕처럼.

담담히 과거의 잘못을 말하는 게르만의 모습은 마치 신에게 죄를 고백하는 신관 같았다.

이드는 그런 게르만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 라미아를 향해 돌아섰다. 아무래도 게르만과 다시 대화를 나누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땠어?”

“정확한 좌표가 잡히지 않아요. 허수 공간이 확실해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럼 저 구멍에 대한 것도 사실이라는 거야?”

“정확히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거죠.”

“그게 그 말이지. 그럼 저 구멍을 통하면 혹시 우리도・・・・・・.”

“우리도, 뭐요?”

“드래곤들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 이드의 의도는 간단했다.

저 구멍 너머에는 드래곤도 있고, 혼돈의 파편도 있다. 만약 자신도 저곳을 넘어갈 수 있다면 드래곤들과 합류해서 혼돈의 파편을 처리한 후 그레센으로 함께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가능하기만 하다면 더할 수 없이 좋은 방법이다.

혼돈의 파편을 힘들게 찾을 필요도 없고, 드래곤이라는 절대적인 아군도 확보하게 될 테니까.

이드로서는 상상만으로도 배가 부르고 마음이 푸근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답으로 돌아온 것은 등을 쓸어 주는 라미아의 손길이었다. 마치 심통이 난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손길. 그에 이드는 혀를 찼다. 

“안 되는 일이구나?”

“아쉽게도요. 이 공간도, 저 구멍도 메이드 인 혼돈의 파편이거든요. 저 구멍으로 들어가 볼 수는 있지만, 아마 혼돈의 파편이 그걸 알게 된다면 좋다고 출구를 옮겨 놓을 거예요.’

“어디로?”

“흐음. 가장 가깝게는 태양?”

·첫 번째가 태양이냐?”

라미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드는 티끌만큼 남아 있던 미련마저 날려 버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태양이란다.

과연 거기 던져지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혹시 불의 정령을 불러내면 그 열기를 견딜 수 있으려나?

상상력을 풀가동해 봐도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진짜 기가 막힌 건, 이 태양이 첫 번째로 나왔다는 거다.

그다음으로 나올 건 뭘까? 끝없는 우주? 블랙홀? 그것도 아니면, 초신성이나 지옥?

진짜 라미아의 말대로라면 저 구멍 너머는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였다.

“그럼 우리가 쓸 수는 없다는 건데. 어떻게든 다르게 써먹을 방법은 없어? 저 너머에 드래곤에 혼돈의 파편까지 있다니. 너무 아까운데.”

“아까워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어지간해서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지 않는 라미아인데 말이다.

이드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우리가 쓸 수 없다면…… 그러면 드래곤들이 쓸 가능성도 없는 거지?”

“그렇죠. 구멍은 입구와 출구, 둘로 이루어졌으니까요. 이쪽에서도 충분히 출구를 바꿀 수 있어요.”

즉, 이미 대륙으로 나와 있는 혼돈의 파편이 마음만 먹으면 드래곤도 태양에 박아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 부수자. 우리만 못 쓰면 불공평하잖아.”

“……”

이드의 해맑은 발언에 라미아는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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