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44화
1279화
언데드.
살아 있지 않은 것. 이미 죽은 자들.
그렇기에 다시 죽이기 어려운 존재.
하지만 정작 이들을 상대할 때 가장 힘든 점은 그런 게 아니라, 이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배를 찔러도 달려들고, 다리를 잘라도 쓰러지며 창을 찌른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는 상상하기 힘든 반격이다. 이건 그대로 의외성이 된다. 다른 말로는 불의의 일격.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공격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언데드는 이런 불의의 일격이 패시브가 되는 거다. 그래서 대부분 살아 있는 존재를 상대해 왔던 입장에서는 언데드의 공격이 매우 당혹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감정도 경험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고, 훈련을 통해 대비할 수 있다.
플레타 부대의 경우는 훈련뿐 아니라 실제로 상대해 본 경험까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한 어떤 언데드도, 또 어떤 훈련에서도 놈들이 자신의 몸에 박힌 무기를 고정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씨벌. 뭐 이딴 게 다 있어!”
그러니 여기저기서 당혹스러운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도 절대 무리는 아니었다.
검은 오크의 배를 찔렀던 부대원 역시 마찬가지다.
“우 씨, 놀라라!”
자신을 찌르는 창을 바라보며 굳어 있던 부대원이 푹 하고 숨을 뿜었다. 그를 찌르던 그 무기는 왼쪽 가슴 한 뼘 거리에서 멈춰 있었다.
그의 망토가 살아 있는 듯 창을 잡아챈 것이다. 그리곤 오크가 창을 놓으려는 순간 망토의 다른 자락이 주먹처럼 뭉쳐 날아들더니, 오크의 머리를 뭉개 버렸다.
접촉해 있는 천을 움직이는 능력. 그것이 그의 초인기였다. 애초에 이런 쓰임을 위한 것인지 망토의 중간 부분이 길게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 당혹스럽긴 했지만, 큰 위기는 없었다.
이런 모습은 여기저기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각각 방어하거나 되받아치는 초인기의 종류만 다를 뿐.
“이것들은 지들이 슬라임인 줄 아나!”
“오냐! 슬라임처럼 산산조각을 내 주마!”
놀람이 지나가자 그 마음까지 더해 부대원들은 공격에 힘을 줬다. 좀 더 과감하고 강렬하게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무기를 중간에 잡아챌 수 없도록 상대를 완전히 절단하고.
표면을 직접 두드려 내부에 충격을 주는 형태의 공격을 택했다.
쾅!
퍼퍼펑!
덕분에 여기저기 쉬지 않고 폭음이 터져 나왔고, 그때마다 검은 몬스터의 형체가 공처럼 이리저리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중에는 충격을 다 감당하지 못하고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었다.
“휴우~”
“놀랐어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일리나에 이드가 푸스스 웃었다.
플레타 부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러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마음이 참 곱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런 반격 형태는 처음이니까요. 그나저나, 저것들은 뭐죠? 저런 몬스터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상대가 어떤 몬스터인지는 딱 보면 알 수 있다.
오크와 오우거, 거기에 간간이 트롤 비슷한 것들도 섞여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외형이 그렇게 생겼을 뿐, 진짜 그 몬스터들은 아니다.
처음엔 몬스터로 언데드를 만들었나 싶었지만, 방금의 공격 하나로 그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드도 난색을 표했다.
“모르겠어요. 마계에 비슷한 특징의 마물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또 마물은 아닌 것 같고.”
“그렇겠죠. 마물이라면 마기를 감출 수 없을 테니까요.”
긴 생을 살아온 일리나의 경험에도 없고,
거대한 지식을 물려받은 이드의 지식 속에도 없는 새로운 형태의 몬스터.
“형태를 보면 변태 직전의 도플갱어 같고, 능력은 쉐이드를 닮기도 했는데, 비올라. 아는 거 없어?”
“앞서 말씀드렸잖습니까. 영혼의 관에 대해서는 몇 개 주워들은 게 다라고요.”
“그래도 짐작되는 건 있겠지?”
이드가 재차 비올라의 대답을 재촉했다.
초인 마법과 탑주, 그리고 미완의 마탑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비올라다. 그런 그라면 정확하지 않아도 최소한 비슷한 답이라도 내놓을 수 있으리라.
“저것도 어차피 영혼의 관. 그러니까 미완의 마탑에서 만들어 낸 거 아냐.”
“뭐,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뭔 것 같아? 짐작이라도 좋다고.’
“…..일단 쉐이드나 도플갱어 같은 몬스터는 아닙니다.”
또 한 번의 재촉에 대답을 우물거리던 비올라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건 보면 알지.”
“아니, 제 말은. 아예 몬스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 말은・・・・・・ 저것들이 피와 살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건가?”
“네. 정확합니다.”
“그럼 마법 생명체라는 건가요?”
그에 관해서는 들은 바가 있는지, 쉴라가 머릿속에 있는 단어 하나를 꺼내 놓았다.
“음, 보기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저건 쉴라 단장이 알고 있는 존재와도 좀 다릅니다.’
“그럼?”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저 형태 자체가 마법이라는 겁니다. 움직이는 마법.”
“쉐도우 서번트 같은?”
쉐도우 서번트는 그림자를 하인처럼 부리는 기본적인 그림자 마법이다. 이 마법의 시작은 그림자의 아주 작은 일부를 움직이는 것이고, 완성하면 시전자의 그림자는 온전히 인간의 형태를 하고서 하인처럼 맡은 일을 수행한다.
“비슷합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딥니까. 영혼의 관입니다. 마법보다는 그림자를 이용하는 초인기에 가깝다고 보셔야죠. 단순한 쉐도우 마법보다 훨씬 강력할 겁니다.”
아무래도 초인기가 마법보다 좀 더 직접적인 느낌이 강하다. 다시 말해 존재가 더 안정적으로 고정되었다는 의미. 즉, 눈앞의 존재들처럼 진짜 몬스터로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쉐도우 마법보다 강력하단 말이지.”
확실히 그렇게 보이기는 한다.
지금도 검은 몬스터들은 힘과 형태를 가지고 플레타 부대와 싸우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놈들은 플레타 부대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다. 분명 일반적인 언데드 보다는 강력하지만,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장 여기저기서 죽어 깨져 나가는 검은 몬스터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설명과 달리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 진짜는 이다음이 아니겠습니까?”
“자작, 그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로군.”
라울의 말에 검후가 가장 먼저 귀를 기울였다.
라울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검후지만,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는 사람 또한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검후님, 보셔서 아시겠지만, 겨우 저런 전력으로는 유의미한 위협이 될 수 없습니다. 원래 마법사들은 의미 없는 짓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뻔히 승패가 보이는 싸움을 굳이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에 ‘별 대단치 않다’는 말을 듣고 막 반박을 하려던 비올라도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초인 마법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가진 그지만,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옳은지는 곧 답이 나오겠지요.”
이런 비올라 대신 이드가 전장을 살피며 말했다.
시끄럽던 분위기도 어느새 정리가 되는 분위기였다. 앞서 영혼의 관 밖에서 싸웠던 몬스터들보다 숫자는 많았지만, 플레타 부대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전투는 더 일찍 끝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적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아군의 공격 속도는 배로 올라갔다.
여유가 생긴 부대원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협공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
그렇게 마지막 남은 오우거의 목과 허리를 단번에 잘라 냈을 때였다.
쩌르르릉.
마치 철판이 떨리는 듯한 파동이 몬스터들이 있던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전 부대, 방어 자세!”
이것이 진짜 적의 공격인가.
그렇게 생각한 플레타가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매서운 공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즈즈즈즈즉-
대신 파도처럼 퍼져 나가던 파동의 일렁임이, 백색의 공간 경계를 따라 몬스터들이 나타났던 공간의 끝으로 순식간에 이동해 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로 모여 검은 구멍을 만들어 냈다.
“충격량 흡수 완료.”
“에너지 전환 및 그림자 밀도 보충 완료.
좀 전보다 좀 더 밝아진 수정구를 앞에 둔 마법사들의 보고에 조셉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증폭이 완료되었다면 다시 밀어 넣어. 이대로 토끼들을 익사시킨다.”
부웅.
조셉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정구 주변으로 두 번째 마나의 띠가 생겨났다. 그건 앞의 것보다 더 붉고 두꺼웠다.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주먹만 하게 보이는 검은 구멍.
척척척척.
그곳에서는 곧이어 다시 수많은 검은 몬스터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앞서 나타났던 숫자보다 많아 보였다.
구멍을 빠져나온 놈들은 곧장 앞서와 똑같이 플레타 부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플레타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이대로라면 앞의 전투를 그대로 되풀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위험하진 않지만, 체력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저 검은 몬스터가 언제까지 나타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더 기분 나쁜 예측을 하자면 이게 끝이 아니고, 얼마까지 계속 되풀이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달까.
“라울?”
“구백 마리다. 정확히 앞서 나타난 숫자의 두 배지.”
“그럼 다음은 천팔백 마린가?”
“…..”
어처구니없다는 듯 언급한 숫자에 라울이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플레타 부대에게 삼백의 몬스터는 그리 무서운 숫자는 아니다.
구백도 땀 좀 빼겠지만 큰 부상 없이 처리할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천팔백 마리의 몬스터라면?
저 플레타 부대에서도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 사상자를 따지기 전에 체력적으로 문제가 생길 터였다. 당장 지금만 해도 부대원들의 체력이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현재까지 부대원들이 상대한 몬스터가 오백이다.
여기서 다시 구백이 더해지면 그것만 해도 천사백 마리. 아직 다음이 있다고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강력하게 의심되는 시점에서 그것까지 더해지면 무려 삼천사백 마리다. 그걸 모두 상대할 체력이 될까?
“이거야 자존심 상하지만 어쩔 수 없나.”
더 플레타는 끌끌 혀를 차더니, 라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벌써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쩔 수 없다. 라울, 도와라.”
“네 입에서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다니. 놀랍군. 손님들도 계신데 말이다.’
“흥, 내 자존심 따위보다 내 부하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숫자로 밀어내는 이딴 어처구니없는 수작에 내 부하들을 내어 줄 것 같으냐.”
“……..”
그에 라울도 무어라 말을 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