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53화
1288화
작은 손바닥 위에서 코어 켄타우로스가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석실에서 수정구를 들여다보고 있을 플로어 마스터와 다른 마법사들이 알았다면 거짓말이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자신들의 마법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법사들은 라울의 손바닥 위에서 돌아가는 톱니바퀴를 알지 못했다.
이유는 골든아이의 은밀성 때문이다.
라울은 골든아이를 바벨의 관리와 전투의 공방 등 다양한 곳에 사용한다.
이런 다양한 효용성을 보면 알겠지만, 골든아이는 초인기 중에서도 범용성이 뛰어난 축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골든아이의 주된 개념은 보는 데 있었다.
무언가를 보고, 인지하고, 관찰하는 일. 속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복잡하지만, 그 시작은 실로 간단하다.
바로 눈으로 보는 것이니까.
골든아이의 은밀성은 여기서 생긴다. 보는 데 무슨 과정이 필요한가. 중간 과정이 없는 만큼 행위는 단순해지고, 이것은 기파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이렇다.
누가 옆에서 움직이면 소리나 진동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눈을 뜨고 감는 것까지 알 수 있을까? 아니. 직접 살피기 전에는 모른다. 같은 의미로, 누군가 은밀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 몇이나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을까? 물론 정말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걸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특별히 감이 좋은, 정말 한 줌도 되지 않는 경우일 뿐이다.
마주 앉은 순간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누가 자신을 살펴도 잘 알지 못한다. 특히 멀리 숨어서 바라볼 경우는 죽었다 깨도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골든아이는 기본적으로 은밀성을 가진다.
이러한 은밀성은 목표가 가까울수록 더욱 높아진다. ‘본다’는 기본 과정마저 라울의 육안이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라울이 두 눈을 뜨고 있을 때, 그가 골든아이를 사용하는지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바벨 내에서도 바벨의 마스터 정도나 되어야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기에 라울은 여기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사람은 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웬걸. 마치 그건 착각이라고 말하듯, 이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라울의 행동을 간파해 냈다. 이드는 짐작이라고 말했지만, 라울은 그 말속에서 확신을 읽어 냈다.
그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듯한 그런 레벨이었다.
‘마스터와 동급이란 말이지.’
등허리에 오싹한 전율이 달리는 듯한 느낌에 라울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드. 명예 후작의 강함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이런 새로운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니 말이다.
어쩌면 그건 라울이 직접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가진 ‘최강’의 이미지는 바로 바벨의 현 마스터다.
그런데 지금 이드는 그런 마스터와 최소한 감지 능력에서는 비슷한 경지임을 증명해 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겁니까?”
이드의 물음에 주변의 시선이 라울의 손을 향했다.
“조용히 분석을 마치고 플레타 놈에게만 알려 줄 생각이었는데 말입니다.”
“하하. 플레타 대장은 좋은 친구를 뒀군요.”
“저놈도 그걸 알아야 할 텐데요. 그런데, 명예 후작께선 어떻게 아셨습니까? 제가 코어 켄타우로스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냥 지나치는 듯한 물음,”
이드는 라울의 눈빛이 은밀히 번뜩이는 것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별로 숨길 일도 아니었다.
“초인력이 느껴졌거든요. 그것도 바로 옆에서 초인력을 사용하는데,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
‘참 간단하지요?’ 하는 뉘앙스의 대답에 라울이 쓰게 웃었다.
짐작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느낌이 새롭다. 심지어 초인력은 코어를 찾기 위해 골든아이를 발동시킨 시점에서 계속 사용 중이었다.
이곳은 적지고, 지금도 전투 중인 만큼 어디서 어떤 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 그러니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골든아이를 발동하고 있어야 했다.
코어 켄타우로스의 탐색은 그런 중에 더해진 작업이었다. 그에 소모되는 초인력의 변화는 미미하다.
무엇보다 사람이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힘이다. 그 출력은 미세하지만 조금씩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 변화가 어떤 작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적용된 건지, 혹은 자연스러운 건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드는 태연하게 그 차이를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도대체 감지 능력이 얼마나 섬세하고 정밀하면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자네 말은 뭔가? 저 코어 켄타우로스의 공략법을 찾은 건가?”
검후가 망연히 말을 잊은 라울을 향해 물었다.
“아, 크흠. 공략법이라기보다는 약점을 찾았습니다, 검후님.”
“호오. 약점이라니, 그거 대단하군. 내게도 알려 줄 수 있겠나?”
“검후님께서 궁금하다 하시는데, 당연히 알려 드려야지요.”
어느새 이드에 대한 상념을 털어 버린 라울이 당장 손바닥이라도 비빌 듯 검후 앞에서 사근사근 얌전을 떨었다.
그 직후, 그는 손바닥 위에 올리고 있던 톱니바퀴를 사람들 사이에 툭 떨어트렸다. 그러자 톱니바퀴가 사람들의 가슴 정도 높이에서 떠올랐고, 그 위로 싸우고 있는 플레타와 코어 켄타우로스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그 영상 속에서는 마침 공격을 막아 낸 플레타가 코어 켄타우로스의 머리를 내려치던 참이었다.
쿠르르르릉!
그와 동시에 저 앞에서 들려오는,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폭음과 진동.
영상 속 코어 켄타우로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로 변한 잔해가 머리를 다시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체력이나 회복력이 떨어지긴커녕, 오히려 복구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플레타 대장의 체력이 좀 떨어진 모양인데요.”
영상 속 플레타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본 이드가 말했다.
“이런, 그럼 조금 더 서둘러야겠군요. 여러분께선 코어가 처음 나타나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그걸 벌써 잊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요?”
스폴이 시큼털털한 눈빛을 하고는 답했다. 겨우 수십 분 전 일이다. 그걸 벌써 까먹은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붕어다.
“좋습니다. 그럼 그때 코어의 크기는 어땠습니까.”
“작았죠. 이 정도?”
스폴이 두 손을 벌려 요리조리 돌려 보인다. 딱 성인의 머리 크기 정도.
그런 스폴의 모습을 바라보던 쉴라가 순간 뭔가 알아차린 듯 ‘설마’ 하는 표정이 되었다.
“혹시 지금 하시려는 말씀이……………. 코어의 진짜 크기인가요?”
“하하하. 역시 지혜로운 분들과의 대화는 편하군요. 그렇습니다. 코어의 크기는 처음부터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딱 그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라울이 영상을 띄우고 있는 톱니바퀴를 톡 건드리자 톱니바퀴가 역회전을 하며 코어가 현계하던 시점을 비쳐 보였다.
그리고는 그 시점에서 다시 영상이 진행되더니, 코어가 지금의 코어 켄타우로스의 크기가 되는 모습이 나타났다.
“보시면 아실 테지만, 저건 코어가 커진 게 아닙니다. 코어를 중심으로 그림자가 붙은 것이죠. 코어는 처음부터 그 크기가 변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의 코어 켄타우로스를 아무리 공격해 봤자….”
“코어에 타격이 있지는 않겠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럼 라울 자작님께서 찾으셨다는 약점이 진짜 코어인가요?”
쉴라의 질문에 라울이 웃음으로 답하며 다시 톱니바퀴를 돌렸다. 그러자 영상을 전투 상황을 다시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동시에, 플레타가 빠지고 코어 켄타우로스만이 커다랗게 확대되었다.
앞서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었다. 그건 바로 코어 켄타우로스 내부를 돌아다니는 금색의 작은 점이었다. 그 점은 코어 켄타우로스의 움직임을 따라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불규칙적이었으며, 코어 켄타우로스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코어 켄타우로스보다는 플레타의 행동에 따라 바뀌고 있었다. 기본적인 움직임은 플레타와 반대로 움직이는 것.
플레타가 코어 켄타우로스의 머리 부분에 있다면 하체로, 플레타가 하체를 노린다면 머리로.
금색의 점은 마치 플레타를 피해 도망을 다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되자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은 모두 알 수 있었다.
“라울 자작께서 진짜 코어의 위치를 찾아내셨군요.”
바로 코어 켄타우로스의 본체이며, 이 공간을 유지하는 진짜 코어였다.
“코어를 찾다니. 라울 자작의 초인기는 대단하군요.”
“과찬이십니다.”
“아니요. 진심입니다.’
이드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공 식으로 표현하면 원거리에서 타인의 체내에 섞여 있는 미세한 진원진기를 감지해 낸 것과 같다. 아니, 그보다 어려운가? 근본적으로 코어와 코어 켄타우로스를 만들어 낸 검은 그림자는 동질의 마나 파장을 가지고 있으니, 녹여 낸 금 속에서
원래 목걸이였던 금과 반지였던 금을 구분해 내는 정도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확실히, 진짜 코어의 위치만 제대로 안다면 플레타 대장이 쉽게 처리할 수 있겠군요.”
플레타가 코어 켄타우로스를 쓰러트리지 못하는 것은 코어 켄타우로스의 회복력 때문이지, 결코 그가 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공격의 주도권을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코어의 위치를 알릴 방법이 있습니까?”
진짜 코어는 지금도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로 코어 켄타우로스 내부를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코어를 파괴하기 위해선 속도도 속도지만, 코어 켄타우로스의 공격과 방어, 그리고 거대한 몸체를 뚫어 내야 했다.
“하하. 거기까지 해 줄 의리는 없습니다. 어차피 핵심 정보만 알면 플레타도 충분히 스스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능력이 있기에 한 부대를 책임진 대장이며, 바벨의 간부일 수 있는 거니까요.”
라울은 은근히 바벨의 간부가 가진 실력을 자랑했다.
직후 영상을 쏘아 올리던 톱니바퀴가 영상을 지우고 라울의 얼굴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간에 뚫린 구멍 너머에는 플레타가 보였다.
그 상태로 라울의 입이 움직였다. 목소리는 톱니바퀴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듯 들리지 않았다. 플레타에게 말을 전하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내용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진짜 코어의 존재를 전달한 것일 터.
그에 대한 반응은 바로 튀어나왔다.
“이 자식아, 그런 건 싸우기 전에 알려 줬어야지!”
아무래도 코어 켄타우로스보다 라울의 뒤늦은 정보 전달에 더 짜증이 난 듯 보이는 플레타였다.
하지만 그의 적은 어디까지나 눈앞의 코어 켄타우로스.
플레타는 크게 검을 휘돌렸다. 땅과 하늘이 뒤집어졌다.
리버스 호라이즌.
쿠구구구궁
코어 켄타우로스의 거체가 리버스 호라이즌의 무거운 힘에 뒤로 밀려 나갔다. 그 순간 플레타는 대검을 허리춤에 놓고, 허리를 감아 돌렸다. 극도로 힘을 응축하는 자세.
빠가가각!
다음 순간, 대검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마치 바짝 말라비틀어진 미라처럼.
대검은 롱소드 정도의 크기까지 쪼그라들었다. 그와 함께 쪼그라든 대검을 중심으로 대기의 기운이 미친 듯 몰려들기 시작하자 플레타가 검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