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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55화


1290화

터벅터벅.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파괴된 코어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플레타가 돌아봤다.

전투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그의 몸에서는 뜨거운 김이 올랐고, 얼굴에는 땀이 한가득했다.

이드는 손으로 땀을 훔치는 그에게 수건을 건넸다.

“쓰세요.”

“어…… 감사합니다?”

“멋진 장면 잘 봤습니다.”

“일전에 명예 후작님의 전투를 봤습니다. 그런 대단한 분이 보시기엔 부족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뭘 봤다는 것일까?

정신의 관? 아니면 쉐어 가든?

바벨이 관측할 수 있는 전투 중 인상적인 건 그 둘 정도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대단한 초인기를 가지신 것 같더군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플레타와 코어 켄타우로스의 전투는 힘과 힘의 극한 충돌이었다.

당장 플레타가 전투 내내 쏟아 낸 힘의 총합이면 어지간한 산 몇 개는 충분히 날려 버릴 수 있을 거다.

이 정도 전력이면 그야말로 국가급.

국가 간의 전투에서 쏟아부어질 만한 전력이 이 짧은 전투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특히 조금 전 플레타의 검에 담겼던 수백 톤의 힘은 어떤가.

그와 같은 힘은 이드라도 쉽게 받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엄청나다. 아무리 이드의 내공이 대단해도, 그걸 쏟아 내는 몸은 인간의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만한 공격을 플레타와 코어 켄타우로스는 수십, 수백 번을 주고받았다. 이런 전투를 대단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도리어 무엇을 대단하다 해야 할까.

이런 진심이 전해진 것일까.

플레타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간다.

“하하하. 이것 참,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분은 좋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러 일부러 오신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입니까?”

입가의 순진한 웃음과 달리 의문을 담은 눈빛이 이쪽을 향한다.

“대단한 건 아니고, 이 근처에서 찾을 게 좀 있어서 말입니다.”

숨길 이유도, 숨길 생각도 없었던 이드가 순순히 답했다.

“찾을 것…… 말입니까? 여기서요?”

플레타가 새삼 주변을 돌아본다.

아무것도 없는, 처음부터 텅 비어 있던 공간. 무엇보다 조금 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곳이다.

이런 곳에 뭐가 있단 말인가.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전투를 겪고 온전히 남아 있기란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드는 이런 플레타의 눈빛을 뒤로하고, 백색의 빈 공간을 점점 잠식해 들어가는 균열을 살폈다.

그렇게 그 사이를 요리조리 몇 번이나 옮겨 다녔을까.

사람들은 그의 그런 모습에 의문을 넘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들 입장에선 아무리 살펴도 보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가운데, 다른 반응을 하는 이도 있었다.

바로 라울이었다. 이드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곧 뭔가를 알아차린 듯 골든아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플레타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뭐가 있다는 겁니까?”

“대답은 잠시 후에…………….”

이드는 이런 플레타의 질문을 무심히 받아넘겼다.

마법사도 아닌 그에게 지금 찾고 있는 걸 설명하려니 그 개념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침 라울도 제 행동의 이유를 알아차린 것 같은데. 그에게 설명을 떠넘길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작게 벌어진 균열을 스치고 지나던 이드의 신안이 돌연 무언가를 향해 번뜩였다.

“찾았다.”

터턱!

직후 균열을 잡아 벌린 이드는 균열이 어느 정도 커지자 그 안으로 팔을 집어넣었다.

“저, 저!”

“미친…… 저게 왜 벌어져!”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본 마법사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양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행동이지만, 마법사들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점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균열을 맨손으로 잡거나, 또 그걸 벌리는 것. 그리고 그 안으로 신체 일부를 집어넣는 것까지. 마법사들에게 있어 이 모든 일은 더없이 위험천만한 행동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드는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무언가를 찾기에 정신이 없는 모습이다.

“잡았다. 역시 거기 있을 줄 알았지.”

그러다 목표한 무언가를 찾은 듯 그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에 마법사들이 고개를 저었다.

‘균열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것이 그들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현실 앞에 무너지는 것이 상식이 아니던가. 이번에도 그랬다. 균열 속에서 빼낸 이드의 손끝에는 마법사들의 상식과 달리, 웬 사람의 머리가 잡혀 있었다.

그것도 살아 있는 이의 머리가.

“끄아아악! 놔, 놔라! 이놈!”

균열 속에서 나온 머리의 주인, 조셉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악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몸을 버둥거렸다. 하나 헛수고다. 완력이 엄청난 기사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이드의 손아귀를, 한낱 마법사가 무슨 힘이 있어서 뿌리칠 수 있겠는가.

조셉도 곧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 파랗게 질린 입술을 다급히 움직였다.

“그리스!”

그렇게 발동한 건 마찰력을 조정해서 접촉면을 미끄럽게 만드는 주문. 아무리 단단하게 잡고 있어도 미끄러져 나올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때로 그게 통하지 않는 상대가 있다는 점이고, 하필이면 그 상대가 이드라는 것일까.

“왜…… 왜 빠져나갈 수 없는 거냐!”

“왜・・”

“글쎄. 왜일까?”

마치 놀리는 듯 답한 이드가 버둥거리는 조셉을 천천히 균열 속에서 빼내기 시작했다.

라미아와 일리나.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이 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균열 속에서 사람을 끄집어낼 줄이야.

혹시 저 균열 너머에 다른 공간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이런 놀라움은 마법사들이 특히 더 심했다.

“말도 안 돼. 저 불안정한 공간으로 인간을 통과시킨다고?”

“그건 문제도 아니야. 어떻게 저 불안정한 공간 사이에 낀 인간이 살아 있을 수가 있는 거지?”

“미치겠구만, 명예 후작이 마법사였나? 아니면 초인?”

그렇게 마법사들이 이드가 만들어 낸 결과에 놀랐다면.

다른 사람들은 조셉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했다.

하나 자신들 말고 이 영혼의 관에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답은 아주 간단했다.

“혹시 그놈이 이 공간을 움직이던 영혼의 관 마법사들 중 하나인 겁니까?”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이 백색 공간과 연결된 데 있던 자니까요.”

“내가 누군지 안다면 놔라! 죽고 싶지 않다면!”

“지금 죽는 걸 걱정해야 할 건 그쪽인 거 같은데?”

이드는 먹히지도 않을 협박을 날리는 조셉을 마저 당겨 냈다. 그러자 무가 뽑히듯 조셉이 균열 속에서 쑥 뽑혀 나와 대롱거렸다. 자신의 신세가 수치스러운지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조셉이었지만, 부득부득 이를 가는 것 말고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했다. 이드의 손이 닿은 순간부터 그의 몸은 온전히 제압된 상태였던 것.

“감히 바벨 따위가・・・・・・ 바벨의 초인들 따위에게………….”

마법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신세가 된 조셉이 이드와 다른 이들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건 결코 현명한 행동이 아니었다. 쩍!

피와 함께 하얀 치아가 튀어 올랐다.

플레타가 대검을 휘두르는 그 크고 두꺼운 손으로 조셉의 따귀를 쳐올린 것이다. 그나마 얼굴이 뜯겨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순간 눈에 초점을 잃은 조셉의 입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흐, 초인기에 빌붙으려는 마법사 주제에. 크크크.”

“플레타.”

“아아, 나도 더 할 생각은 없어.”

라울의 저지에 플레타는 순순히 두 손을 들고 물러났다. 그의 얼굴에는 개운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뺨을 맞은 조셉의 얼굴은 금발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그런 조셉을 걱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직접 자신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어쨌든 자신들의 적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투항하지도 않은 이에게 굳이 먼저 손을 내밀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이 상황에 바벨을 욕하고 초인을 무시한 건 스스로 때려 달라는 말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그나저나, 말하는 투를 보면 허드렛일이나 하는 하급 마법사는 아닌 것 같은데. 명예 후작님, 혹시 다른 놈은 더 없었습니까?”

“아쉽게도 손에 잡힌 건 이자뿐입니다. 중간에 누군가 구하려고 시도한 것 같은데, 손이 부족했죠.

“구하려 했다고요?”

이드는 라울을 향해 조셉을 들고 있던 손을 살짝 흔들었다.

“반대쪽에서 이자를 당기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 강한 건 아니었지만요.”

물론 이드 기준에서 강하지 않은 거다. 일반 성인이었다면 조셉을 놓칠 만한 정도였다.

어쨌든 방금 이드의 발언은 균열 너머 공간에 조셉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다. 하지만 알아차렸을 땐 이미 조셉을 손에 쥐고 있어 다른 사람까지 잡는 건 무리였다.

“혹시 아직 있을까요?”

“한번 확인해 보죠.”

“주시죠. 그자는 제가 제압하고 있겠습니다.”

오탄이 다가와 조셉을 넘겨받았다.

덕분에 손이 자유로워진 이드는 다시 균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라미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곧 이 무차원 공간이 붕괴할 거예요.”

“알아. 어차피 확인만 하는 거니까.”

겸사겸사 남은 인간이 있다면 하나 정도 더 빼낼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이미 벌려 놨던 균열도 두 배 이상 커져 있는 상태였다. 어깨까지 깊이 집어넣은 이드는 잠시 균열 너머의 상태를 살피고는 팔을 빼냈다.

“균열 너머에 방이 있네요. 꽤 넓은데, 대략 스무 명 정도가 작업할 수 있을 만한 크기예요. 아쉽게도 남은 사람은 없고요.”

“그럴 만하죠. 공간을 넘어 그들 중 하나를 끌고 왔으니. 두려웠을 겁니다.”

라울이 조셉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었다.

사실 마법사들이 석실을 비우기 시작한 건 코어가 파괴된 직후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그렇다고 라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실제 수정구 속에서 튀어나온 이드의 손에 끌려가는 조셉을 보고 마법사들이 기겁을 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모두 충격에 대비하세요. 곧 공간이 붕괴되면서 분리 현상이 일어날 거예요.”

라미아의 경고가 이어졌다.

그녀의 말에 따라 플레타 부대와 은색 기사단이 이드와 검후를 중심으로 원진을 만들었다.

외부의 충격에 대비하는 자세.

그 상태로 멈춰 선 사람들의 눈에, 백색 공간이 검은 균열에 완전히 뒤덮이는 모습이 들어왔다.

피잉-

뒤이어 귀를 울리는 이명과 함께, 검게 변한 세상을 가로지르는 은색 빛줄기. 직후 그 빛줄기에서 폭풍 같은 바람이 쏟아지며 일행들을 휘감았다. 쿠콰콰콰콰

그리고 일순간 불어온 바람이 지나간 자리로 보이는 것은 백색의 공간이 아닌, 처음 그들이 영혼의 관을 열고 들어왔을 때 본 바로 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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