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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56화


1291화

작은 방이다.

사방 벽마다 천장까지 쌓여 있는 책이,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을 더 좁아 보이게 만드는 방. 모락모락

그런 방의 중앙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방의 중앙에 자리한 원목의 탁자와 푹신해 보이는 의자. 그 의자에 앉은 이가 피우는 담배의 연기다.

남자가 담배를 힘 있게 빨며 손에 든 책장을 넘겼다.

똑똑.

그와 함께 들리는 노크 소리. 뒤이어 조용히 문이 열리고, 삼십 대로 보이는 마법사가 들어와 고개를 숙인다.

“마스터.”

“음, 무슨 일이냐.”

“현재 침입자들에 의해 무차원 공간이 붕괴. 사실상 1층이 뚫렸습니다.”

턱.

마법사의 보고에 담배를 입에 문 남자, 영혼의 관 2층의 플로어 마스터 펠튼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후우~ 멍청한 조셉이 하는 일이니 애초에 기대는 없었다만, 벌써 뚫려? 그것도 무차원 공간까지 붕괴되고?”

“네.”

“그럼 코어는? 코어는 회수했다더냐?”

“공간 붕괴의 원인이 코어의 파괴임을 확인했습니다.”

멍청할 뿐 아니라 판단력까지 오크급이었나? 상황이 기울었으면 가장 중요한 코어라도 먼저 확보했어야지.”

펠튼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꾹꾹 눌러 껐다.

신경질적인 말투와 달리, 담배를 끄는 손길은 가볍다 못해 경쾌하기까지 했다.

자신과 같은 플로어 마스터인 조셉. 평소부터 펠튼은 그를 매우 싫어했었다. 능력이 되지 않는 자가 어중간한 서류 처리 능력과 친분을 가지고 플로어 마스터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관에 소속된 마법사로서는 1층이 돌파되고 중요한 코어가 파괴된 것이 안타깝지만, 한 명의 존경받는 플로어 마스터로서는 내심 반갑기도 한 소식이었다.

‘이번 일로 조셉 그놈을 같은 플로어 마스터로서 마주할 일은 더 이상 없겠어. 침입자 놈들이 잘해 줬군.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런 속내를 내색할 수는 없다.

잠시 마음을 정리한 펠튼은 곧 떠오르는 생각에 자신의 제자 뒤로 닫힌 문을 바라보고는 짜증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보고를 왜 네가 가져왔느냐? 코어까지 날려 먹었다면 조셉 그놈이 직접 달려와 자신의 불찰을 보고해야 하지 않나? 혹시 조셉 그자가 나를 보지 않고 곧바로 부관주에게 달려간 것이냐?”

1층이 뚫렸다면 침입자들이 언제 2층으로 진입할지 모른다.

그것이 지금 당장일지도 모를 일.

그러니 1층의 상황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2층의 플로어 마스터인 자신이어야 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보고를 건너뛰고 부관주에게 달려갔다면?

만약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가만두지 않겠다며 내심 칼을 가는 펠튼이었다.

그런 펠튼을 마주한 제자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망설이다 어렵게 입을 뗐다. 그의 스승이 조셉 마법사를 싫어하는 것은 알지만, 과연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을 할지.

“아닙니다. 사실 조셉 플로어 마스터께선……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행방을 알 수 없다니. 설마 코어를 날려 먹고 잠적이라도 했다는 거냐? 그치가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텐데?”

“그것이 아니라, 적에게 끌려가셨다고…….”

펠튼은 쉽게 답하지 못하는 제자를 보며 불을 끈 담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

“그래. 어림도 없는 일이지. 결국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적지 않을 것이다. 조셉, 그 하나를 위해 그런 피해를 감수해야겠느냐? 영혼의 관의 각 플로어를 이용하면 큰 피해 없이 제거할 수 있는 적들을 말이다.”

조셉이 중요 인물이기는 하나, 적들과 전면전을 위해 나서야 하는 마법사들 역시 버려도 되는 패는 아니다.

적이 강한 만큼 영혼의 관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마법사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 한데 그런 상황에 조셉 하나를 위해 여럿이 희생해야 한다? 이래서야 본말전도가 아닌가.

펠튼의 차가운 목소리에 제자는 반박하는 대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조셉 마법사께서 적의 손에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문제는 확실히 해결할 필요가 있지.”

“……마스터, 혹시.”

구출은 없다고 못 박은 사람이 조셉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잠깐 의문을 떠올린 제자는 한 가지 떠오르는 가능성에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구출 없이 적의 손에 떨어진 조셉을 처리할 방법.

“베이몬의 약속을 발동시킨다. 필요한 준비를 해라.”

떨리는 제자는 보이지 않는지, 펠튼이 냉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제자는 주먹을 쥐어 떨리는 손끝을 숨겼다.

베이몬의 약속.

그것은 일종의 저주이며 맹세였다.

영혼의 관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맹세. 영혼의 관을 배신하거나, 영혼의 관에 해를 끼치게 될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저주.

그것은 생명의 관이나 정신의 관에는 없는, 영혼의 관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목숨이 걸린 일이지만, 영혼의 관이 가진 초인 마법의 정수를 지키기 위한 조치로서 그건 그들에게 자신이 최고의 마법사라는 증거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베이몬의 약속이 실행된 것은 단 한 번. 그것도 수십 년 전의 낡은 사건이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로 베이몬의 약속을 발동시키려 한다. 그것도 다름 아닌 플로어 마스터를 대상으로.

“그, 그렇지만 그것의 발동을 위해서는 탑주님이나 부관주님의 허가가・・・・・・.”

“내가 설마 그것을 모르겠느냐. 허가는 내가 받아 올 것이다. 후우~”

펠튼은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다시 꾹꾹 눌어 담배를 껐다. 끈 담배를 탁자 위에 올린 그는 탁자에 기대 놓은 자신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는 제자의 옆을 지나 방문을 열었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준비를 마쳐 놓거라. 혹시라도 입을 열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멍청한 조셉이라도 바로 입을 열지는 않겠지.”

그나마 조셉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것일까.

그 말과 함께 멀어지는 펠튼을 멍하니 바라보던 제자는 복잡한 심경으로 고개를 숙였다.

“네・・・・・・ 마스터.”


“현 구역에 대한 장악을 완료했습니다.”

은색 기사가 쉴라 앞으로 달려와 보고했다.

“적의 것으로 짐작되는 마법적 트랩을 발견했습니다만, 라인이 죽은 걸로 보아 발동되지는 않을 듯합니다. 다만, 공간적 특성상 완전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마법적인 방어벽을 설치 중입니다.”

그 옆에서는 마법사들이 플레타와 오탄을 앞에 두고,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에 대해 보고했다.

조금 뒤에서 그 모습을 본 이드가 말했다.

“낙오자는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낙오자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을 사로잡았지요. 이게 다 명예 후작의 활약 덕분입니다.” 

라울이 그런 이드를 치켜세우며, 스폴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검을 들고 우뚝 선 스폴 앞에는 조셉이 죽은 듯 늘어져 참혹한 얼굴로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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