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57화
1292화
포로라니.
오늘 아침 눈을 뜰 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으득.
조셉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 점점 늘어남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음습하게 솟아나는 불안에 턱이 덜그럭거릴 것 같아서다.
‘어떤…… 어떤 고문에도 굴하지 않으리라.’
그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억지로 두 눈을 부릅떴다.
영혼의 관 소속의 마법사로서 자존심을 지키리라. 그렇게 내심 소리친 조셉이었다.
그러나.
번쩍
갑자기 눈앞에 솟아나는 광채에 부릅떴던 눈을 찡그릴 수 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비올라가 말했다.
“영혼의 관 소속이시라고?”
뻔한 질문.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상대에 대한 비웃음은 진심이다.
비올라는 빙글빙글 웃는 낯을 하고 조셉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움직임에 따라 맨들맨들한 대머리가 계속 반짝였다.
“영혼의 관에는 하나같이 대단한 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댁을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
불안에 떨던 조셉은 이제는 혼란스러웠다.
이놈은 뭐 하는 미친놈인가. 적에게 생포된 만큼 고문은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어 자신의 실력을 매도하다니? 이건 혹시 신종 고문법인가?
그러나 조셉이 혼란에 빠지거나 말거나, 비올라는 제 할 말을 멈추지 않았다.
“탑주를 바로 옆에서 모시고 있으면서 겨우 이 정도라니. 실망이야. 설마 영혼의 관 마법사들은 모두 당신 같은가? 그럼 억울한데. 난 또, 영혼의 관에는 나와는 다른 엄청난 천재들만 모여 있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내 머리 위에 있었다니. 갑자기 뭣 같이 짜증 나려고 하네.”
“・・・・・・뭐냐, 설마 넌…………..”
“아, 그러고 보니 내 소개를 안 했네. 난 또 워낙 대단한 분들인 만큼 나에 대해서도 다 아는 줄 알았지. 생각해 보니 나처럼 허접한 놈을 위대하신 영혼의 관 마법사님들이 알 턱이 없는데. 나 비올라요. 생명의 관 소속이었지. 지금은 아니지만.”
말과 함께 활짝 웃는 비올라.
그와 반대로 조셉의 얼굴은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불안은 불안이고, 현재 눈앞에 마탑의 배신자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 무너진 생명의 관에서 배신자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설마…… 그것이 네놈이었느냐?”
“어이쿠. 배신자씩이나. 나는 그런 거 아냐. 배신자는 무슨. 나에겐 여전히 초인 마법이 최고야. 오히려 생명의 관에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연구에 매진 중이라고.”
“어디서 헛소리……”
“어허. 헛소리가 아니라니까. 나는 그저・・・・・・ 그래. 자리를 옮긴 것뿐이야. 조금 더 연구하기 좋은 곳으로, 나도 영혼의 관으로 가고 싶었지만,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질 않잖아. 그러니 어쩌겠어. 내가 알아서 움직여야지. 그러니 배신은 아니야.”
“…..”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떠난 것.
그것을 배신이라고 하지만, 너무 당당한 비올라의 주장에 조셉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런 조셉을 비웃는 비올라를 향해 이드가 물었다.
“그래서, 모르는 얼굴이란 거지?”
“네. 모르는 얼굴입니다. 애초에 생명의 관과 영혼의 관 사이에는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는 얼굴도 몇 없습니다.”
“그럼 중요 인사는 아니라는 말인가.”
“중요까진 아닐지언정, 최소한 말단은 아닐 겁니다.”
이드는 그거야 당연하지 않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대륙의 그 어떤 마탑도 6클래스의 마법사를 말단으로 쓰지는 않을 테니까.”
미완의 마탑을 이루는 세 개의 관은 일정 부분 그 정보를 교류하면서도 연구의 주제나 성향은 매우 독립적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것도 있었다. 각 관의 조직 구성 같은 거 말이다.
생명의 관에서 6클래스 마법사는 보통 주요 부서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영혼의 관이 생명의 관보다 여러 부분에서 뛰어나다 해도, 이런 부분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드는 자신이 포획한 마법사가 어쩌면 무차원 공간을 만든 책임자일 가능성도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조셉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말을 걸었다.
“거기, 마법사. 이름이 뭐지? 계속 이놈, 저놈으로 불리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차피 이름 정도다. 대단한 비밀도 아니지 않나.”
“……조셉.”
“조셉이라. 흔하지만 좋은 이름이지. 만나서 반갑다, 조셉 마법사.
이드는 조셉을 향해 선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조셉은 이런 이드를 보며 내심 불안에 떨었다. 지금도 그의 뇌리에는 자신을 잡아채던 손길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공간의 균열을 통과했는지, 직접 체험하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미지는 공포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능력을 가진 상대에 대해 조셉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품었다. 공간의 균열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자라면 또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조셉은 그 능력이 자신에게 어떤 식으로 사용될 것인지가 두려웠다.
‘나는 어떤 고문이 시련이 닥쳐도 결코 탑주를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그는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속으로 끝없이 같은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조셉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이러한 모습 자체가 그의 약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모습을 보고 라울과 쉴라를 포함한 몇몇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라울이 그런 조셉이 들으라는 듯 말을 건넸다.
“심문을 하실 겁니까?”
“당연히 해야지. 저놈 입은 내가 열게 만들지.”
이드에게 물었건만, 플레타가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 답한다. 그러면서 양손의 손가락을 뿌드득거리며 꺾어 댔다.
맡겨만 준다면 조셉을 당장이라도 살아 있는 고깃덩이로 만들어 줄 것 같다. 그에 조셉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지만, 그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심문을 하긴 해야겠지만, 글쎄요. 솔직히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죠. 정신의 관에서처럼 저들도 맹약으로 묶여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중요한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겁니다.”
생명의 관 토벌에서 이드는 프리실라와 베일록을 포로로 잡았다.
하지만 그 둘에게서 얻어 낸 정보는 토벌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정도는 되지 못했다. 기껏해야 정신의 관의 구조 정도를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어떤가, 조셉 마법사.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들도 맹약으로 묶여 있는가.”
끄덕끄덕.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을까.
조셉은 어쩌면 이들이 심문에 대해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이몬의 약속으로 묶여 있소. 우리는 이것으로 인해 죽어서도 영혼의 관과 탑주를 배신할 수 없소.”
“베이몬의 약속이라.”
조셉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꺼낸 말.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 문장 속에 벌써 두 가지 정보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물론 ‘베이몬의 약속’이 발동하지 않은 걸 보면 영혼의 관에서도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탑주의 성이 베이몬이었던 것 같은데?”
“아…… 바벨이라면 알 수 있겠군. 그렇소.”
탑주의 이름이 언급되자 살짝 놀랐던 조셉은 곧 자신들이 바벨의 지원을 받은 적이 있음을 떠올리고는 금방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렴. 적지 않은 돈을 받았고, 연구 결과를 넘겼다.
그 과정에서 탑주의 이름 정도는 벌써 밝혀졌을 것이 아니겠는가. 바벨이 탑주의 이름을 아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바벨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드는 정신의 관에서 탑주와의 직접 만남을 통해 그의 이름을 알았다. 그렇기에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라울이 오히려 의문을 가졌다. 다만 탑주의 이름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기에 그저 잠깐 스친 의문으로 끝났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조셉 마법사.”
“뭘 말이오.”
“어차피 맹약에 묶여 있는 당신에게서 중요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소. 그러니 그 맹약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에서 알고 있는 것을 내놓는다면 우리도 당신에게 이 이상의 위해를 가지 않겠소. 갈 길 바쁜 입장에서 그게 기운 빼지 않고 서로에게 좋지 않겠소? 좋게 좋게 갑시다.”
“…..”
사실 ‘서로’에게 좋을 건 없었다.
포로로 잡힌 시점에서 조셉에겐 모든 것이 불리할 뿐이다. 그저 고생을 더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 정도일까.
그러나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셉으로서는 크게 반길 만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 대신 그가 내주어야 할 정보는 실로 간단한 것들뿐이지 않은가.
흔들리는 내면을 따라 조셉의 눈이 요리조리 흔들렸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로서는 그 정도 반응이면 충분했다.
‘넘어오겠군.’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결말을 예상했다. 포로로 잡힌 시점에서, 한 번 굽히면 계속 굽힐 수밖에 없다.
조셉이 거부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무시했어야 했다. 갈등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그의 마음은 꺾여 있던 것이다.
‘영혼의 관의 구조를 알면….’
‘영혼의 관에 소속된 마법사들의 전력을 알면…’
‘탑주의 위치를 알게 된다면………..’
이들은 조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고 사용해야 할지 그에 대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조셉의 입이 열리는 순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리라.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그만을 향했고,
십여 분 정도가 흘렀을까.
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문 조셉의 입이 힘겹게 열렸다.
“좋다. 그대들의 제의를 받겠다. 설마 바벨의 이름을 걸고 거짓을 말하지는 않겠지.”
“물론이다. 바벨의 이름을 걸고…… ·조셉 마법사. 당신의 맹약을 발동시키는 일은 없다.”
이드는 힘 있는 어조로 답했다.
그 모습에 바벨 소속의 초인들이 일그러지는 입을 조용히 가렸다.
바벨 소속도 아닌 이드가 바벨의 이름을 걸어 보았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그걸 지금 밝힐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좋다. 그럼 우선 무엇이 알고 싶은가.”
“가장 먼저 듣고 싶은 건, 이곳의 구조다.”
“영혼의 관은 지하 3층, 지상 7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끄덕.
“그리고・・・・・・ 그리고・・・・・・ 읍!”
조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이드는 갑자기 말을 더듬으며 몸을 부르르 떠는 조셉의 행동에 눈을 크게 떴다.
딱 봐도 심상치 않은 반응.
“갑자기 왜 이래? 이봐, 조셉 마법사!”
“으윽…… 어째서・・・・・・ 베이몬의 약속이・・・・・・ 나는 마탑을… 배신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드, 원격 발동이에요!”
조셉의 말과 함께 라미아가 외쳤다.
그에 이드가 급히 조셉의 몸에 손을 대려 하지만, 그보다 약속이 발동되는 것이 더 빨랐다.
퍼퍽!
부릅뜬 조셉의두 눈이 터지는 것과 함께, 그의 숨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