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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59화


1294화

재정비를 마친 사람들이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나 선두에는 플레타와 그의 부대원들이 섰다.

격렬한 전투를 마친 그들이 다시 선두에 서는 게 괜찮을까 싶지만, 하나같이 쌩쌩한 모습을 보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평소 혹독한 훈련의 성과였다.

거기에 더해 포션과 회복 마법, 그리고 회복을 돕는 초인기를 통해 소모된 체력을 완전히 회복한 덕분이었다.

이드는 그 모습을 통해 이번 영혼의 관 습격을 위해 바벨이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많은 포션과 회복 마법, 그리고 공격 자원도 아닌 초인들을 준비시킬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은 넓었다.

연구에 필요한 기재를 옮기기 위해서일까. 워낙 넓은 공간에 혹시 화살이나 독같이 클래식한 함정이 있는 것이 아닐까 경계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하긴, 1층의 코어 켄타우로스를 쓰러트린 실력자를 상대로 그런 함정을 준비하는 편이 오히려 바보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하자 보인 것은 평야처럼 넓은 공간이었다.

“휘익~ 여기도 넓은데요.”

“아래층 백색 공간도 그렇고, 공간 낭비가 심한 놈들이야.”

오탄과 플레타가 불만이라는 듯 투덜거렸다.

그들을 시작으로 뒤이어 2층에 발을 들인 검후가 말했다.

“이것도 마법이겠죠?”

“1층과 같은 무차원 공간이에요. 공간 확장 형태로 마법을 발현하고 있네요.’

“그럼 여기도 코어를 찾아서 파괴하면 끝이겠네?”

이드의 물음에 라미아의 고개가 애매하게 끄덕인다.

“결과만 따지면…….그렇죠. 하지만 상대가 1층의 상황을 알고 있다면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이 정도면 상당한 대마법이잖아. 그 짧은 시간에 변형시키는 게 가능할까?”

마법은 몸을 쓰는 무공과는 다르다.

특히 고클래스의 마법, 혹은 마법진이나 제물 등이 필요한 특별한 경우에는 완성된 걸 변형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비유를 하자면 이미 완성된 건축물의 설계를 갑자기 바꾸는 것과 같다.

재건축까지는 아니지만, 일종의 리모델링이라고 할까. 그건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드 일행이 1층에서 코어를 파괴하고 2층으로 올라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사이.

이 정도의 대마법을 뜯어고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물론 ‘절대 불가능’은 아니다. 라미아라면 이십 분이면 리모델링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까지 끝낼 수 있는 시간이긴 하다.

그러나 저들은 라미아가 아니다. 아니, 세상 어디에도 라미아 같은 이가 또 있을 수는 없다.

“그렇죠. 하지만 처음부터 수정 기능을 넣어 뒀다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러면서 라미아는 중간중간 변형되던 1층의 백색 공간을 예로 들었다.

“그게 보기엔 간단하게 보여도, 구조식을 만지작거리지 않는 이상 그 정도 다양성은 어려운 거거든요.”

“결론적으로.. 라울 자작이 더 고생해야 한다는 거네?”

“그렇죠.”

왜 마법에 대한 이야기의 결론이 자신인 것일까.

라울은 갑자기 자신을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앞서 1층에서 너무 화려하게 나선 부작용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였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넓은 공간 한중간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바벨이 분수에 맞지 않게 뛰어난 인재를 가졌군. 정확한 분석이다. 어린 마법사여.”

그와 이드 일행 간의 거리는 거의 1킬로미터.

하지만 목소리는 귀 옆에서 속삭이는 듯 가깝게 들려왔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것도 같았다. 척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모습.

그러나 그에 대한 라미아의 첫 반응은, 깨발랄한 호들갑이었다.

“어머나! 들었어요? 절 보고 어리대요.”

“……그래서 좋아? 그런 걸 의식할 나이는 한참 지났지 않아?”

검으로 태어났을 때부터를 기준으로 삼자면, 라미아의 나이는 네 자리에 이른다. 수년의 오차쯤은 그야말로 웃어넘겨도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이드에 라미아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쏘아 냈다.

“어떻게 이드는 아직도 여자를 몰라요? 나이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여기서 핵심은, 어려 보인다는 거라고요. 저도 여자란 말이에요.”

“・・・・・그게 뭐? 너라면 더 어려 보일 수도 있잖아.”

어차피 현재 라미아의 몸은 진짜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어 낸 골렘이다. 즉, 껍데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원하기만 한다면 지금보다 어려 보이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그건 진짜 인간으로 변한 라미아 역시 마찬가지.

지구에서 라미아는 인간의 몸을 가지긴 했지만, 결코 평범한 인간의 육체는 아니었다. 원본이 원본인 만큼 특별했다고 할까. 그녀의 몸은 그야말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궁극의 육체였다.

일단 세포의 열화가 없어 늙지 않았으며, 피부는 매끈하면서도 총알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질기고 단단했다.

뼈는 강철 같았고, 상처가 나도 순식간에 회복이 가능했다. 병은 걸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질량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간단한 변형도 가능했다.

덕분에 지구에 있을 때 라미아는 항상 싱그러운 모습이었다.

“차암. 어려 보이는 것과 어리게 봐 주는 것의 차이를 이렇게 모른다니까.”

“…..”

그거 결국 같은 말 아니야?

이드는 의미 구분이 불가능한 말에 조용히 입을 닫았다.

“재미있는 연인이군.’

그러자 입을 꾹 다물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마법사, 펠튼이 시큼털털한 눈빛을 하고서 말을 꺼냈다.

“어머. 감사해요.”

“그리고 굉장히 건방진 한 쌍이야.”

적지에 들어와 자신을 앞에 두고 투닥거리다니.

이런 경우는 실로 처음이기에 펠튼의 기분은 굉장히 미묘했다. 화도 나지만, 어처구니가 없달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저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펠튼은 갑자기 저 연인이 휘감고 있는 여유를 깨부수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겨우 1층을 통과했다고 너무 자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충고라도 해 주고 싶군.” 펠튼의 눈이 이드와 라미아를 향해 번들거렸다.

그러나 이런 펠튼의 시선을 중간에 가리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플레타였다.

그는 1층에서처럼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대검을 척 하니 꺼내 들었다.

“충고는 사양하지. 이분들은 우리 손님들이라서 말이야. 꼬장꼬장한 마법사의 충고 따위는 필요 없어. 손님은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거든.”

“누군가 했더니, 귀한 코어를 파괴한 놈인가.”

“귀한 코어는 아니고, 귀찮은 물건을 쪼개 버리기는 했지.”

“……하아. 갑갑하군. 그것이 얼마나 귀하고 대단한지도 모르는 놈에게 코어를 잃다니.”

“크흐흐, 별 병신같은 소리를 다 듣겠군. 코어의 가치를 알든 모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하여간 마법사라는 것들은 사소한 일에 너무 집착한단 말이야.”

마법사를 한 데 묶어 매도하는 플레타에, 바벨에 속한 마법사들이 애매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내심 불만의 말 한마디는 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게 아쉽달까.

그러거나 말거나, 펠튼은 툴툴거리는 플레타를 바라보다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조셉을 끌고 간 것도 너인가.”

“아, 그 마법사 말이지? 뭐 좀 물어볼까 했더니, 갑자기 눈알이 터져 죽은. 그거・・・・・・ 너희가 한 짓이지?” 

“너인가?”

“글쎄. 궁금하면 직접 맞춰 보든가?”

재차 답을 요구하는 펠튼을 향해 플레타는 능글능글 웃어 보였다. 상대를 조롱하는 것 같은 미소.

그런 플레타를 바라보는 펠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놈은 아니로군.’

그건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그의 경험상 플레타와 같은 성격을 가진 자는 본인이 한 일을 숨기는 법이 없었다.

항상 스스로 가진바 능력에 자신이 있고, 당당하다.

자신이 한 일이라면 저리 답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그렇다고 밝혔으리라. 즉, 공간에 간섭해 조셉을 끌고 간 인물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조셉을 끌고 간 게 결코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이 깊어졌을 때였다.

후웅!

아무런 예고 없이 펠튼의 가슴에 대검이 날아와 꽂혔다. 그야말로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

하지만 정작 대검을 던져 펠튼의 가슴을 쪼갠 플레타의 얼굴엔 실망감이 솟았다.

“쳇. 혓바닥을 제법 놀리더니, 결국 겁쟁이였잖아.”

“・・・・・・대화를 나누는 중에 공격이라. 예의를 모르는 인간이군.’

대검에 가슴이 쪼개진 펠튼.

피를 토하고 숨이 넘어갔어야 할 그는 가슴에 대검이 박히고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대검이 박힌 가슴에선 한 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한 걸음.

펠튼이 옆으로 걸음을 옮기자 대검이 그의 몸에서 빠져나온다. 아니, 빠져나온 것은 펠튼의 몸이다. 대검은 여전히 바닥에 박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사실 지금 펠튼의 모습은 진짜 그가 아니었다. 그의 형태를 마나로 만들어 낸 영상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렴 제자의 보고에 설마 조셉이 멍청하게 직접 적들 앞에 나섰느냐고 욕하던 그 펠튼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직접 위험을 감수하고 적 앞에 나설 리가 없었다.

“숨어서 나불대는 놈이 어디서 예의를 논해?”

“내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숨어 있는 것이 아니면, 당당한 거냐?”

펠튼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그 주변에 선 다른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빠르게 대상을 살핀 펠튼의 시선이 멈춘 것은 다름 아닌 라울에 이르러서였다.

“아무래도 이 습격을 지휘하는 이는 너인 것 같군. 그렇지 않나?”

“뭐, 꼭 틀린 말은 아니지만.”

플레타를 힐끗 바라본 라울이 삐딱한 자세를 하고 섰다.

“그래서 내가 지휘관이라면? 어쩌겠다는 건가?”

“네게 한 가지 제의를 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와 영혼의 관이 너희들에게 보이는 처음이자 마지막 예의이며, 자비다.”

“……어쩐지 듣지 않아도 뻔할 것 같지만,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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